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술사는 쉼 없이 움직였다. 저녁상을 내오고, 처방받은 약재로 탕약을 달인 후 초가집을 정리하러 갔다.
“늦을 테니 먼저 주무세요.”
술사가 그리 당부했으나 아무개는 내리 기다렸다. 요를 깔고 새로 베갯잇을 씌운 베개를 베고서. 밤이 이슥하도록.
모로 누워 한껏 웅크린 아무개가 기감을 확장시켰다. 사당 처마에 앉은 새, 정원수 가지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양, 연못 아래 헤엄치는 비단잉어와 홍예교 건너 대전 및 여러 전각과 사당을 지나 동재에서 머무는 칠교 남매까지. 너른 사원이 송두리째 제 손안에 놓인 듯 훤했다.
평소에는 기피하는 행각이었다. 느껴지는 바가 많아 봐야 골치 아플 따름이니. 특히나 인간이 득시글한 장터 등지에서 기감을 넓히는 건, 당과에 몰려든 시커먼 벌레 떼 사이에 놓인 것과 매한가지였다. 당장 쓸어 버리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하나 이곳은 버려진 사원. 거슬리는 인기척은 기껏해야 여섯, 아니 일곱이다. 일하러 갔다던 나 머시기가 돌아온 듯싶었다.
여하간 적당히 무시하고 참아 줄 만한 숫자였으므로 아무개는 전 사원으로 기감을 전개했다. 이리하면 술사가 언제 어디로 축지하든 즉시 알 수 있었다.
늦을 거라는 그 말대로. 술사는 오래도록 귀가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수선을 피우던 칠교 남매가 각자 거처로 돌아가 잠들고 부엉이 우는 소리가 아득할 때까지. 아무개는 연신 뒤척이며 술사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대략 인시(寅時)가 지날 무렵. 대전 앞마당에 익숙한 기척이 나타났다.
아무개는 벌떡 일어났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먼저 자라던 그의 당부를 어긴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무개는 도로 누워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한데 무언가 이상했다. 술사는 홍의당이 자리한 북쪽이 아닌, 서쪽으로 이동했다. 심지어 어느 시점에 멈추었던 그의 기척이 다시금 사라졌다.
아무개는 거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신을 대강 구겨 신고 술사의 행적을 좇으면서도 머릿속이 복잡다단했다.
어떤 징조도 없이 불시에 기습하듯 나왔다 사라지는 기척은 축지술의 특징. 술사는 축지술을 숨 쉬듯 자유로이 구사하는 위인이니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나 이번에는 사원 도처에 기감을 전개해 두었음에도 술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그가 사원 밖, 또 다른 먼 곳으로 이동했다는 뜻.
이리 야심한 시간에 대관절 어딜 간단 말인가.
아무개는 오로지 직진하며 최단 경로를 밟아 나갔다. 도중에 놓인 각종 수목과 담장, 건물 등 온갖 방해물을 모다 뛰어넘으니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술사의 기척이 사라진 지점에는 아담한 전각이 세워져 있었다. 기와지붕 위로 사뿐 내려선 아무개는 처마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전각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다. 은은한 빛이 희미하게나마 새어 나오는 모양이 필경 누군가 저 안에 있음이렷다.
한데 어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걸까.
주변을 살핀 아무개는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결계 등은 없음을 확신하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둑한 가운데 오직 한 방향에서 주홍빛이 새어 나왔다. 기척을 죽이고 마루를 건넌 아무개는 엷은 빛이 스며든 장지문 앞에 섰다. 섬세한 문양의 나무 살에 손끝을 걸고 밀어내자, 열린 문 틈새로 열기와 습기가 화악 덮쳐들었다.
아무개는 당혹했다. 이건··· 세욕장이나 온천 특유의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아닌가,
“거기, 누구 있어요?”
장지문 내부에서 흘러나온 음색. 흠칫 소스라친 아무개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콰당, 요란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니 촤르륵⎯ 물줄기가 쏟아지고 자박자박 젖은 발이 마른 바닥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드르륵, 문이 미끄러졌다.
열린 문 사이로 술사가 나타났다.
씻던 도중 나온 탓일까. 벗은 몸에 대강 걸친 창옷이 물기에 젖어 들러붙었다. 두 손으로 문틀을 짚고 선 그의 뒤로 비쳐든 등불에 짙은 음영이 졌다.
“아무개 님?”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마룻바닥만 뚫어져라 응시하던 아무개의 시야에 술사의 발이 들어섰다. 순백의 창옷은 뒤와 옆 모두 솔기가 트여 있어 벌어진 옷감 사이로 다리가 언뜻 보였다. 곧은 종아리를 타고 내려온 뱀 머리가 발목에 다다랐다. 살갗에 문신처럼 스며든 뱀의 검은 비늘 위로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문틀에서 미끄러지듯 손을 떼어 낸 술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부에서 비쳐든 등불이 그의 나신에 달라붙어 주홍빛 윤곽을 그렸다.
뜨겁고 습한 온천 특유의 열띤 공기 탓일까. 숨쉬기가 곤혹스러웠다. 아무개는 밭게 헐떡였다.
“왜 그러세요?”
잡고 서라는 듯 술사가 손을 내밀었다. 불쑥 들이밀어진 그의 손에 아무개는 혼비백산했다. 네발짐승처럼 사지로 바닥을 밀어내며 허둥지둥 물러나자 술사의 외관 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삿갓 대신 영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한껏 말아 올려 쪽진 머리칼은 흠뻑 젖었고 흐트러진 앞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마룻바닥에 짙은 흔적을 남겼다.
