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상한 마음
속눈썹을 깜박였다. 아직도 짙은 열기가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탈한 한숨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길 몇 번. 나는 가만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 화면이 빠르게 변하는 걸 가만히 눈으로 내려다봤다. 눈앞에 드러난 검색창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가져갔다.
검색창에 형을 쳐봤다.
형 (兄) 명사: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남자들 사이에서 손윗사람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눈으로 읽어 내려간 문장들을 무심하게 쳐다봤다. 기태오와 나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적이 없음에도 가족이 되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나는 녀석의 형이고 녀석은 고작 두 달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동생이 되었다. 만약 아버지가 아줌마와 재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평생 기태오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그 녀석일까.
별안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막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얇은 반바지 차림에 면티 한 장만 걸친 녀석이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를 불렀다.
“형.”
하마터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갈 뻔했다.
“노크. 또 잊었냐?”
“아, 맞다.”
녀석이 문을 닫고 나가더니 정중하게 두어 번 문을 두드린 후 다시 벌컥 열었다.
“됐지.”
열린 문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무슨 개그도 아니고.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학습용 의자가 휘익 돌려졌다. 양쪽 손잡이를 잡고 녀석이 나를 내려다봤다. 상큼한 바디 클렌저 향이 녀석에게서 피어올랐다.
고갤 들자 목이 늘어난 티셔츠 안으로 맨살이 훤히 보인다. 단단한 쇄골과 근육으로 다져진 가슴이 바로 눈앞에 드러났다. 여자 가슴을 본 것도 아닌데,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심장이 멋대로 뛰는 게 느껴졌다.
“라면 먹자.”
고갤 숙인 태오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귓바퀴에 닿는 숨결과 낮은 목소리에 솜털이 바짝 서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얼른 나와.”
몸을 일으킨 녀석이 씨익 웃는다. 나는 고갤 끄덕였다. 녀석이 방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을 일으켰다. 숨결이 닿았던 귓가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컵라면 두 개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이면 빠르게 완성되는 인스턴트 음식. 영양가를 따지자면 몸에 좋을 게 없는데, 기태오는 균형 잡힌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윤 여사의 맛깔나는 요리보다 저런 걸 좋아했다. 윤 여사가 알면 난리 칠 텐데. 용케도 컵라면을 식탁 위에 풀어 꺼내 놓았다. 시계를 보니 밤 열한 시가 조금 넘고 있었다. 딱히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컵라면이 풍기는 냄새에 허기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식탁 의자를 빼고 앉았다.
“형 나 부탁 있어.”
냉장고에서 가져온 김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녀석이 말한다.
“같이 라면 먹자고?”
“이건 뇌물이고.”
그러면서 의자를 빼고 앉아 새하얀 대본을 탁 하고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지난번 것과 같은 대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표지 색부터 달랐다. 저번에 봤던 대본은 학원에서 실기 시험 대비를 위해 제작한 창작 대본이었는데, 이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새하얀 표지엔 방송국 채널명과 ‘수목드라마’라는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정교한 고딕체로 ‘리의 사랑’이라는 제목이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이건 딱 봐도 방송용 드라마 대본이었다.
“나, 오디션 붙었어.”
기태오가 입을 열었다. 라면 다 익었다, 와 같은 어조라서 오디션 합격했다는 말이 조금도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컵라면 뚜껑을 벗기고 내 앞으로 옮겨놓은 기태오가 나무젓가락을 쪼갰다.
“컵라면은 역시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제맛이야?”
컵라면을 열고 나무젓가락으로 휙휙 저으면서 녀석이 막 익은 라면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줌마는 알고 계셔?”
“아니.”
“…….”
“너한테 처음 말한 거야.”
“…….”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어.”
