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수가 이물질에게 집착하는데요 2권
이물질은 메인수의 집착을 받는다
4.
승현은 근래 들어 가장 기분이 좋았다. 집안이 망하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이후 처음 느끼는 충족감이었다. 집을 나서는 승현의 발걸음이 산뜻했다.
짧은 입맞춤 한 번에 부끄러워하던 수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밤에는 그보다 더한 짓도 하면서, 애들이나 할 법한 버드 키스에 매번 얼굴을 붉히곤 한다.
그러고 보니 그가 자신에게 처음 한 입맞춤이 버드 키스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저 어이가 없고 화도 났었는데, 지금은 좀 아쉬웠다. 하루가 멀다고 안달 내고 초조한 게 자신뿐인 것 같아서.
그래도 자신의 품 안에 안기는 수환이 너무 예쁘고 좋아서,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승현은 가슴속에 부는 작은 불안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어? 승현아!”
“안녕.”
“승현이 하이~”
강의실 안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승현을 맞이했다. 그들은 항상 강의 시작 전에 미리 와서 수업 준비를 하던 승현이 요즘 왜 항상 아슬아슬한 시간에 오는 건지, 티는 못 내지만 의아하던 참이었다.
“저기, 승현아.”
결국 동기들끼리 눈치를 주고받은 다음, 이 중에서 가장 친화력이 좋은, 혹은 입이 제일 싼 편인 찬우가 입을 열었다.
“왜?”
“아니…. 너 혹시 요즘 무슨 일 있어?”
“나?”
“아, 엉. 그냥, 너 술 마시다가 갑자기 돌아가기도 하고, 요즘 들어 강의에도 좀 늦고 그러니까. 무슨 일 있나 하고.”
“아.”
가방에서 두꺼운 전공 책을 꺼내던 승현이 가벼운 탄성을 냈다. 그리고 별것 아니라는 듯이 빙긋 웃고 대답했다.
“괜찮아. 아무 일 없거든.”
“그, 그래?”
대화를 지켜보던 동기들이 또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사실은 진수환에 대한 것도 묻고 싶었지만, 곧 전공 교수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와서 물어보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나중에 기회를 보다가 승현을 또 추궁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강의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갈 때, 승현이 슬쩍 뒤로 빠지더니 동기들에게 말했다.
“나 잠깐 전화 한 통만 하고 갈게.”
“어? 어, 그래.”
얼떨결에 대답하고 동기들끼리 밥을 먹으러 학식으로 걸어갔다. 심각한 표정의 찬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말 맞다니까, 애인 생긴 거.”
“뭐, 애인?”
가현이 놀라며 되물었다. 그녀는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순수하던 승현이가…….”
“알파 애인인가? 아니면 베타?”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짐작이 안 가네.”
“…….”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동안에도 희영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승현이 사라진 곳을 슬쩍 바라본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물어볼까?”
“뭘 물어봐.”
“애인 생겼냐고? 누구냐고?”
“미쳤냐?”
왜인지 요즘 승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뭐든 완벽하게 할 것 같은 팔방 미인상이라 남들에게 은근히 철벽 치는 느낌이 강했다면, 요즘은 아예 대놓고 벽을 세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동기들은 전보다 승현을 대하는 게 더 힘들었다.
“어? 승현아, 여기!”
학식에 와서 먼저 자리 잡은 동기들이 뒤늦게 들어온 승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식당 안에 들어온 승현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 보였다. 애인(추정)과의 대화가 좀 안 좋기라도 했나.
승현은 밥을 먹으면서도 멍했다. 수환과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나가고 잠을 더 잤더라도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시간인데. 바쁜 일이 있는 건가. 하지만 집에만 있는 사람이 바쁠 일이 뭐가 있는가.
당장이라도 집에 달려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승현은 꾹 눌렀다. 아직 그 정도 이성은 남아 있었다. 고작 전화 한 번 안 받은 것뿐이지 않은가. 승현은 수업이 다 끝나고 다시 연락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겨운 강의가 다 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였다.
“……?”
수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걸 본 승현의 눈이 조금 커지더니, 이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에 동아리 모임 있다던데.”
“오, 다들 갈 거야?”
“글쎄. 동아리 모임은 선배들이 술 많이 먹여서 싫은데.”
“승현아, 너는?”
