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물질은 이물질에서 벗어난다 5화 (18/29)

5.

“승현아!”

“헉, 승현이 왔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동기들이 일제히 눈을 빛내며 승현을 쳐다봤다. 일주일 만에 온 강의실 안에서 승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에타에 글이 올라왔던 일 이후, 승현은 수환과 사귄다는 걸 알게 된 동기들과 한동안 사이가 어색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며칠뿐이었다. 어색하게 굴던 동기들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승현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아마 그 일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승현 역시 바라는 일이었다.

“몸은 좀 괜찮아?”

“많이 괜찮아졌어.”

찬우가 묻는 말에 승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은찬이 의아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히트로 학교 빠진 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꽤 세게 왔나 보다.”

“맞아. 일주일이나 쉰 적 없었잖아.”

가현 역시 맞장구를 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승현이 다른 오메가들과 다르게 히트 사이클로 쉬거나 티를 낸 적이 없다 보니, 그들은 가끔 승현이 오메가인 걸 까먹을 때도 있었다. 승현이 베타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체질이 좀 바뀌어서, 이번엔 약이 잘 안 듣더라고.”

“아, 그래?”

“응.”

베타인 동기들은 오메가의 체질이 변할 만한 이유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승현의 말에 그저 그러려니 했다. 가현이 가방에서 꺼낸 서류철을 승현에게 내밀었다.

“이거 그동안 강의 내용 필기한 거랑 자료들이야.”

“아, 고마워.”

“뭘 우리 사이에.”

호쾌하게 웃는 가현에게 은찬이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누가 보면 너 혼자 정리한 줄 알겠다? 우리 것도 다 들어가 있는데.”

“맞아. 혼자 생색내냐?”

“헐, 찬우 넌 필기 제대로 안 했잖아. 양심 있음?”

“아니, 없을걸?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필기 복사해 주라.”

“미친.”

승현은 언제나처럼 투덕대는 동기들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희영과 눈이 마주쳤다.

“왜?”

“…….”

희영의 까만 눈은 어딘가 거북한 구석이 있었다. 승현은 자신이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응?”

입을 꾹 다물어서 말을 안 할 줄 알았는데, 동기들이 서로 재잘대는 틈을 타 희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희영은 그 후에도 얼마간 더 머뭇거렸다. 승현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희영이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수환 선배는…… 잘 있어?”

별안간 수환의 안부를 묻는 말에 승현은 기분이 팍 상했다. 절로 비딱한 태도가 되어 희영에게 되물었다.

“그걸 네가 왜 물어봐?”

생각해 보니 희영이 수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가 뜬금없이 지난 강의에서 수환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희영은 승현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승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냥, 요즘 학교 안 나오시니까 궁금해서.”

“궁금하다고?”

승현의 형형한 눈과 마주한 희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승현을 응시했다. 승현은 그런 희영을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 말했다.

“그런 관심, 좀 불편한데. 선배는 내 애인이니까 말이야.”

“…….”

“네가 신경 쓸 문제 아니야. 권희영.”

친구 사이에 너무 딱딱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희영은 정말로 아무런 사심 없이 수환의 안부가 궁금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승현은 안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감정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역시, 그렇게 되었구나.”

“……?”

희영이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승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희영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을 한 건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이미 강의실 안에 교수가 들어온 뒤였다. 혀를 찬 승현은 우선 강의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승현을 희영이 한동안 불안한 눈으로 응시했다.

***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건율은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길에 몸을 긴장시켰다.

주성혁. 한성의 회장이자 건율의 아버지였다. 그의 눈이 잔뜩 경직된 건율의 얼굴을 살폈다.

“앉아라.”

“네.”

고개를 끄덕인 건율이 주 회장의 앞에 앉았다. 삭막한 부자 사이에는 흔한 안부 인사 한마디 오가지 않았다.

툭, 툭.

주 회장의 손가락이 의자 끝을 두드렸다. 그저 그의 습관 중 하나일 뿐이지만, 건율은 항상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눈이 건율을 지그시 응시했다.

“진화련 대표가 곧 회장직에 오른다고 하더군.”

“……!”

담담하게 내뱉는 말에 건율이 눈을 크게 떴다. 놀라는 건율을 무심하게 보며 주 회장이 말을 이었다.

“뭐, 그쪽은 늦든 빠르든 막을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 그렇다 치고.”

“…….”

“HS의 일은 결과가 너무 부실하군. 호언장담하더니 말이야.”

“죄송합니다.”

건율이 주 회장을 향해 얼굴을 깊숙이 숙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주 회장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주 회장은 가죽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탁, 탁. 또다시 의미 없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화련 대표가 HS의 일을 파헤치고 있던데.”

“정말입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인 주 회장이 손가락으로 턱을 문질렀다. 웬만한 일로 동요하지 않는 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이승현과 약혼한 사촌 동생 때문이지 않나 싶다.”

“……!”

