28. 견디는 시간
또 다른 하루가 염치없이 고개를 들었다. 수시 원서를 넣은 곳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수능도 치렀다. 원서를 넣은 대학들은 줄줄이 입학을 허가한다는 문자를 통보했고, 그토록 염원하던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모든 게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고3이 되었을 무렵 대학에 합격하고 나면 근심 걱정 하나 없이 마냥 행복할 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무덤덤했다.
“택시!”
코트 깃을 여미면서 신호에 걸려 대기를 타고 있던 택시를 잡았다. 익숙하게 태오가 입원한 병원 이름을 댔다. 기사 아저씨는 미터기를 누르곤 별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차디찬 공기에 뼛속까지 얼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봤다. 제법 날씨가 추워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둑했다. 라디오에선 한파가 이어질 거란 일기예보를 알리고 있었다. 무슨 전선의 영향으로 오늘 밤이나 새벽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첫눈이 올 거라고 귀띔했다. 첫눈. 가만히 입술 새로 발음해봤다. 이상했다. 겨우 한 계절 지나왔을 뿐인데 몹시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신호에 걸렸는지 택시가 멈췄다. 유턴 신호를 알리는 깜빡이가 일렬로 반짝거렸다. 다시금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알록달록한 전구를 밝힌 상점가.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는 트리. 어디서든 캐롤이 아무렇게 흘러나왔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도 남지 않았구나. 금세 새해가 오겠지. 혼자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멍하니 할 일을 잊고 멍청하게. 나는 낮게 한숨을 쏟아냈다. 그러는 사이,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짤막하게 울렸다. 누군가 문자를 보낸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엘런이었다.
[빨리 와라. 나 알바 가야 된다고.]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일곱 시가 넘고 있었다. 도로를 꽉 메운 차량들을 보면서 시간을 가늠했다. 제시간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에 그 애가 있어.’
꿈 안에서 또 다른 꿈으로. 타인의 꿈을 거침없이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엘런은 나를 반희용의 무의식 안으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 태오와 함께 중학교 때 친구라고 소개했던 반희용은 시꺼먼 대리석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온기도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잠들어 있는 반희용은 성장하지 못한 중학생 모습 그대로였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은 어떻게 봐도 나랑은 닮은 것 같지 않았다.
“어디가 날 닮았냐?”
“하얗고 예쁘게 생겼잖아.”
가만 보면 엘런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의자에 꽁꽁 묶어놓고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읽어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해. 여기 데려온 목적이 뭐야?”
엘런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노려보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어서. 하고 손을 흔들었다.
“직접 확인해봐.”
“뭐?”
“너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
나는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지금껏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비상했다. 나는 다급하게 엘런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기억나? 내가 너한테 건 최면 풀자마자 내 목부터 조른 거?”
기억나지. 안 날 수가 있나.
“그때 알았어. 내 생각을 네가 다 보고 있다는 걸.”
“괜히 꿈을 통제하는 게 아니었네?”
“헤르셔잖아.”
미친 새끼. 욕을 해주자 얼른 손을 뻗어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차디찬 손이 만져졌다. 잔뜩 긴장한 것처럼 엘런이 작게 숨을 골랐다. 그리곤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속삭였다.
“내 마음을 다 읽고,”
“…….”
“소원 하나 들어줘.”
어째선지 엘런의 눈동자는 진지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엘런의 머리 위를 쳐다봤다. 금세, 엘런의 감추어두었던 속마음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어는 문장으로 문장은 하나의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는 가만히 엘런의 마음을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엘런에겐 친부모가 없었다. 아주 어릴 적 시설에 버려진 채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외 입양이 결정되었다. 그는 독일 뮌헨의 어느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특별한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양부모는 꿈을 연구하는 파멜 박사의 권유로 연구시설로 옮겨져 생활하게 됐다. 꿈에 대한 대부분의 능력은 그곳에서 개발하고 키워졌다. 그러다가 파멜 박사를 따라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만난 게 태오였다.
엘런이 처음으로 마음을 연 건 태오였구나. 그 무렵 함께 어울린 게 반희용. 창백하게 누워 있는 저 아이였다.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반희용은 태오를 좋아하고 있었다. 반 아이들 꿈에 들락거리다가 우연치 않게 반희용의 꿈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엘런은 자기도 모르게 반희용을 주시했다. 시선이 닿을 때마다 기묘한 감정을 느꼈고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질투로 변할 거라는 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엘런은 자신의 감정엔 둔했다.
반희용만 보면 이유 없이 답답해지는 감정 때문에 틈만 나면 꿈에 들어가 반희용을 괴롭혔다. 솔직하게 자신이 품은 마음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오가 반희용을 신경 쓰는 게 싫었다. 조금만 잘해줘도 실실 웃는 반희용이 꼴 보기 싫었다. 마음이 커질수록 엘런은 자꾸만 엉뚱하게 일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을 때, 엘런은 짐작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말았다. 반희용을 꽤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 태오를 좋아하는 반희용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 아무것도 모르면서 반희용의 마음을 받는 태오가 견딜 수 없었다. 독일로 돌아가면서 다시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반희용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엘런이 나를 이곳에 부른 건….
“선규호.”
“…….”
“반희용의 마음을 읽어줘.”
애석하게도 간절한 엘런의 소원을 나는 들어주지 못했다. 의식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텅 비어 있어서 읽어낼 수 있는 마음이 없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서도 태오가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엘런에게 매달렸다. 제발 태오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반희용에게 데려간 것처럼 나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널 데려가는 건 위험해.”
“나도 가고 싶어.”
“상황 보고. 반희용은 이미 무의식에서도 의식이 없어서 널 데려갈 수 있었지만, 태오는 어떤지 모르잖아. 기다려. 너까지 위험하게 만들 순 없잖아.”
