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혼설 (24)화 (24/138)

24화

“사기 아니야? 요?”

꿈장수라는 존재를 처음 접한 염재효는 의심부터 했다. 까칠한 반응이었으나 술사는 선선히 수긍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선배도 확신을 못 하는 거였어? 요? 한데 거길 왜 가요? 허탕 치면 어쩌려고?”

“일말의 단서라도 있다면, 시도해 보는 편이 좋잖아요. 설혹 헛수고로 그친다 해도.”

“그치만 이건 헛수고 수준이 아닌데요? 주성이라니, 너무 멀잖아요!”

“걱정 마세요. 일각이면 충분하니까.”

“일각은 무슨?! 말을 타고 가도 한 달은 족히 걸릴···.”

투덜거리던 재효는 한창 토를 달던 중 깨달았다. 여기 계신 유랑술사께서는 눈 깜빡할 사이 오백 리를 가뿐히 오가는 자였다. 십수 명이나 되는 인원을 거느리고서.

“뭐어, 대단하신 선배님 덕분에 오가는 길은 편하다 쳐요. 꿈장수라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작자를 어찌 찾으시려고요?”

“가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아무 대책이 없다는 소리잖아?! 요!”

남들이 뭐라던 멀뚱히 보고만 있던 아무개는 재효가 술사를 향해 점차 언성을 높이자 눈매를 찌푸렸다.

“···그래서?”

“······어엉?”

내도록 자신을 공기 취급하며 없는 셈 치던 흉신이 먼저 말을 걸어 오자 재효는 당황했다. 아무개는 천천히 뒷말을 이었다.

“감시··· 안 할 거야?”

“아니, 그건··· 당연히 해야지. 감시.”

흉신이 무슨 악행을 벌일지 모르니 감시하겠다는 명목으로 붙어 있지 않았던가. 아무개가 어딜 가든 쫓아가는 것이 재효와 소영의 역할이었다.

기실 유랑술사는 흉신만 홀랑 챙겨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가 후배들에게 미리 행선지를 알리고 의견을 구하는 것은 배려였다.

“그럼··· 토 달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토 달지 말라니? 무슨 말을 그리···.”

“거슬려, 너.”

“······.”

인간이 숨만 쉬어도 거슬린다던 흉신이다. 혹 이런 행동도 흉신을 먼저 건드리는 것에 속하려나.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는 재효에게 소영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가 볼까요?”

그늘진 삿갓 아래 입꼬리가 휘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파문처럼 흐려졌다. 땅이 울렁이고 산이 뒤집혔다. 눈앞이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머지않아 그들은 낯선 곳에 서 있었다.

여느 고을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산나무 둥치. 특이한 점이라면, 나무뿌리가 반절 넘게 드러나 휘청 기울었다는 것 정도일까. 여지껏 살아 있는 게 용할 지경이다.

염재효가 비틀거렸다. 소영이 잡아 주었으나 정작 본인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대체 얼마나 먼 거리를 한 번에 뛰어넘은 건지. 속이 울렁거리고 욕지기가 나올 것 같았다. 재효는 입을 틀어막고 욱욱거렸다.

“저런, 힘드신가요?”

술사가 염려하는 말을 건넸으나 소영도 재효도 대꾸할 기력이 없었다. 난감한 듯 삿갓만 매만지던 술사가 아무개를 향해 돌아섰다.

“아무개 님은 어떠세요?”

“난··· 괜찮아.”

“다행이네요. 축지할 때 동행이 있는 게 오랜만이라 거리 조절을 잘못했나 봐요. 조금씩 나눠서 이동해야 했는데.”

“아니야······ 술사님 잘못이 아니라, 저것들이··· 약해서 그래.”

나무에 기대 가쁜 숨을 몰아쉬던 약골 염재효가 발끈해서 고개를 쳐들었다.

“누구더러 약하대?! 삼천리를 단숨에 건너뛰고 멀쩡한 쪽이 이상한··· 우욱!”

영 맥을 못 추는 소영과 재효를 두고 고민하던 술사가 제안했다.

“잠시 쉬고 계시겠어요? 저는 꿈장수에 대해 알아보고 올게요.”

“술사님··· 나도 갈래.”

“아무개 님도 같이 가고 싶으세요?”

“으응···.”

“여기서 편히 쉬셔도 되는데요.”

“······술사님.”

아무개는 여전히 속이 안 좋은 듯 욱욱 대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짓했다.

“안 편해.”

저것들이 있는데 어찌 편하겠냐고. 무언의 표시를 하니 술사가 어쩔 수 없네요, 하며 아무개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뒤에 남겨진 재효가 잠깐! 하고 외치려다 치밀어오른 구역질을 참다못해 개울가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 등 뒤로 백지 부적 한 장이 날아들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속을 게워내는 재효의 등을 부적이 톡톡 두드려 주었다. 팔랑팔랑 얇은 종이가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 습니다. 금방··· 나아질 테니. 조금, 만 기다려 주시면⎯ ”

소영이 헐떡이며 다급히 청하였다. 어린 후배님이 무얼 걱정하는지 짐작한 술사가 안심시켜 주었다.