녀석이 다시금 나를 보고 해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어째서 시리도록 가슴을 조이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 잘했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았다. 기태오가 보기완 다르게 한번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끈질기게 애쓰는지 알고 있었다.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혼자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을 했을까. 대본집에 깨알같이 적혀 있던 기태오의 글씨들이 문득 떠올랐다. 숨소리, 발음, 대사의 속도까지 분석하고 적어가면서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비로소 완벽히 대사를 소화했을 테니. 어느 누가 너를 모른 척 지나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잘했어.”
“…….”
“정말 대단한 거 같아.”
“너무 띄워주는데?”
녀석이 즐거운 듯 나와 눈을 맞추었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쪼갰다. 녀석이 준비한 뇌물을 먹기 시작했다. 딱 이 정도만. 이만큼만 마음이 쓰였으면 좋겠다. 동생을 대하는 형. 딱 그만큼만.
“근데 부탁이 뭐야?”
기태오가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같이 자도 돼?”
나는 좀처럼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어린애도 아니면서 같이 잠을 자자고 조르다니. 그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내 심장이 이상했다. 종잡을 수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진지한 눈동자가 나를 들여다봤다.
“싫어?”
싫다기보단. 들뜬 것같이 뛰고 있는 내 심장이 신경 쓰였다. 종종 기태오와 접촉할 때마다 느꼈던 이상한 두근거림. 자꾸 신경 쓰이는 이 감정이 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뭔가에 집중하려 애쓸 때면 어김없이 기태오가 머릿속을 헝클어놨다. 녀석이 보여주는 행동 하나하나에 심장이 반응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땐 병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너랑 자면, 어떤 느낌일까. 그냥 잠만 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추궁하면 안 될 것 같은 호기심이 쿡쿡 나를 찌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왜?”
* * *
동그란 눈동자가 정직하게 놀란다. 예쁜 속눈썹이 깜박거렸다. 가만히 있어도 선규호는 아름다운 얼굴이라 넋을 놓곤 하는데, 평소에 보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으면 괜히 숨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빤히 형을 쳐다보자, 슬쩍 눈동자를 내리깔고 둘이 자려면 침대가 좁잖아, 하고 소곤거렸다.
나랑 자는 건 괜찮은가 보네. 침대가 좁을까 봐 신경 쓰는 걸 보면. 보통은 그 반대를 신경 쓸 텐데. 형은 순진무구하게 새 나라의 어린이 같은 말을 했다. 만약 형이 나에게 같이 자자고 한다면 난 섹스부터 떠올렸을 것이다. 발정 난 개새끼처럼 형을 발가벗기고 발기한 성기부터 들이밀었겠지. 꿈에서 저지르는 야한 짓보다 더 야하게. 몇 번이고 잠도 안 재우고 수 없이 형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어떤 흑심을 품고 있는지 하나도 모른 채 형이 입을 열었다.
“뇌물도 먹었는데.”
“…….”
“좁아도 상관없으면 그러든가.”
모든 사람이 선규호 같다면, 세상에 살인이나 강간 같은 살인마들은 단 한 명도 없겠지. 이렇게 쉽게, 흔쾌히 허락을 받아낼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오히려 목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내려놓고 얼른 생수가 담긴 컵을 집어 들었다. 단숨에 비웠는데도 한번 시작된 갈증은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뒷정리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왔다.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선규호는 정말 나를 동생으로밖에 생각 안 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형제놀음이 아직도 선규호는 재밌는 걸까. 나를 귀여운 동생으로만 보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그럼 정말 곤란한데.
베개를 껴안고 경쾌하게 노크를 했다. 문 가까이에 있었는지 금세 형이 방문을 열어주었다.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산뜻한 얼굴로 들어와, 라고 말하는데. 김빠지는 기분이었다. 형도 그사이 자려고 씻고 나왔는지 물기가 덜 마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틈에 시간은 새벽으로 기울고 있었다. 형은 갑자기 학습용 의자에 앉아 문제집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형의 침대에 내 베개를 아무렇게 던져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뭐 해?”
