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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식탁 (18/37)

17. 식탁

눈이 부셨다. 아침이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내 품에 가득 안겨 잠이 든 선규호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얼굴은 밤새 시달린 사람답지 않게 기분 좋은 혈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리곤 눈썹을 부드럽게 쓸었다. 콧등을 타고 목적지를 찾아 손가락을 움직였다. 붉은 입술을 조심스레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졌다. 깊게 잠든 형은 조금도 미동이 없었다.

나는 얼굴을 들이밀고 입술을 살짝 맞댄 채 달싹였다. 일어나, 형. 입술을 떼고 형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형을 보면서 이번엔 몸을 숙여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볼록하게 발기한 젖꼭지 밑 유륜을 혀로 느릿하게 돌리면서 꼭지를 핥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뻗어 형의 성기를 그러쥐었다.

간밤 몇 번이고 내 성기에 박혀 형은 사정을 했었다. 그때마다 나를 꽉 끌어안고 절정을 맞았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경련과 강렬하게 나를 조였던 촉감을 떠올리는 순간 발기한 성기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성기를 형의 성기에 꾹꾹 누르듯이 부딪쳤다. 내 성기로 비빌 때마다 형의 성기가 조금씩 발기되는 게 느껴졌다.

“병신아, 하지 마아.”

선규호가 인상을 쓰면서 나를 밀쳤다. 막 잠에서 깬 얼굴이 풋풋했다.

“일어났어?”

“너 땜에 못 일어나겠어.”

“…….”

“허리 아작 난 거 같아.”

이게 웃을 일은 아닌데. 형이 나 땜에 허리가 아작 났다는 말이 왠지 모르게 좋아서 자꾸 웃음이 샜다.

“아주 웃음이 나오지?”

“진짜 했구나 싶어서.”

새벽이 될 때까지 놔주지 않고 했으니, 형한테 무리가 갈 만했다. 자제했어야 했는데, 형의 배 안에서 팃이 소멸되는 걸 확인하고서도 박은 성기를 빼지 않았다. 하고 또 하고. 형이 기절할 때까지 놔주지 않았다.

“형은 여기 가만히 있어. 아침도 가져다줄게.”

“병 주고 약 주냐?”

“아니, ‘좋아해’주고, ‘사랑해’줄 거야.”

선규호의 얼굴이 잔뜩 달아올랐다. 붉은 뺨과 귓불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병신아, 쳐다보지 말라고.”

내 눈을 피해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게 보였다. 예뻐서. 좋아서. 이젠 너 아니면 안 돼서. 나는 그대로 선규호를 끌어당겨 나를 보게 만들었다.

“진짜야.”

“…….”

“나 너 되게 좋아해.”

“…….”

“이런 거, 처음이야.”

가슴이 닳는 것 같았다. 진심을 쓰면 이렇게 가슴이 닳는 건가 보다. 애틋하게 닳고. 아릿하게 녹는 거 같다. 선규호가 내게 다가와 그대로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귓가에 닿는 숨소리처럼 선규호가 뭐라고 작게 속삭였다.

그 때였다. 똑똑. 급작스럽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침 먹어요. 선규학생. 규호 학생.”

도우미였다. 형이 네, 하고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경직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마치 무슨 죄를 지은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우리 주위를 에워싸는 것 같았다. 얼른 형이 옷을 입었다. 키스 마크가 잔뜩 담긴 마른 등이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단조로운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채광 좋은 다이닝룸에 모처럼 온 가족이 모였다. 윤 여사가 급작스러운 휴가를 받는 바람에, 엄마가 아침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아침을 가져다준다고 했지만 형은 괜찮다고 했다. 말뿐인 걸 알았다. 계단을 내려갈 때 너무 아파해서 멋대로 형을 안아 들고 내려왔다. 뭐 하는 짓이냐며 주먹으로 퍽퍽 맞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엉덩이 아플까 봐 쿠션을 일부러 찾아와 받쳐주었다. 형이 눈을 흘겼지만, 나는 작게 웃었다.

