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혼설 (26)화 (26/138)

26화

꿈 사세요! 꿈 파세요!

소중한 사람에게 길몽을, 끔찍한 원수에게 흉몽을, 어여쁜 색시에겐 태몽을!

종류 불문, 원하는 모든 꿈이 여기 있습니다!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적나라하게 꽂혔다. 소영과 재효는 넋을 놓고 현판을 올려다봤다.

[몽환전夢幻廛]

혹여나 못 찾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이쯤 되면 못 찾는 쪽이 되려 이상할 판국이었다. 장터 한복판에서 대놓고 소리치며 호객 행위를 하잖은가.

“아이고 손님, 어서 오십쇼!”

유랑술사가 먼저 가게로 들어섰다. 주인장이 반색하며 나머지 일행을 안으로 들였다. 그는 앞장서 들어온 술사를 향해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손님들께선 꿈을 사시렵니까, 파시렵니까? 어떤 종류의 꿈을 원하시는지요?”

“글쎄요. 일단은 길몽일까요?”

“길몽 좋습죠! 재물이 들어오는 꿈, 출세하고 입신양명하는 꿈, 흠모하는 정인과 함께하는 꿈까지! 다양하게 구비해 놓았습니다요.”

“아무개 님. 따로 원하는 꿈이 있나요?”

술사가 반쯤 몸을 돌리며 묻자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아무개가 드러났다. 전주는 눈치 빠르게 호객 대상을 바꾸었다.

“아이고, 이분 낯짝이 말이 아닐세! 아주 끔찍한 흉몽에 시달리나 봅니다요?”

“······그걸 어찌 알아?”

아무개가 자못 방어적인 태도로 경계하였으나 몽환전주는 실실 웃었다.

“하루 이틀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척하면 착이지요.”

숙련된 장사치는 능글맞게 웃으며 대화를 유도했다.

“어찌, 길몽이면 만족하시렵니까요?”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

“이야, 간만에 주제 파악이 잘된 손님이시네!”

이게 뭔 소리래. 재효는 대화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 의문을 대신해준 건 유랑술사였다.

“아무개 님 악몽이 심각한가요?”

“예이, 그렇습죠! 저는 보통 흉몽에 쫓기는 손님에게서 악몽을 사드리지만, 것도 어디 한두 개여야 말입죠. 이분은 저 같은 소상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입니다요.”

이건 뭐, 대체 몇 놈을 달고 다니는지 원. 그리 중얼거리는 꿈장수의 시선이 아무개의 뒤쪽, 빈 허공을 맴돌았다. 술사는 꿈장수의 눈길이 닿은 지점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떨쳐낼 방도는 없나요?”

“제 미천한 능력으로는 저리 지독한 것들을 다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요.”

“그렇군요.”

“하지만! 사알짝 꼼수를 부려 볼 수는 있죠. 우선 손님은 저랑 따로 긴밀히 대화를 나눠봅시다.”

“왜···.”

아무개는 그의 제안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꿈장수는 가게 안쪽에 쳐진 갈대 발을 밀어 올리고는 숨겨진 문을 열었다.

“손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꼼수라도 써 볼 것 아닙니까? 정문이 어려우면 뒷문으로 들어가야지요.”

“그걸 왜··· 굳이 따로···.”

“꿈은 남한테 말하면 안 된다고들 하잖습니까? 그거 진짭니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꿈을 알려주면, 효력이 사라집니다요. 제가 꼼수로 해법을 찾아내더라도 자세한 사정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꿈장수가 어서 오라는 듯 손짓했다. 머뭇거리던 아무개는 술사를 흘낏 보고는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차르륵, 갈대 발이 도로 내려가고 문이 닫혔다. 잠시 후 아무개와 함께 돌아 나온 꿈장수는 좀 전과 달리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참. 제 예상보다 손님 상태가 훨씬 심각하네요.”

꿈장수가 보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손님께 딱 들어맞는 상품이 하나 있는데 말입죠. 이게이게, 선뜻 내어드리기가 쪼끔 그렇네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말입죠.”

머리를 긁적이며 꿈장수가 겸연쩍은 듯 말했다.

“원래는 비매품이거든요.”

“비매품이라 해도 판매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면, 애당초 말을 꺼내지도 않으셨겠죠?”

“하하하. 네, 그렇습니다. 상품 가치를 올리기 위한 밑밥입죠. 한데 정말, 어지간한 일로는 팔 생각이 없었습니다.”

꿈장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 유품이라서요.”

“······?”

“미친. 부모님 유품을 팔겠다고?”

재효의 입에서 절로 쌍소리가 나왔다. 꿈장수가 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에이,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유품을 팔기야 하겠습니까?”

“상품 가치를 올리기 위한 밑밥이라며?”

“파는 게 아니라, 교환을 청하는 겁니다.”

꿈장수는 유랑술사를, 늘어뜨린 면사 너머에 가려진 얼굴을 투영해 보듯 히죽 웃었다.