동기들의 물음에 승현이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난 못 가. 그리고 먼저 돌아갈게.”
“어? 오늘 불금인데?”
“미안, 급한 일이 생겨서.”
“어…….”
차가운 어조로 말한 승현이 매정하게 몸을 돌렸다. 동기들은 그를 붙잡지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봤다.
승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집으로 달려갔다. 다급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휑한 현관이 그를 반겼다.
거실로 가자 수환이 메시지로 말한 피자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손바닥으로 박스 위를 누르니 아직 따끈따끈했다. 수환이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제길.”
계속해서 입술을 깨물며, 승현은 거실 안을 초조하게 왔다 갔다 했다. 학교에서 메시지를 확인한 뒤부터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수환은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약속이 있다고, 곧 돌아온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도 승현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승현은 결국 또다시 위치 추적 앱을 켰다.
***
“스, 승현아.”
수환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하민을 쏘아보던 눈동자가 수환에게 향했다.
“어떻게 여길…….”
“선배.”
눈빛은 마치 누구 하나쯤 죽일 것같이 흉흉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승현이 다소 강압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장 일어나요.”
“하지만… 읏.”
앞에 앉은 하민을 힐끗거리며 망설이자, 승현이 붙잡은 어깨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낮은 음성이 머리 위에 떨어졌다.
“어서요.”
온몸을 찌르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수환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민이 당황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환 씨?”
“아, 저기…….”
그러나 수환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그의 손목을 낚아챈 승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 다신 제 약혼자랑 만나지 마십시오.”
“……!”
하민도 결코 어디 가서 기가 죽는 성격이 아니었다. 로열패밀리의 막내로 사랑만 받으면서 살았고, 오메가라 할지라도 어디에서 무시당한 적도 없으며, 쟁쟁한 알파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사업까지 성공시켰다. 그런데 그런 하민조차 눈앞의 우성 오메가 앞에서는 입도 벙긋할 수가 없었다.
우성이란 게 이런 건가. 하민은 자신을 노려보는 조각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긴장한 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가요.”
“앗.”
짓씹듯 말을 내뱉은 승현은 수환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수환은 그에게 반항도 못 하고 질질 끌려갔다.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페로몬이 화난 기색을 맹렬하게 뿜어대고 있었다.
어떡하지. 진짜 화가 많이 났나 봐. 수환은 눈치를 보며 승현의 손에 이끌려 호텔 밖으로 나왔다.
“…승현아.”
작게 부르자 앞서 걸어가던 승현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 수환을 바라보았다.
“왜요?”
말해야 한다. 다 오해라고. 할아버지가 억지로 선을 보게 해서 딱 한 번 만난 것뿐이라고. 절대 다른 마음은 먹지 않았다고. 그러나 너무나도 싸늘한 기색에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방금 그건…….”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수환을 바라보던 승현의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방금 그거요? 선배가 나 두고 바람피운 거요?”
“바람이 아니…….”
“아니에요? 나 방금 선배한테 소박맞은 거 아닌가?”
승현은 다른 손을 올려 수환의 어깨를 꽉 잡았다. 어깨가 바스러질 것 같은 통증에 수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윽.”
“내가 그런다고 선배를 놔줄 것 같아요?”
“스, 승현…….”
집착과 소유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수환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매섭게 압박하는 페로몬이 숨을 막히게 했다. 수환이 희게 질린 얼굴로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 가려고 했을 때였다.
“저기 저 사람…….”
“……!”
주변에서 호텔 앞에 있는 승현과 수환을 보며 수군거렸다. 여기는 화명의 계열사 호텔로, 국내에서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진수환을 알아본 듯한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수환이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집에 가서, 얘기하자.”
승현 역시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잡고 있던 수환의 어깨를 놓았다. 그러나 손목을 잡은 손은 절대로 놓지 않았다. 수환은 곤혹스러워하며 그를 따라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깨질 것 같은 고요함이 되레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삐리릭.
“윽……!”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승현은 수환을 거칠게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신발장에 어깨를 부딪친 수환이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어깨를 잡은 승현의 손이 거칠게 수환의 몸을 돌려세웠다.
“나 말고 그 오메가랑 결혼하고 싶어요?”
“그런 게, 아니야.”
“호텔에서 만난 거면 그 사람이랑 뒹굴고 싶었나 봐. 내가 방해해서 어떡해요. 아까웠겠네.”
