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문을 세게 두드리며 큰 소리를 내어 보지만 밖에선 그 어떤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야악! 사람이 안에 있는데 왜 문을 잠그냐고!!”
이래 봤자 목만 아플 뿐 듣는 사람 없는 거 알고 있다. 그러나 울화가 치밀어 소리라도 질러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구석에 콕 박혀 있었다고는 해도…, 조금만 둘러보면 금방 발견했을 텐데.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불은 전부 꺼져 있고 문까지 잠겨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상황이지 않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괴담 도입부에나 나올 듯한….
부스럭.
‘부스럭?’
밖에서 난 소리가 아니다. 도서실 내부 어딘가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미, 미친. 뭐야? 고양이라도 들어왔나? 전등 스위치 어딨지? 보통 문 근처에 있을 테니까…. 벽을 더듬으며 살금살금 걸었다.
아직도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부지런히 땅을 적시는 빗소리가 음산하게 들렸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 달빛조차 비치지 않으니 그야말로 완전한 어둠 속에서 헤매는 꼴이다.
턱, 손에 무언가가 걸린다. 아마도 전등 스위치일 것이다.
저벅, 저벅.
동시에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도서실에 울려 퍼졌다. 썅, 뭐야? 내가 잘못 들었나? 발소리? 발소리 맞지?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이…, 이 미친.’
불이 안 켜진다. 고장 났나? 왜 하필 이럴 때? 나 무슨, 조연 주제에 히든 이벤트 조건이라도 충족한 건가? 귀신 등장하는 뭐 그딴 거?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하고 넘기자니 여긴 게임 속이라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다. 울고 싶다. 나는 겁에 질려 긴 도서실 책상 아래에 웅크려 앉아 몸을 숨겼다. 공포 영화 볼 땐 주인공이 이러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아주 똑같은 짓 하고 있다. 야, 전개가 뻔하잖아. 막, 책상 아래 하나하나 확인해 본다거나, 갑자기 검고 긴 머리카락이 스르륵, 책상에서 흘러내리는….
“현우?”
“…….”
“현우야?”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이성은 진작 나를 두고 도망가 버렸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긴 한데 분별할 정신이 없었다. 아는 사람 목소리 흉내 내는 귀신 뭐 그런 거냐?
‘도서실에 소금 없겠지? 썅, 지금이라도 폰으로 퇴마 방법 서치…. 아, 내 폰 가방에 있지.’
저벅….
바로 앞에 누군가의 다리가 보이고, 내 쪽으로 번쩍이는 빛이 쏘아졌다. 으아아아악 미친…! 나는 반사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의자를 귀신의 다리를 향해 힘껏 밀치고 말았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퍽,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뭐야? 여기 귀신은 물리 공격도 통하나? 그렇다면 좀 덜 무서운데?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안태원 상상력 참 이상한 데 써먹네.
내 앞의 귀신…, 아니 사람은 정강이를 정통으로 맞았나 보다.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끙끙대다가 내가 밀친 의자에 털썩 앉아 버렸다. 그리고 한숨 소리가 들렸다.
“현우야, 나야…. 서연준.”
엥?
“서연준이라고?”
“응….”
“네가 왜 여기 있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비쭉 내밀었다.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인다. 그러자 서연준이 플래시 켜진 핸드폰을 근처에 두었다. 시선에 서연준의 얼굴이 들어온다.
“야자 끝나고…, 너 아직 있는지 확인하러 왔지.”
서연준이 정강이를 슬슬 문지르며 말했다. 여기 와서 사람을 꽤 자주 패는 것 같다. 맹세코 의도한 적은 없지만.
‘저거 진짜 귀신 아니겠지.’
난 귀신 같은 거 안 믿고 안 무서워한다. 단지 여긴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이니까 혹시 몰라서 이러는 거다. ‘메뉴’, 그리고 ‘지도’를 열자 서연준의 도트 캐릭터가 학교에 멈춰 있는 것이 보였다. 으음…, 진짜 서연준이 맞겠지?
아니, 잠깐만. 한우주 도트 캐릭터는 집에 가 있네? 얘 혼자 집 간 건가? 내가 처자느라 한우주 연락을 못 받았나?