승현의 이름이 나오자 건율은 저도 모르게 이를 으득 갈았다. 주 회장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알파가 가지고 싶은 오메가에게 집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도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저하게 가지거나, 그게 안 된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망가트려야 한다. 그게 바로 주 회장의 철칙이었다. 그리고 그의 피를 이어받은 건율은 그 점을 누구보다 쏙 빼닮은 알파였다.

“네가 말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그 오메가는 지금쯤 우리 수중에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나?”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주 회장은 신약을 개발하려는 HS의 형제를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방향을 제시하며 그걸 막았던 게 바로 건율이었다. 주 회장은 건율의 제안에 큰 흥미를 보였다.

진수환을 이용해 승현을 망가트린 다음, 신약 자체를 한성의 것으로 만든다. 과거의 일을 큰 그림으로 만들어 주는 훌륭한 계획이었다.

흥미롭군. 기계적인 반응만 보이던 주 회장이 제법 인간적인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설마하니 승현이 멍청한 진수환을 선택할 줄이야. 건율은 제 계획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아직, 약을 개발하기 전이니 승산이 있습니다. 아버지.”

“흠.”

“화명에게 빼앗기기 전에 신약을 확보해야 해요.”

현재 한성과 화명은 한국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업이지만, 묘하게 어떤 분야든 화명이 한 발자국씩 더 앞서고 있었다. 주 회장은 그게 참을 수 없이 거슬리는 것 같았다. 건율은 그 점을 더욱 건드렸다.

“HS의 신약만 확보한다면 한성은 확실하게 화명을 제칠 수 있습니다. 화련 대표가 회장이 된다고 하더라도요.”

과거 HS는 한성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약을 개발하는 데에만 재능이 있던 어리석은 오너는 회사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조금의 방해로 급격히 흔들렸다. 그리고 나중엔 유령 회사를 통해 대고 있던 투자금을 회수해 멋지게 무너트렸다. 그때 개발한 약은 조금의 변형을 거쳐 수년간 한성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불러왔다.

HS 제약회사가 그렇게 무너진 건, 한성의 회장인 주성혁의 짓이었다. HS를 이용해 발판으로 만들어 한성을 키웠을뿐더러, 개인적인 악감정도 조금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율 역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김수연. 그녀는 HS의 안주인이자 주 회장이 한때 구애했던 오메가 여성이었다. 김수연은 무뚝뚝한 주 회장이 아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HS의 이태현 회장을 선택했다.

가지지 못한다면 차라리 철저하게 망가트린다. 주 회장의 집념은 승승장구하던 제약회사를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어렸던 건율은 그렇게까지 하는 주 회장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 회장 역시 과거의 자신과 꼭 닮은 눈빛을 한 건율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아버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네.”

고개를 끄덕인 건율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수환 씨!”

“……?”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수환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활짝 웃었다.

“아, 대리님.”

사수인 차윤현 대리였다. 사수, 라고는 하지만 프로젝트 팀에 차출되어 시달린 윤현과는 하루 종일 잘 만나지 못했다. 그는 오늘에서야 겨우 일을 마무리하고 원래 부서에 되돌아온 참이었다. 못 본 새 제법 핼쑥해진 윤현이 수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퇴근해요?”

“네, 대리님도요?”

“어휴, 정시에 퇴근하는 게 일주일만이라니까. 말이 돼요?”

“하하.”

너스레를 떠는 윤현을 보며 수환이 어색하게 웃었다. 윤현은 자신보다 키가 훨씬 컸다. 같은 알파인데도 체격 차이가 나서 가까이 오면 은근히 주눅 들었다. 물론 서글서글한 성격의 윤현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을 테지만 말이다.

“학교 더 다니고 싶었을 텐데, 어째. 하여간 회장님도 유별나다니까요. 지금 들어오나, 내년에 입사하나 똑같은데. 그죠?”

윤현이 구시렁거리며 대놓고 진 회장의 욕을 했다. 진 회장이 곧 경영권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전에는 터부시하던 험담을 하는 사원들이 늘어났다. 윤현도 그중 하나였다. 수환은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 저는 상관없어요.”

“화련 대표님은 뭐래요?”

“누님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어차피 에타의 일로 수환은 굳이 학교에 다시 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화련이 회장직에 오르고 난 뒤, 자신이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학교에는 다시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저도 흥미 없는 교양 강의 몇 개 들을 바에는 회사에 나오는 게 더 좋거든요.”

“아, 그렇구나.”

수환의 말에 윤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맞게 웃는 얼굴도 잘 어울렸다. 수환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회사 로비로 향했다.

“오늘 얼굴도 잘 못 봤는데, 지금 한잔하러 가는 거 어때요?”

“지금요?”

“네, 약속 있어요?”

“그게…….”

윤현의 물음에 수환은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오늘 아침, 승현이 매일 회사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던 말을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환은 평소처럼 아침에 늦잠을 자다가 회사에 늦을 뻔했다. 출근할 때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바람에 승현의 말을 잘 듣지 못하고 어영부영 인사만 건넨 다음 급하게 집을 나왔다.

