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세가의 술사들이 유랑술사를 반원으로 둘러싸며 포위했다.
“유랑술사 이름으로 장난질 치는 놈은 널렸지. 멋모르는 촌부들은 삿갓만 쓰면 죄다 유랑술사인 줄 아니까. 우리도 실제 그분을 만난 뵌 적은 없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긴장된 대치상황.
“이처럼 지독한 원기가 넘쳐흐르는 놈이, 진짜 유랑술사일 리 없어.”
아무개는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얇은 나무문은 꼼짝도 않았다. 두 손으로 밀고 안간힘을 써 봐도.
“제가 진짜면 어쩌려고 그러시나요.”
유랑술사가 반문하자 금비환이 짜증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의 다른 술사들이 입을 모아 성토했다.
“그럴 리가 있나.”
“유랑술사는 배분을 셈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까마득한 대선배님이다. 유랑술사라면, 우리가 해내지 못한 일도 능히 해결해야만 해.”
“하지만 넌 실패했지!”
“이미 다 들었다. 네놈이 장군 댁 아씨께 붙은 악령을 발견조차 못 했다고!”
아무개는 초조하고 다급한 나머지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대문에선 주먹과 부딪히는 굉음조차 나질 않았다. 술사님! 하고 외쳐 불러도 밖에선 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일절 반응이 없었다.
문밖에 붙은 백지 부적이 일종의 결계를 생성한 탓이지만, 문안 쪽에 있는 아무개로선 알 수 없었다. 유랑술사는 아무개가 혼신을 다해 부서져라 두드리는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세가의 술사들은 여전히 그를 몰아붙였다.
“능력을 증명하지도 못할뿐더러 불가해한 귀기와 원기로 점철된 네놈이 사대귀인 유랑술사일 리 없다!”
유랑술사는 팔짱을 끼고 흐음, 침음을 흘렸다.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기란 의외로 까다로운 일이지요.”
어쩔 수 없네요, 하고 유량술사가 입을 열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뭐라?”
“진짜든 가짜든 자유롭게 판단하시라고요.”
“······이 자식이···!”
뒤에서 진을 치던 술사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듯 아우성쳤다. 하지만 금비환이 손을 뻗어 제재하자 불만을 가득 품고서도 분을 참아 냈다. 그들을 대신하여 금비환이 일갈했다.
“어설픈 말장난으로 가벼이 넘기려 들지 마라!”
“장난이라뇨. 그럴 리가 있나요.”
유랑술사는 보란 듯이 과장된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대화와 설득은 들을 의지가 있는 자에게나 통하죠. 눈 귀를 틀어막은 분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애초에 유랑술사가 무어 대수라고 흉내씩이나 내나요. 그가 탄식하듯 덧붙여 말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니. 안타깝네요.”
“네놈! 사대귀인을 거짓으로 어설피 흉내 내는 거로 모자라, 감히 헐뜯는 게냐?!”
“헐뜯는 게 아니라, 진실이 그럴진대···.”
퉁⎯
청산유수처럼 떠들던 유랑술사의 말이 돌연 뚝 끊어졌다. 여타 세가 술사들은 미처 듣지 못할 만큼 아주 작은 소리였으나, 문에 등을 기댄 그에게는 소리뿐 아니라 진동까지 함께 전해진 것이다.
퉁. 투웅⎯ 문을 두드리는, 묵직한 울림.
직접 결계를 친 그만이 알고 있었다. 외부와의 공간을 단절시킨 문 안쪽에서. 문밖 결계 너머까지 이만한 울림이 닿으려면, 얼마나 강한 힘을 가해야 하는지.
“······제 일행이 기다리기 싫은가 봐요. 빨리 끝냅시다.”
“끝내긴 누구 맘대로···!”
“제가 함 장군님 의뢰를 완수하지 못했으므로 자질이 의심된다는 뜻이죠?”
금비환이 그렇다면? 하고 되물었다. 유랑술사는 담담하게, 일상적인 어조로 말했다.
“내일까지 이 일을 해결하겠습니다. 더는 함 장군께서 술사들을 찾아 부르지 않도록.”
“······.”
“제 존재 증명은 이걸로 대신하죠. 만약 실패한다면, 그땐 여러분 마음대로 하세요.”
서로 눈길을 주고받던 세가의 술사들은, 미리 모종의 합의를 해 둔 듯 불편한 기색으로도 천천히 물러났다.
그들이 사라지고. 유랑술사는 뒤돌아 문을 마주하고 섰다. 가볍게 손짓하자 대문에 들러붙은 백지 부적이 저절로 떨어져나왔다. 동시에.
우당탕-!
문짝이 격하게 열어 젖혀지며 아무개가 퉁겨져 나왔다. 꿈쩍도 않는 문에 어깨를 대고 전신의 힘으로 들이받던 중. 돌연 대문이 열린 탓에 휘청하고 기울어진 것이다.
