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폐하께는 무어라 고한단 말이냐.”
깨진 연경을 주워들며 점주가 탄식했다. 맥없이 내딛는 걸음이 무기력했다. 대저 오는 길이 가는 길보다 짧기 마련이건만. 오늘따라 돌아가는 길이 한참이었다.
터덜터덜. 깊은 산중의 만물점으로 향하는데 드나드는 길목이 어째 소란스러웠다. 한둘이 아니다. 최소 수십은 될 법한 인기척.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걸까. 걸음을 재촉하던 점주가 냅다 달음질을 쳤다. 오는 길에 닫아 둔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서둘러 마당에 들어선 점주는 대경실색했다.
주민들이 황제를 끌어내고 있었다.
“예서 뭣들 하는 게야!”
노성을 터트린 점주가 인파를 헤치고 들어섰다. 삿된 것의 출입을 금하는 결계부는, 비술사인 상민에게 무용지물이었다.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외다!”
“보시오, 점주 어르신. 어찌 도자역 환자를 들이신 게요? 마을에 화근을 끼치리란 생각은 않으셨소이까!”
복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은 장정들이 대거리했다. 점주는 흥분한 군중 가운데 한 아이를 발견했다. 서신을 전해 주러 온 심부름꾼. 저 아이가 말을 옮겼을 테지.
주민들이 죽창과 봉 따위로 황제를 후려쳐 끌어내렸다. 멀찍이서 자루에 담아온 돌을 던지기도 했다.
“이놈들이, 저분이 감히 뉘신 줄 알고···!”
버럭 성을 낸 점주가 부적을 꺼내 들었다.
한 맺힌 원혼을 모으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제 몸 하나 건사할 수단은 늘 상비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산 사람한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만, 점주! 멈추시게!”
바닥에 쓰러져 돌팔매를 맞고도 묵묵히 감내하던 황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버려 두게. 어차피 곧 죽을 몸 아닌가?”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한들······.”
점주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황제가 줄곧 저택 내에서 머물렀다면, 이리 들키지도 않았으리라. 짧게나마 남은 여생 편히 보낼 수 있었을진대.
흉신의 수중에서 아이를 구하려 나섰건만, 정작 목숨을 구명 받은 아이의 입방정으로 험한 꼴을 당하게 됐다.
타악-! 돌부리에 맞은 이마가 터지듯 부서졌다. 난세를 종결한 패왕의 말로가, 무지한 촌부들의 돌팔매질에 맞아 죽는 꼴이라니!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점주가 기어이 발을 뗐다. 뛰쳐나간 그가 쓰러진 황제를 보호하듯,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콰직-
돌에 맞은 점주의 뒷머리가 깨졌다. 아래에 깔린 황제가 눈을 홉떴다.
“점주···?”
점주는 천지십경도 안에서 황제와 사생동고했다. 병풍에서 나오고도 목륜의를 만들어 주고 편히 생활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죄인과 그 혈에 조력하는 자 또한 죄인이라.’
황제를 도운 점주가 도자역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맙소사, 어르신까지 도자역에 걸린 겐가?!”
“망설이지 마! 도자역은 불치병이야. 한번 걸리면 끝장이라고!”
돌팔매가 쉼 없이 날아들었다. 두 사람은 피 흘리는 대신 깨지고 부서졌다.
“어리석은 짓을 했군, 그래.”
점주의 품에 가리운 황제가 나직이 말했다.
“이런다고 흡족해할 줄 알았다면 오판일세. 내 진정 원하는 바는 도자역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어 이 땅에서 물리치는 것이니.”
“포기하십쇼. 그런 건 애당초 불가능했습니다.”
“흠. 그새 무언가 더 알아냈나 보지?”
점주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으나, 황제는 재촉하지 않았다.
상대는 사대귀인 중 일인인 만물점주. 겉보기엔 평범한 아저씨였으나, 그가 살아온 세월은 실로 까마득했다. 점주가 불가하다 결론 지었다면, 그만한 연유가 있을 터.
미련을 내려논 황제가 눈 감으려던 찰나.
“아, 아아··· 으아아악!”
심부름꾼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달아났다. 황제와 점주가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흉신이 나타났다.
칠흑 같은 어둠을 도포처럼 두른 흉신이 소리 소문 없이 흘러들어 왔다. 기척이라곤 전연 없는 것이 꼭 귀신인 양했다.
전신이 깨지고 부서져 엉망으로 금이 간 황제와 점주, 그들에게 돌팔매질하는 무리. 흉신은 그 모두를 더디게 훑었다.
발치에 고인 어둠이 크게 술렁였다. 흡사 당장이라도 솟구칠 듯이.
“아무개야, 아니 된다!”
심상찮은 기색에 황제가 흉신을 외쳐 불렀다. 덩달아 점주도 목청껏 소리쳤다.
“저들을 해치면 안 된다! 도자역이 어찌 옮는가는 너도 들어서 알 테지? 우릴 도와서는 아니 된다!”
한낮에도 홀로 밤인 양 창백한 낯이 스르륵 기울었다. 흉신의 새카만 시선이 두 사람을 무겁게 짓눌렀다.
“······누가, 누굴 도와?”
아무개는 거울 보듯, 저 자신을 마주 보았다.
타인의 눈에 비친 흉신은 지극히 무감하고 서늘해서··· 어쩐지 낯설었다.
“물론, 너는 우릴 도울 심산이라곤 털끝만치도 없겠지. 예서 우글거리는 인간 떼가 거슬려서 치워 버리고 싶을 뿐이잖으냐?”
