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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쥐먼트-95화 (95/95)

95화

식은 날씨 따뜻한 5월 초에 진행되었다. 평창동 마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하늘하늘한 천으로 신랑 입장로를 만들자 서정적이면서도 목가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소박한 가족석 옆에 멋진 뷔페를 늘어놓고, 매형이 아름다운 식장 곳곳을 카메라로 담았다.

아이들이 화동으로 서면 좋겠다는 의견에 지율이는 권지하의 아버지 품에, 하율이는 다율의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입장했다. 화촉은 어머니와 누나가 켰다.

신랑 입장을 앞둔 다율의 가슴은 터져 나갈 것처럼 뿌듯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손을 잡아 주는데도 떨림이 그치지 않았다. 언젠가 예능에 동반 출연했을 때보다 10배는 떨린다고 하면 이 마음이 표현이 될까.

“이제 나가자.”

“네.”

다율이 권지하와 시선을 마주친 다음,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결혼 행진곡에 맞추어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두 사람에게 가족들이 꽃잎을 뿌려 주었다.

“사랑하면서 살아요!”

“평생 행복해라!”

온 가족이 함께 외쳐 주는 소리가 다율은 벅찼다. 오늘 결혼식에 쓰인 카펫은 몇 미터에 불과한 입장로였지만, 다율은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권지하와 자신은 손을 잡고 인생의 기나긴 길을 나란히 걸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마음이 약해지는 날이 오더라도 이 손은 변함없이 강한 힘으로 다율을 잡아 줄 것이다.

“그럼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권지하의 아버지가 오늘의 주례를 소개했다. 권지하의 어머니가 두 사람의 앞에 서서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너무 격식 차리지 않고 대신 진솔하게 이야기할게. 어떻게 주례사를 읊을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처음 다율이를 봤을 때가 떠올랐어.”

다율도 그날을 기억한다. 아직 매니저 일을 하던 때로, 부모님을 처음 뵌 날 기분이 참 오묘했더랬다. 대를 이으라며 카메라에 삿대질을 하던 아버님이 무서우면서도 재밌었고, 수인권 운동을 한다는 어머님과는 친해지고 싶었다.

“지하가 여러 차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미 같이 살고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는데. 그때 다율이는 그 사람이 자기인지도 모르고 있더라고.”

아, 맞다. 그랬었지. 눈치가 너무 없어서 그게 자기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나중에 기회 되면 뵙자면서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었다.

다율이 웃음을 터뜨리자 가족들이 따라 웃었다.

“그렇게 순수한 다율이를 보면서 다율이가 욕심났어. 세상 때가 묻지 않았으면서도 자기 일 열심히 하고 또 제 마음을 다해서 지하를 사랑하는 다율이만큼 좋은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권지하의 어머니가 다율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애정이 가득 넘쳐흘렀다.

“다율아. 지하는 알아서 다율이한테 잘할 테니, 너는 그저 사랑만 받고 살면 된다. 그러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야.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야.”

다율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엇보다도 힘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럼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를 볼까요?”

누나가 짓궂은 소리를 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에 키스했다. 가족들이 환호하며 있는 힘껏 박수를 쳐 주었다.

완벽한 봄날의 오후였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여름이 되었다.

더운 계절을 맞이해 반갑게 들려온 소식은 바로 지난여름 동해에서 찍은 영화 <그 여름, 커피>가 드디어 개봉한다는 것이었다. 다율은 휴직 중이지만 어엿한 권지하의 매니저로서 VIP 시사회에 참석했다.

영화 중간중간 다율이 화면에 잡혔다. 캠핑족으로, 행인으로, 김혜현에게 수작을 거는 남자로 다양하게 활약하는 자신을 보면서 다율은 수치심에 기절할 것 같았다.

내가 저렇게까지 연기를 못했다고? 말도 안 돼.

권지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피식거릴 뿐, 코멘트를 따로 하지 않았다. 다율은 그게 더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이라이트는 맥주 페스티벌 신이었다. 다율은 고전무용도 비보잉도 아닌 어깨춤을 추면서 군중 속에서 격렬하게 춤을 췄다.

“으아아!”

저걸 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쪽팔려, 흑흑.

본인 아니면 못 알아볼 만큼 풀 샷으로 잡혔건만 다율은 그래도 창피했다. 권지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떠는 다율을 한입 깨물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 어려웠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이게 참 아쉽네. 그는 입맛을 다시고 물러난 뒤, 집에 가서 다율을 실컷 잡아먹었다.

<그 여름, 커피>가 대성공을 거둔 후, 권지하는 더 바빠졌다. 킨 영화제 수상 감독과 합작한 영화가 바로 이어서 개봉한 탓이었다. 작품은 <느와르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칭송받았고 권지하는 아름답게 액션하는 배우라는 명성을 얻었다.

