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쥐먼트-81화 (81/95)

81화

“대체 어디 갔어. 산속으로 들어간 거 아니야? 젠장.”

박중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발에 채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 망했어.”

천재욱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율은 숨소리조차 자제하며 나뭇가지를 꼭 붙들었다. 마음속으로 어서 남자들이 자리를 뜨기만을 빌었다.

제발 저놈들이 날 발견하지 못하게 해 주세요. 어서 땅에 내려가고 싶어요.

다율은 하늘에 빌었다. 어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다. 뒷발이 감당 못 할 만큼 아팠다. 상처 입은 발로 거친 길을 달렸던 탓이다. 하지만 다율은 끙끙 앓는 소리조차 틀어막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몇십 분을 대치했을까. 중년의 수인 헌터가 바닥에 퉤, 침을 뱉으며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다람쥐 몸이고 얻어터진 상태니 멀리는 못 갈 거다. 우린 차분하게 근처 뒤지면 돼.”

“알겠습니다. 형님.”

“예.”

남자들이 트럭으로 돌아갔다. 다율은 잠시 뒤 트럭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후, 벌벌 떨리는 발로 나무에서 내려왔다.

다율은 주춤거리면서 우선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기로 했다. 도로의 이정표를 보니 아직 횡천시에 진입하기 수십 킬로미터 전, 규림군이었다.

이정표에 의하면 다율의 오른편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 바로 규림산인 듯했다.

날이 밝기 전에 산속으로 몸을 숨기자. 저 커다란 산에 숨는데 어떻게 날 찾겠어. 날이 밝기 전에 어서 서두르자, 어서.

걸을 때마다 다친 발이 찔려오듯 아팠지만 다율은 꾹 참고 걸었다. 작은 동물의 몸으로 산을 타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다율은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밤바람이 불어와 다율의 털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가을이라 한밤중의 산바람은 무척이나 차고 시렸다. 이끼리 딱딱 부딪칠 정도로 몸이 차가워졌지만 다율은 쉬지 않고 걸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다율은 멈추지 않았다.

***

“지하야. 어떻게 된 일이야.”

“…형.”

권우석은 이른 아침부터 제 사립 탐정 사무소를 찾아온 권지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안색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밤 갑자기 전화를 걸어오더니 수인 헌터들이 제 매니저를 잡아간 것 같다고, 당장 추적에 나서야 한다고 분노를 뿜어내던 권지하.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권우석에게 그간의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그 새끼들이 네 매니저를 잡아간 것 같다 그 말이지.”

“어. 지금 당장 그 마트 주변 CCTV 확보해 줘. 불법이고 뭐고 난 상관 안 해. 다율이만 찾을 수 있다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권지하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미팅이고 CF 촬영이고 죄다 미뤘다. 백장훈은 이러지 말고 일을 해 가면서 다율이를 찾자고 애걸했지만, 권지하의 귀에 그런 소리는 말 같지도 않았다.

“한 놈이 보조 출연자인 척하고 촬영장에 숨어들어 왔었다고 찾아달라고 했었지? 내가 추정되는 인물을 추려 놨어.”

권우석이 보조 출연자 아르바이트생용 서약서와 증명사진을 책상 위에 올렸다. 지하는 굳이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뚫어져라 그 자료들을 쳐다보았다.

“수인 헌터 김명구는 유명한 작자야. 엊그제 서울권에 와 있었다는 게 확인됐고… 이제 남은 건 이 남자와 김명구가 네 매니저와 동선이 겹쳤는지. 그걸 분석하기 위해 CCTV를 열어 봐야겠네. 나한테 맡겨.”

“아냐, 같이 뒤져.”

권지하가 이를 갈며 답했다. 그는 반드시 제 손으로 헌터들을 잡아 족칠 계획이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최종적으로 그 새끼들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건 자신이 해야 할 몫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우석이 알고 지내는 해결사가 CCTV를 확보해 왔다. 권지하는 권우석과 나란히 앉아 다율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 앞뒤의 CCTV를 뒤졌다.

“잠깐만, 저 트럭. 확대 좀 해 줘.”

마트 앞에 트럭이 한 대 등장했다. 언젠가 다율이 흠칫하며 놀라 했던 바로 그 차종이었다.

이윽고 차에서는 총 세 명의 남자가 내렸다. 수염 난 헌터, 보조 출연자인 척했던 박중호, 그리고 천재욱이었다.

“…천재욱?”

“뭐야. 쟤 배우 아니야? 너랑 같은 드라마 나왔던 배우잖아.”