옆으로 사뿐히 물러선 술사는 호되게 넘어지는 아무개를 한 손으로 잡아 세웠다. 허리춤에는 술사의 팔이 단단하게 걸리고 삿갓에 늘어뜨린 너울은 공중을 하늘대며 귓가를 살며시 스치었다.
견고하고 간질한, 상반된 감각에 소름이 돋아 굳어 버린 아무개에게. 술사가 웃음기 머금은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리 서두르세요.”
뻣뻣하게 굳은 채로도 아무개는 자신이 이상한 건가 싶었다. 실제 ‘무슨 일’의 당사자인 그는 어찌 이리도 태연자약하단 말인가.
“있잖아, 술사님···.”
우물우물. 입술을 거의 벌리지 않고 하는 말에 술사는 좀 더 가까이 귀를 기울였다.
“아까··· 문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제가 가짜 유랑술사라는 거요?”
아무개는 시무룩해졌다. 그가 말 같지도 않은 의혹을 산 건, 순전히 제 탓이었으므로.
“제가 가짜 같나요?”
“아, 아니야.”
허둥지둥하는 아무개는 아직도 문을 두드리고자 주먹을 높이 치켜든 자세 그대로였다. 어찌나 격하게 쳐 댔는지 주먹 아랫부분부터 소지까지 발갛게 부어 있었다. 곧 멍이 들 것 같은 손을 술사가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난 알아. 술사님은··· 진짜야.”
웬 머저리들이 눈을 발바닥에 달고 있어서 가짜 운운해도 아무개는 헷갈리지 않았다.
“······술사님, 괜찮아?”
“뭐가요?”
“아까··· 의원한테는, 아씨를··· 되돌릴 수 없다고 했잖아. ······어떻게 치료하려고···?”
술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아씨를 고치겠다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그 스스로 ‘아씨는 전처럼 되돌릴 수 없다’고 확인하지 않았던가. 대체 어찌하려는 걸까?
“하하, 제가 무슨 수로 아씨를 치료하겠어요? 의원도 못 고친걸요.”
“······어?”
“저는 이번 일을 해결하겠다 했지, 아씨를 치유해드리겠다 한 적은 없는데요.”
어어?
그게 그거 아닌가 싶었던 아무개는, ‘더는 함 장군께서 술사들을 찾아 부를 일 없도록’ 해결하겠다던 말을 떠올렸다.
“저녁에 한 번 더 보겠지만, 악귀를 제령하는 건 무리예요. 없는 걸 없애 달라는 청을 무슨 수로 들어주겠어요.”
함 장군도 양 의원도 떼를 쓰는 것뿐이다. 있지도 않은 악령을 떼어 달라는 억지를.
“이번에 확실히 납득시켜드려야죠. 아씨는 악령 때문에 변한 게 아님을.”
***
눈앞이 캄캄하고 손발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짙은 어둠 속을 벌레처럼 기며 아무개는 생각했다.
꿈이구나.
양 의원을 만난 후 객관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자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는데. 그새 깜빡 잠들어 버린 모양이다.
이번엔 또 누구의 기억이려나······
“······움직여.”
꿈속. 아무개가 갇힌 육체의 원주인이 입을 열었다.
“움직이란 말이다!”
약에 취한 듯 머리가 몽롱했다.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탓이리라.
“제발, 움직이라고!”
중언부언하는 입은 제 것이되 남의 것이었다. 아무개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육신에 깃들어 입을 뻐끔거렸다. 그런 중에도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했다.
이 모든 건 어차피 꿈이다. 지나간 과거. 인제 와서는 아무런 소용 없는.
“왜, 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야! 여봐라, 불을 켜라!”
격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마에 핏대가 서고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느낌을 아무개는 고스란히 감내했다.
이것은 꿈. 돌이킬 수 없는 옛일. 그럼에도 아무개는 순간순간의 감각을 더할 나위 없이 생생히 느껴야만 했다. 그의 악몽은 늘 이런 식이므로.
······이래서 잠들고 싶지 않았는데.
“안 돼. 내가 없으면, 우리 성이···!”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격하게 울부짖던 그때. 다정한 물음이 한 줄기 바람처럼 흘러들었다. 아무개는 그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즉각 알아차렸다.
유랑술사.
잠시 후, 아무개는 달렸다. 정확히는 달리는 몸 안에 의식이 갇힌 게지만. 어쨌든 달리고 있었다. 앞이 보이고 손발이 움직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꿈쩍도 않았거늘.
어찌 된 영문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으나, 이 몸은 아무개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지난날 어느 세월 속에 스러져 간 필부의 기억을 재현하였을 뿐. 꿈속에서 아무개는 참으로 무력하여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 단지 지켜보는 것밖에는.
달리고, 또 달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조차 어려울 즈음, 멀리서 낯익은 성벽이 보였다. 호명성. 함 장군 일가가 머무르는 지역.
성벽을 발견한 육신이 한층 더 걸음을 서둘렀다. 아니, 서두르려 했다.