“현우야? 괜찮은 거 맞지? 거기 안 불편해…?”
“…지금 나가려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책상 밑에서 나왔다. 그래 봤자 기는 모양새라 참 볼품없겠지만. 무슨 말도 못 하고 서연준 근처에 주뼛거리며 서 있자, 서연준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나 때문에 놀랐나 보네. 미안.”
“아니, 뭐…. 별로 안 놀랐어.”
…잠깐.
“그런데 서연준 너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야? 문 잠겨 있던데?”
“아, 그게 일이 살짝 복잡하게 돼서….”
뭐래, 수상한데? 나는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 책장 옆에 섰다. 손만 뻗어 500페이지는 돼 보이는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가 손목 꺾일 뻔했다. 개 무겁네. 이 정도면 무기다. 저게 만약 이벤트성으로 나온 귀신이면 물리 공격으로 퇴치해 버릴 것이다. 서연준인지 뭔지 하는 것의 말이 빨라졌다.
“문 잠긴 지 얼마 안 됐어. 불은 번개 한 번 크게 치더니 꺼진 거야. 아마 학교 전체가 정전된 것 같아.”
“…….”
“진짜야. 난 야자 끝나고 곧장 여기 온 거고. 네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깰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 아까는 책 구경 중이었어.”
“쭉 여기 있었는데 문이 잠기게 그냥 뒀다고?”
“그건… 나도 할 말이 없어…. 경비 아저씨가 그냥 잠갔단 말이야. 안쪽은 살펴보지도 않고.”
“갇혔는데 태연히 책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이 말이야?”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게다가 정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열릴 테니까….”
“하….”
약 500페이지짜리 무기를 책장에 다시 꽂아 놓았다. 적어도 혼자 갇히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나는 힘 빠진 걸음으로 내가 잠들었던 자리로 향했다. 핸드폰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서연준이 뒤따라와 말을 붙인다.
“현우 겁 많구나.”
“그런 거 아니야. 조심성이 많은 거지.”
“아, 놀리려는 의도는 없었어. 그냥 동생 생각이 나서. 우리 막내도 겁이 많거든.”
“난 겁 많은 게 아니라니까?”
설마 지금 네 막냇동생을 나랑 겹쳐 보고 있는 거냐? 서연준네 막냇동생은 8살이다. 어이가 없어 따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아 내고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역시나, 한우주가 연락을 잔뜩 해 놨다.
“연준아. 나 잠시 통화 좀.”
“응? 알았어.”
서연준이 눈치껏 물러난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한우주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한우주」
“아씨 깜짝….”
딱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에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보자 식은땀이 나는 것만 같다. 아, 내 쪽에서 연락하려고 했는데. 한우주의 민첩성 덕분에 마지막 면죄부가 사라지고 말았다. 한 소리 하겠지? 안 할 리가 없지. 피하고 싶다. 피해 봤자 업보만 더 적립될 뿐이다. 두 눈을 꾹 감고 겨우 전화를 받는다.
“…….”
[…….]
미친…,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더 무섭다. 침묵에 숨이 막힌다.
“…….”
[조현우.]
“응….”
[어디야?]
“학교….”
[학교 어디.]
“도서실….”
한우주가 한숨을 깊게 내쉰다.
[그럼 내가 못 찾은 거네.]
“응?”
[학교 갔었거든. 여기저기 찾아다녔는데 도서실을 생각 못 했어. 그래서 먼저 집에 갔나 싶었는데 집에도 없더라고.]
“그, 학교에서 조용히 시간 보낼 만한 곳이 여기뿐이어서….”
[음, 우산은 없는 거지?]
“응. 그런데 그것보다….”
도서실에 갇혔다고 하면 황당하겠지. 별의별 짓 다 한다고 생각할지도….
[왜? 무슨 문제 있어?]
“심각한 건 아니야.”
[뭔데?]
“…어, 음. 그으러니까, 나 뭐…, 갇혔을걸?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신경 쓰지 마!”
[……뭐라고?]
아. 너무 오버했다.
“…….”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갇혔다고?]
“…그럴걸?”
[도서실에?]
“……그런 것 같아.”
[너 괜찮아?]
“응? 뭐가?”
[겁 많잖아.]
