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 경계(3권 완결) (20/37)

매일 밤, 남동생과 나는 (외전증보판) 3 (완결)

19. 경계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초조했다.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신경 쓰였다. 형의 꿈 밖으로 나와서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엘런이 이런 식으로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팃을 먹인 거로도 모자라, 대놓고 형을 가지고 놀려고 했다. 괘씸하게도 녀석은 내가 하던 모든 종류의 기술들을 흉내 내고 있었다. 녀석의 최면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등 뒤로 한기가 치미는 것 같았다. 행여, 나 모르게 또다시 형의 꿈에 들어가 무슨 짓을 할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어째선지 박사님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시선을 내려 잠든 선규호를 내려다봤다. 곧 있으면 형이 일어날 터였다. 미세하게 드러난 미간의 주름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용케 형이 꿈이란 걸 자각해 위기를 모면했지만,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지이이잉.’

손안에 든 핸드폰이 진동 모드로 울렸다. 얼른 핸드폰을 확인했다. 애석하게도 기다리던 전화는 아니었다. 나는 잠든 선규호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손아귀에서 진동이 끈질기게 울리고 있었다.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빠르게 핸드폰을 받아 귓가에 댔다.

-Lange nicht gesehen!

엘런의 경쾌한 목소리가 고막을 갈랐다.

“오랜만? 잘도 그런 말이 나온다?”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존나 공들여 몇 번이고 암시까지 걸어 만든 건데.

“…….”

-어떻게 최면 풀자마자 깨부수냐. 사람 미치게.

어째선지 엘런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봤지? 내가 쓴 최면 그대로 나한테 쓴 거.

“이딴 짓 또 해봐.”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엘런이 경쾌한 목소리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왜. 예전엔 우리 같이 놀았잖아. 나도 끼워주면 안 돼?

“무슨 헛소리야?”

-아주 재밌어. 네 형.

그 때,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갤 돌리는 순간, 밖으로 나온 선규호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라도 통화 내용을 들었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끊어.”

녀석이 뭐라고 지껄이는 말을 무시한 채 전화를 빠르게 끊어버렸다. 소파에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서둘러 선규호 앞으로 다가갔다.

“통화하는 줄 몰랐…,”

팔을 당겨 있는 힘껏 선규호를 끌어당겼다. 허릴 꽈악 끌어안고 어깨에 고갤 묻었다. 온기가 감도는 체온. 맡아지는 선규호의 살냄새. 무엇보다 내 심장을 두드리는 심장 박동. 나도 모르게 입술 밖으로 복잡한 마음이 한숨처럼 쏟아졌다.

“왜 그래, 응?”

날 걱정하는 목소리가 네 몸에서 울렸다. 나는 조금 더 너를 당겨 안았다. 이렇게 안고 있어도 네가 어디로 사라질 것같이 아슬아슬했다.

“숨 막혀.”

“싫어, 안 놔줄 거야.”

“아, 진짜. 기태오.”

피식 웃는 게 느껴졌다. 어떤 눈동자로 어떤 웃음을 짓고 있는지 너를 마주 안고 있는 지금 다 알 것 같았다. 천천히 내 등에 팔을 감아오는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좀 더 너를 꽉 끌어안았다. 엘런 탓에, 잊고 싶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가장 밑바닥,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의 어느 날이 감은 눈 밑으로 펼쳐졌다.

“이 분단 세 번째 줄.”

엘런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을 터였다. 턱짓으로 엘런이 누군가를 지목했다. 그 무렵, 엘런은 타인의 꿈을 어디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가 닿기 힘든 무의식의 세계를 넘어서고 싶어 했다. 나는 엘런이 하려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녀석이 하고자 하는 것들에 별 불만은 없었다. 나 역시 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들이 궁금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엘런과 함께라는 사실이 나쁘지 않았었다. 타깃으로 반희용을 고른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학교에서 별로 눈에 띄는 스타일도 아니고, 어울려 지내는 애들도 별로 없었다. 문제가 될 것 없는. 엘런 말을 빌리자면, 딱, 가지고 놀기 좋은 스타일이었다.

“쟤, 어때?”

