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돌아가는 길은 들어올 때와 다른 곳이었다. 술사는 사람이 넘쳐나는 저자에서 벗어나 민가가 모인 주거 구역의 샛길을 통했다. 이곳은 저자보다 사람도 소란도 덜하여 아무개는 움츠린 어깨를 조금쯤 펼 수 있었다.
시력이 돌아온 건 그즈음이었다.
눈이 뜨이고 아무개가 처음으로 목도한 것은, 집 앞 좁은 마당에서 새초롬히 눈을 치켜뜬 꼬마였다. 아이의 낮은 시선이 자신을 따라 움직였다.
아무개는 아이를 마주 보았다. 제 허리춤에나 간신히 다다를 어린아이와 눈싸움하던 아무개는 건넌 집 마당에 또 다른 아이가 저를 노려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무개는 눈을 뾰족하게 뜨고서 주위를 둘러봤다. 이 집 저 집 드문드문한 아이들이 일제히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개는 지지 않고 눈을 부릅뜨며 그 모든 시선에 하나하나 맞섰다.
“아무개 님.”
술사가 재미있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왜 허수아비를 노려보세요?”
······허수아비?
반사적으로 술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아무개는 다시 원위치시켰다. 아담한 초가집 마당에는 작은 허수아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좀 전까지 자신을 노려보던 아이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어··· 아닌데······.”
허수아비가 아니라 조그만 꼬맹이가 있었는데.
하나 눈을 씻고 보아도 그 자리에는 허수아비뿐이었다. 집 마당에 띄엄띄엄 세워 둔, 자그마한 허수아비들의 행렬은 길목을 벗어날 때까지 죽 이어졌다.
“왜··· 허수아비지?”
아무개는 멀쩡한 허수아비가 어찌하여 어린아이로 보였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하나 워낙 말이 짧은 탓에 술사는 다르게 이해하였다.
“그러게요. 왜 집 마당에 허수아비를 세워 뒀을까요?”
허수아비는 논밭에 세워 두는 것이지 저리 집 앞마당에 떡하니 놓아둘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너무 작았다. 허수아비는 멀리서도 새나 짐승이 볼 수 있도록 큼직하게 만들어야지 않나.
“아무개 님. 이제 눈이 보여요?”
“으응···.”
“다행이네요. 슬슬 술법의 효력이 다할 때가 됐지요.”
주거지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무렵. 아무개는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사모관대를 쓰고 푸른 단령을 입은 새신랑이 나귀를 타고 갔다. 이것은 혼례의 의식이니 그다지 이상할 게 없다.
다만, 그 신랑이 다섯이나 나란히 나귀를 타고 가는 모습은 확실히 특이했다.
“······왜 저래?”
“한번 가 볼까요?”
신랑의 뒤를 따라 거자 고을 외곽 마당에 마련된 초례청에 다다랐다. 다섯 신랑이 나귀에서 내려 초례상 앞에 섰다. 이어서 신부를 태운 가마가 차례차례 들어왔다. 다섯 가마가 연달아 들어오니 복작복작했다. 신부가 가마에서 내리고, 아무개는 또다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다섯 신부 모두 눈에 띄게 배가 불렀다. 넉넉한 활옷으로도 두드러질 만삭이었다.
“······사고 쳤나?”
이제 막 혼례를 올리는 새신부의 배가 산만 하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둘도 아니고 다섯 쌍 모두 사고 쳐서 혼인을 하다니.
이 동네는 개방적이구나, 그리 여기던 중 아무개의 혼잣말을 들은 어르신 한 분이 경기를 일으켰다.
“무슨 소릴 하는 겐가? 여기 신랑 신부는 모두 혼인을 약조하고 한 지붕 아래서 사는 멀쩡한 부부일세!”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고, 물어본 것도 아니었기에. 아무개는 펄펄 뛰는 어르신을 무시했다. 술사가 대신 말을 이어갔다.