단순한 환청이었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학교 다니는 승현이 매일 자신을 데리러 오는 건 부담되고 힘든 일일 테니 말이다.

“약속한 건 아닌데, 그러니까, 앗.”

로비를 지나 입구에 다다른 수환은 투명한 문이 바로 앞에서 훅 열리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뒤에 있던 윤현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수환을 감쌌다.

“엇, 조심해요. 수환 씨.”

“아, 감사합니다.”

“……?”

윤현은 갑작스럽게 코를 찌르는 페로몬 향에 눈을 크게 떴다. 오메가의 페로몬이었다. 코끝에 닿은 수환의 머리카락에서 진한 오메가의 페로몬이 확 풍겨왔다.

분명 감귤계 같은 산뜻한 향인 것 같은데, 느낌이 오묘했다. 페로몬을 덕지덕지 묻혀 놓은 모양새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다. 알파도 아니고 오메가가 이렇게까지 페로몬을 묻히다니. 뭔가 이상했다.

그러나 윤현은 티 내지 않고 수환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네, 괜찮아요. 대리님.”

뒤를 흘끗 돌아본 수환은 윤현의 얼굴이 가까운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웠다. 수환이 난감해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 대리님. 손 좀…….”

그렇게 주춤하며 윤현에게 양해를 구할 때였다.

“형.”

“어?”

입구의 문을 열고 막 들어온 승현이 수환과 윤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본 수환의 눈이 커졌다.

“승현아.”

조금 음울해 보이는 승현의 눈이 수환과 윤현을 향했다. 그의 시선을 느낀 수환이 화들짝 놀라며 윤현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사이 승현이 가까이 다가왔다. 승현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윤현을 노려보듯이 응시했다.

“누구예요?”

“어…….”

역시 데리러 온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당황하던 수환이 힐끗, 옆에 선 윤현을 쳐다봤다. 윤현의 얼굴에도 의문이 깃들어 있었다. 수환은 우선 승현에게 윤현을 소개했다.

“우리 회사 차윤현 대리님.”

“아…… 안녕하세요.”

수환에게 미리 들어 윤현을 알고 있었던 승현은 알은체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은근히 힘을 줬다.

“저는 수환이 형의 약혼자인 이승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약혼자?”

“네.”

윤현은 빙긋 웃는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 같은 남자라는 게 확연히 보일 정도로 덩치가 있는 편인데, 비현실적일 정도로 예쁜 얼굴 때문인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외국인처럼 색이 옅은 머리카락과 눈, 오뚝한 코, 모양 좋게 휜 입술에 시선이 갔다.

그러고 보니 수환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걸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인가 했더니, 이렇게 대단한 미인이라니. 정말이지 솔로는 부러울 따름이었다. 윤현이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승현 씨. 차윤현이라고 합니다.”

제법 큼지막한 손을 마주 잡자, 예상치 못한 통증이 느껴졌다. 윤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메가치고는 꽤 힘이 세네. 우성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윤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손을 내렸다.

“아, 저희 한잔하러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거 셋이 갈까요?”

어색한 분위기도 풀 겸, 윤현이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승현의 얼굴이 굳고, 수환은 놀라며 윤현을 돌아보았다.

“대리님, 저 간다고 말 안 했는데.”

“에이, 첫날인데 그냥 집에 간다고요? 안 돼요. 안 돼.”

“아니, 그…….”

수환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 윤현을 곤란한 얼굴로 쳐다봤다. 이대로 가다간 승현까지 같이 술자리에 끌려가게 생겼다. 난감해하는 수환의 손을 누군가가 꽉 붙잡았다.

“죄송합니다. 저흰 오늘 따로 예약한 곳이 있어서요.”

“어? 어디 예약했어?”

승현의 말에 수환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곧 말을 맞추라는 듯 깜박이는 눈에 수환은 겨우 승현의 의도를 알아챘다. 아, 하고 입술을 벌린 다음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그랬었지. 거기, 응.”

그러자 윤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쿠, 내가 눈치 없이 끼어들 뻔했네.”

“아뇨, 그렇지 않아요.”

당황한 수환이 고개를 젓자 윤현이 씩 웃었다. 그가 선선한 몸짓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내일 봐요. 수환 씨.”

“네, 안녕히 가세요. 대리님.”

승현에게도 고개를 까닥거린 윤현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것치고는 빠른 퇴장이었다. 수환이 사라지는 윤현의 뒷모습을 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안심하는 수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현이 손에 힘을 줬다. 수환이 뒤늦게 움찔하며 승현을 쳐다봤다.

“그게, 나 술 마시러 간다고 말 안 했어.”

“…….”

“진짜야. 대리님이 일방적으로 말한 거야.”

눈치 보며 하는 말을 승현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잡은 손을 제 쪽으로 당겼다.

“알았으니까 집에 가요.”

“아, 응.”