저절로 창가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얌전하게 교복을 입은 반희용이 뭔가를 읽고 있는 게 보였다. 교과서는 아닌 것 같고, 소설책 같았다. 눈동자만이 분주히 활자를 좇고 있었다.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나는 잠자코 엘런을 쳐다봤다. 턱을 괴고 반희용을 바라보는 엘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는 서로의 꿈을 넘나들면서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길 하곤 했었다. 생각해보면 관심사가 같아서 누구보다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엘런은, 유일하게 비밀을 공유하던 존재였고, 그것은 꽤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엘런은 자연스럽게 반희용을 옆에 끼고 다니기 시작했다. 늘 함께하던 하굣길도 좀처럼 같이 다닐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엘런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건 반희용이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엘런 옆에 서 있는 반희용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이상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 알 듯 말 듯한 시선이 신경 쓰였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도 없는 감정이 나를 괴롭게 했다. 더는 나를 찾지 않는 엘런 때문인지, 기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반희용 때문인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수요일이었던가.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엘런이 감기에 걸려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길 담임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엘런이 없다고 생각하자, 학교에 있는 게 시시했다. 눈치 봐서 학교를 쨀 생각이었다. 억지로 듣고 있던 수업이 지루해 엎어져 있다가 잠깐 졸았다.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잠들던 때와는 다르게 몸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쑥 밑으로 빠지는 감각을 타고 눈을 떴을 땐 누군가의 꿈 안이었다. 본능적으로 엘런이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꺄아아아악!”

송곳에 찔린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이곳이 내 꿈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맡아지는 냄새가 달랐다. 누가 나를 타인의 꿈속으로 끌어들였는지 짐작은 했지만, 의도는 알 수 없었다. 허리 위로 무성하게 자란 이름 모를 커다란 잎사귀들이 사이에 서 있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했지만,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순간, 갑작스럽게 등 뒤로 무언가가 바짝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헐떡거리는 숨소리, 울음을 삼키는 목소리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살려주세요….”

몸을 홱 돌렸다. 내게 따라붙은 누군가가 내 품을 파고들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나를 꽉 붙들었다. 마치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듯 덜덜 떨고 있었다. 고갤 들어 얼굴을 확인하려는데 도무지 꿈쩍을 하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써 턱을 들어 올린 순간, 섬뜩한 공포가 나를 휩쓸었다.

“제발, 살려…,”

듬성듬성 흰 두피가 보이게 엉망으로 잘린 머리카락 아래로 나를 쳐다보는 반희용이 보였다. 어디서 무슨 짓을 당했는지, 험악하게 찢긴 옷 사이사이 붉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덜덜 턱을 떨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살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야, 정신 차려. 왜 이러고 있는 건데?”

“살려주세요. 살려…,”

공포로 일그러진 동공이 점점 두려움으로 커져 갔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뭔가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반희용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눈앞에서 녀석의 팔 하나가 생으로 뜯겨져 나갔다. 품어져 나오는 새빨간 피가 뜨끈하게 옷 위로 떨어졌다. 공포로 일그러진 반희용의 눈동자를 본 순간.

책상에 엎어져 있던 나는 눈을 떴다. 수업이 끝났는지 교실이 시끄러웠다. 나는 호흡을 골랐다. 심장이 입 밖으로 토해질 것만 같았다. 반희용의 눈동자가 생생해서 꿈에서 빠져나왔음에도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눈동자만 돌려 주변을 살폈다.

다시 눈을 감으면 꿈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빠르게 반희용 자리를 살폈다. 책가방도 없는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엘런 말고 반희용도 결석이었던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현기증이 핑 돌았다. 꿈 안에서 봤던 충격적인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비틀거리며 반희용 옆에 앉은 녀석을 툭 쳤다.

“네 짝 어디 갔어?”

겁먹은 녀석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안경을 치켜세웠다.

“반희용 어디 갔냐고?”

감정을 드러내며 낮게 목소리를 깔자, 안경 쓴 녀석이 오늘 하, 학교 안 왔는데, 하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처음부터 학교에 안 왔다면, 어쩌면 엘런과 같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엘런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머릴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아무렇게 몸을 적셨다. 빗방울로 축축해진 운동장을 가로지르면서 나는 엘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울리다가 소리샘으로 넘어갔다. 일부러 안 받는 건지, 받을 수 없는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작정 교문을 빠져나오며 엘런 집으로 향했다. 내가 본 것이 그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생각 없이 꾸고 잊어버리고 말 그런 꿈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기묘한 꿈을 꿨던 그날. 학교를 째고 엘런의 집을 찾았다. 흑회색 비구름이 쉬지도 않고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몽땅 맞고 초인종을 눌렀다. 큼지막한 대문이 아무런 대꾸도 없이 열렸다. 감기에 걸렸다는 말이 거짓인 걸 알아차린 건 현관문에서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엘런과 마주했을 때였다. 나는 녀석을 노려봤다.