오랜만에 엄마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아저씨와 재혼한 이후로 엄마는 주방 일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엄마는 제대로 적응하고 있었다. 내조를 명목으로 매일이 분주하고 바빴다. 바자회, 누군가의 독주회, 봉사모임, 이름도 다 외울 수 없는 행사들…. 각종 모임과 행사들을 좇아 소화하느라 집에 붙어 있는 날이 드물었다.

모처럼 익숙한 음식이 식탁에 올랐다. 엄마표 된장찌개와 달걀말이를 먹는데 예전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옥탑방이 떠올랐다. 윗목에 차려 놓았던 알루미늄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디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충동처럼 떠올랐다. 나쁜 짓을 일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바빴던 좆만 한 자존심밖에 없던 그 시절. 만약 엄마가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 방구석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지. 그럼, 선규호도 만나지 못했을까.

고갤 돌려 얌전히 국을 떠먹는 선규호를 바라봤다. 길고 가느다란 눈썹을 곱게 내리고 뜨거운 국에 혀를 델까 봐 살살 부는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께가 뻐근해지는 것 같았다. 밤새 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내 아래서 헐떡이는 선규호가 야해서 몇 번이고 나는 숨이 넘어갈 뻔했다. 시선을 겨우 떼고 밥그릇을 쳐다봤다. 만지고 싶은 욕구가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엄마와 아저씨 앞인데, 참 큰일이었다.

“촬영은 재밌니?”

엄마가 만든 아침 식사가 마음에 드는지 밥숟가락을 뜰 때마다 아저씨는 칭찬 일색이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내 쪽으로 질문이 날아들었다. 솔직한 소감을 말하자면, 재미없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활기가 가득한 곳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으니까. 어쩌면 꽤 좋아하는 편에 속할 것이다.

“그냥 그래요.”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게 좀 싫었다. 특히 아저씨에겐. 뭔가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야 할지. 우월한 눈빛으로 군식구인 너에게 이토록 지원하고 있는데, 네가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지, 하는 무언의 압력 같기도 해서. 말이 곱게 안 나갔다.

“그렇지, 재미만으론 할 수 없는 일이지.”

“…….”

“지금은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있어. 아빤 그래, 너희들이 그런 순간을 만들 때, 눈치 보거나 망설이지 않고 결정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

“…….”

“그러니까 뭐든 말해.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 거야.”

뭘 잘못 먹었나 보다. 엄마가 밥에 약을 탔나.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누구도 내게 해준 적 없던 말이었다.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니까. 막살아도 되는 건 줄 알았다. 내 삶에 중대한 결정 같은 걸 내릴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저씨의 말이 다 진심 같아서. 나는 자꾸만, 심장 어딘가가 시렸다.

그 순간, 선규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감겨들었다. 우리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스쳤다. 선규호의 다정함은, 이런 점들을 아저씨로부터 배웠기 때문일 터였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 특유의 생기와 천진난만함을 갖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일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맞잡은 손을 놓칠까 자꾸 힘이 들어갔다.

* * *

“저녁에 엄마랑 일이 있어서 홍콩에 다녀와야겠는데….”

“…….”

“둘만 있어도 괜찮겠어?”

비즈니스 출장이란 걸 알았다. 일정을 소화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없다는 것도, 그간의 행적들을 들춰보면 가볍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 혼자도 아니고 아줌마와 동석해서 가는 거면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린다는 건데. 문득 강이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로운 브랜드 런칭 준비 때문에 많이 바쁘다는 말. 아버지가 울적할 나를 위해 일부러 자길 보낸 거라는 말. 그러니 엄마 기일날 함께하지 못한 거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던….

“전, 괜찮아요.”

“이 주 정도 걸릴 거야, 윤 여사라도 있으면 엄마가 마음이 놓일 텐데….”

