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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혼설 (6)화 (6/138)

6화

양 의원은 객을 안으로 모시고자 했으나 술사가 사양했다. 나란히 툇마루에 걸터앉은 그들 가운데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씨 일은 전해 들었습니다. 오늘 밤 장군님댁을 재차 방문하신다지요?”

“소식이 빠르네요. 역시 약혼자는 다른 걸까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의원이 고개를 주억였다.

“네. 저는 늘 아씨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곁을 지키지 못하는 까닭은, 아씨께서 의원님을 증오하기 때문인가요?”

의원이 멈칫했다.

“······술사님이야말로 소식이 빠르십니다. 오늘 아침에 당도하셨다더니, 벌써 거기까지 아신 겁니까?”

“하하, 오며 가며 주워들은 것만 해도 대강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무슨··· 소문이라도 도는 겁니까?”

“극히 연모하는 약혼자를 해하려 들다니. 어느 삿된 악령이 아씨를 홀린 게 틀림없다고들 하지요.”

극히 연모하는. 그 말을 혀끝에 머금고 외던 의원이 힘없이 낯을 떨구었다.

“······그랬지요.”

아무개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둘러보았는데, 예를 들어 의원의 얼굴이 그랬다. 객이 온 줄도 모르고 멍하니 있을 때부터 직감했지만, 술사와 대화하는 지금도 정신머리 반절은 어디 두고 온 듯 넋을 빼놓았다.

얼핏 사지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으나, 실상은 이미 죽은 사람처럼.

마당 어귀에 놓인 밥그릇은 덕구의 것이리라. 전용 밥그릇이 따로 있다니. 얼마나 자주 방문했을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지금은 빈 그릇에 흙먼지만 덩그러니 쌓였지만.

“아씨께서 부친과 외유를 떠나기 전, 마지막 행적이 산책이라더군요. 의원님께서 덕구를 대신 데려다주셨다고요?”

“네. 아씨께서 먼 길을 떠나기 전··· 덕구와 의원에 방문하셨습니다.”

실은 그날 아씨와 언쟁이 있었습니다.

의원이 손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을 묵묵히 자책한 그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상심한 아씨께서 뛰쳐나간 후 덕구가 저를 찾아왔지요. ······아마 그 무렵, 장군께서 아씨와 만나셨을 겁니다.”

사람은 어찌 한 치 앞을 몰라 후회를 저지를까.

그때 그 시간이 마지막임을 알았더라면, 결코 그리하지 않았을 것을.

의원의 탄식을 흘려넘긴 아무개는 속으로 대중했다. 함 장군은 정인과 다퉈 마음 상한 여식의 기분을 풀어 주고자 외유를 간 걸까?

“덕구가 의원님께 돌아온 걸 보면, 많이 좋아하나 봐요.”

얼굴에서 손을 뗀 양 의원이 쓰게 웃었다.

“강아지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될는지 모르겠으나, 참 보는 눈이 없달까요. 덕구는 사람이면 누구든 다 좋아합니다. 아마 장군님댁에 도둑이 들어도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 거예요.”

······그래서 나 같은 놈도 좋아해 준 거겠죠.

끝끝내 자책한 의원이 술사를 돌아보았다.

“그날 일은 더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따로 궁금한 점이 있으신지요.”

“저를 불러들인 게 의원님이시라고요?”

“네. 제가 그랬습니다.”

덤덤히 긍정한 양 의원은 피로에 전 눈가를 지압하듯 혈을 눌렀다.

“소환부를 구하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거금을 들였습니다만··· 안타깝게 됐군요.”

길지 않은 대화였으나, 그새 의원은 어찌 돌아가는 형국인지 얼추 눈치챈 듯했다. 그러니까, 인적 물적 자원을 아낌없이 소모해 기껏 유랑술사를 불러냈으나, 이전에 거쳐 간 여타 술사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결과인 게다. 안타까울 법도 했다.

“어찌하여 저를 찾으셨나요?”

“···네?”

“제 생각에는 말이죠.”

마루에 걸터앉은 유랑술사가 의원 쪽으로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무릎에 얼굴을 삐딱하게 기댄 술사가 의원을 돌아봤다.

“숨기는 게 있는 듯해요. 의원님도, 장군님도.”

아무개는 보았다. 마루를 짚은 의원의 손이 희미하게 떨린 것을.

“오대세가 모두에 연통을 넣으셨죠? 세가에 다중 의뢰는 암묵적 금기예요. 오대세가는 혈통에 자부심이 대단해 타 가문과 협업하면, 체면이 깎인다 여기거든요.”

“그, 렇습니까?”

“네에. 덕분에 여러분이 이쪽 사정에 문외한인 건 알겠어요. 만일 황제 폐하의 누이동생 일이 아니었다면, 여러분이 보낸 연통은 세가의 문턱을 넘지도 못했을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의원님께 조언해 준 자가 있을 거예요. 이 바닥 생리를 아주 잘 아는.”

의원과 유랑술사가 소리 없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누굽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술사가 입을 열었다.

“당신께 금기를 알려 준 사람이.”