“고3이 잠 안 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
“같이 자기로 했잖아.”
“…먼저 자.”
이쪽은 쳐다도 안 보고 말하는 형이 조금은 야속했다. 대화가 끊기자, 사각사각 샤프심 소리만이 무심하게 방 안을 채웠다. 나는 동그란 형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젖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목을 덮고 있었다. 반듯한 등 선과 반팔 소매 밑으로 드러난 새하얀 팔을 쳐다봤다. 샤프를 쥐고 있는 다섯 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문제를 풀고 있는지 시종일관 움직이고 있었다.
형은 그닥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오늘 밤 형에게 같이 자자고 잠을 청한 건, 몽마 때문이었다. 내가 본 것만 벌써 두 번째인데, 또 나타나 형을 괴롭힐까 봐 자꾸 신경이 쓰였다. 형이 양기를 강하게 만들어 몽마가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몸이 약한 형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임시방편으로 양기가 강한 사람이 함께 잠을 자면 몽마가 접근하기 어렵다는데. 그건 오늘 자봐야 알 것 같고.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학습용 의자를 끌어당겼다. 무방비하게 끌려온 의자를 돌려 얼른 나를 보도록 만들었다. 어째선지 형의 양쪽 귓가가 옅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른 자자.”
“…누구랑 자본 적 없어.”
“나도 네가 처음이야.”
“병신아. 장난하지 말고.”
설마, 내가 신경 쓰이나. 침대가 좁아서란 핑계를 댈 땐 언제고. 나는 그대로 형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오랫동안 그리운 향기를 맡듯 숨을 들이켰다. 선규호의 달콤한 냄새가 맡아졌다. 옷감 밑에서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살냄새가 좋아서 나도 모르게 형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재워줘, 형.”
어리광을 부리면 대부분 선규호는 들어주는 편이었다. 형이 동생에게 해주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형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침대로 올라와 벽 쪽에 자릴 잡고 누웠다. 그 옆에 눕자 일인용 침대가 꽉 차는 게 느껴졌다. 살갗이 닿는 게 싫은지 형이 벽을 보고 모로 누워버렸다. 고갤 형 쪽으로 돌리자 어둠 속에서 동그란 뒤통수만 보였다. 수없이 많은 밤, 형의 꿈에 몰래 들어가기 위해 잠든 형 옆에 누웠었다. 한두 번 누워본 것도 아닌데 마치 처음 눕는 것처럼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똑바로 눈을 뜨려고 해도 정신이 혼미했다. 그럼에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형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형.”
나는 가만히 형을 불렀다. 바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긴장된 숨결이 아무렇게 쏟아졌다. 정말, 잠만 자려고 했는데. 몽마가 다시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오늘 밤, 아무 짓도 안 하려고 했는데, 반팔 아래로 새하얀 팔이 눈에 들어왔다. 내 팔이랑 다르게 핏줄 하나 없이 매끈한 팔이 어깨에서부터 부드럽게 곡선을 만들고 내려와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이어졌다.
“형, 자?”
나는 다시 형을 불렀다. 그리곤 조용히 형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 숨소리와 다른 것 같았다. 천천히 형 쪽으로 몸을 돌려 형처럼 모로 누웠다. 젖어 있던 끝이 다 말랐는지 부드럽게 윤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목선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조금만 숙이면 목에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다. 그 때였다. 홱 고갤 돌린 형이 나를 밀쳤다.
“달라붙지 마, 더워.”
정말 더웠는지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인상을 쓰고 나를 째려보는데, 더위 하나로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안 달라붙었거든?”
“그럼, 왜 뒤통수에 대고 하악하악 거려?”
“내가 언제 하악하악 그랬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 하악하악은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얼마나 참을 ‘인’ 자를 써가면서 참고, 참고, 또 참았는지 알면 그런 말 못 할 텐데. 억울한 생각에 갑자기 욱하려는데, 형이 내 어깨를 팍 밀쳤다.
