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혼설 (131)화 (131/138)

131화

“······술사님이··· 이기겠지?”

“글쎄.”

나비가 날아들었다. 화왕의 붉은 손끝에 살포시 앉아 팔랑팔랑 날갯짓했다.

“단순히 권능의 격으로만 비교하자면, 해서가 몇 수는 앞서 있지.”

은근히 손을 든 화왕이 가지런한 손톱에 앉은 나비와 눈을 맞췄다.

“본래 대지를 계승한 건 해서란다. 해원은 해서가 흘린 일부를 받았을 뿐.”

하지만, 하고 모란이 부연했다.

“인간의 다툼에서도 힘 좋고 체격이 크다 해서 반드시 이기는 건 아니잖니? 지킬 게 많은 쪽은 그렇지 않은 쪽보다 약자이기 마련이라.”

나비가 떠나가고 화왕이 아무개를 돌아봤다.

“내가 보여 준 풍경과 지금 네가 보는 현실 간의 괴리는, 순전히 해서가 만들었단다. 내가 보여 준 것처럼 되지 않도록. 모든 여파를 감당하고 있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술사는 도자역에 걸렸다. 아무개를 도왔기 때문에.

도자역에 걸리고부터는 신경마저 굳은 듯 통각이 둔해진다. 팔다리가 부러져 뚝뚝 끊겨도 아무렇지 않고 절벽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개도 일찍이 경험했기에 알고 있었다.

한데 같은 도자역에 걸린 술사는 어찌 이리도 힘겨워하는 것인가?

“속은 이리 진창이거늘. 겉으로나마 평온을 유지하고자 얼마나 애를 쓸는지. 나로서도 짐작되질 않는구나.”

해답은 모란이 알려 주었다. 술사가 힘겨워하는 연유는 단지 팔 하나를 잃어서가 아니다. 

보다 거대한, 온 천하에 드리울 막대한 변혁을 물밑에서 진행하고자. 그 충격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것이다.

화왕의 말마따나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해원의 권역을 술사가 차지하면, 놈의 권능으로 이뤄 낸 저주는 새로운 영주의 치하 아래 발붙이지 못하고 쫓겨날 테니.

다만 염려되는 점은. 과연 그때까지 술사가 버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있다니. 이걸 대단하다 할지 미련하다 할지 모르겠구나. 오롯이 점령전에 몰두하는 것만도 벅찰 텐데.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해서는 그럴 아이가 아니지.”

땅이 뒤집히고 생명이 무참히 휩쓸려도 개의치 않을 이였다면, 애당초 예까지 오지도 않았으리라.

유명경의 영향으로 변해 버린 율해원과 율해서는 상반된 성향을 지녔다. 한쪽은 누가 얼마나 죽든 안중에도 없는 반면, 다른 한쪽은 누구 하나 상하지 않게 지키려 드니. 당연 후자가 불리할 수밖에.

“······화왕님은··· 누구 편이야?” 

“재미있는 질문이구나.”

모란은 흥미롭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무렴, 나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줄 수가 없지.”

눈을 가늘게 뜬 그가 너른 정원을 둘러보았다. 옛일이라도 회상하듯이.

“나는 내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단다. 이제는··· 너무 늦어 버렸지만.” 

해원이 도자역이라는 끔찍한 저주를 내렸음에도. 화왕은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반쪽짜리나마 대지의 계승자로서 군주의 권능을 발휘한 저주이니만큼, 권속인 화왕 또한 저주의 여파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을진대도.

술사가 외딴 전각에서 홀로 앓는 것도 그런 연유였다. 혹여 모란에게마저 도자역을 옮길까 봐. 어떤 도움이나 지원도 받지 않으려고. 

평화 중립지역인 화왕의 정원으로 피신한 것부터 간접적인 도움일는지 모르지만. 여하간 술사는 무뢰한을 자처하며 무단 침입으로 일부 전각을 점거했다. 화왕은 적당히 눈감아 주었다.

“······최소한··· 적 편은 아니란 거네.”

그 정도면 됐다. 아무개가 몇 마디를 더 하려던 찰나.

쿠구궁—···!