어린애들 둘을 물가에 내놓은 것마냥, 아줌마가 안절부절못하면서 그냥 나는 가지 말까. 하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서글서글한 눈동자가 예쁘게 깜박였다. 태오가 급하게 숟가락을 놓더니, 아줌마를 다독였다. 괜한 걱정이라며, 무슨 일이 생길 게 뭐가 있다고 다 큰 자식들 걱정을 하냐면서. 능숙하게 아줌마를 설득했다.

“다녀와, 엄마. 곧 수능이라 형도 계속 공부해야 하고, 나도 촬영 땜에 바쁜 거 알잖아.”

“그래도 도우미만 있어서 괜찮겠어?”

“그럼, 뭐가 걱정인데?”

“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할게요.”

젓가락을 내려놓고 생수가 든 잔을 들었다. 괜히 목이 말랐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아버지가 막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럼, 이준이라도 부를까?”

자기 생활 하기도 바쁜 사람을 불러서 뭐 하려고. 딱 잘라 안 된다고 말을 하려는데, 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이랑 저, 애도 아니고. 걱정 마세요.”

맞는 말이다. 애도 아니지 이젠. 애일 수가 없지. 더는.

아직도 아래쪽에 느껴지는 이물감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불편했다. 특히 허릴 조금만 틀어도 엉치뼈 위로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젯밤 기태오와 내가 방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녀석 아래에 누워 잔뜩 박혀서 쾌락에 헐떡였다는 걸 알면. 우릴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변함없이 걱정할까. 아니면, 다른 의미로 불안해하려나. 나는 서늘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을 단숨에 비워냈다.

“규호야. 동생 잘 돌보고. 연락 수시로 해야 하는 거 알지?”

“응.”

“걱정 마요, 형은 제가 잘 챙길게요.”

듬직한 얼굴로 녀석이 특유의 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아버진 시원스런 태오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빠져나오는데 얼른 태오가 내 허리에 팔을 감아왔다. 놀라서 녀석을 밀치려는데, 넉살 좋게 녀석이 잘도 거짓말을 했다.

“형이 어제 넘어져서 허릴 좀 삐끗했어요.”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응, 이따가 데리고 갔다 올 거야, 엄마.”

“규호, 괜찮니?”

나는 얼른 고갤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 안은 녀석이 느릿하게 속눈썹을 내려 나를 내려다봤다. 슬쩍 웃고는 천천히 나를 부축해 다이닝룸을 빠져나왔다.

“오버 좀 떨지 마.”

“아픈 건 사실이잖아.”

“쫌.”

“나 땜에 아픈 거잖아.”

신났네. 기태오. 아주 얼굴이 뺀질뺀질해져서. 누가 보든 말든 잔뜩 얼굴을 밀착해 귓가에 입술을 가져왔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든, 부려먹어. 다 해줄게.”

감미롭게 귓가에 감겨드는 목소리에 괜히 심장이 떨렸다. 괜한 소리라는 걸 다 알면서 이렇게 말해주면 다 진짜 같아서 자꾸 속는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2층 계단 앞으로 다가왔다. 계단이 저렇게 높았던가. 올라가다가 허리 부서지는 거 아닐까. 빤히 내 생각을 읽고 있었던 것처럼 태오가 등을 내밀면서 말했다.

“업혀, 형….”

“김 비서, 언제부터 일 처리를 이렇게 했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곳까지 날아들었다. 뭔가 일이 생겼는지, 김 비서와 통화하는 내내 언짢은 목소리로 이따금씩 목청을 높였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오늘 밤 비행기로 가기로 했던 일정이 앞당겨진 모양이었다.

“도착하면 연락할 테니까. 전화받고.”

“알았으니까 얼른 가요. 늦었다면서.”

대문 앞에서 아버지와 아줌마를 배웅했다. 아줌마는 갑작스럽게 내게 다가와 꽈악 끌어안더니, 큰아들. 저거 말썽부리면 따끔하게 혼내줘. 알았지? 하고 태오를 부탁했다. 아줌마 머리 위로 뭉게뭉게 떠오르는 문장들을 눈으로 훑었다. 나와 태오를 향한 걱정스런 마음들이 넘치고 있었다. 고작 2주간 떨어져 있는 건데, 걱정이 너무 많았다. 이런 종류의 다정함엔 익숙하지 않아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서 타지. 늦겠어.”