“반희용한테 무슨 짓 했어?”

“봐서 알잖아.”

“몰라. 그게 뭐야!”

“흠뻑 젖었네. 일로 와봐.”

욕실에서 수건을 가져온 녀석이 내 머리 위로 덮어씌웠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녀석의 손에 아무렇게 휩쓸려갔다. 잔뜩 젖은 물기를 털면서 엘런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너 곱슬머리구나. 젖으니까 더 곱슬거려.”

나는 녀석의 손을 뿌리쳤다. 반희용이 눈앞에서 팔이 떨어져나가 피범벅이 된 채 비명을 내지르던 장면이 질 나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꿈인데 뭘 그렇게 걱정해.”

엘런이 덤덤하게 나를 쳐다봤다. 무감한 눈동자는, ‘고작 꿈인데.’ 하는 눈이었다.

“반희용도 학교 안 왔던데. 너 뭐 알고 있는 거 없어?”

엘런이 표 나게 한숨을 쉬었다.

“걔 얘기 그만해. 별로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곤 비에 흠뻑 젖은 교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옷 갈아입어야겠다. 녀석이 내 손목을 그러쥐었다. 거실을 가로질러 제 방문을 열었다. 익숙하게 수납장을 열어 검은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끄집어냈다.

“옷 건조시킬 동안 입고 있어.”

“됐어, 갈래.”

“반희용….”

“…….”

“궁금하잖아, 너.”

그러니 내 말 들어. 나는 녀석이 건넨 옷을 받아들었다. 축축하게 젖어 몸이 찝찝했다. 그냥, 집에 가서 빨리 씻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지저분한 기분까지 말끔히 벗고 싶었다. 축축하게 젖은 교복 단추를 풀고 셔츠를 우악스럽게 벗었다. 살갗 위로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바로 맞닿아왔다. 소름이 끼쳐왔다. 나는 아까 머릴 털던 수건으로 상체를 닦았다. 엘런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나를 쳐다봤다. 녀석이 준 셔츠에 머릴 억지로 밀어 넣고 옷을 입었다. 체격 차 때문에 옷이 꽉 꼈다. 마치 동생 옷을 억지로 입을 꼴 같았다. 나를 보고 있던 엘런이 피식거렸다.

“기태오, 배꼽 다 나왔어.”

“아이씨, 그냥 집에 간다니까.”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고 볼멘소릴 하자, 녀석이 못 참고 크게 웃었다.

“아 미친. 바지는 들어가냐?”

“존나 작아서 터질 것 같은데?”

“안 되겠다. 마를 때까지 팬티만 입고 있어야겠다.”

“악, 이 새끼가 진짜.”

갑작스레 엘런이 바지를 벗긴다고 내 바지춤을 잡고 늘어졌다.

“하지 말라고.”

녀석을 밀쳤지만 집요하게 달라붙어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녀석의 장난에 간지러운 웃음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털썩, 침대 위로 쓰러졌다. 좆만 한 게 비실대서 힘이라곤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무슨 천하장사 씨름 대회에 나온 씨름선수처럼 힘이 어마어마했다. 훌러덩 두 다리 사이로 교복 바지가 벗겨졌다.

“내놔! 야, 엘런!”

내가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젖은 교복을 챙겨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똥고집을 누가 말리나 싶었다. 나는 한심한 얼굴로 내 몰골을 내려다봤다. 꽉 조이고 있는 티셔츠 밑으로 벌거벗은 두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남의 집에서 이러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괜히 부끄러웠다. 침대 위 얇은 시트를 허리춤에 둘렀다. 세탁과 건조까지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벌컥 엘런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푸핫! 웨딩드레스냐?”

내 상태를 보자마자 폭소했다.

“죽을래?”

녀석은 재밌다는 듯이.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보고 웃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차림이 된 데는 녀석의 책임도 있었다.

“야, 너 땜에 이렇게 된 거잖아.”

성급하게 녀석 앞으로 다가가다가 치렁치렁한 시트를 밟아 균형을 잃고 그대로 녀석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쓰러진 녀석 위로 몸이 겹쳐졌다. 엘런의 눈동자와 무방비하게 부딪혔다.

“하자.”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던 엘런이 작게 속삭였다.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녀석의 오른손이 내 오른손에 손가락 하나하나 겹쳐졌다. 훅 하고 시야가 흐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저항하기 힘든 수마 속으로 어찌할 새도 없이 빨려 들어갔다. 눈꺼풀이 무겁게 감겼다.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엘런의 꿈 안으로 떨어졌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땐 엘런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깡마른 몸이 바위 사이를 뛰어넘었다. 그 뒤를 따라 주변을 둘러봤지만 험난한 절벽과 바위로 철저히 둘러싸여 있을 뿐이었다.

