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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심 (8/37)

7. 관심

급식실 메뉴판을 보고 있다가 툭 치는 손길에 고갤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태오가 해사하게 웃는다. 벌써 점심을 먹었는지, 녀석의 식판은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맛있게 먹어, 형.”

녀석은 입 모양으로 나만 보이게 말했다. 나는 작게 고갤 끄덕인다. 나를 지나쳐 가는 녀석을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줄이 줄어들고 있어 얼른 앞사람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고갤 숙이고 심호흡을 했다. 다시 고갤 돌리면 기태오가 있을 것만 같았다. 예전엔 얼굴만 봐도 불쾌하고 화가 치밀었는데, 녀석이 은근하게 아는 척을 하는 게 싫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에선 서로 모른 척을 했다. 번거롭게 아는 척을 해 복잡한 집안 사정이 까발려지는 것도 피곤하고. 지금껏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왔던 걸 일일이 해명하기도 귀찮아서. 늘 그래왔듯이 녀석은 녀석대로 나는 나대로.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기태오가 남들 눈을 피해 말을 걸어오거나 아는 척을 해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린다.

줄 맞춰 배식을 차례로 받는 도중에도 뒤돌아보고 싶어졌다. 분명 급식실을 빠져나갔다는 걸 알면서도. 뒷문을 확인하고 싶었다. 솔직히 이런 내가 좀 낯설었다. 그러는 사이 식판 위에 시뻘건 닭볶음탕이 얹어졌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자리를 차지한 형준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인다. 나는 뒷문을 확인하고 나서, 발걸음을 옮겼다. 식판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녀석 앞에 앉았다.

“누구 찾아?”

대뜸 형준이가 물었다.

“어? 아니.”

“계속 뒷문 쳐다보잖아.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나는 대답 없이 콩나물국을 휘저었다.

“…수상해.”

형준이가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식판을 들고 다가오던 경민이가 얼른 형준이 옆자리에 앉았다. 식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경민이가 야야, 니들 그거 알아? 하고 뭔가 재미난 걸 알아왔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미적지근하게 식은 콩나물국을 한 입 떠먹다가 인상을 썼다. 소금간이 전혀 되지 않아 밍밍했다. 이것도 급식이라고 영양사는 따박따박 월급을 받겠지.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경민이가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존나. 대박 사건.”

형준이가 입이 미어져라 밥을 넣고 씹다가 경민이를 바라봤다. 자연스레 나도 경민이를 쳐다봤다.

“뭔데?”

“야야, 이거 봐봐. 내가 일부러 폰까지 가지고 왔다!”

핸드폰을 조작하던 경민이가 검색해서 찾은 기사를 클릭해 우리에게 보여줬다. <제레미 ‘바람을 지나’ 뮤직비디오 티저 전격 공개>란 타이틀 아래 빼곡하게 기사가 채워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심드렁하게 밥숟갈을 들었다. 계집애도 아니고 남자 아이돌에 열광하는 경민이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이게 뭐? 너 제레미 남팬이냐?”

형준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묻는다.

“아, 미친! 뒈질래? 그게 아니라 이걸 보라고.”

경민이가 얼른 기사 하단에 첨부된 동영상을 클릭했다. 링크를 타고 동영상 사이트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곧이어 영상이 플레이됐다.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티저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별생각 없이 화면을 보다가 나는 그만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쳤다.

“봤냐, 봤어? 이거 그 새끼 맞지?”

17초가 넘지 않는 짤막한 티저 영상이었다. 화면 속 남자가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남자와 눈동자가 딱 마주쳤다. 음악과 함께 등장한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된 순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좆 존나 큰 새끼.”

“…….”

“이거, 기태오 맞지?”

경민이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녀석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귓불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 * *

“과외 쌤 가셨어?”

태오가 묻는 말에 고갤 끄덕였다. 과외 선생을 현관에서 배웅하고 온 참이었다. 여덟 시부터 연달아 세 시간 동안 5분 남짓 쉬었을까. 아직도 머릿속을 배회하는 수학 문제들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스파르타식으로 초침까지 정확하게 시간을 재면서 수십 개의 문제를 풀게 만들었던 터라 진이 다 빠졌다.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온 태오가 나를 살폈다.

“힘들었어?”

나는 대답 대신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면 끓여줄까?”

선하게 휘어진 눈매가 나를 내려다봤다.

“좀 전에 물 올려놨어, 배고플 거 같아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그러다가 뭐라도 발견한 것처럼 손가락을 들어 올려 눈꺼풀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가만히 넘겨주었다. 닿을 듯 말 듯한 체온 탓에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뮤직비디오에서 봤던 것처럼 선했다.

“나 라면 두 개 먹을 건데, 형은?”

“반 개.”

“이따 달라고 하지 마. 한 젓가락도 안 줄 거야.”

