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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쥐먼트-12화 (12/95)

12화

너무나 놀랍고, 또 기뻤다. 꼭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에 다율은 환하게 웃었다. 권지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다율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압도적인 결과입니다. 축하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하고요. 그리고 궈, 권지하 배우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다율은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정신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마지막은 당연히 권지하를 향한 인사였다. 권지하는 말없이 웃기만 하다가 다율의 머리 위에 앉은 꽃가루를 떼어내 후 하고 불었다.

“그럼 저희는 최종 순위 발표식 생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엔딩 시그널이 흘러나왔다. 경쾌한 음악 속에 가수와 배우들은 자기 매니저와 악수를 나눴다. 수고했어. 고생했어. 여러 방향에서 아쉬움과 기쁨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다율도 권지하와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권지하는 악수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다율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어엇.”

“고생했어요.”

다율이 눈을 크게 떴다. 카메라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줌인했다. 방청객들이 꺅꺅 환호성을 질러댔다. 두근두근, 다율의 가슴이 너무나도 빨리 뛰었다.

혹시 내 심장 소리를 배우님이 들으면 어떡하지. 그럼 날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다율은 서둘러 권지하를 밀어내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이날의 짧은 영상은 팬덤 내에서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녹화 종료 직후에는 지금까지 고생한 11팀 전체를 위한 회식이 있었다. 장소는 방송국 근처의 한우집으로 수많은 인원이 모여서 마시고 떠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테이블마다 연예인과 매니저 외에 각 소속사의 실장급 혹은 대표가 끼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권지하 팀이 압도적으로 화제성을 가져가기는 했지만 그 덕택에 약간의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어서 그들은 큰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권지하 팀과 합동 녹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둥 다율이 자기 팀의 일일 매니저로 변신하는 컨셉으로 녹화를 하면 어떻겠냐는 둥 그들에게 집적거리느라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니 YU엔터테인먼트의 맹 실장은 신이 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가 다율에게 술을 건네며 허허 웃었다.

“이 매니저.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이게 다 배우님 덕분이죠.”

“지하 앞으로 광고가 7개 더 들어왔어.”

“정말요? 너무 잘됐어요.”

다율이 옆에 앉은 권지하를 보며 활짝 웃었다. 권지하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씩 웃기만 했다.

“이 매니저랑 같이 예능 한번 나와 달라고 방송국 놈들이 아주 성화야. 이번 달 유명인 영향력 순위 발표 안 봐도 훤하다. 우리 지하가 1위겠지.”

“제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면 다행이에요.”

“이 매니저도 앞으로 스케줄 더 생길지 모르니까 오가면서 방송국 분들한테 인사 잘 하고.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얼른 마셔.”

맹 실장이 다율 앞의 꽉 찬 와인잔을 가리켰다. 다율은 이미 몇 잔을 마셔 살짝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 저항 없이 술잔을 들었다. 꼴깍꼴깍 술을 들이켜자 독한 기운이 입 안부터 위 속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크으.”

“우리 이 매니저.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는 술 잘하네.”

“칭찬 감사합니다. 어… 더 마시나요?”

“응. 더 마셔 봐.”

맹 실장이 몇 차례 더 술을 권했다. 다율은 사실 태어나서 술을 마시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기 주량을 몰랐다. 속리산에 있을 때 숲속에서 천연으로 발효된 포도 열매를 가끔 만날 수 있었는데 잘 발효된 과즙을 먹으면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기분이 들떴던 기억이 있었다.

포도를 너무 열심히 먹은 끝에 깜빡 잠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등산객 발소리에 깨서 퍼뜩 둥지로 갔던 기억이 났다.

인간 세상은 이렇게 과즙을 착즙해서 나오니 참 편하구나. 음… 그런데 와인이라는 거 좋긴 한데 좀 독하다.

다율은 연거푸 와인을 마시며 점점 취해 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저기… 실장님, 죄송한데요. 더 마시면 내일 출근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에이. 술 잘하면서 무슨 엄살이야. 약한 척하지 말고 빨리 한잔 더 해.”

맹 실장이 다율의 잔에 무리해서 술을 따르려 했다. 다율이 손사래를 쳐도 그는 막무가내로 술을 콸콸 들이부었다. 높은 사람이 권하는 술이니만큼 다율로서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아… 그럼 한 잔만 더 마실까요.”

다율이 조심스럽게 와인잔을 내민 때였다. 다율 앞으로 갑자기 우아한 손마디가 불쑥 뻗어 나왔다.

“실장님, 저나 한잔 주시죠. 이 매니저는 너무 취한 것 같아서 술친구 되기에는 재미없을 것 같은데요.”

“그럴까? 하하. 우리 권 배우를 잊고 있었네.”

“절 상대 안 해 주시니 섭섭합니다.”

“아이고, 미안해라.”

맹 실장의 관심이 권지하에게로 옮겨 갔다.

혹시 날 도와준 건가…?

다율은 설마 싶으면서도 설렜다. 권지하가 전해 주는 다정함이 술보다 더 달콤하고 진했다.

