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왜?”
어째서 술사님이?
아무개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 다가오는 신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을 가리고도 요령 좋게 사뿐사뿐 내딛는 걸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뜬 눈으로 평탄한 대지를 거니는 듯이.
신부는 일산(日傘)의 붉은 비단이 거치적거릴 만큼 장신이었다. 순서에 따라 초례상을 사이에 둔 채 맞절을 하면서도 아무개는 정신이 혼미했다. 이 모두가 꿈이라는 것도, 각자 주어진 역할에 맞춰 광대놀음 하는 것도, 다 아는데······
이건, 너무 현실적이지 않나.
「술사 나리께서 힘을 보태 주시면, 훨씬 선명하고 생생한··· 아주 사실적인 꿈을 볼 수 있을 겝니다.」
꿈장수는 본인의 능력이 부족한 탓에 혼자서는 꿈이 흐릿하다 하였다. 때문에 술사에게 부탁하였고.
즉, 지나치게 사실감 넘치는 이 꿈은 전부 유랑술사 덕이다. 그가 꿈장수에게 영력을 빌려주어 실제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꿈이 과하게 선명해진 것이다.
신랑 신부가 각자 방석에 앉았다. 교배(交拜)를 마쳤으니 합근(合巹)을 할 차례였다. 잔에 술을 따르고 눈높이로 들어 하늘에 맹세하고, 다시 내려 대지에 서약했다. 이어서 가슴께로 가져간 후 서로 부부의 책임을 다하리라 약조했다. 이제 술을 절반 즈음 마신 후 잔을 교환하여 다시 마시면 된다. 그런데.
“꼭 마셔야 하나요?”
신부가, 술사가 거부감을 드러냈다.
“제가 술이 약해서요.”
곤란한 듯 읊조리는 신부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에이, 고작 한 잔 가지고 무얼 빼고 그러시나?”
“좀 취해도 괜찮네! 어차피 낭군님이 알아서 자알 모셔갈 터이니.”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건만, 합환주를 거부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신랑 체면을 깎아 먹는구만!”
감정의 통로인 눈을 안대로 가리었음에도 술사에게선 난감한 기색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백년가약을 맺은 후 다시 일어서려던 찰나, 술사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중심을 잡기 위해 뻗은 손이 초례상 모서리를 짚은 순간.
우지끈⎯ 와장창!
초례상이 박살 났다.
“······!”
제기에 층층이 쌓은 밤과 대추, 감 따위가 굴러떨어지며 산만하게 흩어졌다. 술사가 급히 물러섰으나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콰직, 콰드득, 땅이 갈라지고 쪼개졌다. 마치 작은 지진이 일어난 듯했다.
“도, 도망쳐!”
다급히 외친 재효는 가장 먼저 냅다 줄행랑쳤다. 일전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흉신을 봉한 족자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었던 날. 삿갓을 떨어트린 술사가 일대 십 리, 삼백만 평 이상을 초토화시켰던 광경을. 그토록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고도 단지 ‘실수’라 칭하던 것을.
스스로도 몰랐으나, 그날 본 광경은 재효에게 일종의 심적인 외상으로 남아 있었다.
“신부가 미쳤다!”
“신부가 다 부순다!”
재효 한 명이 먼저 물꼬를 틀자 나머지 하객들도 덩달아 분주히 도망쳤다. 엄마! 소리친 어린아이가 분주히 쏟아지는 인파를 거슬러 가려 하자 소영이 번쩍 들어 올리고는 재효를 따라 초례청을 벗어났다. 탐스러운 과실이 짓밟혀 뭉개진 과육이 너저분했다.
쿵, 와직-! 대지를 박살 내며 뒷걸음질 치던 술사의 등에 일산이 부딪쳤다. 그가 닿은 순간, 길고 두꺼운 자루가 허무하게 부서졌다. 햇빛을 막고자 둘러친 일산의 비단이 신부를 덮쳤다.
“술사님!”
역할 몰입이고 자시고 깜짝 놀란 아무개는 박살 난 초례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술사를 뒤덮은 일산을 서둘러 치워내자 붉은 활옷이 지면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술사는 너른 바닥에 아예 누워 버렸다. 그를 일으켜 세우고자 다가서는데, 술사가 손을 들어 막았다.
“오면 안 돼요.”
“술사님?”
“지금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아요.”
아무개는 술사의 주변만 빙빙 맴돌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술사가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술 약하다니까···.”
설마, 이 사태의 원흉이···?
“술사님. 혹시··· 취했어?”
“네.”
“아까··· 합환주 마시고?”
“네에. 그렇습니다.”
술사는 순순히 시인했다. 아무리 술에 약해도 그렇지. 두어 모금 마셨던가? 고작 한 잔도 못 채우고 취해 버리다니.
“이 정도로 약하진 않았던 듯한데. 간만이라 주량이 더 줄었나 봐요.”