붙잡힌 손이 아팠다. 수환은 집에 가는 내내 굳어 있는 승현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데리러 오겠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았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 수환은 승현의 기분을 풀어 줄 방법을 고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방법에 몰두하다 보니 금방 집에 도착했다. 아플 정도로 꽉 잡힌 손은 여전했다. 정말 어쩌지. 어떻게 해야 승현의 기분이 좋아질까.

고심하는 수환의 속마음을 모르고 승현은 기계적으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수환을 돌아보았다.

“먼저 들어가요.”

“응? 그래.”

퍼뜩 정신을 차린 수환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구두를 벗다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으앗.”

왜인가 하고 봤더니, 아직도 한쪽 손이 승현에게 꽉 잡혀 있는 탓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잡고 있는 손을 난감하게 쳐다보고 고개를 들었다.

“승현아, 손 좀 놔줘.”

승현은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환은 조금 느슨해진 손에서 제 손을 살살 빼내고 나서야 겨우 구두를 벗을 수 있었다.

“그럼, 나 옷 좀 갈아입고…….”

“형.”

“응?”

재빨리 드레스 룸으로 향하려던 수환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의아한 얼굴로 승현을 쳐다봤다. 왜인지 승현의 눈이 형형했다.

“그 사람이랑 술 자주 마셨어요?”

“그 사람?”

승현의 물음에 수환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누구를 말하는 건가 싶어서 의아해하다가, 방금 윤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수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대리님?”

“네.”

“어…….”

수환이 눈을 굴리며 한 달도 더 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막 빙의했을 땐 윤현이 자신을 싫어해서 잘 어울리지 못했었고, 가까워질 무렵에는 인턴 기간이 거의 끝나갔다. 결국 그와 술을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대리님이랑 술 마신 적 없어.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가워서 그런 말씀 하셨나 봐.”

“…….”

“진짠데.”

억울했다. 승현의 눈엔 여전히 자신이 매일같이 술이나 마시러 다니는 불한당으로 보이는 걸까. 겨우 맥주 몇 캔에 취해서 우는 모습도 봤었으면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환은 초조해져서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죠?”

“응, 정말이야. 나 인턴 할 때 회사 사람들이랑 술 안 마셨어.”

승현은 여전히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가라앉혔다. 친근하게 굴던 그 회사 동료의 품에 안겨 있던 수환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째 이름부터가 재수 없더라니. 승현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승현아?”

“아.”

그제야 승현은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흘끗거리는 수환을 발견했다. 그 알파가 너무 기분 나쁘게 구는 바람에 수환을 또 무섭게 대한 모양이었다.

이러면 안 되지. 승현은 종잇장처럼 구겼던 얼굴을 다시 반듯하게 피며 미소 지었다.

“미안해요. 그냥 좀 걱정되어서요.”

“걱정?”

“네, 형이 그분이랑 친해 보여서…… 좀 질투했어요.”

“대리님이랑? 내가?”

승현의 말에 수환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윤현이 오메가였으면 승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자신과 같은 알파였다. 설마하니 알파가 같은 알파에게 치근댈 거란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윤현과 자신은 성별도 똑같았다.

“하지만 대리님은 알판데.”

수환의 말처럼 알파가 같은 알파에게 성욕을 느끼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알파끼리는 페로몬이 부딪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심지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수환은 열성이라 페로몬이 잘 느껴지지 않는 데다가, 페로몬 향이 오메가 못지않게 달달한 편이었다. 만약 알파 중에도 자신처럼 이상 성욕자가 있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리라는 인간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알파라도 형을 좋아할 수 있잖아요.”

“에이, 설마.”

말갛게 웃는 얼굴을 보니, 수환은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승현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형은 자기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내가?”

“네.”

오랜만에 정장을 갖춰 입고 있는 수환의 모습은 어디를 봐도 완벽한 알파였다. 큰 키와 벌어진 어깨, 단단한 몸. 그리고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 오메가뿐만 아니라 베타라도 한 번쯤 눈길을 보낼 외모였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승현은 느릿한 손길로 수환이 매고 있는 넥타이를 풀었다. 푸른색의 넥타이는 재질이 좋아 승현의 손안에 착 감겼다. 그대로 넥타이를 땅에 떨어트리고 재킷을 벗겼다. 그리고 하얀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승현아, 뭐를…… 읏.”

갑자기 현관 앞에서 옷을 벗기자 수환은 놀랐다. 승현의 손길은 너무나 거침없고 자연스러웠다. 차마 그를 말리지 못하고 입고 있던 옷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윽고 승현의 손이 맨살에 닿았다. 특이하게 셔츠의 가운데만 단추를 풀고, 벌어진 셔츠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움켜잡았다. 크고 서늘한 손이 맨가슴에 닿자 수환은 몸을 움츠렸다.

“왜 갑자기…… 으응.”

이제 가슴을 만지기만 해도 몸이 절로 반응했다. 그동안 승현이 집요할 정도로 만지고 핥아댔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그것도 알파의 가슴을 만지는 것만큼 비생산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승현은 유독 가슴에 집착했고, 수환 역시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문제였다.

“이것 봐요. 알파면서 이렇게 좋아하기나 하고.”

