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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혼설 (85)화 (85/138)

85화

툭, 데구르르⎯

귀장군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절단면에서 피가 솟구쳐 대전이 붉은색으로 어지러웠다.

“······아랫것들이 정리하기 힘들겠습니다. 다음부턴 밖에서 죽이는 게 좋겠군요.”

“하하하, 군사가 옳아. 내 지척에 두고 시시때때로 희롱하고자 대전에 둔 걸 깜빡했지 무언가. 남은 것들은 모다 밖에서 잘 처리할 테니 염려 놓으시게.”

장령의 명에 노복이 귀장군의 수급을 새 함에 담았다.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종복들은 청소 도구를 가지러 대전을 나섰다. 그때.

차랑.

쇠사슬이 흔들렸다.

군사와 장령이 우뚝 멈췄다. 무심결에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긴장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신중하게 뒤돌아보았다.

무릎 꿇은 귀장군의 반신이 그들을 향해 절하듯 기울어져 있었다. 수갑에서 기둥까지 연결된 사슬이 팽팽히 당겨 쓰러진 시신을 지탱했다.

“······하, 괜히 놀랐군.”

“서둘러 시신을 치우라 하겠습니다.”

고개를 바로 한 두 사람은 민망한 듯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그들이 다시 걸음을 떼던 찰나.

차랑.

또. 쇠사슬이 흔들렸다.

사슬이 느슨해진 듯하다는, 군사의 의견에 장령이 동조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재차 나아가려던 순간.

차르르륵⎯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신경질적으로 돌아선 그들은, 이내 경악하고 말았다.

좀 전까지 바닥에 엎드리듯 기울어졌던 장군의 시신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

비명을 지를 엄두도 못 내고 굳어 버린 장령과 군사. 그들을 향해 시신이 다가갔다. 하지만.

철컥. 철커덩, 철컥···!

기둥에 고정된 사슬이 방해되어 시신은 바로 서지 못하고 번번이 주저앉았다.

목이 달아난 시신이 움직인다. 지독히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넋을 놓은 그들 중 군사가 먼저 정신차렸다.

“서두르십시오! 아직 육신이 구속되어 있을 때 처리해야 합니다. 달군 쇳물을 들이붓든, 사지를 잘라 움직이지 못하게 하든···”

콰직, 콰드득!

기둥 허리에 칭칭 감긴 쇠사슬을 따라 나뭇결이 죄이더니 우지끈, 깊이 패였다. 귀장군이 내디딘 마루가 무너졌다. 실로 귀신같은 괴력이다.

체면치레할 겨를도 없이. 장령과 군사는 쫓기듯 달아났다. 승전 연회의 흥겨운 가락은, 사슬이 기둥을 파고들다 못해 무너트리는 굉음에 묻혔다.

이 순간, 장령의 권위를 높여 주던 무수한 장지문은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와 장령은 넓디넓은 대전을 힘껏 내달렸다.

탈출이 머지않았다. 술과 음률에 취해 기분 좋게 회포를 풀던 면면이 보였다. 수하들을 향해 장령이 입을 벌렸다. 소리쳐 명을 내리려던 찰나.

차르륵⎯!

마룻바닥을 긁어낸 쇠사슬이 반원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뱀이 먹이를 낚아채듯, 사슬이 장령의 얼굴을 덮쳤다. 굵직한 쇠사슬에 얻어맞은 코가 무너지고 이가 깨졌다.

그사이 군사는 대전 밖으로 도망쳤다. 장령은 최후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문지방에 처박혔다. 연회를 즐기던 수하들이 불콰한 얼굴로 대전을 돌아보았다.

“······장령···?”

차르륵, 차륵-

목 없는 시신이 쇠사슬을 갈무리하며 걸어 나왔다. 피칠갑을 한 얼굴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장령. 그 등을 짓밟은 시신이 수갑 찬 손으로 장령의 몸을 더듬었다. 등허리서부터 척추를 타고 어깨까지 다다른 손이 마침내 머리를 찾았다.

“끅, 끄으으흑···!”

머리통을 잡아 돌리자 장령이 숨넘어갈 듯 꺽꺽댔다.

천천히, 잔인하리만치 느리게. 장령의 머리가 뽑혀 나왔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분리된 머리통에선 하얀 척추가 살을 발라낸 생선 가시처럼 따라붙었다.

몸서리쳐지는 광경에 경악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늑대를 만난 양 떼처럼 줄행랑치는 인파를 향해 시신이 어깨를 들었다. 머리가 있었다면, 고개를 드는 동작과 같았으리라.