아, 안 되겠어. 밖에 나가서 기쁨의 댄스를 추고 와야지.

술에 취한 다율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일어나 테이블을 벗어났다.

“저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가게 바깥으로 나가자 밤공기가 선선하게 그의 뺨을 스쳤다. 다율은 정체불명의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도 안 되게 엉성한 스텝을 밟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은 설레는 일투성이네. 예능에서 1등을 했고 많은 사람들한테 축하도 받았고 게다가 배우님이랑 포옹도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님한테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기분 너무 좋은데 방방 뛰어볼까? 술에 취하면 수인이고 인간이고 호기가 솟구치기 마련이다. 다율은 제자리에서 풀쩍 뛰려고 했다. 하지만 술 취한 육체는 중력을 거스르지 못했다. 다율은 제대로 뛰어오르지도 못하고 크게 휘청였다.

“어어!”

이러다가 땅바닥에 제대로 다이빙하겠다 싶은 순간 자신을 확 잡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다율아!”

“헉.”

“다치면 어쩌려고. 괜찮아?”

놀란 얼굴의 권지하였다.

“아… 저 괜찮,…아요….”

“여기 차도야. 위험하게 여기서 비틀거리고 있으면 어떡해.”

“죄송해요.”

“어디 봐. 다친 데 없나 보게.”

권지하는 다급하게 다율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얼굴부터 손, 무릎까지 다율의 온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하아… 괜찮아 보이네. 다시는 이러지 마.”

“죄송… 괜찮… 감사….”

혀가 꼬여 다율은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권지하는 대충 알아들었다는 듯 피식거리며 다율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왕창 취한 다율은 권지하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상태 보니까 안 되겠다. 우리 집으로 가야겠어. 맹 실장님한테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알겠지?”

“네….”

권지하는 다율을 데리고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의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혔다. 플라스틱 의자에 축 늘어져 눈을 감은 다율을 확인하고 그는 서둘러 고깃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율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생각했다.

우리 배우님 최고다…. 너무 좋아… 너무.

그러다가 기억이 끊겼다.

“으음….”

“감사합니다, 기사님.”

다율이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차 안이었다. 이미 대리기사가 그들을 집 앞까지 데려다준 터라 다율은 비몽사몽간에 권지하의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렸다.

“이 매니저. 좀 깼어요?”

“아… 저 술 먹고 잠든 거예요? 죄송해요. 제가 배우님을 챙겨야 하는데 왜 반대로 됐지.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하면 그럴 수 있죠. 걸음 조심하고.”

“…고맙습니다.”

권지하가 비틀거리는 다율을 부축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율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꾸벅꾸벅 졸았고 집 안으로 들어와 권지하가 신발과 양말을 벗겨 주는 와중에도 졸았다.

“혼자 할 수 있겠어요?”

“으음… 네.”

가까스로 혼자 양치와 세수를 하고 손발을 씻은 그는 권지하가 건네는 숙취해소제를 원샷했다. 그리고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것도 아주 큰 대자로 팔다리를 쭉 뻗고서.

“이런. 잠들어 버렸네.”

“쿠우… 쿨….”

“이러면 내가 잘 공간이 없는데?”

“으음… 죄송… 배우님… 껴안아야 하는데… 핫팩… 나는 핫팩….”

자세가 편안한지 다율은 팔다리를 쭉 뻗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권지하는 미소 지었다. 인간 핫팩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권지하였지만 오늘만큼은 핫팩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내일은 어차피 다른 매니저와 지방 촬영이 예정돼 있다. 그러니 다율은 편히 재우고 자신은 느긋하게 욕조에 몸을 담갔다가 자도 괜찮을 듯했다.

그리하여 그는 다율에게 쿠션을 받쳐 주고 이불을 덮어 준 다음 느긋하게 목욕을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작은방에서 혼자 잠들었다.

***

으으. 머리야.

다율은 강한 두통 때문에 잠에서 깼다. 숙취는 실로 엄청났다. 온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배를 탄 것처럼 울렁였다.

“끄응….”

다율은 손을 짚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

“…?”

그는 자기 손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앞에 손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털이 삐죽 솟도록 놀랐다.

다, 다람쥐 털이다…! 이 자그마한 앞발 좀 봐. 나 지금 다람쥐인가 봐!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던 것은 바로 다람쥐 다율이었다. 어제저녁 입고 잤던 옷은 가지런히 옆에 놓인 채였다. 밤새 몸이 쪼그라들며 다람쥐 몸만 빠져나온 것이다.

다율은 경악하며 빠르게 바둥바둥 몸을 뒤집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간밤의 일을 회상했다.

술 취해서 집에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배우님이 날 돌봐 주시고 씻는 걸 도와주시고… 그다음이 기억 안 나! 맙소사. 나 대체 언제부터 다람쥐로 변해 있었던 거야! 설마 배우님이 보신 건 아니겠지?

그가 작은 발을 동동거리며 침대에 발자국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일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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