“아읏.”

“다른 놈들도 이런 식으로 형한테 눈독 들일지 모른다구요.”

“그런 일은…… 으읏.”

마사지하듯이 비벼대기만 하던 승현이 손끝으로 유두를 비틀며 꼬집었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하반신에 찌릿한 반응이 왔다. 수환이 신음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다른 놈이 만져도 좋아할 거예요?”

“아니야, 나는… 너니까…… 앗.”

얼굴을 붉히며 도리질 치는 모습으로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었다. 이런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도 모르고. 같은 알파라고 해서 안심하고 몸을 맡기는 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술이 난 승현은 이를 세워 수환의 가슴을 깨물었다. 하얀 가슴팍은 승현이 남긴 흔적들로 이미 울긋불긋했다. 그곳을 다시 깨물며 진한 흔적을 남겼다. 입안에 단맛이 풍겼다.

“하읏, 승현아.”

“…….”

“거기, 좋아.”

수환은 이제 제법 조를 줄도 알았다. 승현의 머리를 껴안은 수환이 신음하며 흥분한 몸을 들이댔다. 반쯤 선 하반신을 비비적거리는 모양새가 꽤나 노골적이었다.

이러는데 같은 알파가 안 꼴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고자가 아니라면야, 당연히 눈이 뒤집히겠지. 속으로 혀를 차며 입안에 넣고 굴리던 작고 앙증맞은 유두를 뱉고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이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세요.”

“누구? 대리님?”

“네.”

수환이 몽롱한 눈으로 승현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하면 갈 것 같은데, 입술을 뗀 승현은 너무나 단호해 보였다. 어서 더 만져 줬으면 좋겠다. 조급해진 수환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승현아. 빨리.”

“내 말 알아들은 거 맞아요?”

“으응, 그렇다니까.”

대리님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을게.

속삭이면서 셔츠 깃을 더 벌렸다. 붉게 부어오른 그곳이 승현을 유혹하듯 움찔거렸다.

“그러니까 빨리, 가슴 만져 줘. 흣.”

“하아, 진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페로몬에 온몸이 흥분했다. 승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그 알파를 더 경계해야겠어. 수환이 원하는 대로 손과 혀를 움직이면서 승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하지만 결론적으로 수환은 승현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대부분 수환을 피하고 있고, 그중에서 그나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윤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수환 씨.”

“아, 네.”

대신 윤현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딴생각을 했다. 승현이 오늘 병원 간다던데. 역시 휴가 내고 같이 갈 걸 그랬나? 아니, 그래도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휴가 내는 것도 좀…….

“수환 씨, 내 말 듣고 있어?”

“네, 듣고 있어요.”

뒤늦게 눈을 깜박이며 수환이 대답했다. 어차피 쉬는 시간에 잡담하는 중이니 집중하지 못해도 상관없기는 한데. 흐음, 하고 윤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늘도 역시 수환에게서 감귤 향의 페로몬이 희미하게 풍겼다. 옆에 있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오메가의 페로몬이다. 약혼자라고 했으니, 어제 그 미인이 묻혀 놓은 페로몬이겠지. 아니라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수환 씨, 근데.”

“네?”

빨대를 빨던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윤현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약혼자랑 사이좋은가 봐. 옆에 있는데도 페로몬이 풀풀 풍기네.”

“아.”

수환의 얼굴이 화륵 달아올랐다. 윤현이 그 모습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응시했다.

“매일 만나는 거야? 아니면 동거 중?”

“그…….”

이어지는 윤현의 물음에 수환이 당황하며 눈을 굴렸다. 약혼자와 결혼하기 전에 동거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수환은 괜히 말하기가 꺼려졌다. 그다지 떳떳한 이유로 동거를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거하는 걸 숨길까 하다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같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윤현이 언젠가 알아챌 것 같았다. 수환이 수긍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동거하는 중이에요.”

“오, 어쩐지.”

그러니 그렇게 오메가 냄새가 풀풀 풍기지.

윤현은 뒷말을 삼키고 커피를 쭉 빨았다. 여전히 흥미를 품은 눈이 수환의 목덜미로 향했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지만, 고개를 숙인 수환의 목덜미 위에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걸 보는 윤현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벌써 동거부터 하고…… 사이좋은가 보네.”

“그런 편이죠.”

어색한 얼굴로 수환이 맞장구쳤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과 승현이 어떻게 보일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자신과 달리 승현은 너무 예쁘고 멋지니까, 다른 사람들이 승현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음울한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부럽다. 나도 그렇게 예쁜 오메가 애인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대리님은 만나는 분 없으세요?”

의외였다. 윤현은 키도 크고 잘생겨서 인기가 많아 보이는 타입이었다. 놀라는 수환을 보며 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취향이 좀 특이해서.”

“그래요?”

“그렇다니까.”

한숨을 푹 내쉰 윤현은 묻지도 않았는데 푸념을 늘어놓았다.

