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몽중몽이 끝났다. 한데도 썩 기쁘지 않은 이유는, 꿈속의 꿈이 끝나 봤자 여전히 꿈인 까닭이다.
그런 연유로, 아무개는 현재 열여덟 번째 가례를 앞두고 있었다.
“십팔······.”
술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지금도 안대를 썼으나 얇은 비단결 너머 눈이 마주치기라도 한 듯 아무개는 지레 찔끔했다.
“······번째 혼례네.”
“벌써 그리되었나요.”
곤란한 듯 애매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맴돌았다. 아무개는 이상쩍게 묘하고 야릇한 기분이 들어 시선을 피했다.
어쩌다 보니 혼인하여 부부생활도 하고 슬하에 자식까지 두었다. 비록 타인의 기억을 빌려온 꿈일 뿐이나, 경험은 기억으로 남아 감정에까지 슬금슬금 미치려 들었다. 그들이 겪은 부분은 굴곡진 생의 짧은 단편에 지나지 않는데도.
“저기··· 술사님, 괜찮아? 눈···.”
몽중몽에서 금지옥엽 아씨가 된 그는 삿갓을 쓸 수도, 안대로 가릴 수도 없었다. 그래도 되는 건가 싶어 묻자 술사가 하하 웃었다.
“몽환전주께서 시야를 가려 주셨어요. 덕분에 한동안 맹인이 되었네요.”
다행이다. 꿈장수가 눈칫밥을 아예 말아먹지는 않았구나 싶어 안도하는데, 문득 다른 점이 또 거슬렸다.
“그··· 기분은···? 계속 울었잖아.”
귀장군과 혼인이 정해진 날부터 아씨는 매일 밤 홀로 흐느꼈고, 노비와 혼롓날 밤에는 오열한 끝에 숨이 멎었다. 제 의지가 아닌 타의에 강제당해 눈물짓는 것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닐진대.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러웠는데. 익숙해지니 나름 괜찮았어요.”
꿈에서 평생치 눈물을 다 쏟아 낸 것 같다며 그가 또 하하 웃었다. 묘하게 작위적이고 건성인 듯한 웃음이었다.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할까?”
별 뜻 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느낌으로 아무개가 입을 열자 술사도 가벼이 대답했다.
“글쎄요. 최악의 경우, 어쩌면 평생?”
“···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의미 없이 꺼낸 말에 의미심장한 답이 돌아오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 기억하시나요? 꿈장수님 부친께서 몽환의 신령께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
아무개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죽음을 직감한 노비가 몽환의 나비를 찾아 금역에 발을 들이고, 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보여 달라 간청했다. 언제까지 꿈을 꿀 테냐 묻는 신령에게 노비가 한 대답은,
“가능한 한 계속······ 영원히?”
술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희가 그분 부친께서 신령님께 올린 청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 같아요. 그러니 이 꿈이 끝없이 계속 반복되지요.”
아··· 그건 좀···
아무개는 질색하며 미간을 찌푸리다가 여전히 자신을 향해 앉은 술사를 보고는 얼굴을 폈다.
그건 좀··· 나쁘지 않을지도.
“염려 말아요. 그리되지 않도록 해 볼 테니.”
눈을 가리었음에도 다 보인다는 듯 안심시키는 말에 아무개는 새삼스러운 상념이 들었다.
술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하하,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그에겐 걱정과 불안, 초조 같은 감정이 없는 걸까?
“어떻게···?”
따지고 드는 게 아니라. 오롯한 궁금증을 담아 물으니 술사가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꿈장수의 제안대로 그의 의문을 풀어 주는 것. 다른 하나는······ 강제로 부수는 것.”
강제로, 부순다. 아무개는 이런 어휘가 술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내심 생각했다.
“첫 번째는··· 꿈장수의 모친, 아씨의 사인을 밝히는 거?”
“네에. 그거요.”
“아씨는 몸이 약해서··· 심적인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게 아닌가?”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본래도 연약해 집 밖으로는 걸음 않던 아씨 아니던가. 부친상으로 몸져눕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아이가 실종됐다 하니 쇠약해진 육신이 버텨내질 못한 게다. 아무개가 본 바로는 그리 판단하는 편이 그나마 제일 타당했다.
“하나 꿈장수는 모친의 사인이 따로 있다 여기는 듯하네요. 혹은 그리 믿고 싶은 쪽에 가까울까요.”
쓸데없는 아집을 부려서는. 아무개는 눈매를 구겼다.
“두 번째는 말 그대로예요. 저희를 둘러싼 이 꿈을 강제로 부수고 벗어나는 거지요.”
“그런 게··· 가능해?”
“단순히 가능 불가능을 따지면,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되도록 이 방법은 지양하고 싶네요. 술법이 강제로 파훼 당하면, 시전한 술사가 여파를 고스란히 받으니 말예요.”