서둘러 걸친 티가 역력한 창옷은 고름도 매지 않아 겉섶이 축 늘어졌다. 직선으로 뻗은 쇄골부터 가슴의 윤곽은 물론, 단단한 복근까지 언뜻 보고 만 아무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화살이 미간으로 날아들고 칼날이 코끝을 스쳐도 눈을 감지 않았건만. 생사의 기로에 선 격전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위협적이었다.
“아무개 님?”
의아한 듯 재차 부르는 음성에 아무개는 하얗게 표백된 머리로 횡설수설했다.
“···술사님, 기, 기, 기척이··· 사라져서······.”
“아아, 그거요?”
내민 손을 거둬들인 술사가 문틀에 기대고서 팔짱을 꼈다. 그가 문 안쪽을 턱짓했다.
“여기 내부를 장연성 온천과 연결시켜 놨거든요. 축지술로.”
장연성은 온천으로 유명한 지방이었다. 저자도에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넘어간 탓에 그의 기척이 돌연 사라진 것이다.
“아무개 님도 온천욕 하고 싶어요?”
“어어···? 나, 나는··· 나아중에······.”
“그래요? 하면 전 마저 씻고 갈게요.”
청소하느라 먼지를 된통 뒤집어썼거든요.
웃음기 머금은 어조로 덧붙인 술사가 돌아섰다. 드르륵⎯ 탁. 문이 닫히고 첨벙이는 물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아무개는 망부석처럼 한참을 그 자리에 굳어 있다 겨우 일어섰다.
터덜터덜 힘 빠진 걸음으로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간신히 홍의당에 도착한 아무개는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친 이부자리를 도로 끌어당겼다. 이불속에 들어가 웅크린 아무개는 아랫배에 고인 열기를 자각하고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미친놈. 제정신이야? 어떻게 술사님을 보고 세울 수 있어!
다른 놈팡이가 그랬다면 당장 거시기를 뽑아다 입에 처넣었을 텐데. 아무개는 제 몸을 믿을 수 없었다. 감히, 잠시나마 술사님에게 저열한 욕망을 품었다는 그 자체로 끔찍한 죄악감이 몰아쳤다.
아무개는 심호흡했다. 어떻게든 가라앉혀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술사님이 돌아오기 전에······
······피부가 참 고왔지. 밖으로 다니는 사람답지 않게 희고 건강한데. 온천욕을 해서일까, 살짝 달아올라서,
쿵!
아무개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자세는 석고대죄하듯 하고 온갖 욕지거리가 입가에 맴도는데도 아랫도리는 반쯤 부풀었다.
이쯤 되자 영이 깃든 사지육신 자체가 혐오스러웠다. 단일 개체로서 전력이 가장 높아서 택했거늘. 시도 때도 구분 못 하고 세워 대는 난봉꾼인 줄 알았다면 필히 재고했을 터였다.
“······일 났네.”
망할 열기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고. 술사님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눈치 빠른 술사는 금세 제 이상을 알아챌 테고, 그리되면.
술사님께 들키는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공포가 밀려왔다. 아무개는 서둘러 바지를 내렸다. 그가 오기 전에 빨리 빼고 모른 척할 셈이었다.
한데 기껏 마음먹었더니 몸이 영 뜻대로 되질 않았다. 눈치 없이 머리를 든 놈은 기껏 주물러도 통 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개는 초조함에 축축해진 손바닥으로 마구 문질러 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빨리 좀 싸. 술사님이 언제 올지 모른단 말이야.
유랑술사는 축지술로 전조도 없이 홀연히 나타날 수 있다. 한창 빼는 중에 그가 오기라도 하면··· 무섭다. 정말로 무서운데,
어째선지 한층 열이 올랐다.
슬슬 이 몸뚱이의 행동 기제를 알 것 같았다. 자괴감이 섞인 한숨이 이불에 갇혀 갑갑하고 눅눅했다. 아무개는 동글게 만 손안에 잡힌 것을 느끼며 좀전의 일을 떠올렸다.
젖은 술사는 얇은 창옷 한 겹만 걸친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자신은 침의를 입고 있었건만. 마치 그의 앞에서 지금처럼 속곳을 내리고 흉물을 고스란히 내보인 듯한 수치심에 몸서리가 났다.
동시에 흥분됐다.
‘아무개 님.’
그는 다정하니까. 차마 못 볼 꼴을 보여 줘도 여느 때처럼 나긋하게 이름을 불러 줄 테지.
상상 속 아무개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와 손아귀를 적시고 마루가 짙은 색으로 척척히 물들었다.
‘아무개 님. 왜 그러세요?’
주저앉은 아무개가 울상을 지으며 다리를 벌렸다.
술사님. 술사님을 보고 이렇게 됐어. 어떡하지?
애타는 심정으로 매달리면, 그는 늘 그러했듯 상냥하게 물어볼 테지.
‘도와드릴까요?’
허리를 쳐올렸다. 젖은 마찰음과 함께 헐떡이는 호흡이 꿉꿉하게 퍼지고 땀이 밴 속살에 이불이 자꾸만 엉겨 붙었다. 아무개는 빈손으로 요를 꽉 움켜쥐었다.
상상 속 그것은, 술사의 창옷으로 뒤바뀌었다.
아무개는 술사의 하얀 창옷을 붙잡고 그의 발밑에서 허리를 흔들었다. 술사의 종아리를 타고 내려온 뱀이 볼썽사나운 꼴의 흉신을 비웃듯 혀를 날름거렸다.
그 순간, 제가 토해 낸 백탁액이 뱀의 머리를 때렸다. 술사의 미끈한 다리로 하얀 체액이 덩어리져 흘렀다.
망상이 끝났다.
이불 걷어 젖혔다. 당연하게도, 현실에는 술사가 없었다. 아무개는 혼자였다.
상기된 뺨으로 젖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밤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잔뜩 달아오른 몸에 낯설게 달라붙었다.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