“기가 센 타입을 좋아하거든. 내가 이것저것 맞춰 주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

“근데 그렇다 보니 가끔 이상한 사람 만나기도 하고, 이래저래 인연이 없네. 에휴.”

한숨을 푹 내쉬는 윤현을 수환이 어색한 얼굴로 쳐다봤다. 기가 센 사람이라. 윤현은 조금 의외의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상해 보니 묘하게 윤현과 잘 어울렸다. 윤현은 부드러운 인상과 성정을 가졌으니, 반대의 성향인 사람에게 끌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도 그런 편인 것 같았다. 수환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컵을 든 채 애써 입을 열었다.

“좋은 분 만나실 거예요.”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아, 점심시간 다 끝났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다 마신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걸음을 옮기는 윤현을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문득 어제 승현이 걱정했던 일을 떠올렸다. 알파인 윤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말. 하지만 이상형에 대한 말을 나누고 보니, 어쩐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집에 가면 이 얘기를 승현에게 해야겠다. 그럼 좀 안심하지 않을까. 자신이 너무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수환이 윤현을 따라가며 입술 끝을 올렸다.

***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새하얀 방 안에서 승현은 불편한 듯이 몸을 똑바로 세웠다.

병원은 승현이 별로 좋아하는 곳이 아니었다. 보통은 아파서 오는 곳이니 누가 좋아할까 싶지만, 승현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혼자 발현하고 힘든 상태에서 병원을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서 괜히 속이 거북해졌다.

‘오메가로 발현하셨네요. 페로몬 수치를 봐서는 우성입니다.’

‘네?’

승현의 부모는 우성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쪽은 열성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쪽 친척에 우성이 딱 한 명 있었다고 얘기를 들었었다. 아무래도 그쪽 형질을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메가로 발현한 이상, 우성이든 아니든 별로 큰 차이는 없었다. 수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오히려 우성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이 될 화련이 자신들을 인정하는 건, 자신이 우성 오메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이유는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페로몬 수치를 쟀을 때가 7년 전이라고 하셨죠?”

“아, 네. 맞습니다.”

심플한 은테 안경을 쓴 의사가 흠, 하고 작게 신음했다. 차트를 보던 그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더니 별안간 이상한 걸 묻기 시작했다.

“혹시 사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네, 있는데요.”

갑자기 그런 건 왜 묻지? 승현은 꺼림칙함을 느꼈지만, 일단 묻는 말에는 순순히 대답했다. 의사가 계속해서 물었다.

“그분은 알파이신가요?”

“네. 근데 그게 왜…….”

“혹시 그분도 우성입니까?”

계속해서 질문을 퍼붓는 의사를 탐탁지 않게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기색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요. 열성인데요.”

“허…….”

차트 옆에 놓인 의사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탁탁 쳤다. 찌푸린 그의 얼굴을 초조하게 바라보자, 의사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거듭 이런 질문드려서 죄송하지만, 혹시 그분과 러트나 히트를 같이 보내셨습니까?”

“……둘 다 같이 보냈습니다.”

“각인도 하셨나요?”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승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 재현도 물었던 말이었다. 승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시도해 본 적은 없으신가요?”

“네, 아마 없을 겁니다.”

“흐음.”

차분하게 대답하는 말에 의사는 습관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차트에서 눈을 떼며 승현을 바라보았다.

“일단 지금 이승현 씨의 페로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제…… 페로몬 수치가요?”

“네, 상대 파트너가 우성이면 그에 영향을 받아서 수치가 높아지는 경우는 있어도, 만나는 분이 열성이면 좀 이상한 경우이긴 합니다.”

페로몬 수치가 높다는 건 그만큼 형질이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몸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높으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의사가 말하는 경우가 바로 그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승현은 지금까지 몸에 큰 문제가 없었다. 이번 히트 사이클을 억제제로 다스리지 못해서 난감했을 뿐, 그것 외에는 몸에 나타난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딱히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승현은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저는…… 히트 사이클 때 억제제가 잘 듣지 않았던 것만 빼면 아무 이상 없었는데요.”

“음, 페로몬 수치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몸에 뚜렷한 변화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승현 씨처럼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쪽이요?”

“네, 가령 이승현 씨가 아닌 파트너분께 문제가 생긴다거나.”

“……!”

승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다 곧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그게 정확히 어떤 문제죠?”

“파트너분도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이승현 씨의 경우가 흔한 건 아니라서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파트너분도 검사를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우선은 당분간 페로몬 조절 약을 처방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원하시면 다음 검사 일정도 잡아드리죠.”

자신 때문에 수환의 몸에 어떤 이상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승현은 문득 무서워졌다. 손끝이 떨려오는 걸 간신히 힘을 줘 막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우선은 수환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해야 한다. 승현은 밀려드는 불안감을 꾹 누르며 대답했다.

“약은 처방해 주시고…… 검사는 추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의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권유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검사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게 그의 역할이니까 말이다.

한숨을 삼키며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처방전을 받으러 가는 승현의 얼굴이 조금 멍했다.