장령의 머리를 내동댕이친 시신이 대전 앞 연회장으로 나왔다. 곧이어 원수의 피에 젖은 사슬을 거머쥐고 휘휘 돌렸다. 붕, 부웅⎯ 말벌이 비행하듯 위협적인 파공음이 도주하던 군중을 덮쳤다.

살아생전 귀장군이라 불린 백운은 무예십팔반에 능통하며 맨손 권법은 물론 마상류까지 섭렵한, 하늘이 내린 무재(武才)였다.

그 육신이 사슬을 휘두르자 덧없는 목숨이 잘라낸 곁가지마냥 스러졌다. 눈이 없는 귀장군은 사슬에 걸린 감각을 더듬어 바동거리는 사냥감의 머리를 뽑아냈다.

차륵, 차르륵···

손목에 찬 수갑 사슬이 길게 늘어져 바닥을 쓸었다. 승전 연회를 피로 물들인 시신은 생전의 버릇이 남은 양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두리번거렸다. 마치 무언갈 찾듯이.

살아생전 신기에 가까운 무용으로 경외를 일으키며 피아 불문 귀장군이라 불리운 사내는, 사후 진정한 귀장군(鬼將軍)으로 화하였다. 그를 구속하던 양팔의 사슬만이 목 없는 장군을 따라붙었다.

차르륵, 차르륵······

두 줄기 붉은 선혈을 지면에 그리며.

***

정체불명의 기척이 어슬렁댄다.

······거슬려.

부지불식간에 발목을 낚아채 내동댕이쳤다. 손안에 잡힌 몸은 예상외로 작고 가벼워 다루기 쉬웠다.

콰당탕! 거칠게 내던진 몸이 창호를 부수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즉시 뒤쫓아 마당에 나동그라진 몸을 잡아챘다. 한 손은 목덜미를, 남은 손은 뒤통수를 잡고 머리채 뽑아내려던 찰나.

어깨가 붙잡혔다.

“···아무개 님.”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술사가 아무개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정신이 들어요?”

술사에게 반쯤 안기다시피 한 채로. 아무개는 눈만 끔뻑였다.

얇은 침의 차림인 그는 비뚤어진 삿갓을 고쳐 쓸 겨를도 없이 대강 얹어 놓은 채였다. 서두른 기색이 역력하기에 어쩐 일인가, 의아해하던 아무개는 뒤늦게 제 손이 무언가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절한 채 축 늘어진 꼬마. 칠교 남매의 쌍둥이 형제 중 동생 쪽이다.

이름이··· 사현이던가?

손에서 힘을 빼자 사현이 지면 위로 쓰러졌다. 창호문에 부딪혀 다친 걸까.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아무개가 정신을 차리자 가볍게 한숨을 내쉰 술사가 어깨에서 손을 뗐다. 사현에게 다가간 그는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상처를 확인했다.

“피부가 쓸렸네요. 다행히 상처는 크지 않아요. 마윤 님께 보여드려야겠네요.”

주춤주춤. 아무개가 뒷걸음질 쳤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사현을 안아 들던 술사가 고개를 뒤로 했다.

“아무개 님?“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한 순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아무개는 달아났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전력을 다해서.

······어떡하지.

높은 나무 가지에 웅크려 앉은 아무개는 우울의 바다를 유영했다.

악몽에 깊이 몰입하면, 깨어난 후에도 그 여운에 시달린다. 자신을 망각하고 악몽 속 인물에 동화되고 마는 것이다.

알면서도 지난 밤 굳이 베개를 찾지 않은 까닭은 여럿인데. 인적이 드물다 못해 없는 저자도 사정과 사원 내에서도 구석진 위치의 홍의당, 그리고 술사다.

눈을 뜨고도 악몽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심한 자신이. 어째서인지 술사만 보면 즉시 깨어나곤 했던 것이다.

호명성의 객관, 의림의 주막, 꿈장수의 가게, 협곡 마을의 절벽까지. 악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무개를 술사는 매번 어렵지 않게 건져냈다.

······설마 눈 뜨자마자 술사가 아닌 다른 놈이 걸려들 줄은.

덕분에 거하게 사고를 쳐 버렸다. 아무개는 서글픈 숨을 토해 냈다.

어쩌지? 술사님이 싫어할 거야.

꿈을 꿔도 하필이면 귀장군이었다. 제 머리 찾는답시고 남의 대갈통을 잡초마냥 뽑아 대는 미친 원령. 그놈에 이입한 채로 깨어난 것이다.

만약 술사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사현의 머리도 뽑혀 버렸을 터.

잠시 잠깐 방심하면 곧장 피를 부르는 흉신이라니. 이리 위험하고 까다로운 짐승은 누군들 곁에 두기 꺼릴 테지. 어디 멀찍이 떨어진 곳에 버리고 오는 쪽이 속 편하겠다.