영화는 대중을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을 고무시켰다. 그리고 연말, 권지하는 마침내 흑상예술대상 후보에 올랐다.

“배우님! 아니, 형! 후보에 올랐대요!”

백장훈과 통화를 마친 다율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권지하는 다율의 뺨에 키스하며 고맙다고 속삭였다.

두 사람은 아기들을 재우고 침대에 누웠다. 마주 본 눈빛에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처음 배우와 매니저로 만나, 설렘을 느끼고 또 오해와 시련을 겪고, 다시 행복을 되찾은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만약 내일 수상하게 되면 다율아.”

“네.”

“그건 다 네 덕분이야.”

권지하가 진심을 다해 말했다. 다율은 그의 품으로 굴러 들어가 권지하를 힘껏 안았다. 매니저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었다.

***

<흑상예술대상 시상식>

멋진 현수막이 걸린 가운데, 시상식장 안은 분주하고 들뜬 분위기였다. 배우들은 원형 테이블에 모여 앉아 인사를 나눴고 그 뒤로 뻗은 관객석에는 자기 배우를 응원하는 팬들의 플래카드가 요란했다.

다율은 아기들을 권지하의 부모님에게 맡기고 일찌감치 관계자석에 앉아 있었다. 실내라 난방도 잘 되는데 자꾸만 손이 시리고 몸이 떨렸다.

어떡하지. 오늘 상 타도 떨리고 못 타도 떨려.

다율은 배우 본인보다 더 긴장된 상태였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며 백장훈은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 보면 다율은 권지하의 매니저가 아니라 광팬 같았다.

-흑상예술대상 시상식을 찾아와 주신 여러분, 드디어 마지막 부문. 영화 대상이 남았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장내의 열기가 불타올랐다. 권지하의 팬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과연 누가 그 영광의 주인공이 될까요. 우선 후보를 영상으로 만나 보시겠습니다.

무대 뒤편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각 후보를 소개하는 영상이 떠올랐다. 네 명의 남녀 배우가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권지하의 최근작이 송출되었다.

“꺄악!”

권지하의 팬들이 환호했다. 다율은 차가워진 손을 꾹 말아 쥐었다.

-이제 발표하겠습니다. 흑상예술대상 대상의 주인공은, 권지하 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헉.”

다율은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로… 정말로 형이 대상을 탔어. 형이!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아, 다율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권지하는 여유롭게 일어나 주변 배우들에게 인사를 한 다음 단상으로 올라갔다. 사회자가 그를 마이크가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안녕하십니까. 권지하입니다.”

팬들과 배우들이 권지하를 향해 박수 쳤다. 권지하는 부드럽게 미소 지은 다음,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들 제 소감이 궁금하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좌중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지금 그 누구보다도 화제의 배우, 권지하가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했다.

“소감은 간단합니다. 제 매니저 이다율 씨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팬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가 다율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트로피를 높이 들어 보였다. 다율은 박수를 치다가 눈물을 훔쳤다. 하나도 서럽지 않은, 달콤한 눈물이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거실 장식장에 대상 트로피를 진열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은색 트로피가 반짝반짝 빛났다.

“멋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권지하가 다율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이게 다 매니저님이 힘써 주신 덕분입니다.”

“에이, 무슨요.”

“진짜야.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연기할 이유를 잃었을 거야.”

“형….”

권지하가 다율을 내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달빛이 좋은데 우리 춤출까?”

권지하가 다율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올렸다. 다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권지하에게 몸을 맡겼다. 지독한 몸치답게 다율은 간단한 스텝도 제대로 밟지 못했다. 발이 엉킬 때마다 다율은 소리 내 웃었다.

“나 왜 이렇게 춤을 못 추지.”

“귀여우니까 됐어.”

“아이돌 못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네요.”

“또 그 소리 한다. 내가 그 기획사 불태울 거라고 이야기했지?”

권지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기에, 다율은 깨갱하며 입을 다물었다.

다시 춤이 시작되었다. 음악은 없었지만 두 사람 다 상관하지 않았다. 창밖에 빛나는 별들이 박자를 타 주었고, 은은한 달빛이 선율을 흘려보내 주었으니까.

두 사람은 한 몸이 되어 서로의 손을 잡고 느긋하게 춤을 췄다. 그러다가 다율은 권지하의 입술에 장난스럽게 키스했다. 권지하도 지지 않고 다율의 양 뺨을 잡아 버드키스를 했다.

“간지러워!”

“네가 먼저 시작했어.”

권지하가 도망가는 다율을 붙잡아 긴 키스를 시작했다. 사르르 눈을 감으며, 다율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언제까지나 서로의 곁에서, 있는 그대로의 당신과 나로 행복하고 싶어요.

꼭 껴안은 두 사람의 등 뒤, 유리창 너머로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그러니 다율의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질 테다.

<끝.>

##################################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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