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쥐먼트-50화 (50/95)

50화

“괜찮은 게 맞나요?”

“금방 꺼냈고 또 수온이 높아서 괜찮습니다. 지금은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뿐이에요.”

“인공호흡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제가 나서서 해야겠습니다.”

권지하가 안전요원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예? 호흡이 멀쩡해 보이는데 인공호흡을 왜 하죠.”

안전요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대화를 듣고 있자니 다율은 기절할 것 같았다. 배우님의 인공호흡이라니, 그걸 받았다가 내 심장이 터져 나갈지도 모른다고요!

지금도 다율은 물을 먹은 탓에 쿨럭쿨럭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숨이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권지하는 거침없이 다율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더니, 기어코 다율의 턱을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겹쳤다.

악! 수인 살려!

다율은 팔다리를 바둥거렸다. 그러나 권지하가 짓누르는 힘이 워낙 강해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돌덩이 같은 몸이었다.

입술이 닿고, 숨결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나 자세히 느껴졌다. 권지하는 입을 뗐다가 다시 붙일 때 다율의 입술을 살짝 빨아들이기까지 했다.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아났다.

이건 키스잖아. 혀만 낼름낼름 안 했지 완전 어른 키스야…!

드라마에서, 또 영화에서 수없이 봐 왔던 주인공들의 키스신과 이 순간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다율은 다시 한번 아찔함을 느꼈다.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구조요원이 보다 못해 나섰다.

“그만하시죠. 충분히 의식이 있으신데요.”

“조금만 더 하고요.”

“아니, 멀쩡하신데 왜 굳이.”

구조요원이 권지하를 다율로부터 떼어내면서 다율을 일으켜 주었다. 얼굴이 빨갛게 익은 다율은 권지하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마침 소식을 들은 감독과 촬영팀장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괜찮아요, 다율 매니저?”

“무사한 거죠?”

“네. 저 괜찮아요. 배우님이 저 살려 주셨어요.”

수영하는 걸 싫어하면서 물속에 들어와 자신을 끌어내 주었고, 또 불필요했지만 인공호흡도 해 주었다. 권지하는 다율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다.

“저도 봤는데 지하 씨가 다율 씨를 건졌어요.”

옆에 서 있던 김혜현이 거들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목격자 중 한 명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인공호흡을 포함해서 말이다.

어쨌거나 감독은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봐야 했기에, 상당히 심각해졌다.

“사람도 물에 빠졌고 또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촬영은 접어야 할 것 같네요. 장비도 휘청거릴 지경이라… 빨리 철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이다율 씨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제 불찰인걸요.”

“그럼 이대로 해산하고 내일 다시 모입시다.”

“네!”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현장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김혜현과 정재우도 자기 매니저와 함께 리조트로 향했고, 보조 출연자들도 대절 버스에 올랐다.

“몸이 젖었으니까 빨리 돌아가죠.”

“네, 배우님.”

권지하는 다율의 몸을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리조트로 발길을 틀었다. 아무리 여름 바다라지만 깊은 물에 빠졌던 다율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태생적으로 물과 친하지 않았고, 또 놀란 탓도 있었다. 서둘러 객실 문을 연 권지하는 다율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

“빨리 따뜻한 물로 씻어요.”

“배우님도 젖었으니까 얼른 씻으세요. 체온도 낮으시잖아요.”

다율은 권지하가 급격하게 체온이 내려가진 않을까 걱정 중이었다. 지난번 농가 체험을 갔을 때도 한여름에 확 체온이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바닷물에 빠진 상태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배우님 걱정돼요.”

“우리 둘 다 체온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긴 하네.”

“맞아요.”

“음… 욕조 들어갈래요?”

“예?!”

다율은 펄쩍 뛰었다. 권지하가 호화로운 욕실 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대형 욕조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우리 둘 다 빨리 따뜻해지려면 저게 제일 나을 것 같은데.”

“배, 배우님… 어떻게 그럴 수가….”

다율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망상이 지나갔다. 젖은 옷을 벗고, 알몸이 된 스스로를 상상하자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물론 그 망상에는 자신처럼 옷을 다 벗은 권지하가 포함돼 있었다.

난 쿨한 척, 목욕탕에 온 척 배우님과 목욕할 수 없어! 머릿속에 음란 다람쥐가 살고 있으니까!

다율의 내적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권지하는 태평한 얼굴로 욕조에 다가가 물을 틀었다. 물줄기가 강하게 욕조 바닥을 때리며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

“들어가요.”

“배우, 배우님.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배우님 앞에서 옷을 벗을 준비가 안 됐다고요.”

다율은 양손을 뻗어 몸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권지하가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옷은 안 벗어도 돼요. 그냥 입고 들어가요.”

“네?”

“민망하면 그래도 된다고.”

“아….”