주방으로 걸어 들어간 녀석이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한다. 나는 냉장고로 가 습관처럼 우유를 꺼내 들었다. 유리컵에 우유를 가득 따라놓고 냉장고에 반쯤 남은 우유를 넣어 두고 문을 닫았다. 기태오는 쭉쭉 잘만 자라는데, 내 키는 조금도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속상했다. 지금이라도 형답게 키가 좀 컸으면 좋겠다. 우유를 한 모금 마시는데, 달걀을 휘휘 풀어 넣으며 녀석이 물었다.

“진짜 반 개 먹을 거지?”

“어. 많이 먹으면 눈 부어.”

유리컵을 내려놓으며 식탁 의자를 빼고 앉았다. 시선 끝에 아무렇게 올려진 제본된 책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 표지에 검은 글씨로 ‘27기 B class 자유 창작 대본’ 아래 멋을 잔뜩 낸 캘리그라피로 <순수, 열정>이라고 쓰인 문구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얼마나 봤는지 모서리가 다 해져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빨간 볼펜으로 깨알같이 대사마다 첨부된 문구들이 가득했다. 시선의 각도나 목소리의 속도 같은 걸 표시해놓은 곳도 보였다. 나는 페이지를 좀 더 넘겨봤다. 어느 페이지건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몇 장 넘겨보지 않아도 제목만큼 얼마나 간절하게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로부터 기태오가 공부보단 이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연기학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껄렁껄렁한 녀석답지 않게, 빠지지 않고 학원을 드나들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대본이 걸레짝이 되도록 공부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경민이가 점심시간에 보여줬던 티저 영상이 떠올랐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던 표정. 눈빛. 천천히 클로즈업되던 얼굴.

라면을 다 끓였는지 태오가 냄비째 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들고 있던 대본을 얼른 내려놓았다. 받침대 위에 냄비를 놓은 녀석이 아뜨뜨, 하면서 손가락을 귀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녀석이 피식 웃었다. 예전엔 잘 몰랐는데, 웃을 때 굉장히 흡입력 있는 얼굴이라는 걸 깨달았다. 녀석은 얼른 의자를 빼고 앉아 그릇에 뜨거운 라면을 덜기 시작했다. 뜨끈한 국물을 국자로 끼얹은 라면 그릇을 내 앞에 놓아준다. 나는 젓가락으로 라면을 들어 후후 불었다.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침이 고였다. 후루룩 면발을 입으로 가져갔다. 요리 솜씨 따위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맛이 있었다.

“기사 봤어.”

지나가는 말처럼 녀석에게 말했다. 태오가 나를 보고 속눈썹을 깜박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보다가 뒤늦게 뮤직비디오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았는지 아, 하고 짧게 입을 열었다.

“왜 말 안 했냐?”

“그게, 한 달 전에 찍었던 거라. 까먹고 있었어.”

“니, 존나 사기캐던데?”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저으며 장난식으로 말하자 녀석이 쿡 웃었다.

“찍으면서 꽤 힘들었어.”

“…….”

“경쟁률도 장난 아니고.”

새카만 동공이 그때 일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조금 짙어졌다. 그러다가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내 옆자리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나, 엄청 고생했는데.”

“…….”

“칭찬 안 해주나?”

동그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동생이란 생물은 모두 기태오 같은 걸까. 형한테 칭찬받고 싶다는 꼴이 꼭, 주인한테 밥 달라고 조르는 강아지마냥 귀여워서. 아니. 그렇다고 기태오가 귀엽다는 건 아니고….

“어떻게 하면 되는데?”

내 가슴팍에 머릴 기대오면서 기태오가 작게 속삭였다.

“쓰다듬어 줘.”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처럼 머릴 들이밀고 졸랐다. 아마 좋은 형이라면 이 정돈 해주는 게 맞겠지.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녀석의 머릴 쓰다듬었다. 곱실곱실한 머리칼이 손바닥 밑에 닿아왔다. 맞닿은 촉감이 묘하게 간지러워서 잠깐 멈추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아이구 잘했네, 내 동생. 이렇게 추임새도 넣고.”

“넌 옆구리 찔러서 절받는 게 취미지?”

“…빨리!”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머릴 어루만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녀석이 상체를 일으켜 나를 쳐다봤다.

“안 해주기 있냐?”

심통 부리는 녀석의 머리끝에 시선을 던져둔 채 곱실한 머리카락을 넘겨줬다. 앞머릴 넘기니 반듯한 이마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이 한숨처럼 눈을 감았다가 떴다. 좀 전 장난 가득한 표정은 어디 가고, 조금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나를 쳐다봤다. 체온과 맞닿은 살결에 생각이 끼어들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누군가를 만질 때면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마주해야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점잖은 얼굴로 얼마나 자신을 능숙하게 포장하는지 나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기태오에겐 처음부터 내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경계하고 의심하는 사이 네 본심 따윈 관심도 없었다.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잘못한 게 아니었는데. 너만 몰아세웠다.

“잘했어, 기태오.”

차분하게 머릴 쓸어주며 작게 속삭였다.