잔뜩 날이 선 말에 수환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니라고 수도 없이 말해 봤자 승현은 믿지 않았다.
“저한테 말하지 그랬어요. 선배가 원하면 나도 얼마든지 뒤 대줄 수 있는데.”
“아니… 윽, 아냐.”
“아니면, 어? 그 오메가한테 박히고 싶었어요?”
승현은 이미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앞이 새빨갛게 변한 그는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환을 잡아 누르며 옷을 벗겼다.
“승현아, 내 말 좀, 윽.”
비싼 정장이 벗겨져 발치에 뒹굴었다. 현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짓밟은 승현이 수환의 새하얀 목을 난폭하게 깨물었다.
“스, 승현아, 여기 현관…….”
“닥쳐요.”
잇새로 짓씹듯이 말한 승현은 수환이 매고 있던 넥타이를 푼 다음, 그걸로 그의 두 손을 묶었다. 당황한 수환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손이 묶인 채 현관문 쪽으로 거칠게 돌려세워졌다.
수환의 뺨이 차가운 현관문에 닿았다. 수환은 손목을 아프게 조이는 넥타이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현관문 위에 어설프게 손을 짚었다.
그리고 동시에 긴 손가락이 애널 안을 난폭하게 파고들었다.
“흐앗……!”
아무 전희도 없이 갑작스럽게 파고든 굵은 손가락이 자비 없이 수환의 안을 꿰뚫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요즘 매일 그곳을 써서 아프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자꾸만 무섭게 구는 승현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승… 흣.”
“그거 알아요? 여기 아침까지 해대서 아직도 존나 부드러운 거.”
“흐읏, 아.”
“이런 몸으로 맞선 보러 간 거였어요? 응? 그 오메가 제대로 안을 수는 있었겠어요?”
꼼짝도 하지 못하는 수환의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런 승현의 눈은 분노와 질투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사실 승현은 단순히 혼자만의 지레짐작만으로 화를 내는 건 아니었다. 로열패밀리들은 오래전부터 정략결혼을 해 왔고, 알파와 오메가가 대를 잇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략결혼이라고 해도, 서로 상성이 맞지 않으면 살을 맞대는 것조차 싫은 게 알파와 오메가들의 습성이었다. 상대방의 페로몬 향이 역겨워서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다면 같이 사는 게 아예 불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항상 선을 볼 때는 서로의 페로몬을 확인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밤을 보내는 게 룰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오늘도 호텔 쪽에 룸을 잡아 놨겠지. 만약 승현이 가지 않았다면 수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수환의 앞에서 환하게 웃던 오메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기대하듯 붉게 물든 얼굴이 떠오르자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건데. 이 사람은 내 건데.
눈앞이 새빨갛게 물든 승현이 눈앞에 보이는 마른 등을 꽉 깨물었다.
“읏……!”
알싸한 통증이 위와 아래로 번졌다. 흉흉한 페로몬이 연신 수환을 찔러댔다. 온몸이 덜덜 떨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똑바로 서요.”
수환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승현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애널을 쑤시는 손가락이 안쪽까지 파고들며 수환을 괴롭혔다. 무너져 내리려는 허리를 승현이 한 손으로 꽉 잡아 억지로 버티게 했다. 수환은 차라리 그냥 주저앉고만 싶었다.
“그래야 선배가 좋아하는 좆 받아먹지.”
“나, 여기서는 싫…, 흐읏!”
손가락이 더욱 깊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수환은 딱딱하고 차가운 현관문에 한쪽 얼굴을 대고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지금의 승현이 화가 난 것도 이해가 가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도 수환은 뒤늦게 자각하고 있었다.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니. 승현과 깊은 관계가 되었을 때 미리 그에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은 자꾸만 서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승현이 자신을 얼마나 상냥하게 대한 건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무섭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자신의 말도 들어 주지 않고 화만 내는 승현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수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승현이 곧 흠칫하고 움직임이 멈췄다.
“…뭘 잘했다고 울어요.”
“흐읍, 그치마안…….”
결국 수환은 엉엉 어린애처럼 울어 버렸다. 얼핏 꼴사납다는 자각은 들었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등 뒤에서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뭘 잘했다고 우냐니까.”
“흐윽…, 흡.”