“병신아.”
형이 밀치는 바람에 반대편을 보고 모로 눕게 됐다. 이걸 노렸다는 듯이 형이 내 등에 몸을 붙여왔다. 가슴을 바짝 밀착시키곤 화가 난 듯 입을 열었다.
“네가 방금, 이렇게 내 뒤에서….”
형이 팔을 내 겨드랑이 사이에 넣고 바짝 당겼다. 그리곤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숨을 쉬는데.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닿아왔다. 예민하게 귓바퀴를 타고 올라오는 야릇한 감촉에 순간 호흡을 참았다. 형은 좀 전 상황을 재연하면서 내가 ‘하악하악’ 숨을 쉬었다고 우겨대고 있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씹었다. 등 뒤로 맞닿아오는 가슴과 엉덩이에 비벼지는 성기의 감촉 탓에 아랫도리가 화끈거렸다.
“…하지 마.”
내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내가 하니까 기분 더럽냐?”
“그런 거 아니야.”
“웃기네. 너도 존나 당해봐.”
형이 다시금 내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었다.
“변태 새끼. 이러니까 좋냐?”
등에 달라붙은 선규호의 촉감과 귓가로 쏟아지는 숨결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선규호는 장난일지 몰라도 나는 심각했다. 자꾸만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선규호의 입술이 내 귓불에 닿는 게 느껴졌다. 꾸욱 누르면서 깊게 입을 맞춰왔다. 춥, 하고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귓불에 입술을 부딪쳤다. 선규호가 작게 숨을 고르면서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축축한 입술이 숨결과 함께 턱으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말캉한 입술이 조심스러운 듯 내 입술에 닿았다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등에 맞대고 있었던 몸을 얼른 일으켰다. 형이 침대 밖으로 튕겨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얼른 형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놀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또렷했다. 축축하게 젖어 윤기가 감도는 동그란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자, 장난이야.”
나는 덜덜 떨고 있는 선규호를 내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힘없이 형이 내 앞으로 끌려왔다.
“그냥. 네가 장난치니까….”
그대로 선규호의 턱을 그러쥐고,
“나도 한번 쳐본 거…, 읍!”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입술에 입술을 부딪쳤다. 어쩔 줄 몰라 방황하는 아랫입술을 혀로 핥아 올렸다. 춥, 추웁, 야릇한 소리가 형의 입술과 내 입술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숨을 참던 선규호가 더는 못 참고 헐떡이며 입술을 열었다.
벌려진 틈에 빠르게 혀를 밀어 넣었다. 입안이 데일 듯이 뜨거웠다. 혀를 움직일 때마다 선규호의 촉감에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깊게 선규호의 혀를 찾아 비벼댔다. 입술을 빨고 또 빨았다. 농익은 입술을 꾸욱 눌렀다. 그리곤 천천히 선규호의 입술에서 내 입술을 떼어냈다. 격한 숨결 탓에 호흡이 엉망으로 내쉬어졌다. 눈가가 잔뜩 젖은 선규호가 나를 쳐다봤다.
“말해봐, 이것도 장난이야?”
* * *
기습처럼 기태오의 입술이 나를 덮쳐왔다. 뜨겁고 강렬한 충격 탓에 뇌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이 와중에도 입술을 열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자꾸만 몸을 뒤로 뺐다. 녀석이 다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기태오의 단단한 손가락이 움직이지 못하게 내 턱을 당겼다. 폐부 가득 차오른 숨을 참는 동안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반쯤 풀린 눈 안으로 기태오가 들어찼다. 폐를 잔뜩 압박하던 숨이 한꺼번에 뱉어졌다.