땅이 진동했다. 

“봉인이 풀렸구나.”

모란이 중얼거렸다.

“예상보다 한참 이른데··· 아무래도 해원이 곁에 썩 괜찮은 조력자가 있는 모양이야.”

술사는 해원과의 쟁탈전에서 벌어질 피해를 그 자신이 부담하며 외부 영향을 최소화했다. 

즉, 그 여파가 이리 표면에 드러난 자체가. 술사가 감당하는 역치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아무개는 바로 일어나 전각을 향해 내달렸다. 콰앙-! 문이 부서지든 말든 박차고 들어서자 맞은편 벽에 기대앉은 술사가 보였다.

“술사님!”

미끄러지듯 건너가 그의 곁에 앉았다. 거친 호흡이 손에 잡힐 듯 선했다. 

아무개는 반쯤 엎드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에게 손 내밀었다. 맥없이 고꾸라지듯, 꺾여 버린 술사의 얼굴로.

하나 아무개의 손은 차마 닿지 못했다. 안대를 앞에 두고 멈춘 손끝이 갈팡질팡했다.

“술사님··· 힘들어?”

당연히 힘들겠지. 아무개는 겨우 이런 말밖에 못 하는 제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글쎄요.”

술사가 굼뜬 어조로 답했다.

“괜찮아요. ···나름 버틸 만해요.”

실제로 더는 땅이 울리지 않았다. 해원의 봉인이 풀린 순간 잠시 한계치를 넘어섰으나, 다시금 그의 제어하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보통 그런 걸, ‘괜찮다’고 하던가?

“술사님···.”

아무개는 울적해졌다.

“술사님··· 팔이 멀쩡할 때보다, 지금이 더··· 편해 보여.”

마음의 창이라는 눈을 가렸을지언정, 느껴지는 기색이 있다. 항상 술사만을 지켜본 아무개는 알 수 있었다. 

현재의 그는. 비록 몸은 전에 비할 바 없이 고단했으나, 심적으론 과거 어느 때보다 편한 듯했다.

“하하··· 그래요?”

퍼석한 웃음.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 애매하게 멈춰 선 아무개의 손끝에 그의 이마가 살며시 와 닿았다.

“어쩌죠··· 못난 꼴을 보였네요.”

“뭐가, 뭐가 못나··· 술사님, 하나도 안 못났어.”

“제 마음이 편해 보인다면, 참 못났죠.”

겨우 팔 하나 해 먹고 부채감을 덜어 내려는 거잖아요?

“나도 이런 꼴 당했으니 적당히 퉁치자는 속셈이죠. 하하··· 이래서 위선자라는 건가.” 

그의 말소리는 갈수록 자조적인 혼잣말이 되어 갔다. 아무개는 울컥했다.

“위선자가 어때서?”

위선자.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만 착한 체하는 사람.

“술사님한테 위선자라고 지껄이는 놈 중에··· 술사님보다 선행을 많이 한 놈은, 한 명도 없을 텐데.”

타인을 위선자라 욕하는 이들의 속내야말로 얼마나 시궁창인가. 

정작 그 자신은 위선이나마 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으면서. 막상 나쁜 놈은 되기 싫어서 상대를 까 내리려 작정했잖은가. 보편적인 선(善)의 기준이 낮아지면, 저 같은 놈도 무난하다 자위할 수 있으니.

“위선을 이백 년이나 가장해 왔으면··· 그쯤 되면, 그냥 선이야.”

태생적 악(惡)인 흉신이기에 더욱 잘 안다.

세상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악으로 가득하며, 난세는 한층 더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요즘 세상에 이 정도는 다들 하지 않냐며 저 자신을 정당화하기 바쁘다.

그런 세상에서 위선이란, 얼마나 값진가.

“나는, 술사님의 위선에서 태어났어.”

당신이 위선이라 칭한 행위는 숱한 원혼에게 각인되어, 마침내 나란 존재를 잉태했다.

“술사님 괴롭히는 것들은···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아무개는 그의 신 앞에서 맹세했다. 당신을 상처 입히는 것 모두 없애 버리겠다고. 

하나 이 결심에는 한 가지 맹점이 존재했다.