성루 위에 꽂힌 적군의 깃발을 보기 전까지는.
“왜······?”
어째서?
심장이 아찔하게 추락했다. 다리에 쇳덩어리라도 매달아 놓은 듯 걸음이 무거웠다.
“게 누구냐!”
성벽을 지키는 초병이 소리 높여 외쳤다.
“뭣 하는 놈이냐? 꼴은 또 뭐고.”
“얼굴에 무얼 붙인 게지? 저래서야 앞이 보이긴 하나?”
무심코 뺨을 더듬자 얇은 종이가 손에 잡혔다. 어찌 종이를 얼굴에 붙이고도 지금껏 몰랐을꼬. 의아함이 들었으나 직후 섬뜩한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앞이 보인다. 종이로 얼굴을 가리었음에도.
굳게 닫힌 성문과 이를 지키는 병졸들. 두텁게 쌓은 성벽과 그 위에 펄럭이는 적군의 기까지. 모조리 선명하게 보였다!
“자, 잠깐. 저 녀석··· 아니, 저분이 입은 옷!”
“······어, 어어?!”
고압적으로 나서던 초병들이 뒤늦게 당혹했다.
“장군님?”
아무개가 깃든 육신이 초병의 부름에 응하듯 고개를 들었다.
“자, 장군님!”
“정말 최 장군님이십니까?”
신체가 미세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비로소 아무개는 제가 깃든 이의 정체를 알아냈다. 먼 옛날, 아마도 함 장군이 둥지를 틀기 훨씬 이전부터 호명성을 지킨 장군.
“어딜 가셨던 겁니까!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안으로 뫼셔야···.”
“멍청한 놈, 정신 차려! 저 작자는 성이 포위당한 중에 혼자 살겠답시고 도망질한 배신자로 알려져 있다!”
도망쳐? 배신자라니.
내가?
“잊지 마. 지금 성주는 양 부장님이시다! 부장님께서 선견지명을 발휘하여 배신자를 한발 앞서 처단하고, 우리를 대신해 제물로 바친 게야!”
아니야! 난 도망치지 않았다!
정신이 들고 보니 눈앞이 어두워 아무것도 뵈질 않고 사지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옴짝달싹 못 한 채 외딴곳에 오도카니 버려져 있었다고. 그리 항변하고자 입을 열려던 찰나.
“···⎯커헉!”
고통스런 신음이 말소리를 뭉개고 흘러나왔다.
두 눈과 손목, 발목에서 타는 듯한 열기가 아리게 들쑤셨다. 덜덜 떨리는 시야로 내려보니 손목과 발목에 뱀처럼 감긴 하얀 종이가 보였다. 각 종이에는 혈액으로 그린 검붉은 선이 한 줄씩 그어져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아무개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찰나. 최 장군이 기억의 저편에서 한 자락을 떠올렸다.
「손목 발목의 힘줄이 잘렸습니다. 두 눈은 난도질당했네요.」
잔인한 현실을 일깨우는, 상냥한 목소리.
흙바닥을 기던 최 장군에게 도움이 필요하냐 여쭈던, 유랑술사의 음성이었다.
「상처가 무척 깊어요. 약에 취해서 느끼지 못하나 본데, 효력이 다 하면 고통이 극심할 겁니다.」
「서둘러 가셔야 한다? 어찌할까요. 이래서는 걷는 것조차 힘에 부칠 텐데.」
「······그럼, 제 것을 빌려드릴까요?」
「성에 당도할 때까지.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요.」
손목 발목에 감긴 백지 부적. 그 위에 그려진 검붉은 선은 힘줄을 뜻했다. 손발의 힘줄이 잘린 최 장군에게 술사가 제 것을 빌려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 눈 또한······
“여기는 어찌 오셨소.”
굵직한 음성이 머리 위에서 벼락처럼 떨어졌다. 최 장군은 고개를 한껏 쳐들었다. 수족처럼 믿고 의형제를 맺은 양 부장이 성루에 서 있었다.
최 장군은 의식이 끊어지기 전의 일을 복기했다. 압도적인 병력의 적군이 성을 포위한 지 사흘째. 그는 결사 항전을 외치며 수하들을 독려했다. 양 부장은 숨 좀 돌리라며 따뜻한 차를 가져왔고.
다시 깨어났을 땐,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캄캄하여 밤이 온 줄로만 알았다. 불을 켜라 명했으나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하여 직접 초에 불을 켜고자 했으나 손발이 꿈쩍도 않았다. 그는 흙먼지를 삼키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네놈이로구나.”
장군은 깨달았다. 그가 믿어 온 수하에게 배신당했음을.
“답답한 작자 같으니.”
양 부장은 부정하지 않았다.
“대세가 명확히 기울었는데. 어찌 결사 항전 같은 개소리를 하시오? 다 같이 죽자는 말밖에 더 됩니까?”
도리어 최 장군을 비웃었다.
“뒤지려면 혼자 뒤지시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