“여긴 어디야?”

가파른 산길을 따라 내려가며 앞서가고 있는 엘런에게 물었다.

“곧 알게 될 거야.”

엘런은 원숭이마냥 능숙하게 숲이 우거진 비탈길을 내려갔다. 나는 미끄러질까 봐 조심하면서 발을 옮겼다. 새파랗던 하늘이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불쑥 끼어든 어둠이 남아 있는 빛을 훅 불어 모조리 껐다. 엘런의 꿈이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완전한 어둠은 엘런이 자주 꾸던 꿈들과 비슷했다. 좀 전까지 울창한 숲 아래 비탈길을 가까스로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가 물컹거렸다. 어둠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발을 내딛다가 이상한 촉감에 기분이 오싹해졌다. 나는 앞서 걷던 엘런의 티셔츠를 움켜쥐었다.

“어딜 가는 거야?”

“…….”

“엘런?”

녀석을 부르자, 고갤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알고 싶어 했잖아.”

“…….”

“반희용. 걔가 어디 있는지.”

엘런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물컹거리던 것이 끈적하게 발밑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어째선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나는 잡고 있던 엘런의 티셔츠를 꽉 그러쥐었다.

* * *

“좋아해, 규호야.”

기태오가 나를 천천히 벽으로 밀어붙였다. 뜨거운 눈동자가 집요했다. 수컷의 본능을 숨김없이 드러낸 맹렬한 열기가 여과 없이 꽂혀들었다.

“쳐, 쳐다보지 마.”

녀석의 얼굴을 밀면서 슬쩍 시선을 피해 고갤 돌렸다. 귓불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녀석이 얼굴을 밀고 있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고개가 절로 녀석에게 향했다.

“부끄러워?”

맞닿은 눈동자에 데일 것만 같았다.

“병신아, 무슨.”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지만, 심장 소리가 다 들릴 것같이 뛰어댔다. 녀석이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속눈썹 사이로 반듯한 기대오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내 입술에 닿을 것만 같았다. 녀석이 설핏 웃으면서 내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여기 붉어진 거 알아?”

귓불에 입술이 닿는 게 느껴졌다. 말캉한 입술이 긴장한 목선에 닿았다 떨어졌다. 녀석의 촉감에 슬쩍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불안정한 숨결이 입술 사이로 아무렇게 흩어졌다. 기태오가 티셔츠를 슬쩍 잡아 하얗게 드러난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게 맞닿은 입술을 벌리고 축축한 혀를 내밀었다. 쇄골을 혀로 핥는 순간, 나도 모르게 호흡을 참았다. 우리를 감도는 기류가 야릇해져 가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를 바꿀 만한. 그러니까.

“누, 누구랑 통화했어?”

아무 말이나 던졌다. 태오의 크고 길쭉한 손가락이 허리춤을 넘보고 있었다. 쇄골에 닿은 야릇한 촉감이 내 물음에 멈추었다. 녀석이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잘못 걸린 전화.”

능숙하게 녀석이 나를 벽 쪽으로 돌려세웠다. 납작한 가슴이 벽에 밀착된 순간, 녀석이 바짝 등 뒤로 몸을 붙여왔다.

엉덩이골에 성기가 문질러지는 게 느껴졌다. 언제부터 흥분했는지 모를 녀석의 것이 뜨겁게 달아올라 딱딱해져 있었다. 추리닝 바지가 녀석의 손에 쭈욱 당겨졌다.

“야, 야….”

얼른 녀석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큼지막한 손이 속옷을 밑으로 잡아 내렸다. 맨 살갗에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닿는 게 느껴졌다. 벽에 붙어 엉덩이를 내놓고 있다고 생각하자, 금세 얼굴이 달아올랐다.

능숙하게 녀석이 내 턱을 그러쥐고 당겼다. 상체를 완전히 내 쪽으로 숙인 녀석이 그대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숨결, 입술의 촉감, 혀의 움직임. 심장이 두근거렸다. 기태오는 내게 입을 맞추면서 자신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축축한 혀가 다급하게 내 입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녀석이 지퍼를 내리고 팬티와 바지를 한꺼번에 잡아 벗는 게 느껴졌다.