벌떡 일어난 양 의원이 파리하게 질린 낯으로 시선을 피했다. 힘줄이 돋아난 주먹이 그의 긴장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아무개는 의원의 과민한 반응이 의아했다. 여러 세가에 동일한 의뢰를 해선 안 된다는 금기가 뭐 어떻다고. 비술사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모르지.

설령 그러한 암묵적 금기가 있다 한들, 황권으로 밀어붙이라 조언받을 수도 있지. 무에 그리 대수로워 저리 펄펄 뛰는지.

“······금기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아하, 시치미를 떼시겠다?”

술사는 여전히 웃음 짓고 있었다.

“의원님은, 그리고 장군님은 당신께서 저지른 일이 어떤 여파를 불러올지 몰랐어요. 그러니 아씨께 악령이 씐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시죠.”

“뭐, 뭔가 아시는 겁니까?!”

의원이 비명처럼 외쳐 물었다. 흥분한 그와 달리 술사는 나긋하고 조곤조곤했다.

“살짝 넘겨짚어 보자면, 혹 거울 형태의 법기를 가지고 계신지요?”

“······!”

법기란 술사가 사용하는, 신묘한 힘이 깃든 기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유랑술사는 아씨가 증상을 분석해 역으로 법기의 정체를 유추한 것이다.

“역시 그랬군요. 하하, 곤란하네요.”

곤란하다는 술사는 정작 난처함이라곤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 거울을 사용하셨다면, 아씨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제 말뜻을 의원님은 아시겠죠.”

이쯤 되자 아무개도 대강 눈치챘다. 의원과 장군은 모종의 법기를 사용했고, 그로 인해 아씨가 미치광이로 변한 것이다. 법기 때문에 그리되었으니 술사를 불러 해결하려 든 게지.

의원이 망연한 얼굴로 입술만 움칫했다. 술사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셨겠죠. 예기치 못한 전부를 책임지는 건 불가능하나···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은 져야지 않겠어요. 여러분도, 저도.”

아무개는 갸웃했다. 장군이나 의원은 그렇다 치고, 술사는 왜 뜬금없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단 건지.

“······부른 적도 없는데. 마중을 다 나왔네요.”

혼잣말을 중얼거린 술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 밤 다시 아씨를 뵐 텐데. 그때까지 의원님께서도 결심이 서길 바라요.”

결심이라 해 봐야, 아무개가 보기에 양 의원이 택할 수 있는 건 몇 없었다. 이대로 현상 유지나 하며 미친 아씨와 멀어지는 것. 혹은 아씨 손에 죽거나··· 아씨를 죽이거나. 그뿐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심으로 죽이려 하는데. 이외에 다른 방도가 무어 있겠는가?

의원에게 시간을 준 술사는 마당을 가로질러 단숨에 대문으로 향했다. 그 뒤를 아무개가 쭐레쭐레 뒤따랐다.

너른 보폭으로 성큼 나아가던 유랑술사는 대문 앞에서 우뚝 섰다. 아무개도 따라 멈추자 굳게 닫힌 문을 예의주시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기다려 주실래요? 잠깐이면 돼요.”

아무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랑술사는 홀로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백지 부적 한 장이 널판에 찰싹 달라붙었다.

“많이들 오셨네요.”

그 앞에는 객관에서 잔뜩 성을 내며 스쳐 갔던, 세가의 술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무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유랑술사를 마주했다.

“나는 금비환이다.”

앞장선 청년은 제 이름 석 자면 충분하다는 듯 턱을 치켜들고 오만하게 선언했다.

“저는 지나가던 평범한 술사예요.”

유랑술사가 가벼이 대꾸하자 금비환이 미간을 좁혔다.

“지나가던 평범한 술사······ 사대귀인 유랑술사가 자신을 소개할 때 늘 하는 말이지. 삿갓에 백지 부적까지. 아주 작정하고 흉내 냈군, 그래.”

하하, 짧게 웃은 유랑술사가 고개를 비틀었다.

“제가 유랑술사를 흉내 낸 가짜라는 건가요?”

“물론.”

대문 너머 들려오는 말소리에 아무개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무슨 헛소리지?

“우리는 함 장군 측에서 네놈, 가짜를 소환하기 전에 그 댁을 방문했다.”

가온 염씨, 운해 하씨, 화양 율씨, 주단 금씨, 강암 석씨.

대대로 명문이라 칭하는, 오행의 극성을 이룬 뿌리 깊은 술사들의 종가.

이처럼 우수한 가문 내에서도 황제의 부친 되는 함 장군의 의뢰를 수행하고자 뽑힌 유망주. 그들이 유랑술사를 가짜라 지칭했다.

“객관에 머무르며 떠날 채비를 하던 중. 섬뜩하고 불길한 귀기가 접근하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는 논의 끝에 귀기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했지. 쉼 없이 움직이던 그 원기는, 함 장군의 저택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잠시 숨을 고른 금비환이 이어 말했고,

“당신이 장군 저에 머물던, 바로 그 시간에.”

아무개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 귀기가 좀 전에 다시 이동을 재개했지. 그리고 지금도···.”

유랑술사를 노려보며, 금비환이 짓씹듯 내뱉었다.

“네놈 주위에서 끊임없이 귀기가 흘러나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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