영상 속의 천재욱은 껄렁하게 담배를 피우고 땅바닥에 침을 뱉더니, 마트에서 나오는 다율을 발견하고 히죽거렸다. 그러고는 바로 동료들과 함께 걸어가 다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다음에는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다율의 모자가 날아가고, 신발이 벗겨지는 과정을 본 권지하가 테이블 위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핏줄이 너무 과하게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다.

다율이 질질 끌려가 그 트럭의 짐칸에 태워지는 것까지 확인한 권지하는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집기류가 바닥을 나뒹굴고 모니터가 뒤흔들렸다.

“저 새끼들을… 내가, 저 새끼들을…!”

“지하야.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나 지금 당장 쫓아가야 돼. 당장!”

권지하가 눈을 뒤집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권우석과 해결사가 권지하를 말렸다.

“차량 번호랑 몽타주 확보했으니까 금방 찾아. 매니저 구하려면 너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돼.”

권우석의 말이 맞았지만, 권지하는 지금 이 끓는 피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심호흡을 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문밖에 대기 중이던 백장훈에게 다가가 말했다.

“장훈이 형, 전 언론사에 기사 하나만 뿌려 줘요.”

“어떤 기사?”

“저 무기한 활동 중단하겠습니다.”

***

[배우 권지하, 돌연 활동 중단 선언해 논란]

-인기 배우 권지하(28)가 활동을 중단한다. 소속사 YU엔터테인먼트에 의하면 그는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이후 모든 광고, 예능 및 드라마, 영화 출연을 고사했으며 언제 복귀할지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방송가는 물론이고 팬들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왜 활동을 중단했는지 향후 행보는 어떠할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ㄴ어떡해 무슨 일이야 나 너무 충격받아서 아무것도 목으로 안 넘어가고 잠이 안 와

ㄴ권지하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아는 사람 있어? 열성 팬들도 짐작 가는 게 없다고만 하네

ㄴ이대로 은퇴하는 거 아닌지 겁난다

ㄴ야, 은퇴란 말은 함부로 하지 말자

ㄴ왜? 솔직히 지금 은퇴 직전 느낌 맞잖아

기사가 나오자 네티즌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팬카페는 슬픔과 충격에 잠겼으며 게시판에는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담은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회원들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권지하를 차기작 주연으로 낙점했던 영화 제작사 측과 드라마 방송국들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를 내년도 제작될 대작에 투입하고자 힘쓰고 있는 곳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중에는 킨 영화제 수상 경력이 있는 감독도 포함돼 있었다.

광고계도 비상이었다. 계약 기간 중에 그가 돌아올지 아닐지 막연하기도 했고, 계약 연장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골치가 아팠다. 그들은 나름대로 권지하의 행방을 추적해 보았으나 워낙에 개인 보안이 철저한 배우라 뒷조사가 어려웠다. 흔히 말하는 ‘지라시’ 발행 부서에서조차도 그가 왜 활동을 접는지 캐내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추측성의 루머만이 들끓었다. 불치병을 앓고 있다더라, 외국인과 결혼해서 이민을 간다더라, 연예계 활동에 환멸을 느껴 은퇴하고 사업을 할 예정이라더라.

사실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이야기들만이 방송가를 떠돌았고, 권지하는 침묵했다. 소속사 역시 입을 다문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

다율은 굉장한 추위 때문에 잠에서 깼다. 차갑고 시린 느낌에 소름이 끼쳐 통통한 꼬리로 몸을 감쌌다. 그래도 추위는 가시지 않아, 다율은 하는 수 없이 눈을 떴다.

바위와 바위 틈, 언뜻 보면 아무도 못 볼 만한 곳에 몸을 숨기고 어젯밤 까무룩 잠이 들었더랬지. 깊은 산속이라 도시보다도 훨씬 기온이 낮기에 다율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울창한 수풀 위로 낯선 새가 무섭게 울면서 날았다.

여기는 속리산과 달라. 그때는 모든 게 포근하고 아름답기만 했는데… 나만의 숲속 오두막도 있었고.

하지만 여기는 무서워. 다른 동물들이 튀어나와 날 위협할까 봐도 무섭고, 헌터들이 지척까지 쫓아와 있는 건 아닐지 두려워. 어쩌다가 내 수인생이 이렇게 되어 버렸지…. 난 그냥 열심히 일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다율은 피가 엉겨서 굳은 발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지하 형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퍼할까. 지금도 내가 멋대로 사라진 줄 알고 걱정하고 있을 텐데. 형, 나 무서워….

다율의 뺨이 눈물로 얼룩졌다. 매서운 가을바람은 그 눈물 자국마저 꽁꽁 얼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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