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남동생과 나는 (외전증보판) 1
프롤로그
고즈넉한 밤공기가 감돌았다. 열어놓은 창 너머 날 선 초승달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느릿하게 학습용 의자에서 일어나 발소리를 죽이고 방 밖으로 나갔다. 새벽 한 시가 막 넘어서던 참이었다. 컴컴한 어둠을 뚫고 능숙하게 옆방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아래층에 계시는 부모님은 깊이 잠이 들었을 터였다. 다다른 방문 앞에서 짧게 심호흡을 했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에어컨을 틀어놓았는지 미약한 기계음이 낮게 방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눈동자를 옮겼다. 여기서도 잠든 선규호가 눈에 들어왔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그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머지않아 나는 알게 될 터였다.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다다르자, 결 좋은 머리카락 아래로 단정한 얼굴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내치곤 속눈썹이 길었다. 우뚝 솟은 콧날을 중심으로 혈기가 감도는 붉은 입술은 어느 때보다 뜨거워 보였다. 날렵한 턱선, 새하얀 목, 몇 개 열린 단추 사이로 보이는 쇄골. 나도 모르게 작게 숨을 골랐다. 요즘 들어, 나는 선규호를 참는 게 힘들다.
슬리퍼를 벗고 위태롭게 침대 위로 올라가 모로 누웠다. 코앞의 선규호를 느릿하게 눈으로 훑었다. 심장을 타고 흐르는 야릇한 열기가 멋대로 고동친다. 상체만 일으켜 그의 잠옷을 슬쩍 아래로 잡아당겼다. 뽀얀 목선이 무방비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레 고갤 숙여 연한 살에 입을 맞췄다. 혀를 내밀어 부드러운 살결을 핥다가 입술을 박고 깊게 빨았다. 느릿하게 혀를 굴리면서 야릇한 멍울이 생기도록 좀 더 선규호를 물었다. 고동치는 심장이 위험하게 뛰는 게 느껴졌다. 열이 오른 입술을 얼른 뗐다.
미간을 약간 찌푸린 그가 잠덧을 하듯 몸을 뒤척였다. 얼른 침대에 누웠다. 미동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더듬거리듯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선규호의 손가락 하나하나 깍지를 꼈다. 새끼손가락이 얽히는 순간, 나는 마치 마취를 당한 것처럼 깊은 수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찔한 기분으로 눈을 떴을 때, 침대에 잠든 선규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의 목덜미를 쳐다봤다. 붉은 울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온전히 선규호의 꿈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의 경계를 넘어서면 거울을 사이에 두고 대칭을 이룬 것같이, 현실과 똑같은 모습으로 타인의 꿈에 잠입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렘수면에 다다르기 전까지 저 상태로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을 한 번 깜박이자, 화려한 금박 장식이 달린 세 개의 새하얀 문이 부드럽게 바닥을 뚫고 솟아올랐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문들을 응시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어젯밤 내가 설계해놓은 꿈속으로 그와 함께 나는 빨려 들어갈 것이다. 나는 손짓으로 문을 열었다.
* * *
열린 문틈으로 기태오가 들어왔다. 세탁실에서 빼놓고 온 교복 넥타이가 녀석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다림질 된 셔츠를 막 입던 참이었다. 단추를 잠그며 고갤 돌리는데, 녀석이 내 목에 넥타이를 대보며 매줄까? 한다. 나는 슬쩍 고갤 들고 녀석을 쳐다봤다.
중학교 때만 해도 내가 녀석보다 키가 컸는데 지금은 머리 하나 차이가 날 만큼 훌쩍 커버렸다. 흰 런닝 차림의 녀석은 묘하게 색정적이다. 목울대 아래로 단단한 쇄골이 눈에 들어왔다. 넓고 강단진 어깨, 보기 좋게 근육이 붙은 탄력적인 팔. 단단한 손끝….
쌍꺼풀진 커다란 눈은 날렵하면서 어딘가 순진무구했다. 어떤 악의도 느낄 수 없는 순수가 느껴졌다. 그 다정한 눈빛을 보고 있으면 몸 안의 축이 흔들리는 것처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짐작만 할 뿐이다.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마음인지. 대체 저 머릿속엔 뭘 담고 있는지. 나는 신경질적으로 녀석이 들고 있는 넥타이를 낚아챘다.
“신경 꺼.”
빤히 나를 쳐다보는 녀석을 무시하곤 거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목에 감은 넥타이를 휙휙 아무렇게 매면서 거울에 반사된 태오의 적나라한 시선을 외면했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인데, 어째선지 기태오의 생각만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 유일한 돌연변이. 그 탓에 나는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다. 녀석 앞에선 저절로 기합이 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 때였다. 녀석이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선규호.”
고갤 돌리려는 찰나, 나를 향해 뻗어오는 네 손길에 온전히 몸이 되돌려졌다.
“삐뚤어졌어.”
어린애를 다루듯이,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달군다. 대강 맨 넥타이를 능숙하게 풀어 보기 좋게 손보고 나서 나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해사하게 웃는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꾸 이름으로 불러라.”
곤두선 목소리로 대꾸하자, 녀석이 알았다는 듯이 미안, 형. 하고 사과를 한다. 저 사과의 의미가 진짜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녀석을 만진다고 해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속마음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근데, 형.”
은밀한 목소리로 녀석이 가만히 고갤 숙인다. 숨결이 닿을 듯이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손가락으로 오른쪽 목을 두드리면서 작게 속삭인다.
“여기, 잘 숨겨.”
“뭘?”
“키스 마크.”
수치심에 얼굴이 화악 하고 달아올랐다. 어느 틈에 그걸 봤을까. 목까지 단추를 분명하게 채웠는데, 이상한 망상을 하는 녀석이 한심해서 욕을 뱉었다.
“미친 새끼.”
나는 신경질적으로 녀석을 노려봤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거칠게 녀석을 밀치고 방을 빠져나왔다. 진정되지 않은 심장이 아무렇게 덜컹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