이걸 어떻게 수환에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승현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

퇴근 시간이 되자 수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뜻한 그의 얼굴과 달리 윤현은 다 죽어가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잘 들어가요.”

“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대답할 기운도 없는 듯, 윤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환은 얼마간 눈치를 보다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직 수환은 일을 배우는 단계라 회사에서 별로 바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윤현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일 것 같아 가끔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윤현의 자리에는 항상 진한 커피와 피로 회복제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쓰레기였던 진수환이 머리가 좋은 편이라서 공부는 잘했다는 것이다. 주인공들과 같은 명문대에 들어갈 정도였으니 나름 엘리트긴 했다. 그리고 그 지식이 수환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덕분에 회사에서 일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수환은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승현의 연락이 와 있었다. 힘들게 매일 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수환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이 미소가 떠올랐다.

“승현아!”

“……형.”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승현이 고개를 돌렸다. 수환은 반가운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승현의 안색이 어둡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후다닥 달려가서 상기된 얼굴로 승현의 앞에 섰다.

“오래 기다렸어?”

“아뇨. 방금 왔어요.”

승현이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수환이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서로의 어깨를 딱 붙이며 로비를 나섰다.

“우리 오늘은 밖에서 먹고 들어갈까?”

“아.”

때마침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모처럼이니 외식하며 데이트 분위기를 내고 싶은 사심도 있었다. 수환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뭐 먹고 싶은데요?”

“음.”

승현의 물음에 수환이 눈을 굴렸다. 외식하자고 할 거면 어디 좋은 데 예약이라도 해 놓고 말할걸. 자신의 멍청함에 한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미안. 생각이 잘 안 나.”

심지어 너무 자책했기 때문인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수환이 입술을 깨물며 인상을 찡그리자 승현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귀여워.”

“응?”

수환의 입술에 손가락을 댄 채로 승현이 중얼거렸다. 수환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도무지 귀엽다는 말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수환은 입술을 깨물지 못하도록 꾹 누르고 있는 손가락을 의식하며 겨우 말했다.

“나, 안 귀여워.”

“귀여워요.”

“아닌데.”

귀엽다는 말은 자신보다 더 작고 예쁜 사람들에게나 어울렸다. 진수환의 몸은 알파라서 덩치가 크고 인상도 사나워서 도무지 귀엽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거울 속의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항상 인상을 쓰는 수환은 저도 모르게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수환을 승현이 핥듯이 쳐다봤다. 붉은 입술에 대고 있는 손가락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부드러운 입술이 움찔거리며 오므리는 게 보였다. 저 입술을 한입에 집어삼키고 싶었다.

“진짜 귀여워.”

“…….”

작게 속삭이는 말에 수환이 몸을 움츠렸다. 히트 때 봤던 승현의 얼굴이 겹쳐졌다. 꼭 그때와 같은 광기 어린 얼굴이었다. 수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수환이 겁먹었다는 걸 알아챈 승현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가락을 떼며 여상하게 물었다.

“우리 스테이크 먹으러 갈까요?”

“응? 스테이크?”

“네.”

승현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히트 때 너무 몰아붙이는 바람에 수환은 살이 많이 빠졌다. 아직도 윤곽이 뚜렷한 턱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승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서 전처럼 살을 찌워야 했다. 지금의 수환은 살이 빠지는 바람에 어딘가 묘한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쾌락을 알게 된 몸이 은연중에 농염한 페로몬을 풍겼다. 승현은 날카로운 빛이 스치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수환이 유독 자신의 이런 미소에 약하다는 걸 승현은 잘 알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맛있게 하는 집 알아요.”

“그래?”

수환은 금세 귀가 솔깃했다. 사실 아직 속이 좀 더부룩했다. 사무실에서 내내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승현이 먹자고 하는 걸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럼 가자.”

“네.”

걸음을 옮기자, 승현의 손이 자연스럽게 수환의 허리를 감았다. 히트 사이클 이후로 승현의 접촉이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는 걸 수환도 알아채고 있었다. 밖이라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수환은 승현에게 살짝 몸을 기댔다. 향긋한 시트러스 향이 코끝을 스쳤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속절없이 얼굴이 풀어졌다. 헤실거리는 얼굴로 수환은 승현과 발을 맞춰 걸어갔다.

두 사람은 곧 회사 근처에 있는 스테이크 집에 도착했다.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파는 양식집이었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승현은 거침없이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샐러드가 먼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네가 오해했던 것 같아.”

“오해요?”

샐러드를 먹던 승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를 마주 보며 수환이 계속해서 조잘거렸다.

“그게, 어쩌다가 대리님이 자기 이상형을 말했는데. 대리님은 기가 세고 자기를 리드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좋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잖아. 그치?”

“…….”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수환의 얼굴을 승현이 지그시 응시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했더니. 또 그 기분 나쁜 인간에 대한 거다. 망할 차윤현 대리. 승현은 차마 티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짜증을 냈다.

