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쥐먼트-9화 (9/95)

9화

다율은 이마를 탁 쳤다. 오늘 방송이 있다고 공식 트위터를 작성했어야 했는데 깜박한 것이다. 다율은 서둘러 핸드폰을 열어 권지하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접속했다.

[오늘 ‘TOP매니저11’ 특별 편성 방송이 있습니다. 권 배우님과 이 매니저의 자연스러운 일상 본방 사수!]

화면 캡처를 하나 넣고 트윗을 올리니 곧 수백 개의 좋아요가 박히며 리트윗이 시작됐다. 가공할 속도로 수천, 곧이어 수만 단위로 리트윗은 불어났다. 동시에 원 트윗 밑에는 답글 트윗이 여러 개 달리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신혼부부 같아요. 너무 잘 어울린다.]

[내가 찐 주식은 망했어도 이 주식은 잘 잡았다. 이건 되는 주식입니다, 여러분!]

“와… 여기도 반응 장난 아니야.”

다율은 입을 틀어막았다. 기분이 둥실둥실 솜털처럼 들떠 올랐다. 권지하와 자신을 연인처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벅차고 설렜다. 잘 어울린다는 말에 가슴이 떨렸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걸까. 한 쌍처럼 보이는 걸까.

다율은 한참 동안 답 트윗을 읽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너무 행복해서 광대가 솟아올랐다. 비록 이게 예능이고 한두 달짜리 방송이라 한들 누군가 자신과 권지하를 엮어 준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기뻤다.

잠시라도 이런 행복을 만끽하고 싶어. 조금만 즐겨야지.

다율이 싱긋 웃었다. 그때 눈에 띄는 답 트윗이 하나 있었다. [이다율조빱같은게나대서알계팜]이라는 작성자가 남긴 글이었다.

[이조빱 이번 회차에서도 나대네. 지 손으로 다 차려 먹을 수 있으면서 굳이 얻어먹어야 돼? 자기가 배우님 밥상 차려드려야지 매니저라고 있는 게 밥상이나 받아먹고 앉아 있다니 한심하다. 정신 차려라.]

소위 악플이었다. 헉. 다율의 손끝, 발끝이 차가워졌다. 그간 다율이 전면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기에 팬들과 큰 마찰을 빚은 적도 없었고 칭찬을 받은 적도 없었다. 팬덤에 있어서 다율은 NPC 같은 존재였단 소리다. 그러니 처음으로 받아 본 저격에 다율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호기심은 두려움을 이긴다. 다율은 참지 못하고 그 계정에 들어가 그간의 트윗을 읽기 시작했다.

[배우님하고 한 침대를 쓰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아니 배우님 팔 저린데 감히 팔베개까지 하고 자? 양심이 있다면 이다율이 인간 베개를 해야지. 저걸 다 해 주고 있는 권 배우도 호구 ㅇㅇ]

[모든 게 다 컨셉질이겠지만 혹시나 하고 염려가 든다. 저러다가 배우님이 미천한 남자 매니저랑 스캔들이라도 나면 어떡해? 권지하가 그냥 게이도 아니고 매니저에 미친 게이라고 소문나면 난 탈덕이다.]

[2회차 보니까 악에 받쳐서 탈덕 못 하겠다. 권지하 나한테도 밥상 차려 줘! 난 팬이니까 해 줄 수 있지?]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된 글들이 한 무더기였다. 다율은 인상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을 욕하는 건 참아도 권지하를 비하한 대목은 견딜 수 없었다.

다율은 평소 덕질용으로 파 두었던 [구독계]로 로그인했다. 그리고 이를 악문 다음 원 트윗에 답 트윗을 남겼다.

ㄴ인용 RT: 저기요. 지나가다가 눈살 찌푸려져서 멘션 달아요. 배우님이 왜 호구예요. 다정다감한 모습 보기 좋던데요. 그리고 매니저에 미친 게이라니 말이 너무 심해요. 그냥 스태프한테 잘해 주는 것뿐인데요. 또 아무한테나 밥상 차려 줄 만큼 배우님 스케줄이 한가하지도 않아요.

분노에 찬 멘션을 남기고 있는데 권지하가 식탁에 앉은 다율을 불렀다.

“뭐 해요? 왜 안 돌아와. 다시 방송 시작했는데.”

다율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모니터링 좀 했어요. 이번에도 시청률이랑 화제성 지표 다 잘 나올 것 같네요.”

“흐음. 모니터링은 나중에 하고 이리 좀 앉아 봐요.”

“왜요?”

“이 매니저 허벅지 베고 누우려고요.”

“네?”

권지하가 다율을 데려다 앉힌 다음 풀썩 그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리고 옴짝달싹할 수 없게 다율의 몸을 꼭 눌렀다. 다율은 너무 떨려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배, 배우님… 이건 왜 하시는 거예요.”

“편해서. 베개로 딱이네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다율은 간지러움을 참고 그에게 무릎을 내줬다.

“우리 설거지하는 장면 나온다.”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우기는 다율과 그런 그를 뒤에서 감싸 안고서 몸을 겹친 권지하의 모습이 나왔다. 화사한 특수효과를 준 배경에 살랑거리는 BGM이 깔려 그들은 마치 신혼부부처럼 보였다.

“보기 좋네요.”

“그… 그렇네요.”

“이쯤 되면 온 세상이 알겠죠?”

“뭘요?”

“내가 이 매니저 없으면 못 사는 거.”

이게 왜 그렇게 연결이 되지. 다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맞잖아요. 안 그래?”