“어··· 우리가 억지로 부수고 나가면······ 꿈장수가 아파?”
여러분이 열심히 삽질하는 모습 잘 봤다며 낄낄대던 모양을 떠올리자니 고놈은 좀 아파도 되지 않을까 싶다만.
“하하. 단순히 아픈 정도가 아니라 아주 큰 타격을 입을 거예요. 사람으로 치면 반신불수 정도?”
술사는 대수롭지 않게, 변함없이 미소 띤 입술로 반신불수를 운운했다.
“특히 이 반복되는 혼롓날의 꿈은 몽환전주가 지닌 일신의 기량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아무개 님과 제 영력을 빌려 만들어 냈지요. 본인의 역량을 뛰어넘은 술법이 강제로 파훼당하는데 멀쩡할 리가요.”
그는 생각에 잠긴 이들이 흔히 그러듯, 손끝으로 턱을 매만졌다.
“해서 가능한 한 두 번째 방안은 고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기약 없이 무작정 몇 날 며칠을 갇혀 있을 수도 없지요.”
비단으로 가린 시선이 아무개를 향했다. 그 혼자라면 모를까, 동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아무개는 그에게 짐이 되고픈 맘은 추호도 없음으로 재빨리 운을 뗐다.
“나도 괜찮아. 꿈속에 얼마나 묶여 있든··· 신경 안 써도 돼.”
“괜찮지 않아요.”
안대 쓴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그 너머로 들여다보듯이.
“오늘이 열여덟 번째니 꿈속에서 십팔 일을 보낸 셈이네요. 노비와 아씨의 몽중몽에 휘말린 시간을 제외하고도 그렇지요.”
그게 왜? 아무개가 고개를 갸웃하자 술사가 이어 말했다.
“그간 현실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요. 몽중의 십팔 일이 현실에서는 열여덟 시진일까요, 열여덟 해일까요?”
아무개는 술사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곧장 이해했다. 그들이 꿈속에서 머무는 동안 현실의 육신은 걷지도 먹지도 않고 오롯이 누워만 있을 터.
최악을 가정하면, 그들 육신은 이미 아사하기 직전의 피골이 상접한 뼈다귀 꼴일는지도 모른다. 등에 욕창이 생겼을지도.
“아휴, 새색시가 어딜 갔나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서방님 뵈러 온 게야?”
때마침 혼례를 도우러 온 일손이 신부를 찾아왔다. 낯선 타인의 손에 이끌린 술사가 치장을 위해 떠났다. 앞서 열일곱 차례나 반복해 겪은 내력은 아무개가 넋을 빼고도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경지에 다다르게끔 하였다.
그리하여 아무개는 또다시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혼례를 구경하러 온 손님들. 곱게 차려진 초례상과 맞은편에 빈 방석. 곧이어 염재효를 비롯한 일꾼들이 가마를 짊어지고 들어왔다. 몇 번이나 반복해 온 과정이 지루하고 짜증도 나지만, 막상 이 순간이 닥치면 아무개는 온 신경을 술사에게 집중시킨 채 넋을 빼놓고 그만 바라보곤 했다.
한데 오늘은 달랐다. 그들이 다디단 꿈에 빠진 동안 현실의 육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런지 짐작하자니 이 모든 게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하여 십수 번 만에 처음으로. 아무개는 술사 외에 다른 것들을 자세히 눈에 담았다. 초례청을 가득 채운 인파. 그 속에서 자신과 술사님을 번갈아 보며 눈을 빛내는 사내아이. 시선이 마주치자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준다. 아무개는 그 아이가 누군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노비와 아씨 사이에서 태어난, 꿈장수의 어릴 적.
아이는 친부모의 혼례식에 제 발로 참석한다는 희귀한 경험을 하는 중으로 그 옆에는 포목점 주인이 된 석소영이 아이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일꾼으로 분한 염재효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사인교를 들어 구석으로 옮기었다. 혼례를 보러 온 주민과 일손을 도우러 온 자들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용무로 어수선하였다.
그들 너머 초례청 외곽. 구석진 담벼락에 한 여인이 기대어 있었다. 곱게 물들인 치마와 저고리에 섬세하게 수놓은 문양. 정교하게 세공한 노리개까지. 어느 세도가의 귀부인과 같은 차림새였으나, 이 모든 게 흙먼지투성이라 고귀함이 다소 퇴색되었다. 비녀는 어디다 흘린 겐지 헝클어진 머리칼을 산발한 여인이 고개를 잔뜩 숙인 채 그늘진 얼굴 속, 두 눈만을 형형하게 치켜떴다.
파리하고 초췌한 가운데 한 쌍의 눈만 흉흉히 빛내는, 섬뜩한 시선이 가마에 아교처럼 진득이 들러붙었다. 그 눈매에 서린 흉포함은 신부가 가마에서 내리는 순간, 절정에 달했다.