본능적으로 입술이 벌어졌다. 끝 간 데 없이 숨이 토해지는 그 때, 기태오의 혀가 맹렬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나를 더듬는 촉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선지 축축한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기태오는 멈출 생각이 없는지 아랫입술을 끈질기게 물고 빨면서 다시 입술을 잔뜩 부딪쳐왔다. 뒤로 빼려는 순간, 기태오가 목덜미를 강하게 눌러왔다. 나를 만지는 커다란 손과 겹쳐지는 숨결과 안달이 난 것 같은 심장 박동에 집어 삼켜지는 것 같았다.
“하아, 하. 아아….”
입술이 떨어졌다. 가슴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숨결이 녀석 앞에서 무방비하게 쏟아졌다. 단단하게 잡고 있던 내 턱을 놓지 않고 거침없는 맹렬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봤다. 살갗으로 소름이 돋았다. 겁도 없이 일을 내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기태오를 대할 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또 간과하고 말았다.
같은 침대에 눕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녀석과 함께 누워 자는 것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병신이었다. 오디션에 합격한 게 장해서. 뭐든 녀석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이처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입술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심장이 떨려왔다. 두렵게도 나는….
“말해봐, 이것도 장난이야?”
“…….”
“나, 집 나갈 각오로 묻는 거야.”
“…….”
“너한테 나 뭐야?”
눈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주위 공기가 완전히 바싹하게 말라 산소가 다 사라진 기분이었다. 호흡이 멈춘 것처럼 폐부에 찬 공기가 답답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이라도 장난이라고 하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다 호르몬 탓이라고. 개꿈 한 번 꾼 셈 치자고. 내일 아침이면 생각도 안 날 거라고. 기태오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 마음을 꾹꾹 눌러 숨기면…. 형과 동생으로 다시금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뇌가 끄집어내는 말들을 곱씹었다.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
놀란 태오가 내 턱을 당겼다. 깨물고 있는 입술을 빼면서 한숨처럼 속눈썹을 내리깔고 꾸욱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나를 쳐다봤다. 깨물지 마. 너 아픈 거 싫어. 녀석의 낮은 숨결이 나를 흔들었다. 선명하게 잇자국이 남은 아랫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문질러주었다. 섬세한 손가락의 감촉에 등줄기로 한기가 치미는 것만 같았다.
“…기태오,”
이름을 부르자, 새까만 눈동자가 충돌하듯 나를 쳐다봤다. 짙게 욕정하고 있는 눈동자가 나를 뜨겁게 핥기 시작했다. 그 시선에 심장이 어떻게 될 것처럼 아려왔다. 서둘러 머릿속으로 급조한 말들을 떠올렸다. 그래, 다 장난이야. 모두 호르몬 탓이야. 내일이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태오야….
“거짓말할 생각 하지 마.”
강렬한 습격을 받은 것처럼,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녀석의 한마디에 가까스로 참고 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냥 거짓말하게 두지. 꾹꾹 참게 내버려두지. 결국 내 입에선 걸러지지 않은 마음들이 쏟아져 나와버렸다.
“…병신아. 어쩌라고. 이게 뭔지 나도 모르겠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
“너야말로 나한테 뭔데? 뭔데, 이 자식아!”
주먹으로 녀석을 쳤다. 아프게. 멍이 들도록. 가슴을 내리쳤다. 매섭게 날리는 주먹을 다 받아주며 기태오가 팔을 벌렸다. 단숨에 나를 당겨 끌어안았다. 목덜미를 그러쥐고 등에 팔을 휘감아 깊게 껴안아 왔다. 나는 멈추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 말라고 욕을 했다. 자꾸만 아릿하게 심장이 저렸다. 아프도록 맞고 있는 건 녀석인데, 멍드는 건 내 심장인 것만 같았다.
“…선규호.”
“…….”
“너 땜에 미칠 것 같아.”
나는 쥐고 있던 주먹을 펴고 그대로 팔을 둘러 기태오를 끌어안았다. 진정되지 않은 녀석의 심장 소리가 내 것과 함께 엉켜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