술사가 변명처럼 덧붙이는 말에 아무개는 어··· 음··· 그래···. 하고 더듬더듬 답했다. 무엇이든 능숙하게 잘 해낼 것 같던 그가 보여 준 의외성이 어쩐지 좋았다.
술사가 고개를 돌렸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데도 그의 얼굴은 정확히 아무개가 있는 곳을 향하였다.
“이제 어찌할까요, 서방님?”
“어, 어···?”
서, 서··· 서방님?!
잠시 사고가 정지돼 버렸다. 모자란 놈처럼 어버버거리는 아무개에게, 술사가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제가 혼례를 망쳐 버린 듯한데. 죄송해서 어쩌지요, 서방님.”
일시적인 역할 놀이임을 아는데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표백될 만큼, 충격적인 호칭이었다. 아무개는 가슴께를 꽈악 부여잡고 홀린 듯 입을 열었다.
“······부, 부인?”
“네에, 서방님.”
대답해 줬다. 부인이라고 불렀는데.
심장이 간질거리다 못해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개는 뭐 마려운 강아지인 양 부산을 떨다 겨우 진정하고 술사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혹시··· 아직 술 덜 깼어?”
“아뇨. 이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켜 앉은 술사가 손을 탁탁 털었다.
“보세요. 멀쩡해졌지요?”
아무개의 눈이 힐끔 땅바닥을 향했다. 술사가 짚은 부분이 다섯 손가락 모양 그대로 무너져 움푹 팼다.
“······으응.”
응. 하나도 안 멀쩡하네.
사모관대를 벗고 도포로 갈아입은 아무개가 신방에 들어갔다. 절차대로라면 부모님께 인사를 올려야 하나 이 과정은 통째로 생략되었다. 아마 이 부부에겐 생존한 부모가 없는 모양이다.
홀로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자니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장지문 너머 그림자가 짙어지는가 싶더니 신부가 문을 열었다. 이어서 간단한 안주와 술은 담은 주안상이 들어왔다. 앞서 벌어진 참사를 똑똑히 기억하는 그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술······ 부인.”
아무개는 습관적으로 술사님이라 부르려다 황급히 말을 바꿨다. 장지문 밖으로 아직 인기척이 느껴졌으므로.
“이제 뭐 하지···?”
역할에 충실하라고는 하는데.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신혼 첫날이라지만, 술사님과 그걸··· 할 수는 없잖은가.
“우선은,”
술사가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엎드리듯 몸을 기울인 채 느릿하게 다가온 그는 맹인처럼 손끝의 감각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곧게 뻗은 손이 허공을 헤맸다. 아무래도 자신을 찾는 듯하여 아무개는 그의 빈손에 제 것을 가져다주었다.
술사의 입매가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그는 아무개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고는 제 가슴팍으로 옮겨왔다.
“제 옷고름을 풀어 주시겠어요?”
심장이 저릿했다. 혈관을 타고 흘러간 감각이 손끝에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고스란히 쥐고 있던 술사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서방님.”
농담이다. 아무개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술사는 지금 농을 하고 있다는 걸.
그런데 받아들이는 자신이 도저히 농지거리로 여겨지지 않았다.
“곱게 단장한 신부를 첫날밤부터 소박 맞히실 건가요?”
과장된 어조와 목소리. 불쌍한 척 고개를 떨구고 흑흑, 우는 시늉까지. 어여쁘다기보단 잘생겼다는 표현이 어울릴 신부가 검지에 저고리를 감아 눈가를 톡톡 찍어내는 행태에 아무개는 고장 난 문고리처럼 덜그럭거렸다.
“아, 아니야··· 그런 거···.”
단란한 신혼방 너머 마당을 오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꿈속 상황에 맞춰 겉으로나마 부부 행세를 하긴 해야 하나, 술사는 누가 들으라는 듯 필요 이상으로 짓궂게 농을 하였다. 아무개는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당황으로 절절매며 불에 덴 듯 움칫하는 손길로 힘겹게 신부의 옷고름을 풀었다. 고운 매듭이 스르륵 미끄러지고 벌어진 저고리 사이로 속적삼이 언뜻 보였다. 희고 얇은 속적삼 위로 은은하게 비치는 저 색채가 겹겹의 옷으로 감추어 온 살결인지, 신방을 밝히는 주홍빛 화촉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두 눈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바삐 굴러갔다. 그런 중에도 아무개는 연신 술사의 눈치를 보았다. 인제 그만 손을 놓아줘도 될 것 같은데. 어찌하여 아직 붙잡고 있는 걸까. 의아해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손을 빼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술사는 아무개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이번에는 위로 올렸다. 손가락 끝마디에 미끈한 뺨이 스치는 바람에 아무개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화관도 벗겨 주셔야지요.”
제 머리 꼭대기에 아무개의 손을 얹으며 술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허둥지둥 족두리를 풀어내자 그제야 술사가 손을 놓아주었다.