“하나 이 저주 같은 역병이 ‘도움’이라 판별하는 기준을 모르니만큼 신중해야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이날 아무개는 만물점에 들이닥친 인간을 모조리 죽일 작정이었다. 그간 대수롭잖은 결계에 스스로 갇힌 까닭은, 산 사람만 보면 신이 나서 삼키려 드는 원혼들이 좋아 죽는 꼴을 뵈기 싫어서였으니.
즉, 단순한 심술이었다.
이때 당시 흉신은 짜증이 극에 달한 나머지 살심이 심술을 앞질렀다. 바글거리는 인간 떼를 치워 버릴 심산이었고, 그에 동조하듯 원혼들이 한껏 꿈틀거렸으나····
“이걸 주마.”
점주가 작은 철패를 던졌다. 철패는 흉신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내 특별히 제작한 금고를 열 수 있는 기관 장치다. 만물점에 있으니 네 맘대로 꺼내 쓰거라.”
흉신은 철패를 받아들긴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으나, 점주는 개의치 않았다.
“살아온 세월이 있어 모아 둔 것도 벌려 둔 것도 많다. 전부 네게 주마. 돈이든 패물이든 맘껏 쓰고, 옷도 멀끔한 걸로다가 장만하거라. 언제까지 그 꼴로 다닐 순 없잖느냐?”
대신, 하고 점주가 운을 뗐다.
“부고를 전해다오.”
내겐 남은 피붙이가 없다만, 이분은 다르잖으냐.
“도와 달라는 게 아니다. 이건 거래다. 전 재산을 내어줄 테니 딱 하나, 부고만 전해다오.”
내 평생 이리 밑지는 장사는 해 본 적 없거늘. 손해가 막심하다. 말년에 이게 웬 고생이냐. 점주가 연신 투덜댔다.
“제발 그때까지만이라도 고약한 성질머리 좀 죽이고, 살생도 금하고.”
점주가 황제의 부고를 전해 달라, 말할 적에도 돌팔매질은 여전했다.
반파된 몸뚱이를 붙들고 겨우 버티던 점주의 관자놀이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퍼억-! 얼굴의 삼분지 일이 부서지고, 그의 볼멘소리도 더는 들을 수 없었다.
온몸이 바스러지는데도 두 사람은 흉신을 줄곧 응시했다. 그 시선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나서지 말아라.
결코 우릴 도와선 안 된다.
“저건 또 뭐시다냐? 영 불길해 뵈긴 한데···.”
황제와 점주의 육신이 거진 부서졌을 무렵. 한숨 돌린 주민들이 그제야 흉신을 어찌할까 논의했다.
“어르신이 또 요상한 걸 수집하셨나?”
“저것도 만물점에서 나온 것 같은데··· 설마 도자역 옮은 거 아녀?”
불안한 시선이 오고 간 끝에 돌멩이 하나가 흉신에게로 날아들었다. 도중에 솟구친 어둠이 그 돌을 낚아챘다.
콰직- 공중에서 으스러진 돌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주민들이 기함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그건 재앙을 불러오는 흉신이다!”
반쯤 부서진 턱으로 점주가 소리쳤다.
“깡그리 뒤지고 싶거들랑, 어디 한번 건드려 보려무나. 오늘 아주 줄초상 치르겠구먼!”
점주가 엄포를 놓자 주민들이 찜찜한 낯으로 흉신과 거리를 벌렸다.
“영감님은 또 어디서 저런 걸 주워오셨대.”
낮게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점주가 코웃음 쳤다. 뭐어? 누가 뭘 주워 와? 그가 빈정거릴 때마다 아래턱에서 바스러진 조각이 후드득 떨어졌다.
“저건 늬들처럼 평범한 악귀들이 낳은 흉신이니라! 예사 재앙이 아니야. 그야말로 인재(人災)로다!”
누구나 언제든 그럴싸한 계기만 주어진다면, 능히 악귀가 될 수 있다. 하하 호호 정답게 어울리던 산 아래 주민들이, 점주가 도자역에 걸리자마자 돌로 쳐 죽이는 이때처럼.
돌팔매가 날아들었다. 점주의 눈이 망가졌다.
아무개는 더 이상 그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없었다. 돌팔매질에 온몸이 바스러질 때까지 그저 머무를 따름이었다.
다만 한쪽 귀가 남은 탓에 달갑지 않은 소리가 자꾸 흘러들었다. 복면 쓴 주민들이 떠나가는 발걸음. 황제의 허리춤에서 패검을 꺼내 가는 소리까지.
살천병이라고도 불리는 희대의 역질은, 그렇게 만물점주마저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저승과 척을 진 그의 혼이 무사히 삼도천을 건널 수 있을까.
길고 지난한 노역의 종장일는지. 혹은 그가 수집한 원혼들이 그랬듯, 이승을 하염없이 떠돌는지.
예나 지금이나 아무개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가 마지막 거래로 내걸었던 재물도 마찬가지.
아무개가 황제의 부고를 전하려던 건 단순 변덕이었다. 덕분에 술사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변덕.
다만 한 가지. 조금 아쉬운 점은··· 진작 망가진 줄 알았던 점주의 귀가 제법 오래도록 트여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만약 그때 당시에도 알았더라면··· 물론 그 시절 자신은 점주의 귀가 들리든 말든 아무런 감흥도 없었을 테지만. 지금의 아무개라면, 마지막 인사 정돈 남겼으리라.
수고했다고.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