“사대귀인 유랑술사께서 친히 납시셨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면 쓰나요.”

확실히. 돈 몇 푼보다야 유랑술사에게 요구할 기회를 얻는 쪽이 훨씬 값졌다. 그를 불러내는 소환부가 얼마에 거래되는지를 고려하면, 더더욱.

팔짱 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아무개가 그늘진 눈을 들어 꿈장수를 지그시 쳐다봤다.

“어디서··· 같잖은 수작을······.”

순간 영문 모를 오싹함에 소름이 돋은 꿈장수가 움찔, 몸을 떨었다. 술사가 하하 웃으며 만류했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요.”

술사는 난감하다는 듯 이어 말했다.

“다들 절 알아보시면, 무언가 부탁하더라고요. 그다지 상관은 없지만. 소문이 과하게 번져 어떤 일이든 척척 이뤄 주는 대단한 존재로 오해하면 곤란하지요.”

일단 말해 보세요.

“부모님의 유품과 교환할 정도로 간절히 바라는 바가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하잘것없는 궁금증입니다.”

꿈장수가 씁쓸히 읊조렸다.

“기억도 희미한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여의고, 머리가 크고 나서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임종을 예감하신 아버지께선 마지막으로 몽환의 신령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분께 베갯잇을 하나 얻어왔지요.”

이 베갯잇이 손님께 드리고자 하는 아버님의 유품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베갯잇을 베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든 채로 돌아가셨습니다. 몽환의 신령이 자신의 고치로 짜 올린 베갯잇을 베개에 씌우고 머리를 뉘이면, 특별한 꿈을 꿀 수 있거든요.”

작고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궁금했던 꿈장수는 몽환의 신령을 찾아갔다.

“아버지께선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영원토록 꿈꾸고 싶다 하셨답니다. 그날은 바로 어머니와의 혼례일이었죠. 실로 아버지께선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웃으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제가 알기로는···

“생에 가장 행복했다는 혼례일 바로 다음 날.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거든요.”

서늘한 정적이 가게 내부를 잠식했다.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찌하여 어머니께선 그리 갑자기 돌아가셨을까요.”

당신이라면, 답을 찾아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제 의문에 답을 주신다면, 베갯잇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꿈장수의 부모님은 옛날옛적에 죽었다. 시간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소제부였다. 세월에 휩쓸려 간 과거를 무슨 수로 복기한단 말인가?

“맨땅에서 시작하라는 건 아닙니다.”

꿈장수는 아무개와 함께 들어갔던 작은 방으로 네 손님을 초대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몽환의 신령님께 권능을 얻어왔습니다.”

꿈장수 또한 일종의 술사였다. 몽환의 신령과 언약을 맺은 꿈 술사.

“신령님께서는 아버지의 유언을 들어드리고자 당신의 기억을 엿보셨습니다. 하니 여러분께도 그때 당시의 기억을 꿈을 통해 전해드릴 수 있을 겝니다.”

자개장의 문을 열자 차곡차곡 쌓아 둔 이불과 베개가 드러났다. 꿈장수는 좁은 방에 이부자리를 깔았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직접 아버님의 꿈을 보고 진상을 파악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소영이 지적하자 꿈장수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게 말입죠. 제 능력이 미진한 탓에 꿈이 영 흐릿합니다요. 유랑술사께 부탁드린 것도 그래섭니다. 술사 나리께서 힘을 보태 주시면, 훨씬 선명하고 생생한··· 아주 사실적인 꿈을 볼 수 있을 겝니다.”

“꿈을 통해 보여 준다 하셨으니 잠을 자야겠네요?”

“네, 그렇습죠!”

술사는 이불을 덮고 앉으며 소영과 재효에게 말했다.

“이런 것까지 함께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둘의 목적은 흉신을 감시하는 것이므로. 아무개의 평안한 숙면을 위해 힘쓸 까닭이 없었다.

“어찌하면 됩니까? 그냥 자면 되는 겁니까?”

하지만 소영은 이불 끄트머리에 자리 잡았다. 악몽이 흉신의 난폭한 성정에 일조한다면, 이를 제거하여 도움을 주는 것이 옳다 판단하였기에.

“네네. 편히 주무시면 됩니다. 꿈을 다루는 건 제 일이니까요. 단, 손님들께서도 함께 어울려 주셔야 합니다요.”

“어울려 준다니, 무슨 뜻입니까?”

“저 혼자 판을 깔아놓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요? 손님들께서 충분히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현재 의식을 고대로 유지시켜드릴 겁니다. 아마 자각몽 비스무리한 상태가 될 테지요. 하니 꿈속에서만큼은 잠시 본래 신분을 잊으시고, 꿈속 상황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해 주십쇼.”

술사의 옆자리를 획득한 아무개는 만족스럽게 누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재효는 영 내키지 않은 기색이었으나 소영을 따라 주춤주춤 몸을 뉘었다.

“혹시 모르니 간단한 결계를 쳐 둘게요.”

