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다율은 권지하가 자신을 바닥에 눕히는 대로 누웠다. 곧 권지하가 다율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떻게 보면 그리 강한 자극은 아니었지만 다율은 몸을 튕기며 반응했다.
“형… 형, 나 이상해.”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데.”
“몸이… 너무 간지러워요.”
“어디가?”
권지하가 낮게 속삭이자 다율은 귀가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다율은 알아서 신음을 흘리며 권지하가 이끄는 대로 제 온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슬아슬한 감각이 더 짜릿하게 전신을 조여 왔다. 특히나 권지하가 동물 귀를 깨물고 꼬리를 움켜쥘 때마다 다율은 소리를 높였다.
다율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건 스무 살이 넘어 맞이한다는 발정기였다. 처음이지만 동물적 감각이 다율에게 아기를 만들라고,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다율은 한껏 달아오른 몸을 추스르지 않고 권지하에게 격정적으로 입을 맞췄다. 그러자 권지하가 다율의 전신을 짓누르며 체중을 실었다. 그마저도 다율에게는 자극이 됐다.
“아!”
“다율아, 내가 나쁜 짓 해도 돼?”
평소라면 안 된다고 했을 테지만 다율은 오늘따라 허락이 하고 싶었다. 동물의 본능이 완벽하게 개방된 순간 다율은 풀어진 동공으로 권지하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율은 패닉을 일으켰다.
“형! 누, 눈이…!”
권지하의 눈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다율은 순간 자신이 꿈을 꾸나 싶었다. 항상 새까맸던 눈동자 대신 새파란 눈이 빛났으며, 동공이 세로 모양이었다.
마치 뱀을 연상시키는 외모에 다율은 숨을 멈췄다.
“다율아. 내가 더 미안해.”
권지하가 벌벌 떠는 다율에게 얼굴을 바짝 댔다. 눈과 눈이 가까워지자 다율은 아득하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과 오싹한 소름, 아찔한 술기운을 동시에 느꼈다.
“형도 다율이 속여 왔거든.”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형 눈은 왜 저렇고… 아, 어지러워.
술과 흥분 그리고 충격을 한 번에 이겨내기란 어려웠는지, 다율은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가물가물 눈만 뜨고 더운 숨을 내쉬는 다율을 안아 들고, 권지하가 소름 끼치도록 낮은 목소리를 냈다.
“쉬러 갈까?”
권지하가 다율의 몸을 안아 들었다. 풍성한 꼬리와 귀여운 귀까지 달고 있으니 평소보다 더욱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모습까지도, 권지하가 지독하게 사랑하는 모습이었다.
“혀… 형.”
“딱 이틀만 쉬자. 괜찮지?”
다율을 품에 안고 권지하가 침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들어간 후 쿵. 문이 단단히 닫혔다.
그리고 그 문이 다시 열린 건 이틀 뒤였다.
***
커튼을 젖히자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다율의 등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으음….”
“다율아. 깼어?”
“으응… 네.”
권지하가 다율의 머리카락을 헝클어 주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머리에는 귀가 없었고 엉덩이는 그냥 반바지 차림이었다.
2박 3일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침대에서 뒹군 결과, 다율의 발정기는 끝이 났고 꼬리와 귀는 말끔히 사라졌다.
“밥 먹자.”
권지하가 다율을 일으켜 세워 물을 먹인 다음, 쟁반에 받쳐 온 수프를 떠먹여 주었다. 다율은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호록호록 수프를 먹었다.
“배고파요.”
“당연하지. 오늘 목요일이야.”
“네?! 이틀이 지났다고요?”
다율이 눈을 번쩍 떴다. 이 방에 들어온 게 화요일 밤이었는데, 수요일은 어디로 가고 목요일이 왔나?
어리둥절해하는 다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권지하가 그의 뺨에 키스했다.
“이틀이나 걸릴 만했잖아. 그렇지 않아?”
다율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2박 3일간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어울린 건 다율도 마찬가지였으니 부끄러웠다.
다율은 사실 어젯밤 늦게야 권지하의 정체에 대해 들었다. 그 직전까지는 본능에 이끌려 몸을 섞느라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다.
‘다율아. 내가 뭐일 것 같아?’
다율의 전신을 옭아매며, 권지하가 파란 눈을 빛냈을 때 다율은 천적에게 붙잡힌 기분이 들었다.
‘내 눈을 보면 알 법도 한데. 그렇지?’
세로 모양의 동공, 차갑다 못해 시린 피부, 지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 몸짓. 다율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완벽하게 녹다운 시킨 권지하의 정체는 바로 이무기 수인이었다.
다율은 아직도 그 사실에 적응이 안 되었다. 다시 사람 눈동자로 돌아온 그는 너무나 깔끔하고 젠틀했으며, 지난 이틀간 다율을 생고문한 인물 같지 않게 점잖았다.