그 인간의 이상형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남자란 생물은 머리가 인식하기 전에 하반신이 먼저 반응하는 족속들이었다. 그 잘난 이상형 따윈 하나도 신뢰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눈앞의 수환도 자신의 이상형은 아니었다. 외모로만 봐도, 승현은 좀 더 착해 보이는 사람이 더 취향이었다. 아니, 취향이라기보다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수환에게 먼저 하반신이 반응했고, 지금은 헤어지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놈들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승현이 조금 딱딱한 표정으로 수환을 쳐다봤다.

“형, 원래 사람은 이상형만 만나고 그러지 않아요.”

“어? 그렇긴 한데.”

승현의 반박에 수환이 포크를 입에 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는 수환을 보며 승현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열에 아홉은 지금 사귀는 애인이 이상형 아니었을걸요. 자꾸 만나고, 눈에 들어오니까 끌려서 사귀는 거지.”

“…….”

“그러니까 그 대리라는 사람도 충분히…….”

계속 이어지는 승현의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수환은 승현이 앞서 말했던 부분을 곱씹었다. 평소 둔하던 그는 때때로 예기치 않게 말의 속뜻을 날카롭게 알아채곤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그거, 너도 그래?”

“네?”

“너도 원래 이상형이…… 내가 아니었다는 말이지?”

정곡을 찌르는 말에 승현이라고 해도 순간 멈칫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수환이 조금 우울한 얼굴로 샐러드를 뒤적거렸다.

묻고 나서 수환은 바로 후회했다. 당연한 건데 왜 굳이 물었을까 싶었다. 메인공인 주건율과 비교하면 자신이 한참이나 떨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데도 가슴이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 이상형이 아닌데도 사귈 수 있다는 말이 꼭 저를 향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타입이 아닌데도 사귀어 주는 걸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인데도 말이다.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었지? 이런 말에 굳이 대답 안 해도 되니까.”

“미안해요, 형.”

“응?”

서둘러 말을 돌리려던 수환은 갑자기 승현이 사과하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말을 잘못했어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

승현은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있는 수환의 손등 위에 포갰다. 그러자 따뜻함이 손등 위에 퍼지면서 수환의 손이 순간 움찔거렸다. 승현이 힘을 줘 수환의 손을 꽉 붙잡았다.

“형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이상형 따위 상관없이 형한테 반할 수 있다는 말이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뭐? 매, 매력적?”

생각지도 못한 말에 사레가 들렸다. 당황한 수환이 기침을 하며 물을 찾자, 승현이 다가와 물컵을 내밀었다.

“하아, 고마워.”

“뭘요.”

차가운 물을 마셔서 안정되자마자 수환은 다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방금 승현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가끔 보면 승현은 낯간지러운 말을 곧잘 했다.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황한 말을 하는 것이다. 수환의 눈 밑이 부르르 떨렸다.

“놀리지 좀 말라니까.”

“놀린 적 없는데요?”

물컵을 받아 든 승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박 속을 얼굴을 보며 수환은 기막힌 기분이 들었다.

“거짓말.”

“왜 그렇게 내 말을 못 믿어요?”

승현이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수환은 홧홧한 얼굴을 한 손으로 덮었다. 아직도 사레들린 목이 칼칼하고 아팠다.

다시 의자에 앉은 승현이 당황한 수환을 지그시 응시했다.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정말이지 너무 귀여웠다. 역시 밖에 있으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참기가 힘들었다. 승현이 혀를 내밀어 입가를 핥으며 물었다.

“그럼 형은요? 형은 내가 원래부터 이상형이었어요?”

“어?”

승현의 물음에 수환은 얼굴을 가린 채 눈을 크게 떴다.

이상형? 사실 수환은 자신의 이상형이 어떤지 몰랐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언젠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알게 될 것 같지만 지금은 별로…….

수환이 힐끗 승현을 쳐다봤다. 승현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속절없이 끌렸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라도 승현을 본다면 이상형이고 뭐고 첫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승현이 자신을 얼굴만 밝히는 속물이라고 생각할까 무서웠다. 눈을 도르륵 굴리며 수환은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생각 따위 승현에게 진작 들켰다. 수환이 자신의 얼굴을 좋아한다는 것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수환이 넋을 잃고 자신의 얼굴만 쳐다보는 일은 꽤 빈번했다.

다른 알파가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면 불쾌할 뿐이지만, 수환은 달랐다. 이런 외모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승현은 수환이 좋아할 법한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난 괜찮아요. 내가 형 이상형이 아니었어도.”

“응?”

“지금은 그런 거 상관없이 내가 좋은 거잖아요. 그죠?”

“어……. 어, 맞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수환은 그제야 승현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상형은 그다지 상관없다는 걸 말이다. 승현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우울해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윤현이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볼 거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세상에 널린 게 자신보다 예쁘고 매력적인 오메가와 베타인데, 같은 알파가 자신에게 흥분할 거라는 상상은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식겠어요. 어서 먹어요.”

“으응, 그래.”

얼굴을 주억거린 수환이 눈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썰었다. 두 사람의 이상형에 대한 토론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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