아무개는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주인이 잠든 방에 허락도 없이 몰래 들어온 놈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평범한 좀도둑이 아니었다. 술사와 십 년 넘게 알아 온 지인이니.

······사과··· 로는 안 되겠지.

알고 있다. 본심이야 어떻든, 사과부터 했어야 한다는 걸.

머리에 피칠갑하고 기절했으니 뭐라 떠들든 못 들어먹었겠지만, 어차피 아무개가 잘 보이고픈 상대는 술사님이지 무단침입 꼬마가 아니잖은가. 미안한 척이라도 하고 상처를 수습해야 했다.

한데 술사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무심결에 몸이 움직였다.

과오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를 택한 것이다. 참으로 한심했다. 뽑아야 할 건 사현이 아니라 제 머리였다. 이리 쓸모없는 머리 따위. 목 위에 얹어둬서 무엇하나. 괜히 무겁기만 하지.

“아무개 님!”

흉신이 극단적인 사고를 이어가던 찰나. 멀리서 술사의 부름이 들려왔다.

아무개의 전신이 움찔, 했다. 과히 소스라친 나머지 자칫 가지에서 떨어질 뻔했다.

다시 중심을 잡으며 기척은 죽이고 기감을 넓혔다. 그러자 차츰 다가오는 여덟 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들의 대화까지도.

“정말 여기 있을까요?”

“나루터에 배가 그대로였으니 섬을 떠나진 않았다. 저자도에서 몸을 숨길 곳이라 봐야 이 근방뿐이지.”

“어휴. 이리 숲이 우거진 데서 어느 세월에 찾아? 차라리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으라지.”

어수선한 칠교 남매를 향해 술사가 주의를 끌었다.

“자, 모두 흩어져서 찾아봅시다. 아무개 님을 발견하면, 섣불리 아는 체 마시고 저를 불러 주세요. 놀라 도망가지 않게 주의해 주시고요.”

말본새가 흡사 가출한 고양이 취급이다.

민망함에 아무개는 한층 더 몸을 웅크렸다. 더 늦기 전에 나서야 할 텐데. 도통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리 겁쟁이가 되었을까. 차라리 칼 맞고 배에 구멍 나는 쪽이 편하겠다. 술사가 제게 실망했을까 두려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무개가 미적거리는 동안 칠교 남매와 술사는 흩어져 숲을 뒤졌다. 다홍은 모래사장에 바늘 운운하며 투덜거렸지만, 그래 봐야 조막만 한 하중도에 우거진 숲이다. 내륙의 광활한 수림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술사의 음성이 지척에서 들려왔다. 아무개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엉클어졌다.

지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칠까? 하지만 당장 술사님을 보기 두렵다는 거지, 영영 헤어지고픈 건 아니다.

진심으로 달아날 셈이라면, 가철이 언급했듯 나루터에서 배를 띄우고 떠나야 했다. 이 섬에 남은 것 자체가 미련이자 어리광이나 다름없다.

어리광이라니··· 미쳤지.

“아무개 님. 어디 계세요?”

술사가 차츰 거리를 좁혀 왔다.

아무개는 안절부절못했다. 술사님이 아무리 상냥하고 다정하다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에는 훈육을 위해서라도 혼을 낼지 모른다.

본디 짐승을 길들일 땐 당근과 채찍이 중요하잖은가. 아무개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은 당근보다 채찍이 필요한 때였다.

“아무도 화나지 않았어요. 이리 나와 보세요!”

화··· 나지 않았다고? 정말?

아무개의 귀가 쫑긋거렸다. 홀랑 넘어가 반쯤 일어서던 아무개는 도로 가지 위에 앉았다.

술사님은 원래 화를 안 내잖는가. 그는 희로애락 중 노여움과 슬픔만 도려낸 듯, 불균형적인 감정의 소유자였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 놈들이 떼로 덤벼들어도, 제물로 쓰겠다며 감금당해도, 그저 웃어넘길 뿐인.

“정말 안 나올 거예요?”

최대한 기척을 죽였지만, 술사도 만만찮게 기민했다. 그는 아무개의 위치를 대강이나마 유추하여 지근거리에 멈춰 섰다.

아무개는 호흡마저 멈추고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제 얼굴 안 볼 거예요?”

“······.”

“어쩔 수 없네요.”

그리 토로하는 술사의 어조에 안타까운 기색이 담겼다.

“아무개 님이 원치 않으시는 듯하니··· 슬슬 자중해야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였는데···.”

그가 물러날 것처럼 말하자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아니야, 술사님. 가지 마!

더 늦기 전에 그를 잡고자 허둥지둥 일어날 때였다. 한껏 숨을 들이켠 술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서방니임⎯⎯!”

삐끗, 발이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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