“갔다 올게! 우리 아들들. 연락해.”

차가 금세 출발했다. 잘 닦인 길을 따라 점점 작아지는 자동차를 바라봤다. 뒤꽁무니가 완전히 안 보일 때까지 서 있다가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녀석이 다시금 내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이 작게 속삭였다.

“단둘이다. 우리.”

기묘한 해방감과 함께 마음이 설렜다.

“좋아?”

“어. 존나 좋아.”

녀석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몸이 묘하게 나른하고 피곤했다. 나는 욕조에 물을 잔뜩 받아놓고 들어갔다. 허릴 틀 때마다 생경한 곳이 아파서 자꾸 인상이 써졌다. 아직도 배 안이 얼얼한 기분이었다. 아침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앉아 있는 게 그저 힘들었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학원을 째야 할 것 같았다. 나른하게 자꾸만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태오의 발칙한 성욕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눈만 감으려고 하면 녀석은 득달같이 나를 깨물었다. 혀가 닿는 곳 어디든 물고 빨고 핥아대면서 아래를 사정없이 뚫고 들어왔다.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러면서 눈동자만은 애달프게 나를 쳐다봤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입을 맞추고 눈을 맞춰왔다. 그때마다 심장이 뜨겁게 뛰었다.

집요하게 몇 번이고 사정하게 만든 걸 생각하면, 분명 경험이 있는 것일 테지. 다른 사람들처럼 녀석의 속마음도 보였다면 다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누구와 언제 어디서 왜 했는지까지 다 알 수 있었을 텐데….

감은 눈 안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안고 키스하는 기태오를 상상했다. 내가 만들어낸 단순한 이미지일 뿐인데도 기분이 확 구겨지는 것 같았다. 이제 이 마음이 어떤 건지 안다. 가볍게 휴지통에 버릴 수 있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알아버렸다.

순간,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 놀라 고갤 돌리자, 반바지만 입은 채 상체를 탈의한 기태오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렇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유난히 곱슬거렸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욕조에 몸을 숨겼다.

“야, 나 씻고 있잖아.”

미간을 찌푸리면서 얼른 나가라고 소리쳤다.

“미안, 양치만 하고 나갈게.”

녀석은 세면대에 서서 능숙하게 치약을 짜 칫솔을 입에 물었다. 탄탄한 가슴팍과 굴곡진 근육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저 아래서 신음을 잔뜩 했던 게 떠올랐다. 몇 번이고 맞이했던 절정과 입맞춤과 아래를 꿰뚫고 들어오는 낯선 흥분에 맥을 차리지 못했던 간밤 기억이 멋대로 생각났다. 얼른 고갤 흔들고 시선을 녀석에게 던졌다.

세면대에 손을 짚고 있는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선명하게 찍혀 있는 잇자국이 보였다. 강렬한 절정을 이기지 못하고 녀석을 멋대로 깨물었던 흔적이었다.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게 싫어 젖은 손으로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녀석은 세면대 수전을 들어 올려 콸콸 쏟아지는 물에 입안을 헹구기 시작했다. 촬영이 있나. 아니면 약속이 잡혔나. 말끔하게 세수까지 마친 녀석이 상체를 일으켰다. 거울을 보면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약속도, 촬영도. 그냥, 둘 다 없었으면 좋겠다.

녀석의 눈동자가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봤다. 뜨거운 시선이 금세 맞닿았다. 괜히 멋쩍어 나도 모르게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다, 다 했으면 빨리 나가라고!”

“아, 이것만 하고.”