“하…….”
다시금 한숨을 내쉰 승현이 손가락을 빼내고 수환의 몸을 돌려세웠다. 수환이 넥타이로 묶인 손을 들어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가리려 했다. 승현은 수환의 손을 붙잡아 내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선배.”
“흣, 흐윽, 승현, 아….”
“수환 선배, 진정해요.”
화를 내던 승현은 졸지에 수환을 달래게 되었다. 그도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수환의 얼굴을 보자 더는 매섭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수환을 짓누르던 흉흉한 페로몬이 조금씩 약해졌다. 대신 전처럼 상냥하게 감싸오는 페로몬이 느껴졌다. 수환의 몸에서 점차 떨림이 멎어갔다.
깨닫고 보니 승현이 계속해서 얼굴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수환이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승현아.”
“…선배.”
수환을 바라보는 승현의 눈에는 여전히 흉포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저 매서운 눈을 보면 여전히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용기를 내 입술을 달싹였다. 이대로 오해한 채 승현과 사이가 틀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 할아버지가…….”
“…할아버님이요?”
“너랑 빨리 파혼하라고……. 선 먼저 안 보면 너한테 해코지하겠다 그래서…….”
의외의 말에 승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기업 간의 맞선에 진 회장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뒤늦게 깨달은 승현의 두 눈이 흔들렸다.
“왜… 그걸 먼저 말하지 않았어요?”
“네가 닥치라 그랬잖아.”
말하고 나니 또 서러웠다. 수환의 눈에서 또 눈물이 펑펑 흘러나왔다. 승현이 당황하며 우는 수환을 달랬다.
“미안해요. 난 그런 줄 모르고.”
“흐어엉.”
“수환 선배.”
머릿속을 차갑게 굳어지게 만들었던 분노가 서서히 걷혔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선을 봤던 건 여전히 화가 났지만, 수환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니 마음이 좀 놓였다.
승현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수환의 얼굴을 쓸었다. 아이처럼 우는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자, 곧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다 울었어요?”
수환은 붉어진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애처럼 울어 버렸다는 자각이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배는 울보네요.”
“읏…….”
놀리듯이 붉어진 코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승현이 속삭였다.
문득 수환이 처음 우는 모습을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승현은 수환의 우는 얼굴을 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처음엔 당황했고, 그다음엔 화가 났고, 그다음엔…….
발정했다. 기가 세 보이는 알파의 얼굴이 눈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으니 주체할 수 없는 음심이 동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선배가 할아버님 때문에 억지로 맞선을 봤다는 건 알겠어요.”
“으응.”
수환의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스쳤다. 이제 승현이 화를 내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안심한 모양이었다.
아직 안심하기엔 좀 이른데. 승현이 속마음을 숨기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래도 저를 두고 다른 오메가를 만난 건 용서할 수 없어요.”
“으… 응……?”
고개를 끄덕이려던 수환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스, 승현…, 흡!”
순식간에 입술이 삼켜지고 다소 거칠게 들어온 혀가 입안을 꽉 채웠다. 마치 먹어 치우듯이 이어지는 키스에 수환은 혼이 나갈 것 같았다.
까마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부여잡았다. 그러나 한바탕 울고 난 뒤라 몸에서 힘이 빠진 탓에 격정적인 키스가 점점 버거워졌다. 비틀거리는 수환의 몸을 승현이 꽉 붙잡았다.
“집중해요.”
“흐…, 나, 더는…….”
“안 돼요.”
그리고 조금 놀리듯이 수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선배도 내 허락받고 맞선 보러 간 거 아니잖아요?”
“그건…, 아……!”
몸이 다시 돌려진 수환은 현관문에 상체를 기댔다. 그리고 방금까지 손가락으로 농락당했던 곳이 다시 벌어졌다. 그 생경한 느낌에 수환의 눈이 커졌다.
“여기서는 싫……!”
“허리 들어요.”
“흣!”
승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환의 애널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이제 화를 낼 마음은 사라졌지만, 앞서 말했듯이 수환이 다른 오메가를 만난 건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심술을 부릴 생각이었다.
“아……!”
승현의 것이 안으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뭉툭한 귀두가 벌어진 구멍을 꿰뚫고 점점 안으로 파고들었다. 천천히 진입하는 성기가 수환이 느끼는 부분을 꾹 누르며 지나갔다. 수환은 저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오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자 입안에 고여 있던 침이 흘러내려 손을 묶어 놓은 넥타이를 적셨다.
