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대답 좀 해 봐.”
내뱉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온몸이 차게 식는 듯했다. 한우주는 대답 대신 앓는 소리만 몇 번 흘렸다. 나는 한우주가 내게 기대도록 한 뒤, 상처 부위를 살폈다. 다친 손을 감싼 흰 셔츠가 온통 붉게 물들다 못해 푹 젖어 있었다.
‘이, 일단 바닥에 눕힌 다음에…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지?
단순한 응급처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저 빨리 구조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양손으로 한우주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러곤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 그저 불안함을 희석하기 위한 발악에 불과했다.
중간중간 시스템에게 빌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죽은 사람을 살릴 정도로 전지전능하다면, 지금 당장 한우주를 구해 줄 수 있겠느냐고, 억지를 부렸다. 망할 시스템은 응답하지 않았다.
지독하다. 오늘 겪은 모든 일이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지독했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 갔다. 그중에는 당연히도 윤태현에 관한 것 역시 있었다.
‘…그래, 한우주.’
살며시 감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가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렸는지, 이제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아.’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을 검은 감정이 가슴을 세게 짓눌렀다. 숨이 조금 막혀 왔다. 날카롭게 선 신경이 피부 곳곳을 찌르고, 손끝이 떨려 올 즈음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
“하, 하하…. 우주는 어딜 가고 현우 너만 온 거니?”
나는 다시 윤태현을 찾았다. 윤태현은 조금 전까지 실컷 흐느끼고 있던 주제에 나를 발견하자마자 허세를 부렸다. 윤태현은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을 했다.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흩뿌려 대는 것이다. 끝없이 쏘아 대는 은근한 협박과 회유. 그중 그 무엇도 내게 와닿지는 않았다.
선생님 말씀을 무시하면 안 되지…. 윤태현은 변함없이 역겹게 말했다.
“그, 그러고 보니 현우 네게 묻고 싶은 게 있단다.”
언제까지 저 자식이 하는 말을 들어 주어야 하는 걸까. 슬슬 닳아 가는 인내심에 한숨을 내쉬었을 때, 윤태현이 운을 뗐다.
“이상해…. 온통 이상한 것투성이야. 분명히 너는 죽었을 텐데.”
“…….”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직접 느꼈는데 말이야. 넌 죽었었어. 아직도 네 목을 조르던 감각이 선명하단다….”
윤태현이 숨을 헐떡였다. 여태 움직이지 못하는 걸 보면 다리가 부러졌던가, 했겠지. 고통에 정신이 흐려지기라도 한 걸까. 윤태현이 다시 횡설수설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말려무나…. 죽이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화가 조금 났을 뿐이지. 벌이 약간 과하긴 했어. 그건 인정하마.”
공허한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더 확실히 하는 거였는데.”
“…무엇을요?”
“너. 너 말이야. 현우…. 너와 엮인 이후로 모든 게 엉망이야. 다 너 때문이니까, 널 그냥. 확실하게 죽였어야 했어.”
그렇지만 넌 내가 죽였는데. 분명히, 분명히…. 윤태현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어 갔다. 하여간에, 끝까지 꼴불견이구나.
이쯤 했으면 됐겠지.
조용히 뒤돌자, 약간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경찰 둘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역할은 이제 충분하다는 신호였다. 윤태현에게 더 이상의 볼 일은 없다. 나는 구조 대원이 대기하고 있는 곳, 창고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이어 나타난 경찰 무리를 보고 윤태현은 기겁했을 것이다. ‘아니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다.’라며 비명을 질러 댔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나도… 내가 바라서 이런 게 아니야. 내 탓이 아니라고!”
이후의 역할은 나의 일이 아니다. 윤태현은 적법한 절차를 밟고 마땅한 죗값을 치를 것이다. 범죄의 증거는 너무나도 많았다. 창고에 덩그러니 놓인 밧줄과 내 몸에서 좀처럼 지워질 생각을 않는 묶인 자국들, 그리고 조금 전의 대화까지. 이걸로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겠지.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이 문제로 한우주와 말다툼을 벌인 주제에. 막상 한우주가 쓰러지고, 도착한 구조 대원과 경찰들을 보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한우주의 말마따나 우리는 피해자일 뿐이다. 윤태현의 행방 따위 모른다고 잡아떼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게 맞는 걸 거야.’
나는 한우주와 내가 가장 떳떳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그러니 이걸로 된 거다.
한우주가 알면 조금은 짜증을 부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한우주의 짜증이나마 듣고 싶었다.
그 때문에 윤태현에 관한 생각은 꽤 빨리 떨쳐 낼 수 있었다. 한우주보다 한발 늦게 병원으로 향하며, 나는 그저 한우주가 괜찮기만을 기도했다.
***
‘괜찮은… 거겠지?’
나는 병실 앞에 선 채로 안절부절못하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한우주와 나는 같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고, 한우주는 이미 수술실에 들어간 뒤였다.