…뱀의 교미는 몇 날 며칠을 간다더니 사실이었구나.
“무슨 생각 해?”
“…형이 수인인 줄은 정말 몰랐다는 생각이요.”
권지하가 다율이 있는 침대 안으로 들어와 그를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팔베개를 하며 다율과 마주 본 다음, 권지하는 다율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속여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진짜 미안해.”
사실 권지하는 다율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할 계획 따위 없었다. 그저 다율을 완벽하게 손아귀에 넣은 다음에 통보해도 상관이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무기 수인인 권지하는 어느 종의 동물이든 수컷까지 임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적은 다율이 자신을 사랑하게 한 다음, 아이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다율이 만약에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경악할 일이었지만, 권지하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아이를 밴 상태라면 자신을 떠나기 어려울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권지하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은 어디까지나 다율을 위한 배려였다. 다람쥐임을 숨겨 오며 받은 스트레스. 그리고 억지로 떠나야 했던 사정.
다율은 수인이라는 사실을 감추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은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귀와 꼬리를 들키자마자 대성통곡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수인이라고, 너와 비슷한 처지라고 보여 주면 어떨까. 그것도 단순한 눈동자 정도가 아닌, 몸의 감각을 통해서.
어차피 다율은 발정기였기에, 인간 모습으로 상대하는 것보다 수인의 본능을 살린 동물화 상태로 안는 게 맞았다. 그 증거로 다율의 발정기는 말끔하게 가라앉고 평범한 사람처럼 돌아왔으니 이 정도면 몸이 잘 통했다고 볼 수 있었다.
“너 혼자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말할 걸 그랬어.”
“형….”
다율은 아직 권지하가 낯설었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다. 아니, 이틀간 격정적으로 자신을 사랑해 준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형. 자세히 물어봐도 돼요?”
“어떤 걸?”
“형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전 진짜 몰랐거든요. 왜 저는 가까이 지내면서도 형한테서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을까요?”
다율은 진지하게 궁금했다. 반 년 이상 같이 살았는데 단 한 번도 동물화의 흔적을 느낀 적이 없었다. 자신처럼 재채기를 하면 동물이 되거나 하는 게 아닌 것일까?
“난 혼혈이라서 그런가 봐.”
“혼혈이요?”
“응. 난 이무기 수인 혼혈이야. 아버지가 이무기 수인이시고, 어머니는 그냥 인간이셔.”
“아…!”
그러고 보니 부모님의 연애담이 기억났다. 산속에서 우연히 만났다던 두 분. 수인이기에 깊은 산속에 숨어 사셨던 걸까. 다율의 궁금증을 읽어낸 권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기 수인은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다고들 하잖아. 그래서 권력자들이나 왕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항상 이무기 수인을 찾아다니곤 해. 그래서 아버지는 깊은 산속에 숨어서 사셨던 거지.”
“아….”
“이제는 권력자도 왕도 투표로 뽑히는 세상이니까 위험은 덜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구나… 그래서 어머니가 수인권 운동에 열심이신 건가요?”
“맞아.”
이제야 다율은 권지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몸이 차가웠던 이유도, 출신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살아온 과거도.
“형이 수인이란 걸 알게 되면서 형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기분 좋다고 하면 저 이상한가요?”
“아니. 하나도 안 이상해. 나도 그렇거든.”
“근데 그러면 뱀이라서 그렇게 추위를 많이 탄 거예요?”
“어? 어… 그게.”
권지하가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왜 제 눈 피해요?”
“흠. 그건… 나중에 말해 줄게.”
체온이 낮게 태어난 건 사실이지만, 추위는 안 탄다. 권지하는 예나 지금이나 다율과 끌어안고 잘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 냉수로 샤워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율은 권지하의 품에 폭 안기며 얼굴을 비볐다. 눈을 꼭 감고 안겨오는 다율이 오늘따라 사랑스러워, 권지하는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틀만 더 있다가 갈까?”
***
이틀을 더 연장해 숙박한 다음, 다율은 탈진한 상태로 풀 빌라를 나섰다. 몸과 영혼을 동시에 탈탈 털린 탓에, 다율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권지하는 그에 비해 아주 기운이 넘치고 평소보다도 더 건강한 모습이었다.
“형 때문에 죽겠어요.”
“어차피 휴가인데 뭐 어때.”
다율에게 안전벨트를 매 주며 권지하가 쪽, 뽀뽀를 시도했다.
“배는 안 고파?”
“배…고파요.”
때마침 다율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권지하는 쿡쿡 웃으며 다율의 콧잔등을 깨물었다.
“중간에 밥 먹고 가자. 도토리 요릿집 갈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