하지만 자기 배우님이 그렇다면 도토리로 메주를 쑨대도 믿는 다율이었기 때문에 그는 싱긋 웃었다.

“맞는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출연하길 잘했네.”

권지하는 자세를 고쳐 더욱 편안하게 다율의 무릎에 몸을 기대며 웃었다. 다율은 살결에 와 닿는 그의 머리카락이 몹시도 간지러웠지만 꾹 참았다. 권지하는 간간이 콧노래를 불렀다.

***

오늘은 아침부터 화보 촬영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다율과 권지하는 약속 시간에 맞추어 한 스튜디오 앞에 차를 세웠다. 평소처럼 한국 팬, 해외 팬 할 것 없이 대포 카메라 부대가 백여 명 가까이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배우님, 조심히 내리세요.”

다율이 먼저 차에서 내려 빙 돌아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권지하가 내리자 환호와 함께 촤르르 셔터 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지하 오빠! 여기 좀 봐 주세요.”

“잘생겼다! 와아!”

팬들의 반응은 언제나처럼 뜨거웠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이다율이다!”

“매니저님!”

“다율 매니저!”

팬들 중에 이다율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다율은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고 당황했다. 하지만 카메라가 향하는 게 자신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촤르르 촤르르. 촥촥. 셔터 소리가 향하는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었다.

“너무 귀엽다!”

“실물 최고네.”

“눈 진짜 커. 이쪽 좀 봐 주세요, 매니저님!”

다율은 놀랐다. 나도 찍어 주는구나. 예능의 힘이 이렇게 클 줄이야…! 다율로서는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일단은 지하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다. 그는 자기보다 10cm 이상 큰 권지하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감싸며 스튜디오로 걷기 시작했다.

“비켜 주세요. 지나가야 되거든요. 잠시 실례할게요.”

그러자 팬들은 짜증 대신 환호성을 질렀다.

“배우 보호하겠다고 애쓰는 것 좀 봐. 깜찍해 미치겠다!”

다 큰 남자한테 깜찍하다니. 다율은 스스로가 듬직한 사나이라고 믿었기에, 깜찍하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몸집을 부풀리듯 팔을 쩍 벌리고 허리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사람들 무리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멋있는 척한다.”

머… 멋있는 척이라고? 멋있는 게 아니라?

부끄러워진 다율의 귓가와 뺨이 익었다. 이 순간 얼굴이 빨개진 다율을 포착한 사진은 <이다율 실물 간증>이라는 제목과 함께 큰 화제를 끌었다. 또한 팬 커뮤니티에서도 다율이 얼마나 귀여웠는지를 논하는 글이 인기글로 올라가기도 했다.

“이 매니저 인기 많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며 권지하가 장난스럽게 한마디를 뱉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예능에 나오니까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너무 인기 많아지면 곤란한데. 그렇지?”

“네?”

“그냥 해 본 말이에요.”

무슨 소리지. 다율이 그의 말을 곱씹기도 전에 촬영 스태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어서 오세요. 어머, 매니저님도 함께시구나. 실물이 더 잘생기셨어요.”

“감사 인사는 제가 대신 드리겠습니다. 의상부터 피팅하면 될까요?”

“네. 매니저님하고 같이 이리로 오세요.”

권지하와 다율은 의상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탈의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네이비색의 쓰리피스 슈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첫 번째 의상이에요. 남성복 화보인 만큼 최대한 성숙하게 연출해야 합니다.”

“그런 거라면 자신 있죠.”

잠시 뒤 권지하가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배우님.”

다율은 그의 정장 입은 모습을 며칠에 한 번씩 보다시피 하며 살아왔다. 물론 그럴 때마다 번번이 그는 멋있었고 품격이 넘쳤다. 하지만 단언컨대 오늘처럼 근사하지는 않았다.

넓은 어깨를 강조한 실루엣도, 탄탄하고 매끄러운 다리 라인을 강조한 디자인도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슈트 핏의 정석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이여. 이리 와서 권지하를 보라. 이렇게 목 놓아 외치고 싶을 만큼 지금 권지하는 완벽했다.

넋을 놓아 버린 다율은 칭찬의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러자 권지하가 그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이 매니저?”

“아, 죄송합니다.”

“설마 내가 너무 멋있어서 일하는 중이란 걸 잊은 건 아니겠죠.”

“그,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지금부터 비하인드 영상 찍을 거예요. 팬 카페에 업로드해야 되니까요.”

다율은 로드 매니저로 뛰면서 팬 카페에 올릴 만한 콘텐츠를 건져 사무실 마케팅팀에 전달하는 일도 했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비공개 촬영 등이 있는 날 휴식 시간 모습을 찍는 일이었다.

“그럼 열일하세요. 저도 열일할게요.”

다율이 양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쳤다. 권지하는 피식 웃고서 조명 앞으로 이동했다.

눈 부신 조명 아래 선 권지하는 여러 포즈를 능수능란하게 취했다. 건조한 눈빛을 하고 허공을 바라봤다가 또 남성미 넘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영상을 찍으며 다율은 황홀감에 젖었다.

차마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바라만 봐도 좋구나.

비록 톱스타와 로드 매니저지만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한 집에 살 수 있으니 이런 영광이 없었다. 다율은 어쩌면 자신이 너무 과분한 행복을 좇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반성했다. 지금처럼 발치에서 지켜만 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 과한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도 했다.

한참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난데없이 권지하가 다율을 불렀다.

“이 매니저.”

“네. 배우님.”

“잠깐 사진 찍는 것 좀 도와줘요.”

“제가요? 당연히 뭔들 도와드려야겠지만… 어떻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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