녀석은 커다란 보폭으로 욕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곤 욕조 끝을 잡고 고갤 숙이더니,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 놀라 벌어진 입술 안으로 말캉한 혀가 들이닥쳤다. 혀가 닿을 때마다 상큼한 페퍼민트 향이 맡아졌다. 혀가 부드럽게 입안을 휘저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녀석이 내 목덜미를 그러쥐고 깊게 혀를 넣으면서 바짝 당겼다. 입술이 닿자 숨 막히게 나를 몰아붙였다. 몇 번이고 혀를 빨고 입술을 빨았다. 겨우 틈이 벌어졌을 때, 녀석이 작게 속삭였다.

“씻겨줄게.”

“돌았냐?”

“어제 무리해서 아프잖아.”

“병신아, 그거 그만 말해.”

녀석은 욕조 안에 잠긴 가느다란 다섯 개의 손가락을 그러잡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소중한 것을 대하듯이 손바닥을 조심스레 펴 입을 맞추었다. 입술의 촉감이 닿자 몸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녀석이 간청하듯 나를 올려다봤다.

“말 안 하면.”

“…….”

“씻겨줘도 돼?”

* * *

싫은 척, 안 해줄 것처럼 굴어도 결국 고개를 끄덕여주는 선규호였다. 내 마음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형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자꾸만 들떴다. 속눈썹이 예쁘게 감겼다가 떠졌다. 간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묻은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봤다. 욕조 안에 비스듬히 누워 나를 보고 있는 눈동자는 어딘가 에로틱했다.

“다른 건 됐고…,”

“…….”

“…머리 감겨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토록 야한 밤을 보냈으면서. 이토록 순진하게 굴고 있는 선규호 때문에 자꾸 심장 밑이 간질거렸다. 단순히 머리만 감겨줄 거라고 믿는 걸까. 욕실에서 다 벗고 있는 너를 보고 있는데. 때마침, 부모님도 안 계신 단둘뿐인 이 집에서.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가 뜬 너와 시선이 맞닿았다. 물의 온도 탓인지 양 볼이 발그스름하게 붉어져 있었다. 손등으로 느슨하게 뺨을 어루만지면서, 작게 속삭였다.

“이쪽으로 머리 해봐.”

물에 젖은 머릴 욕조 밖으로 뺐다. 샤워기를 가져와 물의 온도를 맞췄다. 더위는 몹시 싫어하면서도 물의 온도가 차가우면 견디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손바닥에 내리쏟아지는 물의 온도를 살폈다. 적당한 온도를 고르고, 조심스레 형의 머릴 적셨다. 결이 고운 머릿결이 쏟아지는 물에 젖어갔다. 형이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곱게 감긴 속눈썹이 길어서 자꾸만 핥아보고 싶었다. 그 때였다.

“어디 가려던 거 아니었어?”

나는 잠자코 샴푸를 손에 덜어 거품을 냈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감싸듯이 비비자 손안의 거품들이 아무렇게 엉겨 붙었다. 향기로운 샴푸향이 욕실 가득 퍼져 나갔다.

“급하게 양치했잖아.”

형이 슬쩍 눈을 떠 나를 쳐다봤다.

“눈 감아. 거품 들어가면 어쩌려고.”

나른한 한숨을 내쉬면서 도로 눈을 감는다. 뭐가 불만인지 미간에 잡힌 주름이 귀엽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문질러주면서 작게 속삭였다.

“너 두고 어디 안 가.”

“…….”

“나랑 있어, 오늘은.”

나는 그대로 고갤 숙여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형이 슬쩍 입꼬리를 당기는 게 보인다. 말갛게 펴진 미간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을 잘 알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일관했던 시절. 냉정한 얼굴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손끝만 닿아도 기겁을 하고 소리쳤던 날들.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공격할 날만 기다리던 선규호. 그 시절엔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애틋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지.

“촬영 있는 거 아냐?”

“모래쯤 있을걸. 촬영 일자 잡히면 누나가 전화해줄 거야.”

“안 힘드냐?”

“어. 재밌어.”

“엄청 좋아하나 보다?”

“응. 근데….”