조현우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멀쩡했기에, 치료에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가만히 있기 불안했던 나는 곧 찾아온 경찰을 상대로 오늘 있었던 일을 진술했다. 수술을 마친 한우주의 병실을 찾아간 것은, 간이진술을 얼추 마무리한 뒤였다.
‘…….’
그러나 차마 병실 안으로는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병실 안쪽에서 달갑지 못한 이, 임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내용은 명확히 와닿지 못하고 귓가에서 웅웅거릴 뿐이었다.
마주치고 싶지 않다.
오로지 그 생각에 나는 조금 뒷걸음질 치다가 걸음을 아예 돌려 버렸다. 일단 자리에서 벗어났다가 임 회장이 자리를 떠날 즈음 다시 방문할 요량이었다.
툭-.
정신이 없었다. 도망치듯 떠나려 했던 나머지 앞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부딪힌 누군가에게 빠르게 사과했다. 상대방은 어쩐지 말이 없었다.
“…뭐야. 한우주 보러 왔냐?”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확인한다. 상대는 다름 아닌 임도윤이었다. 나는 의외의 사실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임도윤이 지금… 한우주 병문안을 온 건가, 설마? 임도윤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미간을 크게 좁혔다.
“으, 그런 거 아니거든. 난 아버지한테 볼일 있어서 온 거야. 한우주는 그다음이라고. 겸사겸사.”
뭐야, 어쨌든 한우주 병문안 온 게 맞다는 이야기 아닌가? 대충 ‘그렇구나….’ 하고 영혼 없이 대꾸하자 임도윤은 불만스러운 듯 눈을 좁혀 떴다.
“그나저나 너도 환자 아니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투박하게나마 걱정의 뜻을 담은 말이었다. 그에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난… 크게 다친 곳은 없어. 한우주 덕분에….”
그래, 한우주 덕분에. 한우주의 창백한 낯빛이 다시금 떠올랐다. 한우주는 나 때문에 지금 저 꼴인데, 괜찮은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니. 임도윤은 ‘그러냐.’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이어 말했다.
“어차피 아버지는 오래 못 계셔. 금방 가실 테니까 적당한 곳에서 기다리던지.”
“응. 아, 맞다.”
퍼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임도윤에게 빌린 핸드폰. 학교에서 마주치면 돌려주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문제는, 지금 내게 핸드폰이 없다는 것이다. 망할 윤태현이 가져간 것인지, 뭔지.
“저, 저기…. 임도윤.”
“왜.”
“네 핸드폰 있잖아.”
“아.”
임도윤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미안.”
“뭐?”
“네 핸드폰… 이제 없어….”
“…뭐?”
“덕분에 편하게 잘 사용했는데. 오늘 학교에서만 해도 있었거든. 그런데 아마….”
임도윤이 오늘 벌어진 일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납치당했을 때 사라졌다고 말했다가 놀라서 까무러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화를 내겠지. 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데.
미안하다고 싹싹 빌자. 그렇게 마음먹은 때에, 임도윤이 한 손을 휘휘 저었다.
“됐다, 됐어.”
“응?”
“어차피 안 쓰던 거. 하나쯤 사라지든 말든…. 나야 정 필요하면 하나 새로 사면 되는 거고.”
이걸 이렇게 넘어간다고? 임도윤 어디 아픈가?
…라고, 생각한 것이 얼굴에 표가 났나 보다.
“야. 너랑 한우주가 방금 큰일 겪고 온 것쯤은 나라도 눈치로 알아. 환자한테 책임 물을 생각은 없으니까 괜한 걱정하지 마라. 사람을 뭐로 보는 거냐….”
“…미, 미안?”
이게 바로 있는 자의 여유인가? 임도윤이 빌려준 핸드폰은 얼추 보기에도 최신 기종 같았다. 그걸 툭 빌려주고, 잃어버렸다는데도 화 한번 내지 않다니.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어쨌든, 좀 비켜 봐. 나 좀 들어가게. 그리고 너 괜히 이 근처 어슬렁거리고 있다간 아버지랑 마주친다.”
믿기 어렵지만 임도윤은 내게 배려와 걱정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끄덕이며 옆으로 자리를 비켰다. 임도윤은 인사도 하지 않고 나를 지나쳐 한우주의 병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임도윤의 조언에 따라, 병실에서 떨어진 곳에서 한우주의 아버지가 떠나길 기다렸다. 부디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서 오늘의 일을 곱씹기는 싫으니까. 보호자 한 명 없는 조현우의 처지는 이럴 때 더욱 사무치게 다가왔다. 몸은 멀쩡할지언정 마음은 그렇지 못했으니, 곁에 사람이 없는 게 어찌나 서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임도윤의 말이 맞았다. 새벽이 더 깊어지기 전에, 임 회장과 임도윤은 병원을 떠났다.
나는 임 회장이 병원을 떠난 것을 알고도, 괜히 찝찝하여 주변을 한참 살폈다. 그러곤 만나선 안 될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한우주?”
병실 안은 캄캄했다.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으로 어렴풋이 한우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우주는 두 눈을 감고, 고이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