아니, 서연준도 그렇고 이것들이 아까부터 누가 겁이 많다는 거야. 나 정도면 꽤 용감한 편이지.
“완전 괜찮거든?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
갑자기 소리가 끊겼다. 뭐지, 전화 끊겼나? 확인해 보니 아직 통화 중이다.
“여보세요? 한우주? 한우주!”
“한우주랑 통화 중이야?”
내 목소리가 너무 컸나? 서연준이 기웃거리며 묻는다.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는데 다시 한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같이 있는 게 서연준이야?]
“아…, 응. 어쩌다 보니….”
[20분 정도 기다려.]
“뭐?”
[금방 갈게.]
“응? 잠깐만. 한우주? 여보세요?”
이번엔 정말로 전화가 끊겼다. 학교로 온다는 건가? 불 꺼진 학교에 아침까지 있기는 싫으니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근데 인사도 안 듣고 끊어 버리냐.
「조현우: 조심해서 천천히 와」
메시지 한 통을 보낸다. 날씨가 짓궂어 길을 서둘렀다가 사고라도 날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답장이 오기는커녕 메시지 옆 숫자 1도 사라지지 않아 더 불안해졌다.
‘한우주 얘는 왜 이렇게 급해? 딱히 위험한 상황도 아닌데.’
…한우주잖아. 조심해서 잘 오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자. 술렁이는 마음을 달랠 겸 짐이나 정리하기로 했다. 여태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노트와 교재들을 챙기려는데 주변이 캄캄하니 영 불편하다. 그러자 서연준이 내 쪽으로 플래시를 비춰 주었다.
“아, 고마워.”
“뭘. 방금 전화한 거 한우주야?”
“응? 응. 맞아.”
주섬주섬 가방에 챙기고 있자니 서연준이 볼펜 하나를 내민다.
“이거, 아까 네 근처에 떨어져 있더라고.”
“자다가 떨궜나?”
볼펜까지 받아 챙기고선 자리에 앉는다. 이제 한우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서연준은 내 맞은편에 앉고는, 책상 위에 플래시가 켜진 핸드폰을 올려 두며 말했다.
“한우주가 이리로 온대?”
“응.”
“다행이다.”
“응….”
그리고 쭉 정적이다. 내가 서연준이랑 무슨 말을 하겠냐. 분위기 어색해 죽겠네….
“별일이네.”
“어?!”
어색함을 몰아낼 대화거리를 찾다가 실패하기를 반복하고, 결국에는 서연준이 먼저 말을 꺼낸다.
“한우주가 그러는 거.”
“…….”
“아무리 생각해도 한우주는 현우 널 되게 아끼는….”
“너, 너 때문일걸?!”
서둘러 말을 가로챈다. 제발, 한우주랑 조현우의 관계를 생각할 시간에 너와 한우주의 관계부터 재고해 보면 안 될까? 연애적인 쪽으로?
“한우주한테… 너도 여기에 있다고 했거든. 그랬더니 막, 달려오겠다. 날아오겠다. 그러던데?”
“으, 응? 그래?”
“그렇다니까?!”
“전화는 현우 너한테 했잖아?”
“……그건 내가 만만해서 그, 그럴걸.”
“으음.”
서연준이 인상을 살포시 찌푸린다. 또 무언가를 말하려는 기색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던 때에 서연준의 핸드폰이 몇 번 진동했다. 메시지가 온 모양이다. 액정을 확인하자마자 답장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우주 이야기는 대충 넘어간 것 같지…? 다행이다….
“미안. 가족한테 연락이 와서.”
“어? 아니야! 마저 편하게 얘기해. 문자든, 전화든.”
“아냐. 얼추 이야기 마쳤어.”
서연준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가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동생이 여럿인데 막내가 8살이거든. 내가 올 때가 됐는데 없어서 놀랐나 봐.”
“동생이 있구나….”
“여동생 둘, 남동생 하나 있어.”
“마, 많네.”
아는 걸 모른 척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슬쩍 의자를 뒤로 당겨 빛에서 멀어진다. 어둠에 표정이라도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이어 서연준이 건넨 질문은 익숙하고도 곤란한 것이었다.
“그런데 현우 너는 가족한테 연락 안 해 봐도 돼?”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