“염려 말아요. 도망가지 않을 테니.”

안 그래도 수호단을 복용한 여파가 남은 소영이었다. 이를 언급하며 술사는 무리하지 말고 쉬라 권한 후 아무개와 함께 저자로 향했다.

하필이면 오늘 장이 서는 날인가 보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가운데 오고 가는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툭툭 어깨나 팔이 부딪혔다. 아무개는 몸을 움츠리고 팔짱을 꼈다. 인간이 많다. 너무너무 많다.

그리고 여지없이 불운이 시작되었다.

“이노무 도둑고양이가!”

어물전에서 생선 하나를 훔쳐 문 고양이가 부리나케 달아났다. 화가 난 주인이 손에 칼 든 것도 잊고 삿대질했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칼에 기겁한 사람들이 뒷걸음질 쳤다. 밀려난 후미의 사람이 하필 지나가던 보부상과 부딪쳤다. 보부상의 지게 위에 새끼줄로 엮어 높이 쌓아 올린 개다리소반이 기우뚱하더니 와르르 쏟아졌다.

바로 그 아래에서. 무언가 부딪히고 떨어지는 소리를 감지한 아무개가 초점 없는 눈을 들었다. 소반의 각진 다리 귀퉁이가 아무개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돌아가는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고통을 직감한 아무개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반응이 오지 않았다.

아무개는 의아해하며 손을 내밀어 보았다. 코앞에서 소반의 각진 다리가 만져졌다. 하지만 소반은 제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멈춰 있었다.

다리에서 평평한 상으로, 또 다른 다리로··· 소반의 형태를 따라 아무개의 손끝이 더듬더듬 움직였다. 그리한 끝에, 누군가의 손이 만져졌다.

곧게 뻗은 술사의 손이 소반 모서리를 붙잡고 있었다.

“어······?”

화들짝 놀란 아무개가 재빨리 손을 떼어 냈다. 연신 사과하는 보부상을 향해 소반을 내려놓아 준 술사가 제안했다.

“다른 길로 가 볼까요?”

술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인도했다. 잘 익은 홍시를 바구니째 들고 달려오던 아이를 가볍게 피하고, 폭삭 내려앉는 천막을 부적으로 고정해 들어 올렸다. 사물놀이패가 돌리는 상모의 하얀 초리가 돌연 떨어져 날아와 채찍처럼 후려치려 들 적에는 넉넉한 소맷자락으로 앞을 막아 주기도 했다. 유랑술사는 아무개를 덮쳐 오는 모든 불운을 솜씨 좋게 막아 냈다.

“······이상해.”

아무개는 술사가 사 준 엿을 입에 물고 웅얼거렸다. 나란히 걸어가던 유랑술사가 고개를 옆으로 했다.

“뭐가 이상한가요?”

“왜··· 아무 일도 없지?”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뭔가··· 부러지고, 떨어지고, 맞고, 깨지고······ 아무튼 안 좋은 일.”

아무개가 지나간 자리마다 한바탕 소요가 일었지만, 정작 본인은 보지 못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운 나쁜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는 거죠. 오늘은 좋은 날인가 봐요.”

휙⎯ 아무개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새총을 도중에 맨손으로 낚아챈 술사가 태연히 말했다. 실수로 사람에게 새총을 쏘고 깜짝 놀라 굳어 버린 아이에게 돌 구슬을 돌려주며 그가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미안해.”

“네?”

들켰나.

“내가··· 얌전히 기다렸으면, 술사님이··· 덜 귀찮았을 텐데······ 눈이 안 보이니까, 술사님이 신경 써야 하잖아.”

아무래도 들키진 않은 모양이다.

“글쎄요.”

술사는 주변 인파를 둘러보았다. 그의 의도는 무수한 사람 속에 머무는 지금, 아무개가 살인 충동이 드는가였다.

하지만 아무개는 이리 북적북적한 사람들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오직 술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아까 쉬라고 권유드렸던 곳이 물가잖아요.”

“······그게 왜···?”

술사가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무심히 흘렸다.

“물가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하필 이끼가 낀 돌에 미끄러진다거나, 그때 마침 급류가 들이닥쳐 휩쓸려 버린다거나, 물속에 있던 바위에 찍혀 다친다거나.

이 정도면 하늘이 무너질까 잠 못 이루고 땅이 꺼질까 밥도 못 먹었다던 누구 못지않은 염려였다. 숫제 물가에 내놓은 아이 취급이었으나, 쓸데없는 기우는 아니었다. 매설가도 아닐진대 패관소설 쓰지 말아라 퉁을 놓기에는, 아무개도 모르는 전적이 너무도 화려했으니.

“저는 같이 오길 잘했다 싶네요.”

술사가 읊조렸다.

“보이는 곳에 있어야 손을 쓸 수 있잖아요. 제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잠시 말을 멈춘 술사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제 시야가 닿는 곳에 계셔야 해요.”

“······으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