“이미 함께 사는 부부들이 오늘 합동 혼례를 올리는 건가요?”
“에잉, 쯧. 아무것도 모르는 걸 보니 자네들 타지 사람이구먼?”
우리 고을엔 예로부터 신혼부부만 잡아가는, 낫을 든 귀신이 있었네.
“한데 고놈의 악귀가 애만 보면 줄행랑을 치지 뭔가? 허니 일단 합방을 시키고 아이를 가지면, 후에 혼례를 치른다네.”
“그렇군요.”
“혹 오는 길에 허수아비를 보았나? 다 그놈의 낫 귀신 때문일세. 우리네 눈에는 평범한 허수아비일진대, 악귀에게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귀물이라지. 원령의 눈을 속여 부부를 지키고자 두는 것이라네.”
어르신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알려 주었다. 술사는 사회성을 십분 발휘하여 적당히 상대해 주고는 거리를 두었다.
“어르신 말씀을 들어 보면 이 고을의 지박령인 듯하네요. 그런데 특유의 음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당연히 원령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요. 아무개 님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어어?”
아무개는 괜스레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유랑술사의 눈에도 보이지 않은 만큼, 당연히 아무개도 별다를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나도 안 보여. 낫 귀신이라는 거··· 구마당하지 않았을까?”
“이보게, 국수 먹고 가지 않고?!”
어르신이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술사는 하하 웃으며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며 사양했다. 초례청을 벗어나 고을 어귀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저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 남자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급히 달려오느라 속이 따끔한 듯. 배를 움켜쥐고 허리를 굽힌 남자가 헉헉대며 물었다.
“저어, 정말로 낫 귀신이 사라졌습니까?”
아무개가 멀뚱멀뚱하는 동안 술사가 대화를 이어 갔다.
“저희는 오늘 이 고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원령이 없는 듯싶네요.”
“그, 그럼 혹 증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귀하께선 술사 나리님이시죠? 유랑술사의 소맷부리를 덥석 붙잡은 그가 간절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제게는 혼인을 약조한 아내가 있습니다. 벌써 몇 년째 함께 살고 있지요. 이미 부부나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한데 아이가 생기질 않아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놈의 낫 귀신 때문에 말예요!”
“허수아비가 있지 않나요?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는 허수아비를 사용하여 원령을 쫓아내면 될 듯한데요.”
“네, 맞습니다. 허수아비 귀물을 쓰면, 꼭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혼례를 올릴 수 있습죠.”
한데 그 허수아비 가격이 어마무시합니다.
“한두 번이면 눈 질끈 감고 사 본다 쳐도. 매번 새로 들이기엔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요.”
“그 허수아비가 따로 구매해야 하는 물건인가요?”
“어휴, 당연히 평범한 허수아비로는 낫 귀신을 쫓아낼 수 없지요. 저희 마을에서 쓰이는 허수아비는 주단 금씨에서 특별히 제작해 준 법보입니다.”
주단 금씨. 오대세가 중 일익이자 얼마 전 마찰을 빚었던 금비환의 가문.
“귀물의 효력이 달포밖에 되질 않아 매번 새로 사야 합디다. ······그러고 보니 슬슬 요번 달 수량조사를 하러 올 때가 됐네요. 매달 신혼부부가 몇인가 알아보러 오거든요.”
잠시 샛길로 이야기가 샌 남자는 다시금 술사에게 애원했다.
“무튼 그래서, 저희 부모님과 일가친척 앞에서 아까 하신 말씀을 딱 한 번만 더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심하고 저희 혼인을 허락하실 수 있게요.”
잡혀 구겨진 소맷부리를 응시하던 술사가 아무개를 돌아보았다. 그는 애원하는 사내가 아닌, 아무개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말 한마디 해드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요.”
“가, 감사합니다!”
“한데 저희가 따로 일정이 있어서요. 먼저 볼일을 마친 후에 일행들 의견을 구하고 오겠습니다.”