혹여라도 현관문 너머에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래서 수환은 현관에서 하는 게 싫었고, 지금도 걱정되었다.
그리고 정말 기가 막히게도 그때 들려서는 안 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수환의 귀에 들려왔다. 이곳은 외부인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고급 맨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복도에 사람들이 아예 돌아다니지 않는 건 아니었다.
철저하게 검증된 사람들이기는 하나 관리자나 택배 기사들이 종종 돌아다니며 볼일을 보기 마련이었다. 한껏 예민해져 있는 수환의 귀에 작은 소음이 계속해서 들렸다.
“바, 밖에 사람이… 흣……!”
수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승현이 허리를 밀어붙였다. 굵은 성기가 잔뜩 풀어 놓은 애널 안을 짓이기듯이 파고들며 여린 내벽을 계속 자극했다. 입을 막은 수환이 간신히 신음을 참으며 발끝에 힘을 줬다.
“흐읏.”
“그냥, 후, 들려주지 그래요?”
“싫어, 앗, 싫…, 흑!”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음란한 광경이 펼쳐졌다. 승현은 수환의 미약한 저항 따위 신경 쓰지도 않고 계속 허리를 움직였다. 끝도 알 수 없는 승현의 페니스가 더욱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수환은 눈앞이 점점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봐 봐요. 하, 선배 안이 내 자지에 쫀득쫀득하게 달라붙잖아요.”
“아니, 야…, 흐읏.”
“응? 더 먹고 싶어서 오물오물 씹고 있잖아.”
작게 속삭이는 말은 더욱 수환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몸이 더 흥분하고 있었다. 긴장으로 축 늘어져 있던 수환의 페니스가 단단하게 일어났다. 명백하게 발정이 난 페로몬이 수환의 목에서부터 확 퍼져 나왔다.
“씨발, 아니기는.”
“아흣……!”
수환의 발정 난 페로몬에 눈이 돌아간 승현이 허리를 단번에 쳐올렸다. 그러자 애널 안으로 천천히 진입하던 성기가 한 번에 뿌리 끝까지 들어갔다. 수환이 더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큰 소리를 냈다.
그리고 눈앞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배 속을 꽉 채운 성기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극을 주고 있었다. 마치 그쪽에 심장이 뛰고 있기라도 한 듯 뜨겁고 쿵쿵거렸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정사에 수환의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격한 허릿짓에 수환의 이마가 현관문에 쿵쿵, 작게 부딪혔다. 손을 묶고 있었던 넥타이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저 수환의 팔에 간신히 매달려 함께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수환은 안을 박아대는 성기를 느끼며 쾌감을 좇아 허리를 흔들었다. 이러면 들킬 거라는 걱정보다는 몸 안을 파고드는 성기가 주는 쾌감이 더 커져 갔다.
몇 번이나 허물어지려는 몸을 승현은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집요하게 수환의 안을 들쑤셨다. 눈앞에서 빛이 확, 하고 점멸하자 수환은 더 이상 신음을 참을 수가 없어졌다.
“흐앗, 앗, 아앗……!”
몇 번이나 몸을 섞었으니, 수환이 느끼는 곳을 승현이 모를 리가 없었다. 거친 움직임에 전립선이 집요할 정도로 문질러졌다. 굵은 좆이 그곳을 몇 번이나 짓누르고 쑤셔댔다. 미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원래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수환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타액과 함께 신음을 질질 내뱉었다.
“흐아아, 아아, 승혀나, 승혀……!”
“하, 씹, 선배.”
평소에는 맡기도 힘든 수환의 페로몬이 줄줄 흘러나왔다. 기분이 좋다는 걸 열렬히 표현하려는 듯이 발정 난 냄새를 풍기는 달콤한 페로몬에 승현의 눈이 뒤집혔다.
씨발, 몸이 이렇게 야해 빠져서.
빠득, 이를 간 승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페로몬이 흘러나오는 수환의 목덜미를 꽉 깨물었다.
“흐아앗……!”
단단하게 선 수환의 성기가 움찔거렸다. 너무 큰 자극에 그대로 사정할 뻔했다. 그러나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빳빳한 성기를 감싸 쥐며 옭아맸다.