엘런이 태오의 무의식에 접속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숨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도무지 손발이 떨려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의식을 잃듯 태오 옆에 누워 잠든 엘런은 하루 꼬박 지나서 눈을 떴다. 하지만 태오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택시에서 내렸다. 찬 공기가 뺨을 할퀴는 것 같았다. 빠르게 계단을 밟고 대학병원 입구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7층 버튼을 눌렀다. 차갑게 언 뺨이 조금씩 녹는 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성큼성큼 익숙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오른쪽 코너로 돌아 맨 끝 룸. 기태오가 잠들어 있는 곳. 나는 문 앞에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늦어!”
엘런이 도끼눈을 뜨고 소리부터 질렀다.
“내가 놀다 왔냐?”
“내가 알바 간다고 했어, 안 했어.”
“태오는?”
목에 감겨진 머플러를 풀면서 묻자 몰라, 나 늦었어! 하고 재빠르게 병실 밖으로 나간다. 옷걸이에 코트를 걸어두고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새하얀 수증기를 품는 가습기 사이로 기태오의 얼굴이 드러냈다. 두 눈을 감은 채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뺨을 만지고 싶었지만, 내 손이 너무 차가웠다. 간이 의자를 당겨 앉아 가만히 태오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오르내리는 숨소리, 고동치는 일정한 맥박. 변함없이 잠들어 있는 기태오. 나는 가만히 말을 걸었다.
“서점 알바가 이렇게 빡센지 몰랐어. 무슨 책들을 그렇게 많이 살까? 온종일 서 있는 게 아직도 적응이 안 돼. 뭐 그래도 괜찮아. 유 점장님이 잘해주니까 할 만해. 뭐랄까 알바생이든 직원이든 공평하게 대한다고 할까. 그냥,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 너는. 너는 거기서 어때?”
참 싫다.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걸까. 툭하면 눈물이 난다. 가만히 있는 너를 보고 있으면 심장 어딘가가 너무 아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마지막으로 내게 보낸 문자를.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그 말.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너. 보고 싶다는 말.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보고, 또 보고. 나지막이 한숨이 흘러나왔다.
“깨어나기만 해. 용서 안 할 거야. 너 미워할 거야. 병신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또다시 너를 적시고 만다. 짙은 어둠이 방 안 가득 밀려 들어왔다. 한참을 울다 일어났다. 벌겋게 뺨이 달아올라 볼품없었다. 짓무른 눈이 또다시 퉁퉁 부었다. 바보같이. 하아. 몸을 일으켰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가습기에 물을 채웠다. 멍하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벨 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줌마일 것이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받았다.
-규호야, 어디니?
“네, 병실이에요.”
-저녁은?
“먹었어요. 오늘 태오랑 같이 자려고요.”
-힘든데 집에 와서 자. 간병인 있는데 왜?
“좀 전에 보냈어요. 걱정 마세요.”
꾸욱 누르는 숨소리가 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만큼 눈물이 많다는 걸 알았다. 나만큼 기태오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규호야….
“네, 아줌마.”
-우리 태오 좀 부탁할게.
나는 대답 대신 고갤 끄덕였다. 뺨을 타고 참았던 감정이 흘러내린다. 고마워. 아줌마의 목소리를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서둘러 뺨을 손바닥으로 닦았다. 긴 숨이 폐부를 훑고 새어 나왔다. 진정하자. 마음을 다잡자. 괜찮다. 다 나아질 거다. 최면을 걸듯 나를 다독인다. 욕실에서 씻고 나와 태오가 누워 있는 침대 위를 파고들었다. 팔을 감아 너를 끌어안았다. 얼굴을 잔뜩 기대고 눈을 감았다.
“왜. 왜 너 혼자 깨어난 거야?”
태오의 무의식에 들어갔다가 엘런 혼자 일어났을 때 나는 반 미치는 줄 알았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괴로워하며 몸을 일으킨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으. 그게.”
“어째서 태오는 계속 저 상태냐고?”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엘런을 붙들고 물었다. 목소리가 자꾸만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아득함에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멍청하게 머릴 그러쥐고 있던 엘런을 향해 소리쳤다. 왜. 왜. 너 혼자 돌아왔냐고. 울부짖었다.
“반희용처럼 의식이 없던 상태는 아니었어.”
“그럼?”
“의식이 있는데, 무의식에 갇혀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만 기다려봐.”
“…….”
“곧, 깨어날 거야.”
곧. 깨어날 거야. 그래. 깨어날 거야. 지금도 태오는 깨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잠든 태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곱게 감긴 속눈썹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규칙적인 호흡과 온기가 감도는 몸. 나는 천천히 태오를 쓸어내렸다. 팔을 타고 내려온 손가락을 펼쳐 태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오늘은 손만 잡고 잘게.”
“…….”
“형 믿지?”
태오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겹쳐 깍지를 꼈다. 꾸욱 하고 손바닥이 맞닿는 순간, 섬광처럼 무언가가 눈 안에서 번쩍였다. 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마취당한 것처럼 그대로 의식을 잃듯 깊은 수면 아래로 떨어졌다.
으음.
어슴푸레 눈이 떠졌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병실이었다. 블라인드 쳐진 창가. 조용하게 흰 수증기를 내뿜는 가습기, 잠든 기태오. 잠깐. 침대에 있어야 할 기태오가 보이지 않았다. 기태오는 어디로 가고 흰 시트가 텅 비어 있었다. 얼른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봤지만 깨끗했다.
꿈을 꾸고 있나. 그 순간 금박 장식이 된 새하얀 문이 바닥을 뚫고 부드럽게 올라왔다. 허공 위에 둥둥 떠 있는 문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선이 부딪힌 순간, 나는 그만 내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