그를 핍박하는 놈들을 없애는 건 무척 간단하다. 한데, 그 박해자가 술사 본인이라면?

당신이 자기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면······

나는, 어찌해야 해?

축 늘어진 몸. 호흡이 차츰 더뎌진다. 

깊고 깊은 어둠으로 침잠해 가던 아무개는 어느 순간, 암흑 밑바닥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아무개는 제 손을 확인하려 했다. 먹물보다 짙은 어둠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하릴없이 캄캄한 암흑 속을 거닐었다. 발밑이 불안하게 일렁였다. 수면 위를 걷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상념에 잠긴 찰나.

발목이 붙잡혔다.

종아리와 허벅지를 타고 올라 어깨에서 머리까지. 무수한 손이 아무개를 뒤덮었다. 그들은 아무개를 보다 깊은 심연으로 끌고 가려 했다.

“······적당히 하지?”

탁, 거슬린다는 듯 쳐 내자 온몸에 달라붙은 손이 단숨에 스러졌다.

느껴진다. 여전히 암흑에 파묻혀 있으나, 수천수만의 시선이 둘러싼 것을 능히 지각할 수 있었다. 당연했다.

저 시선은, 아무개 자신이었으니까.

“······다, 봤지?”

흉신을 괴롭히는 악몽의 본질이자 근원. 

난생처음으로, 아무개는 먼저 나서 악몽과 대면했다. 정확히는 그 악몽을 풀어내는 원혼들을.

“술사님이··· 아파.”

이게 다 율해원 때문이야. 들으란 듯 중얼거린 아무개는 내리 발끝만 보던 고개를 위로 했다.

“난 너희가 싫어.”

밤마다 시끄럽게 울어 대고. 누가누가 불행한가 경쟁이라도 하듯, 생전의 비극을 상기하며 거듭 충동질한다. 이것 보라고. 이래도 인간들을 살려 두고 싶냐고.

모조리 죽여 버리자고.

“정말 싫은데···.”

귀찮고, 성가시고, 번거로운 것을. 

한데 내다 버릴 수도 없다. 이들은 흉신의 근본이자, 그림자였기에. 두통이 심하다고 뇌를 떼다 버릴 수는 없잖은가.

“···율해원은 더 싫어.”

사달의 원인이 해원임을 알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필, 이었다.

하필이면 왜 너야. 

천지간에 나쁜 놈이 얼마나 많은데. 역사에 길이 남을 악인은 물론 일상에 스며든 평범한 악의까지. 온통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고많은 이들 중에 왜 하필 너라서. 내 임을 이리 힘들게 하는지.

“지금부터··· 그놈을 죽일 거야.”

대지의 계승자를 죽이겠다는, 아마 술사조차 쉬이 단언할 수 없을 발언을. 아무개는 덤덤히 내뱉었다. 

“놈을 상대할 때 제일 골칫거리는, 축지술이지.”

여타 술사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축지를 숨 쉬듯 남발할 순 없으니.

반면 화양의 이복형제는 수족을 다루듯 자유로이 축지했다. 

축지술이 난해한 두 가지 이유. 목적지까지 정확한 거리 상정과 극도로 소모되는 신력. 전자든 후자든 두 형제에겐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들 자신이 대지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아무개가 기껏 간격을 좁혀도 해원이 멀리 축지시켜 버리면 끝이다. 때문에 축지술의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파훼법은··· 의외로 간단해. 닿지만 않으면 되니까.”

축지술은 ‘땅을 접어’ 이동하는 술법. 

즉. 지면에 닿지만 않으면, 땅을 접든 뒤집든 상관없다.

이는 상식선에서 명백한 개소리였다.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새조차 종국에는 가지에 앉아 휴식해야 하거늘. 하물며 날개도 없는 인간이 무슨 수로 땅에 발 딛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너희가 필요해.”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아닌 흉신에게는, 가능하다.

혼백은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까닭에. 질량을 가진 물질도 아닐뿐더러 실체를 드러내는 것조차 맘껏 할 수 없는 원혼이었으나, 외부 세계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

“나는··· 너희랑 함께, 싸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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