“아직 가면 안 돼요.”
“흐앗, 아, 가고, 싶…, 아, 아아……!”
승현이 손가락을 세워 귀두 끝을 꾹 눌렀다. 수환의 몸이 진저리를 치듯이 덜덜 떨렸다. 내보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을 단단하게 막은 손가락은 수환이 편해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가고 싶어? 응?”
“읏, 하으, 제발.”
잠시 허리를 뭉근하게 돌리던 승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손가락을 떼 줄 것 같은 말투에 수환은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그런데도 승현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럼 졸라 봐.”
“하으, 아, 제발.”
“예쁘게 졸라야지. 수환아.”
“흐읏.”
귓가에서 속삭이는 말에 허리가 덜덜 떨렸다. 이제는 그저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찼다. 수환이 흐릿한 눈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가, 가고 싶… 가고 싶어요.”
“가긴 어딜 가. 똑바로 말해야지.”
“흐으읏……!”
승현이 탐탁지 않은 어조로 말하며 손가락에 힘을 줬다. 그러자 현관문에 상체를 기댄 수환이 몸을 부르르 떨며 제 이마를 차가운 철문에 문질렀다. 지나치게 심한 쾌감은 오히려 고문과도 같았다. 헐떡이던 수환이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싸고…, 흑, 정액 싸고 싶어요.”
천박한 말을 하면서 아이처럼 조르자, 그제야 승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가 조롱하듯이 말하며 손가락에 힘을 살살 풀었다.
“지금 다 큰 어른이 현관에 싸고 싶다고 말한 거 알아요?”
“흐으, 아아…….”
“조금만 더 참아요.”
승현도 이제 더는 참기 힘들었다.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다시 세게 쳐올렸다. 퍽, 퍽, 승현의 성기가 빠르게 안쪽을 쑤셨다. 다시 시작된 추삽질에 수환의 몸이 종이처럼 나부꼈다.
“아윽, 앗, 아, 아아!”
수환은 이젠 완전히 바깥은 신경도 쓰지 못하고 현관문에 몸을 기댄 채 신음을 내질렀다. 사정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니 온 신경이 깊숙한 곳에 몰리는 듯했다.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수환은 자신이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허리를 튕기기 바빴다.
“하, 존나 조여.”
“흐으으, 읏, 아아, 아!”
“왜 이렇게 야해 빠졌어요, 응? 누가, 후, 이렇게 야하래.”
또 누굴 유혹하려고.
승현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꽉 잡은 골반에 승현의 손 모양대로 자국이 남을 것 같았다. 집착과 소유욕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제가 움직일 때마다 튕기는 허리를 끈질기게 노려보며 성기를 밀어 넣었다.
퍽, 퍽, 퍼억, 살갗이 부딪치는 적나라한 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곧 승현이 깊숙하게 허리를 묻었다. 골반을 잡았던 손이 수환의 배를 꾹 누르며 단단히 붙잡았다.
“하으윽……!”
수환이 사정을 못 하도록 막은 손은 여전했다. 수환의 눈앞에 새하얀 빛이 터지고, 이내 까맣게 점멸했다. 그는 사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못지않은 쾌감을 느꼈다. 아니, 그보다 더 커다란 쾌감에 온몸이 집어삼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흐으읏, 아, 아아……!”
“큭……!”
평소보다 더욱 조여드는 내벽에 승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땀범벅이 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여린 살을 빨아올렸다. 너무 달아서 입안이 마비될 것만 같다.
더욱 거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더 깊은 안쪽까지 찌르고 짓이기고 싶은 욕구가 승현의 속에서 맹렬하게 솟구쳤다. 그 역시 어느 순간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았다.
“아아앗, 아……!”
“읏, 선배……!”
허리를 앞으로 밀어붙인 승현이 몸을 굳혔다. 수환은 꼼짝도 못 하고 애널 안을 적시는 정액을 느껴야 했다. 내벽에 분출된 뜨거운 액체가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걸 느끼며 수환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 온몸을 휩쓸고, 수환의 내벽이 정액을 뿜는 승현의 페니스를 꽉 조였다.
마치 그 역시 사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수환의 성기는 벌이라는 명목으로 승현의 손안에서 자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수환은 지금 순전히 뒤로만 오르가즘을 느낀 것이었다.