들숨과 날숨이 멋대로 섞여들었다. 자, 잠깐. 입술이 내 혀를 강렬하게 빨아대면서 능숙하게 성기를 엉덩이골 사이에 비벼댔다. 그 촉감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 읍. 으. 태오야.”

녀석의 얼굴을 밀쳐냈다. 살짝 입술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급하게 턱이 당겨졌다. 무방비하게 까발려진 엉덩이골 사이로 뜨겁고 딱딱한 것이 좀 더 속도를 내어 문질러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녀석의 성기가 엉덩이를 벌리고 입구 안을 찌를 것 같았다. 네 입술이 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사나운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 가득 물고선 깊게 빨기 시작했다. 빠르게 티셔츠 밑으로 손을 가져가 납작한 배를 쓸면서 위로 올라왔다. 뾰족하게 발기한 젖꼭지를 건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읏, 만, 만지지…,”

짓눌린 젖꼭지를 원을 그리듯이 문지르면서 귓불을 머금었다. 신경을 자극하듯 뜨거운 혀가 간질간질하게 귓불 끝을 할짝거렸다. 자꾸만 호흡이 엉키는 기분이었다. 밋밋한 가슴이 녀석의 손끝에서 움찔거렸다. 이상하게 젖꼭지를 쥐고 비벼질 때마다 애가 탔다. 나는 눈썹을 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바짝 곧추선 선단 끝에서 투명한 체액이 야릇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녀석의 것이 뜨겁게 엉덩이에 비벼질 때마다 축축하게 벽이 젖는 게 느껴졌다. 귓불에서 입술을 뗀 녀석이 내 몸을 휙 돌려 세웠다. 두 손으로 얼른 성기를 가렸다. 녀석 탓에 발기한 성기가 움찔거리는 게 다 느껴졌다.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나랑 처음 하는 것도 아니면서.”

두 팔을 뻗어 나를 가둔 채 벽을 짚은 녀석이 상체를 내 쪽으로 밀착시켰다. 금방이라도 코끝이 닿을 것 같았다. 열락에 잠긴 눈동자가 송두리째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다시금 귓불이 뜨거워진 게 느껴졌다. 녀석이 내 턱을 그러쥐고 다급하게 돌려 시선을 맞춰왔다. 데일 듯한 눈빛이 나를 느리게 핥았다. 그 눈빛에 다급하게 감싸 쥔 성기가 빳빳하게 고갤 들고 있어 난감했다. 녀석이 작게 속삭였다.

“손 치워봐.”

목소리가 닿는 순간 성기 끝이 움찔했다. 나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기태오는 눈빛 하나로 능수능란하게 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하고 싶어, 형.”

귓불에 입술을 붙이고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느 틈에 국부를 가리고 있는 내 손 위로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다.

“내 좆 만져줘, 형.”

흥분한 눈동자가 뜨겁게 나를 내려다봤다. 손등에 음란하게 비벼지고 있는 성기의 촉감 탓에 내 것이 참을 수 없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녀석의 입술이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얼른, 형….”

조르는 녀석의 얼굴엔 조금도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천천히 내 것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달아오른 성기가 납작한 배에 닿아 움찔거렸다. 마른침을 삼키곤 천천히 녀석의 것을 그러쥐었다.

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크고 우람한 성기가 손아귀에 잡혔다. 후우. 네가 작게 신음했다. 귓가에 닿는 그 소리가 야했다. 녀석이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내 손에 성기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음란하고 야한 열기 탓에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끈질기게 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반쯤 풀려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슬쩍 눈꺼풀을 내렸지만, 녀석은 나를 놔주지 않았다. 똑바로 자신을 보도록 턱을 들어 올리고 눈을 맞춰왔다. 자극적이었다.

갑자기 녀석이 내 것을 잡았다. 커다란 손가락이 음란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귀두 끝을 자극해왔다. 호흡이 저절로 빨라졌다. 귀두 끝을 건들 때마다 사정감이 차올랐다. 하아. 태, 태오야…. 온몸이 시뻘겋게 흥분으로 물들었다. 녀석이 내 입술을 찾아 다급하게 입을 맞춰왔다. 잔뜩 입을 벌리고 내 입술을 삼켰다. 혀끝으로 야릇하게 혀를 감아올리면서 음란하게 내 성기를 자극했다. 배 밑으로 사정감이 쏠리기 시작했다.

“흡, 으으. 흣!”