술사는 아무개의 일부터 해결하고, 일행의 의견까지 들어 보겠다 하였으나, 사내는 이미 허락을 받아 낸 양 기뻐하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제집이 어디인가 알려 주며 꼭 나중에 다시 뵙자 청하는 사내를 뒤로 한 채. 그들은 동구 밖 당산나무를 향해 이동했다.
“이제 가면 후배님들께 의견을 물어볼 거예요.”
“응···.”
“그 전에 아무개 님은 어떠세요? 아까 만난 분 도와드릴까요, 말까요?”
“······? 그걸 왜···.”
왜 나한테 묻느냐고 하려던 아무개는 뒤늦게 떠올렸다. 일행의 의견을 묻는다 하였지.
나도 술사님의 일행이야.
“별로··· 상관없어.”
“정말요?”
반보 앞서가던 술사가 빙글 돌아 아무개를 마주 보았다. 우뚝, 걸음이 멎었다.
“아무개 님이 싫다 하시면, 후배님들껜 여쭤보지 않을 거예요.”
재효와 소영에게 차례가 돌아가기도 전에 의사결정이 끝난다.
“일가친척이면 사람들이 꽤 모일 거예요. 저자에서처럼 그다지 상관없는 인파가 스쳐 가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겠지요.”
너울이 허공에서 물결치며 유랑술사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말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단순히 괜찮으냐 아니냐만 따지자면, 물론 괜찮지 않은 쪽에 가깝다. 하지만 살면서 하고픈 일만 골라 할 수는 없으니.
무엇보다 아무개는, ‘일행’인 자신의 결정이 술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퍽 기꺼웠다. 다른 시답잖은 것들은 조금쯤 눈감아 줄 만큼.
“······으응.”
그러니 유랑술사의 일행이라면, 이쯤은 마땅히 감내해야겠지. 아무개는 단단히 팔짱을 꼈다.
“꿈장수?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나?”
단호하기 짝이 없다. 소영과 재효는 카랑카랑한 음성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내 저어기 산 너머 옆 마을에서 반백 년 넘게 살면서 꿈장수라는 건 듣도 보도 못했네. 아직 한참 어린 것 같은데. 흰소리에 넘어가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엄포를 놓는 중년인 뒤로 멀찍이서 술사와 아무개가 작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 동네는 처음인가 본데. 혹여나 여기 뒷산에는 들어가지 말어. 거기 갔다 돌아온 작자가 없어 금역으로 정해 놓았으니, 얼씬도 말어야 해. 알았나?”
내가 우리 손주들 같아서 해 주는 말이라며 한껏 훈수를 둔 중년인이 떠나고. 유랑술사와 아무개가 당도했다.
“······진짜로 돌아왔네.”
중얼거리는 재효에서는 얼떨떨한 감정이 엿보였다. 의심의 대상인 술사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도망갈 셈이면 굳이 후배님들을 모셔 오지도 않았어요. 번거롭게.”
재효가 슬며시 얼굴을 붉혔다. 그 뒤에 기둥처럼 있던 소영이 입을 열었다.
“꿈장수는 찾으셨습니까?”
“네에.”
술사가 선선히 답하자 소영의 낯에 놀라움이 은은히 번졌다. 재효는 대놓고 어깨를 들썩였다.
“진짜? 말도 안 돼! 요!”
옆 동네서 오십 년은 살았다는 아저씨가 없다 했는데?
“정말이에요. 직접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리던 술사가 아 참, 하고 어린 후배들을 향해 말했다.
“오는 길에 일이 있었어요.”
그는 이 고을 특유의 혼례 문화와 그리된 경위. 마지막으로 부탁한 남자의 사정까지 설명해 주었다.
“괜찮으시다면, 꿈장수를 찾아 일을 본 후 그분 댁에 들르는 건 어떨까요?”
“상관없어요. 딱히 수고로울 것도 없고.”
“좋은 일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효와 소영이 연달아 동의했다. 그들은 나란히 술사를 따라 저자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