승현은 아무 말 없이 사정의 여운을 느끼며 수환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수환은 완전히 얼이 빠져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의 등을 애무하던 승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뒤로만 간 거 알아요?”
“흐으, 아, 이, 이상해.”
“이렇게 좋아하는데 벌은 무슨 벌이야.”
“조, 좋은 게 아니라, 흣, 아아아아.”
승현이 놀리듯이 귀두 끝을 막고 있던 손가락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그러자 분출하지 못한 정액이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억지로 사정을 막았을 때보다 더 죽을 맛이었다.
“제대로 가고 싶어요?”
“흐으, 제발, 제발.”
“그럼 저랑 약속해요.”
“무, 무스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통에 가까운 쾌감에 허우적거리는 수환의 눈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여전히 수환의 안에 성기를 밀어 넣은 채로 승현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다시는 맞선에 나가지 마세요.”
“그, 그건…….”
“대답해요.”
“흐아…….”
수환이 아주 조금 남아 있던 이성으로 망설이자, 승현이 자비 없는 손길로 수환의 좆을 꽉 잡았다. 그러자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페니스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알았어. 안 갈, 안 갈 테니까, 제발.”
“정말이죠?”
“으응, 정말, 정말이야.”
결국 수환은 승현이 원하는 대답을 하고서야 그토록 염원하던 절정을 맞볼 수 있었다. 승현의 손안에서 하얀 정액을 분출한 수환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흐으읏, 흐읏…….”
똑바로 서지 못하는 수환의 몸을 승현이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그러는 탓에 아직도 둘은 아래가 연결되어 있었다. 사정의 여운에 휩싸여 몸을 떨고 있던 수환은 자신의 안에 박힌 성기가 점점 크기를 키우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선배.”
“하아, 하…….”
“수환 선배.”
수환은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떴다. 이제 지쳐서 그냥 바닥에 누워 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차가운 현관문에 기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조금씩 인지되기 시작했다. 밖에 누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큰소리로 신음을 내지르던 조금 전의 자신도 말이다.
“이제 자리 옮길까요? 계속 여기서 하는 건 싫죠?”
“나, 난 이제 더는…….”
“무슨 말이에요. 이제 시작인데.”
“하앗.”
승현이 허리를 조금 움직이자, 젖은 내벽을 긁으며 성기가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액으로 젖은 안쪽은 뜨겁고 질척거렸다. 빠져나가려는 성기를 놓치지 않으려 수축한 내벽이 승현의 것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거 봐요. 선배 아래 입도 이렇게 아쉬워하는데.”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빼요?”
“흣.”
정말로 빼내려는 듯 두툼한 귀두가 애널 끝을 빠져나올락 말락 했다. 그러자 내벽이 더욱 수축하며 귀두 끝을 꽉 물었다. 수환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낮은 웃음소리를 흘린 승현이 그대로 다시 허리를 앞으로 밀며 기둥을 한꺼번에 박아 넣었다.
“흐앗!”
“이번엔 침대 가서 할까요?”
“흐읏, 으응.”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수환이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은 기분 좋은 얼굴로 수환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자신이 만든 붉은 자국을 혀로 길게 핥았다.
***
“으으응.”
옆으로 돌아누운 수환이 웅얼거리는 신음을 흘렸다.
수환은 잠투정이 꽤 심한 편이었다. 어슴푸레한 실루엣을 가만히 눈으로 훑던 승현이 손을 뻗어 수환의 몸을 뒤에서 껴안았다.
“으응…….”
그러자 몸을 작게 뒤척이던 수환이 이내 잠잠해졌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승현이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었다. 진 회장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에게서 수환을 빼앗아 갈 수 있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힘이 있고, 반면 지금의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선배.”
“으음.”
“수환 선배.”
작게 속삭이는 말을 수환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승현은 계속해서 속삭였다.
“진수환.”
“…….”
“수환아.”
퍽이나 공허하고 허무한 짓이었다. 그러나 멈추지 못했다. 승현은 가질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렀다.
“으음, 승혀…….”
그때,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수환이 중얼거렸다. 공교롭게도 그의 입에서도 승현의 이름이 나왔다. 대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승현이 품에 안은 수환의 몸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할 수 있다면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집어삼키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승현의 눈이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