눈을 감고 조잘조잘 말을 거는 선규호가 귀여워서 고갤 숙여 그대로 입술에 입을 맞췄다. 슬쩍 닿았던 촉감이 부드러워 나는 조금 더 입술을 꾸욱 눌렀다. 선규호가 숨을 참다가 입술을 살짝 벌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입술에 혀를 밀어 넣고 부드럽게 핥았다. 선규호가 내 목에 두 손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나는 형의 턱을 그러쥔 채 깊게 입술을 박고 몇 번이고 혀를 비벼댔다.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깐 입술을 떼자, 느릿하게 눈을 뜬 형이 나를 올려다봤다.

“널 더 좋아해,”

“…….”

“아주 많이.”

“…….”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

“네가 좋아.”

몸을 일으킨 형이 내 쪽으로 향해왔다. 그리곤 그대로 내 입술에 다시 입술을 부딪쳤다. 쪽 소리가 나던 입술이 다시 엉겨 붙었다. 선규호의 혀가 허공에서 내 혀와 얽혀들었다. 야하고 음란한 소리가 질척거렸다. 나는 그대로 욕조 안으로 올라탔다. 금세 차오른 물이 출렁거리며 물을 뱉어냈다. 나는 다급하게 형을 끌어당겨 내 위로 앉혔다. 손가락이 매끈한 등 선을 타고 엉덩이로 미끄러졌다. 비눗방울이 아무렇게 날렸다. 입술을 떼자, 형이 작게 헐떡거렸다. 예쁜 눈동자가 여전히 얼떨떨하게 나를 쳐다봤다.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자, 부끄러운 듯 귓불을 붉게 물들이고 눈을 슬쩍 내렸다. 그 표정만으로 성기가 잔뜩 부푸는 게 느껴졌다.

“너 이럴 때.”

“…….”

“유혹하는 거 같아.”

“…….”

“여기, 만져달라고.”

손이 미끄러지듯 형의 엉덩이 아래 부드러운 골 사이를 문지르면서 성기를 감싸 쥐었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얼굴이 달아오른 선규호가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읏. 야. 야. 기태오….”

“그렇게 움직이면, 여기 더 커질 것 같은데….”

형의 성기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입구를 문질렀다. 형이 갑작스런 자극에 내 손을 움켜잡았다. 헐떡이는 가슴이 다 보였다. 당황한 눈동자와 어쩌지 못하고 벌어진 입술이 나를 자극했다. 나는 그대로 형의 얼굴에 입술을 부딪쳤다.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는 형의 성기를 음란하게 만졌다.

“하으, 아. 안 돼. 병신아.”

“한 번만.”

“너 땜에 나 아픈 거 잊었어?”

“만지기만. 응?”

“변태 새끼.”

몸을 끌어당겨 그대로 젖꼭지를 물었다. 연약한 돌기를 빨면서 눈으로 형을 살폈다. 느릿하게 속눈썹을 내리깔고 나를 내려다보는 표정만으로 사정감이 몰려왔다. 혀로 꼭지와 유륜을 납작하게 핥아 올렸다. 몇 번이고 쪽쪽거리면서 비벼대고 빨았다. 그럴 때마다 선규호가 인상을 쓰면서 잘게 헐떡거렸다.

“자꾸, 왜 거길….”

“…….”

“아읏, 빨고 그래?”

“빨면, 우유가 나올 거 같아.”

“병신아, 빨아도 안 나온다고.”

“그럼….”

“…….”

“나오는 곳 빨아도 돼?”

“으으, 뭐?”

나는 형을 욕조 턱에 앉히고 그대로 다릴 벌렸다. 당황한 형이 다릴 오므리면서 손으로 내 머릴 밀쳐내려고 애썼다. 부끄러운 듯 떨어지라고 소릴 쳤지만, 애초에 멈출 생각 따윈 없었다. 반쯤 선 성기를 위아래로 문지르면서 그대로 물었다. 혀끝으로 갈라진 틈을 비벼대자 형이 허벅지를 떨면서 고갤 흔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연약한 살을 좀 더 빨았다. 단단해진 귀두와 기둥을 압박하듯 물고 위아래로 머릴 흔들자 형이 두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빨리는 형보다 오히려 내 쪽이 더 흥분되는 것 같았다.