몸이 잔뜩 팽창하는 것 같았다. 눈앞이 하얗게 번지는 순간, 강렬한 쾌감이 등줄기를 빠르게 갈랐다.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녀석이 내 것을 강하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격정적인 절정이 들이닥쳤다. 울컥울컥, 귀두 끝에서 정액이 토해졌다. 배를 적신 정액이 발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이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머리가 멍해서 제대로 눈이 떠지지 않았다. 태오가 내 뺨에 입을 맞추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내 손안에서 비벼지고 있는 야릇한 촉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때였다. 녀석이 내 배에 튄 정액을 손바닥 가득 묻히기 시작했다. 한쪽 허벅지가 녀석의 손에 들려졌다. 정액이 묻은 손이 아래쪽으로 옮겨왔다.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오므려진 입구를 건드는 게 느껴졌다.

“읏!”

부드럽게 입구를 간질이듯이 만지면서 틈이 벌어지도록 손가락으로 안쪽을 더듬거렸다. 녀석의 손길 탓에 파정의 여운으로 흐물해진 아래쪽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벽을 만지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쑤욱 쑤욱, 밀고 들어왔다가 느슨하게 빠져나가는 녀석의 손가락이 입구를 조심스레 푸는 게 느껴졌다.

“그거, 이상해.”

“조금만 참아. 아프게 하기 싫어서 그래.”

“그, 그래도. 이상…, 하읏.”

손가락 하나가 더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분명 저항감이 심할 줄 알았는데, 무리 없이 삼켜졌다. 질척이는 소리에 왔다 갔다 하면서 풀어놓은 입구가 다시금 흐물거리는 기분이었다. 뭔가 조금 더 안쪽 깊숙한 곳을 만져주었으면 하는 이상한 감각까지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 때 긴 손가락이 안쪽 어딘가를 더듬듯이 꾸욱 누르는 게 느껴졌다.

“히잇!”

목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내질러졌다. 얼른 입을 틀어막았지만, 척추를 가르고 올라오는 강렬한 감각에 허벅지가 잘게 떨렸다. 오랫동안 공들여 안을 넓히던 세 개의 손가락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허전함도 잠시, 완전히 발기한 녀석의 것이 입구에 맞닿아 왔다.

“조금만. 형.”

“으으. 그거. 하지, 아읏!”

입구를 뚫고 기태오의 성기가 깊게 박혀 들어왔다. 호흡이 멈추는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녀석을 밀치려 했지만, 내벽을 꽉 채운 녀석의 것이 나를 완전히 삼키는 것 같았다. 그대로 녀석이 몸을 포개왔다. 그리곤 나를 강하게 끌어안고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했다.

“너무 조여.”

“…읏.”

밀고 들어온 성기가 안달 나듯 어딘가를 잔뜩 짓누르고 있어 미칠 것만 같았다.

“하읏, 빼. 병신아. 거기 읏, 이, 이상하다고, 내가….”

녀석이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리곤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곤 눈을 맞췄다. 미안, 하고 말하면서 호흡을 고르듯이 조심스럽게 허릴 움직였다. 빠듯하게 움직이던 녀석의 성기가 안쪽 깊숙이 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치밀고 올라왔다. 자꾸만 숨이 턱턱 막혀왔다. 허벅지를 잔뜩 벌리고 내 것을 내려다보며 녀석이 깊게 몸을 밀어붙였다. 위아래로 피스톤 질을 하면서 느끼는 곳만을 자꾸 비벼댔다. 야릇한 흥분이 아무렇게 몸을 달궜다. 나는 팔을 뻗어 녀석에게 매달렸다.

질척하게 젖은 입구를 녀석이 빠르게 드나드는 게 느껴졌다. 생살이 벌어지는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맞닿은 몸과 몸이 온전한 흥분감으로 덜덜 떨렸다. 생리적으로 맺힌 눈가의 눈물을 녀석이 핥았다. 느리게 치고 올라온 성기가 배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하체를 붙이고 나를 자극하면서 눈동자만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자꾸만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춰다.

녀석이 허리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나를 당겼다. 녀석의 힘에 허리가 바짝 조여들었다. 결합되어 있던 아래쪽으로 깊게 밀고 들어오는 성기의 감촉이 생생했다. 녀석이 느릿하게 허리 짓을 하면서 젖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음란하게 혀로 굴리면서 아래서부터 위로 나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깊게 성기를 박아 올리면서 녀석이 나를 불렀다.

“형.”

“…….”

“키스해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빠르게 녀석의 입술에 입술을 부딪쳤다. 입술을 벌리자 녀석의 혀가 내 입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녀석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깊숙하게 박힌 녀석의 성기가 내 안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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