유랑술사의 백지 부적이 차르륵 흘러나왔다.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빳빳하게 선 부적들이 원형의 고리를 이루며 느릿하게 떠다녔다. 그 안에는 네 일행이 누운 이부자리가 놓여 있었다. 마치 혼천의의 중심부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개는 눈을 감고, 다시 떴다. 도로 감았다가 다시 뜨며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 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건 또 뭐야.’

서로 얽힌 청실과 홍실. 불을 밝히는 청사초롱. 밤과 대추, 쌀을 올려둔 상. 모를 수가 없다. 이건 초례상이다.

설마 여기가 꿈속인가? 그 짧은 시간에?

평소 수면이 부족했던 탓에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건지, 꿈장수의 신통한 능력 덕인지. 아무개는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꿈속으로 진입했다. 청색 단령을 걸치고,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허리춤에는 관대를 차고서.

아버지의 기억을 꿈으로 전해 주겠다 하였지. 꿈장수의 아버지는 생전 가장 행복했던 날을 영원히 꿈꾸게 해 달라 하였고, 이는 혼례일이었다. 하면 꿈에 혼례식이 나와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자신이 신랑 역할일 줄은 몰랐다.

아무개는 어깨를 움츠리고 주변을 살폈다. 너른 마당과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 한쪽에는 붉은 잉어가 헤엄치는 연못이 마련되어 있고 기와를 얹은 지붕 처마에는 풍등이 걸려 있었다.

초례상 너머 반대쪽 방석은 비어 있었다. 혼례라는 대잔치에 모인 객들이 북적이느라 주위가 소란했다. 사람에게 둘러싸여 주목받는 위치에 놓이자 아무개는 다소 주눅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때마침 가마가 들어서고 군중의 시선이 분산되었다. 맞은편 빈자리를 채워 줄 신부가 도착한 것이다. 진짜 혼례를 치르는 새신랑도 아니건만, 입안이 까끌하게 메말랐다. 긴장이라도 한 걸까.

“미친, 댁이 왜 거기 있어?!”

어디선가 산통 깨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맨 앞에 선 가마꾼이 기겁을 했다. 염재효다.

그 순간, 시끌벅적한 장내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혼례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 모두가 동시에 입을 다물고 한 사람, 염재효를 주시했다.

“뭐, 뮈야··· 왜들 이래?”

제각기 웃고 떠들던 뭇사람들이 가면이라도 쓴 듯 일제히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인형처럼 표정이 사라진,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군중. 지저귀는 새와 벌레의 울음마저 사라진 기묘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단, 손님들께서도 함께 어울려 주셔야 합니다요.」

불현듯 꿈장수가 주의를 준 것이 떠올렸다.

함께 어울려 달라 하였지.

“······너··· 꾸물대지 말고··· 빨리 신부를 모셔와.”

“뭐···? 지금 나한테 명령한 거야?”

“상황에··· 맞게 행동해. ······본래 신분은 잊고.”

아무개는 은근슬쩍 꿈장수의 암시를 흘려 주었다. 꿈속의 군중은 아무개에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신랑 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안정권인 듯했다.

하나 안타깝게도 재효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였다.

“상황은 무슨. 내가 왜 가마꾼이야! 심지어 네놈 결혼식에···.”

“그만!”

호통 섞인 어조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군중의 틈바구니에 섞여 있던 석소영이다.

“이리 좋은 날에 괜한 소란 피우지 맙시다!”

“소영아···? 너까지 왜 그래···?”

“사람 잘못 보셨소. 나는 석소영이 아니외다!”

재효가 부르지도 않은 성씨까지 직접 붙여 가면서 본인은 석소영이 아니라 주장한 소영이 준엄히 일갈했다.

“상황에 맞도록 언행을 조심하시오!”

이번에도 꿈속의 군중은 재효만 빤히 주시할 뿐, 소영에게는 반응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같은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깨달은 염재효가 아차 했다.

“하, 하면 되잖아! 나는 가마꾼이니까···!”

부러 큰소리를 내며 염재효가 가마를 옮겼다. 네 명의 가마꾼이 짊어진 사인교가 움직이고 다시금 사위가 시끌벅적해졌다. 각자 먹고 떠들고 마시는 사람들은, 좀 전의 기이한 정적은 새까맣게 잊은 양 자연스러웠다.

마침내 가마가 땅에 내려앉았다. 문이 들려 올라가고, 붉은 활옷에 족두리를 얹은 신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곱게 분한 새신부가 가마에서 내리자 주변의 환호성이 더욱 짙어졌다. 하나 아무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부가 비단 안대로 눈을 가리어서가 아니다. 어지간한 가마꾼보다 훨씬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근골이어서도 아니다.

붉게 칠한 입술이 낯익은 미소를 그렸다. 삿갓이 드리운 그늘 속, 혹은 너울에 가리어져 은은하게 비치던 웃음이 한낮의 볕 아래 온전히 드러났다.

그의 신부는, 술사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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