“이제 불 끌까요?”
신부가 은근하게 권유했다. 아무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술사의 눈을 가린 비단을 보고는 으응, 하고 부러 소리 내 답했다.
그러고 보니··· 불을 켜 두었으니, 밖에서는 그들이 하는 양이 그림자로 비쳤을 터. 혹 술사는 이런 것까지 고려하여 부러 자신에게 옷고름을 풀게 하고, 머리를 내려 달라 청한 것일까.
나비 촛대 가까이 고개를 숙이고 후 불려던 찰나. 술사의 검지가 제 입술 위로 살포시 와 닿았다.
“그리하시면 아니 되어요, 서방님.”
속살거리는 음성이 귓가에 낮게 울렸다. 따뜻하고 눅눅한 숨결이 와 닿은 목덜미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아무개는 기겁하며 후다닥 몸을 뒤로 빼냈다. 벽 모서리에 바짝 붙어서는 꼼짝도 못 하고 얼어 버렸다. 이리 못난 꼴을 보지도 못하였을 텐데. 기척도 없이 곁에 바짝 다가왔던 술사가 하하, 웃으며 입꼬리를 휘었다.
“입으로 불면 복이 나간다지요. 옷깃으로 부채질하여 꺼 주세요.”
“어? 어, 어···.”
아무개는 머저리처럼 굴면서도 착실하게 손을 들어 횡으로 그었다. 넉넉한 소맷자락이 펄럭이며 화촉이 꺼지고 사위가 어둠에 잠기었다.
“이리 오세요.”
바닥을 더듬어 이부자리로 간 술사가 그 옆을 톡톡 두드렸다. 결국 주안상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원앙이 수 놓인 금침을 함께 덮고 누웠다.
아무개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평소에는 워낙 잠이 부족한 탓에 늘 비몽사몽 하였더랬다. 여기가 꿈속이라서일까. 이토록 정신이 맑은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어쩌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저기···.”
아무개는 술사를 향해 살며시 돌아누웠다.
“눈은··· 왜 가렸어?”
그가 가마에서 내리던 때부터 궁금했으나, 물어볼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아, 이거 말인가요.”
술사가 제 눈을 가린 비단을 매만졌다.
“삿갓을 못 쓰게 하셔서요. 대신이에요.”
쪽진머리에 족두리를 얹은 신부가 삿갓까지 썼다간 모양새가 괴이하긴 하다. 그렇다 한들 아예 눈을 가려 버리는 것도 좀 과하지 않나.
여느 때보다 한층 명료한 머리로 아무개는 추측했다. 어쩌면 술사는, 실용성이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 삿갓을 써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삿갓이 불가하면 차라리 눈을 가리겠다 할 만큼, 중요한 연유가.
돌이켜 보면 술사는 삿갓에 너울까지 덧대어 썼다. 바깥 외출이 금지되던 양갓집 규수도 아니니 자신을 숨기려는 까닭은 아닐 테고. 스스로 눈을 가려 버린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술··· 부인.”
“네에.”
“혹시······ 무언가, 보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
외부로부터 자신의 시야를 제한하기 위함이 아닐는지.
“······.”
“······술, 부인?”
“······.”
“부인···.”
“······.”
“······자?”
평시보다 느리고 고른 숨소리. 아무개는 그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한 이불을 덮은 술사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사위가 적막한 어둠에 묻힌 가운데 미미한 월광이 그의 콧대와 입술, 턱선에서 목젖에 이르는 윤곽을 은은히 비추었다. 그의 옆모습을 멍하니 보던 아무개는, 어느새 홀린 듯 손을 뻗고 있었다.
“······신기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니, 기적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와 조우한 것도. 이리 지척에서 머무르게 된 것도.
아무개는 무의식중에 손을 내밀다가도 정작 술사에게 닿기 직전 멈춰 세웠다. 마치 손대선 안 되는 귀중한 보배를 대하듯이. 차마 다가서지 못하고 근처만 맴돌았다.
“저기···.”
있잖아, 술사님.
나는 정말로··· 술사님이······
눈이 가물가물했다. 언제나 불유쾌한 꿈에 쫓겨 왔던 아무개는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고, 물구나무를 서는 등 잠들지 않으려 온갖 짓을 해 왔더랬다. 하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리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는 이미 꿈속이고, 그리고⎯
아무개의 손이 이불 위로 툭 떨어졌다.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가 정갈하게 꾸민 신혼부부의 침상에 잔잔히 울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햇빛이 눈꺼풀 너머 붉게 비쳐들었다. 아무개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서로 얽힌 청실과 홍실. 불을 밝히는 청사초롱. 밤과 대추, 쌀을 올려둔 상. 익숙한 초례상이 제 앞에 놓여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아직 상황 파악도 덜 되었건만, 염재효가 가마를 짊어지고서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눈을 가린 신부가 내려섰다.
‘술사님···?’
혼례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