아무개는 걸음을 떼었다. 신랑이 자리를 뜨자 당황한 사람들이 술렁였다. 뒤에서 누군가 불렀으나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개는 담벼락에 바짝 붙어 선 여인을 똑바로 직시하며 나아갔다. 여인 또한 아무개를 발견했다. 여인의 바로 앞에 다다랐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서방님?”
예상 밖의 돌발상황에 술사가 쫓아왔다. 그러자 산발한 여인의 악랄한 시선이 방향을 바꾸어 신부에게로 향했다. 아무개는 우측으로 한 걸음 옮겨 술사에게 향하는 그 눈길을 가로막았다.
“너.”
아무개가 여인을 불렀다.
“너··· 나 알지.”
질문이 아니다. 그건 확신이었다.
“그러니··· 꿈에 나타났지.”
어쩐 일로 지금껏 얌전히 있었을까.
“······나비 때문인가?”
이곳은 몽환전주가 만들어 내었으며 그가 주인 된 꿈이었다. 비록 영력을 빌려주었다곤 하나 아무개도 술사도 그가 초대한 손님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개입은 못 하고, 구경만 했어? ······그렇겠지. 이 꿈에서 너는, 불청객이니까.”
아무개는 자문자답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를 제외한 일행 중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영문을 몰라 했다.
어느새 쥐죽은 듯 고요해진 공간. 정해진 배역을 이탈하려는 아무개를 꿈속의 인물들이 차가운 무표정으로 응시했다. 사방에서 범람하는 무수하고 무감한 시선 속에서. 아무개는 눈으로 여인을 보고 입으로 술사를 향해 말했다.
“술사님은······ 처음이지? 나도 이렇게··· 대면하는 건 처음이야.”
아무개는 여인을 가리켜 단언했다.
“이건, 내 악몽이야.”
아무개는 잠이 들면 반드시 악몽을 꾼다.
이는 꿈장수가 마련해 준 몽중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와 달리 몽환전주라는, 꿈의 주인이 단단히 버티고 섰기에 악몽이 맘껏 활개 치지 못하였을 뿐. 이리 교묘하게 숨어들어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었던 게다.
여인의 형상을 띤 악몽이 표독스레 눈을 치뜨고서 달려들었다. 아무개는 피하지 않았다. 악몽이 두 팔을 뻗어 내지르고 손끝으로 아무개의 가슴을 길게 할퀴었다.
그 손이 지나간 자리부터 정체불명의 새까만 액체가 주룩 흘러내렸다. 진액은 검은 안개와 맞닿아 섬뜩하고 요사한 기운으로 인근을 뒤덮었다. 하늘이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발을 딛고 선 대지와 저택 처마, 초례청에 찾아온 손님과 그들의 이목구비까지. 모든 것이 염료처럼 섞이었다.
⎯ 멈추거라!
진흙처럼 섞이고 뭉치고 흩어지는 세상에서 꿈장수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 이는 내가 손수 만들어 낸, 나의 꿈이다! 잡귀 따위가 난입해서 멋대로 휘젓고 다닐 영역이 아니란 말이다!
꿈의 장막 너머 몽환전주가 직접 본신을 드러내었다. 그가 나타나 꿈을 재조형하자 녹아내린 처마가 지붕 끝에 단단히 들러붙고 바닥에 눌러앉은 기둥이 곧게 섰다. 꿈속 인물들의 뒤죽박죽 섞여 버린 이목구비가 제자리를 되찾았다. 꿈을 유지하려는 몽환전주와 꿈을 무너트리려는 악몽 간에 치열한 다툼 속. 하늘이 무너졌다 솟아나고 땅이 흩어졌다 도로 모이길 반복했다.
천지가 융해와 응고, 분해와 재조합을 거듭하는 끔찍한 광경을 직면하고서도. 아무개는, 아무개의 악몽은 코웃음 칠 뿐이었다.
“잠자코 지켜보기나 해.”
⎯ 이런 괘씸한···!
“궁금하다지 않았나? 아씨가··· 네 모친이 죽은 이유.”
⎯ ······!
꿈장수의 충격과 공황은 언어가 아닌 날것의 감정 그대로 전해졌다.
놀란 것은 아무개도 마찬가지였다. 제 악몽이 형태를 갖추고서 이 거대한 꿈을 집어삼키고자 야욕을 드러낸 형국이니.
아무개는 악몽 속에서 늘 그랬듯, 정체불명의 여인 안에 의식 채로 갇히었다.
“내 친히 알려 주마. 그분이 어찌하여 돌아가셨는지!”
그 순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악몽에게로 넘어갔다. 서로 꿈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던 중, 꿈장수가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모친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해소하고자 함이었으니. 상대가 악몽이든 잡귀든 제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므로.
꿈장수가 꿈을 포기했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혼례식이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