“태, 태오…핫. 읏. 하지…,”

형이 사정감에 치닫는지 내 머릴 사정없이 밀었다. 엉덩이를 끌어당겨 성기를 목구멍으로 깊이 조였다. 잔뜩 참았던 성기가 움찔거리면서 목 안으로 정액을 뿜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고스란히 삼켰다. 점점 수축하는 성기를 오랫동안 핥은 후 천천히 성기를 빼놓고 형을 쳐다봤다. 형의 손가락이 내 입술을 더듬었다. 나는 형의 손목을 잡아 그대로 끌어당겨 입술에 입을 맞췄다. 욕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온 선규호 위에 올라타 몇 번이고 깊게 키스를 퍼부었다.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형을 불렀다. 계속 형을 부르면서 속삭였다. 심장이 닳아 없어질 것 같은 말이 자꾸만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사랑해, 형.”

나는 형을 끌어당겨 안았다. 누적된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듯 내게 기대오는 형을 데리고 욕실에서 나왔다. 침대에 눕히자, 졸음이 오는지 연거푸 하품을 했다. 그러면서도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나를 쳐다봤다. 시선을 내려 눈을 맞췄다. 아까 욕실에서 무리를 시켰던 탓에 눈가가 옅게 붉어져 있었다. 나른한 호흡을 내쉬면서 부드럽고도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아무래도 재워야 할 것 같았다. 상체를 숙이고 그대로 형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소리가 나게 닿았다가 떨어지자 형이 반쯤 감긴 눈을 떠 나를 쳐다봤다.

“졸려….”

“좀 자. 피곤하잖아.”

“자기 싫은데.”

“왜?”

“나 자면 너 심심하잖아.”

“형 보고 있으면 하나도 안 심심해.”

뭐가 웃긴지 선규호가 푸스스 웃었다. 그러나 곧 깊은 잠에 빠질 듯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에어컨 바람이 방 안 공기를 차게 만들고 있었다.

“이따가 학원 가야 하는데….”

“아프다고 전화했어.”

“맞다, 과외 쌤이… 보강한다고 오기로 했다.”

“알아, 오지 말라고 문자 했어.”

“…….”

“그러니까, 자. 형.”

조용하게 잠에 빠져드는 형을 보면서 다시금 볼에 입을 맞추었다. 고른 숨을 내쉬면서 잠든 형을 내려다봤다.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가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당분간 몽마가 들락거리진 못하겠지만, 다른 루트로 침범할까 불안했다.

문득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눈치 보거나 망설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거라는 말. 너희들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저씨는 덤덤하게 아침 식사 시간에 말했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만한 능력을 갖춘 자들이나 떠벌릴 수 있는 말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침대로 올라가 형의 옆에 누웠다. 선규호가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칭얼거리는 애처럼 허리에 팔을 감고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나는 얼른 형을 끌어당겨 깊게 껴안았다. 나도. 태오…으응.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심장을 흔들었다. 나는 그대로 형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깊게 입술을 눌렀다가 눈꺼풀에 입술을 댔다. 조심스럽게 떼어낸 입술을 콧등으로 옮겨왔다. 감은 눈을 슬쩍 떴다. 잠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간 형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누구의 능력이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힘으로 형을 지키고 싶단 생각을 했다. 오로지 선규호만을 지키고 싶다고. 감히.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서 무시하려고 했는데 신호가 끈질겼다. 무료하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잠겨서 긁는 소리가 나왔다. 킥킥 웃는 소리가 아무렇게 흘러들어 왔다. 아, 받지 말걸. 후회가 밀려온 순간, 또렷한 목소리가 고막을 건드렸다.

-헤이, 태오. 오랜만!

그냥, 끊어버리고 싶었다. 녀석과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다. 대꾸 없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녀석이 비릿하게 웃었다.

-왜, 끊으려고?