내가 너무 앞서 나갔구나. 다율은 창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권지하가 자기 셔츠 자락을 붙잡았다.

“대신 나는 이 옷이 갑갑해서 좀 벗을게요.”

“셔, 셔츠요?”

“응. 가슴이 터질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한 권지하는 거침없이 단추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아까 낮에 봤을 때 권지하의 넓고 탄탄한 가슴을 감당하기에 단추들이 좀 빈약한 감은 있었다. 권지하가 손을 가져다 대기 무섭게 단추들이 핑, 핑 열리며 그의 가슴 근육을 드러냈다.

“진짜 벗으시는 거예요?”

“그럼 가짜로 벗나. 이 매니저는 얼른 욕조에 몸이나 담가요.”

“네, 네.”

다율은 손등으로 얼굴을 식히며 욕조에 발부터 종아리 순서로 몸을 담갔다. 그러면서도 슬쩍 곁눈질을 해 권지하를 훔쳐봤다. 조각상보다도 더 매끈하고 부분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발달한 몸은 예술품 그 자체였다. 다율은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저벅저벅. 권지하가 거침없이 다가와 욕조 앞에 섰다. 다율은 무릎을 감싸 안고 권지하를 올려다봤다. 권지하가 욕조를 양손으로 쥐자, 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가슴과 살짝 드러난 장골이 다율의 눈앞으로 쑥 다가왔다.

흡. 다율은 숨을 참고 애써 시선을 돌렸지만 권지하는 욕조 안으로 들어와 다율의 바로 옆에 몸을 붙였다. 출렁거리는 물소리에 맞춰 다율의 가슴이 격렬하게 춤을 췄다.

어떡해. 욕조에 같이 들어온 것만으로 떨려 미치겠어.

“물은 좀 따뜻해요?”

“네네. 조… 좋아요.”

“난 온도가 좀 부족하게 느껴지네.”

“아, 배우님은 저보다 추위를 많이 타시니까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어요.”

다율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권지하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물속이라 체온은 잘 측정되지 않았지만, 그가 춥다면 춥겠거니 했다.

“어떡해요. 이래도 추우시면….”

다율이 안절부절못하자, 권지하가 다율의 뺨을 감쌌다.

“이 매니저. 내 위로 올라올래요?”

“네?”

“끌어안고 싶어.”

“저, 저를요?”

“이 매니저 원래 내 난로잖아요.”

다율의 가슴이 한계치까지 박동을 올렸다. 지금 권지하가 하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율의 주요 업무는 권지하의 핫팩이니까.

“마, 맞아요….”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줄래요? 가슴에 얼굴 기대고요.”

권지하의 목소리는 낮았고 조용했지만 은연중에 강압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부탁이 아닌 명령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권지하에게 홀려 버린 다율은 느끼지 못했다. 그저 권지하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여 그의 무릎 위로 다리를 벌리고 올라갈 뿐이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에 제 몸을 기대려니 다율은 망설여졌고 또 기분이 이상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다율의 허리에 강한 완력이 가해졌다.

“헉.”

권지하가 다율의 허리를 한 손으로 붙들어 끌어당긴 후, 한 손으로는 다율의 목 뒤를 감쌌다. 빈틈없이 맞물린 몸 사이에는 뜨거운 물이 흘렀다.

“따뜻해.”

“…배우님.”

“역시 우리 매니저님이 제일 따뜻해요. 여기도 그렇고,”

권지하가 한손을 들어 다율의 뺨을 쓸었다. 다율은 간지러움과 오한을 동시에 느꼈다.

“…여기도 그렇고.”

그의 손이 미끄러져 다율의 쇄골부터 가슴을 스친 다음 늑골에 안착했다. 권지하의 손가락 끝이 닿은 부분이 다 타 버리는 것 같아, 다율은 흠칫했다.

“허벅지 따뜻한 것도 진작 알고 있었어요.”

“아읏.”

커다란 손이 다율의 말랑한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평소에 한 침대에 누울 때마다 그는 다율의 허벅지 사이가 따뜻하다며 손을 집어넣는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다율은 간지럽다며 몸을 비틀었는데, 흠뻑 젖은 채로 허벅지가 붙잡히자 느낌이 전혀 달랐다.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 튀며 다율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매니저님? 어디 아파요?”

권지하가 다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다율은 차마 온몸이 간지럽고 또 열이 올라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건전한 수인이고 싶은 마음에 그는 멀쩡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아, 아뇨. 저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어디 보자.”

권지하가 다율의 이마를 짚으며 눈을 맞춰 왔다. 다율은 제 얼굴이 형편없이 무너져 있을 것을 알았다. 눈은 풀려 있고, 입은 헤 벌어져 있겠지. 그 생각을 하자 강한 수치심이 밀려왔다.

내 사회적 체면…! 배우님 앞에서의 멀쩡한 이미지…! 다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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