* * *

침대에 누워서 대본을 들여다봤다. 눈에 익은 문장들을 훑으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들고 있던 대본을 내려놓고 불을 껐다. 침대에 엎어져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면 오디션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을 보러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국에 있는 내 또래 남자애들을 모두 모아놓은 것 같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꽤 지루했지만,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오디션은 간략하게 이뤄졌다. 카메라 테스트, 표정 연기, 오디션을 보러온 동기 같은 걸 간단하게 물었다.

안내하는 스태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심사를 보는 관계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낯빛이 어둡고 따분해 보였다. 피곤이 잔뜩 누적된 얼굴로 기계같이 입을 열고 형식적으로 서류에 뭔가를 적곤 했다. 그 때였다. 상석에 앉은 감독이 내게 물었다.

“기태오 씨, 방금 무슨 생각으로 카메라를 봤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지금껏 서류만 내려다보던 감독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눈동자가 딱 하고 마주쳤다. 맹수와도 같은 날렵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봤다. 기가 센 사람들을 여럿 봐왔지만, 감독의 아우라는 연륜만큼이나 범상치 않았다.

나는 그 눈동자를 그대로 받아쳤다. 어째서인지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조금 가소롭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이깟 게 뭐라고 무게를 잡나, 얕잡아 보는 마음도 더러 있었다.

“집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표정이 없는 로봇들인 줄 알았는데, 입가에 웃음을 담자 화색이 돌았다. 감독이 피식 입꼬릴 당겼다.

“집에 뭐 좋은 거 두고 왔냐?”

감독이 우스갯소리를 하자, 다시 한 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나도 따라 웃었다. 감독이 표정이 좋다면서, 입을 열었다.

“방금 표정이 뭐랄까, 막 사랑에 빠진 소년 같았거든.”

감독의 말에 눈을 깜박였다. 카메라 테스트의 지시문구를 떠올렸다. 보드 판에 쓰인 짤막한 문장.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을 떠올려 보시오.> 문장과 함께 내가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선규호였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가로등 불빛이 창틈 밑으로 스며들어왔다. 내 방의 실루엣이 아련한 그림자처럼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모로 누워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일부러 딴생각을 했는데, 결국엔 또 선규호를 생각하고 말았다.

‘잘했어, 기태오.’

내 머릴 쓰다듬으면서 선규호가 웃으며 말했다. 재수 없게 이를 세우고 공격하던 선규호는 어디로 가버리고, 새하얗게 눈부신 선규호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걸 보는 동안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나를 흔들고 있는 이 마음이 뭔지 답답했다. 심호흡으론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두 시 반. 형이 잠들었다면 불이 꺼졌을 것이다. 나는 능숙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이 조용했다. 어둠 속에서 형의 방을 찾았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없는 걸로 보아 형은 잠이 든 게 분명했다. 나는 거실을 빠르게 가로질러 형의 방문 앞에 섰다. 이 이상한 감정이 뭔지 확인하고 싶었다.

손잡이를 조심스레 돌렸다. 열린 문틈으로 냉랭한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뺨에 닿았다. 차오른 호흡을 내쉬면서 소리가 나지 않게 안으로 들어갔다. 소릴 신경 쓰면서 문을 닫았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치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서둘러 형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숱하게 이 방을 들락거렸으면서 오늘따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슬쩍 침대에 걸터앉았다. 깊게 잠든 형이 눈에 들어왔다. 곱게 감긴 속눈썹이 얌전했다. 가슴이 안정적으로 오르내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잠든 형을 보고 있는 것뿐인데, 솜털이 서는 것 같았다.

현실의 선규호는 어떤 느낌일까.

위험한 생각인 줄도 모르고 더듬거리듯 형의 몸을 쳐다봤다. 날렵한 턱선 밑으로 잠옷 단추가 채워진 형의 상의를 바라보다가 옆구리 밑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었다. 에어컨 바람에 서늘하게 식은 살결이 손바닥에 닿는 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살결이 기분 좋게 감겨든다. 잇새로 날것에 가까운 호흡이 새어 나왔다.

꿈에서 만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탄력적인 살결이 흥분감을 부추겼다. 조금 더 위로 손가락을 옮겼다. 마른 가슴 위로 작고 말랑말랑한 유두가 만져졌다. 이게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단단해지는지 꿈에서 수차례 봐왔었다. 손가락에 닿는 촉감에 숨결이 흔들렸다. 위험한 생각이 불현듯 나를 덮쳐왔다. 더듬던 손을 빠르게 빼냈다. 얼굴을 문질러 마른세수를 하는 동안에도 빠르게 뛰는 심장이 나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다시 손을 뻗었다. 잠옷 셔츠를 말아 쥐고 천천히 위로 들춰 올렸다. 새하얀 몸이 무방비하게 눈에 들어온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 중앙에 방금 스쳤던 젖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고갤 숙이고 젖꼭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에어컨 바람에 젖꼭지가 꼿꼿하게 발기해 있었다. 납작한 남자 가슴에 달린 젖꼭지임에도 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입을 벌려 혀를 길게 빼고 애가 타듯 그것을 핥으려던 순간. 형이 몸을 뒤척였다.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수선하게 헝클어진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렸다. 한숨처럼 쏟아낸 숨결이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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