선연하게 그려졌다. 녀석의 표정, 눈동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두드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회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치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선물은 마음에 들었어?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기분이 석연치 않았다.

-급해도 그렇지….

“…….”

-팃을 하룻밤 만에 없애다니….

“…….”

-존나, 애탔나 봐?

‘트리퍼야?’라고 물었을 때의 당혹감만큼이나 엘런이 묻는 말에 심하게 동요했다. 엘런이라면 누구의 꿈이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기술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었으면서 형의 꿈에 몽마를 보냈을 거란 생각은 어째서 못 했을까. 계속 연락 오는 걸 무시하기 바빴지, 설마 형에게 손을 뻗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순간, 파멜 박사의 말이 떠올랐다. 몽마가 자꾸 꼬이는 원인이 나일 수도 있다는 그 말은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뭐야?”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누르고 입을 열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고 있어 힘줄이 불거진 혈관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아주 예쁘던데…, 네 형.

“씨발, 건들기만 해라!”

엘런은 이 상황이 우스운지 키득거렸다.

-벌써 건드린 것 같은데….

“뭐 이 새끼야?”

-목선이 예뻐서 눌러버렸어. 촉감 죽이더라!

“이 씹새끼가.”

-이제 좀 날 볼 마음이 들었나 보다?

울분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엘런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시간 맞춰 와라. 네 형 따먹기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다급한 얼굴로 나는 형을 흔들었다.

“형, 형!”

마치 그때 같았다. 몽마들에게 형을 빼앗겼던 그때처럼 선규호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엘런이 형의 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른 꿈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얼른 형의 옆에 누워 가느다란 형의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겹쳐 잡았다. 지금껏 수도 없이 드나들던 형의 꿈속인데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시간은 억겁처럼 느리게 가는 것만 같았다. 자꾸만 심장이 엉망진창으로 빠르게 뛰었다. 완전히 손을 맞잡는 순간, 곯아떨어지듯 눈이 감겨왔다. 형의 꿈 안으로 몸이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시끄러운 비트 소리에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사이키 조명이 아무렇게 뒹구는 무대엔 끈적한 폴댄스를 주는 남자들이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스크류 드라이버나 블러디 메리를 손에 쥐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무대 위로 지폐를 던졌다. 어떻게 봐도 여긴 퇴폐적인 게이클럽 같았다.

미끄러지듯 폴에서 내려와 몸을 회전하던 남자가 보란 듯이 바지 지퍼를 내리며 스트립쇼를 하고 있었다. 단단하게 부푼 드로즈가 지퍼 사이로 드러났다. 남자는 능숙하게 바지를 허벅지에 걸치곤 드로즈 위로 잔뜩 발기한 성기를 느리게 회전하듯 애무하면서 소리 지르는 관객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어떻게 봐도 선규호가 꾸는 꿈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드나들면서 봐왔던 형의 꿈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점점 불안감에 심장이 달아올랐다. 도무지 여기가 누구의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형의 꿈인지, 아니면 엘런의 꿈인지. 지독히도 현실 같은 이 느낌이 나를 자꾸 조바심 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형이 있는 곳을 감지해보았다. 이 근방 가까운 곳에 있을 텐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능력이 무력화된 듯 시끄러운 소리조차 컨트롤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를 미치게 만드는 건 선규호였다. 이런 곳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으면 어쩌나. 설마, 그 녀석에게 당하고 있으면…. 생각도 하기 싫은 나쁜 생각들이 자꾸만 나를 쪼아대는 것 같았다. 빠르게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두리번거렸다. 빨리 형을 만나고 싶었다. 빨리. 어서. 제발….

휘익-.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날카로운 그 소리에 얼른 고갤 돌렸다. 2층 난간에 기댄 엘런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눈을 가려 음침하던 헤어스타일이 몰라보게 달라져서 순간 엘런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앞머리를 완전히 넘긴 가느다란 금발 머리 탓에 멀리서도 눈동자가 또렷이 들어왔다. 나는 미친 듯이 인파를 가르고 2층 계단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할 수만 있다면, 저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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