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제가…… 너무한 걸까요?”
반나절 가까이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자 쇳소리가 났다.
“뭐가 말입니까.”
“삼일장도 하지 않고, 묘지나 납골당이 아니라 유택동산에 산골 해 버리고, 국화 한 송이 헌화하지 않은 거요. 그래도 부모인데 너무한 걸까요.”
“너무하다고 생각합니까?”
“……실장님이 저를 그렇게 볼까 봐…….”
얼굴을 마주하면 당신이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을까 봐. 그래서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내 말에 이환이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에 꽉 힘을 주었다.
“그런 말은 항상 당사자가 아니라 타인이 하더군요. 그래도 부모인데, 그래도 자식인데, 그래도 형제인데, 그래도 친구인데, 그래도 애인인데, 그래도 아는 사람인데. ‘그래도’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호소할 거라고는 인정뿐인 구질구질한 지탄인 겁니다. 직접 겪어 보지도 않고 상황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지껄이는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실장님은요?”
“나야 당연히 해민 씨가 하는 모든 일이 정답이고, 법이죠.”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이환을 바라보았다. 나를 올곧이 내려다보는 눈동자 속에는 나를 향한 염려와 걱정과 배려가 담겨 있었다.
차분한 기분과는 별개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배 속에서 들끓고 있었는데, 이환의 얼굴을 확인하자 그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말없이 이환의 허리를 끌어안고 품에 얼굴을 묻었다. 기꺼이 가슴을 빌려준 그가 손으로 내 등을 토닥토닥 쓸어 주었다.
“고생했어요.”
엄마의 장례를 치르느라 고생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살아온, 아니, 버텨 온 날들에 대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에게서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원했던 위로이자 격려였다.
∞ ∞ ∞
엄마가 죽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환과 여사님이 조심하며 내 눈치를 보는 듯도 했지만, 나는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 열심히 집을 쓸고 닦았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목적지가 병원이 아닌 외출도 했다.
무작정 발길 닿는 데로 걷다가 그동안 돈 낭비라며 들어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혼자 시장에 가서 시끌벅적한 목소리를 듣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콩나물이나 호박을 사 오기도 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를 칭칭 얽매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던 엄마라는 족쇄가 사라졌음에도 세상은 여전했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 전부였던 엄마의 죽음은 세상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이보다 더 보잘것없는 죽음이 또 있을까.
누구 하나 울어 주는 사람도, 슬퍼해 주는 사람도,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는 죽음이었다.
이제껏 나를 억누르고 있던, 너무나 무겁고 괴롭고 버겁던 엄마라는 존재가 사실 세상의 티끌만큼이나 작고 사소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우스웠다.
내게는 전부였던 사람인데, 내 모든 불행이자 고통이었던 사람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에는 정작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심지어 지나가던 똥개에게조차 의미 없는 사람이겠지.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너무나도 바라 왔던 엄마의 죽음이 실상 아무 의미조차 없었음을 받아들이며 기분이 차츰 나아졌다.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음에도 어째서 기쁘지 않고 허망하기만 할까 알 수 없었는데. 그토록 원하던 일이 사실은 별것 아니었음을 인정하자, 진짜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하필이면 만들어도 손이 많이 가는 걸 만들어.”
재료 준비를 도와주고 김밥을 마는 내 옆에서 과일을 씻으시던 여사님이 핀잔했다.
“소풍 도시락 하면 김밥이잖아요.”
“그래도. 김밥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 괜히 힘들게.”
“준비하는 게 번거로워서 그렇지, 김밥 마는 건 안 힘들어요. 정작 재료 준비하는 건 여사님이 반 이상 도와주셨잖아요.”
혹시 여사님이 힘드셨던 건가. 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나.
“소풍 도시락이야 옛날 말이지, 사실 나가서 먹을 때는 사 먹는 게 더 맛있어. 바로 만들어서 나오는데 굳이 식은 도시락을 먹을 필요가 있나. 또 요즘 배달이 얼마나 잘돼. 한강에서 자장면 시켜 먹는 시대인걸.”
“아…….”
여사님의 현실적인 조언에 잠시 말을 잊었다.
어릴 적 이환에게 동심을 심어 주려 하셨던 여사님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동심의 위험성을 깨달으신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현실적이실 리 없다.
“저번에 실장님이 5단 도시락 싸셨다던데. 그때는 뭘 만드셨던 거예요.”
“도련님이 못 하는 게 없다고 해도 전문 요리사는 아니잖아. 그래서 대충 주먹밥이랑 유부초밥, 샌드위치, 과일 이렇게 준비하게 했지.”
“엄청 고생하셨을 텐데, 못 먹어서 아쉽네요.”
이환이 고대하던 소풍이 무산된 이유를 알기에 여사님은 흐릿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 했다.
“어렸을 때요.”
풀어지지 않게 꽉꽉 말아 놓은 김밥만 열 줄. 이 정도면 여사님도 드시고 이환과 저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남은 재료들을 정리하고 칼을 손에 쥐었다.
“소풍날에 도시락을 가져가야 했거든요. 마치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들 김밥이더라고요. 하얀 밥 속에 노란 단무지, 갈색 햄, 초록색 시금치, 주황색 당근, 노란색 계란이 들어간 동글동글한 김밥이 예쁘게 담긴 도시락이요. 그게 참 부러웠어요. 그래서 모아 둔 용돈으로 김밥을 사 갔는데, 엄마들이 예쁜 도시락통에 싸 준 김밥하고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김밥은 뭔가 기분이 다르더라고요. 내용물은 똑같은 김밥인데, ……이상하게 다른 애들 도시락이 부러웠어요.”
“어린 나이라고 해도 왜 다른 걸 모르겠어. 어려서 더 속상했을 거야.”
“그래서인지 소풍 하면 직접 싼 김밥이 필수 같고 그래요.”
“예쁜 도시락통을 찾아야겠네. 저번에 도련님이 사용했던 5단 찬합 꺼내 줄까요?”
“아뇨. 그건 너무 과하고요.”
작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내 거절을 받아들인 여사님이 적당한 사이즈의 도시락통을 꺼내 주셨다.
칼로 성둥성둥 자른 김밥을 도시락통에 가지런히 넣었다. 한 단은 김밥으로 가득 채우고, 나머지 한 단에는 먹기 좋게 자른 과일로 채웠다. 여사님이 드실 김밥도 따로 통에 담았다.
“이건 여사님 드세요.”
“적당히 싸지, 뭘 내 것까지.”
“한 줄 싸나, 열 줄 싸나 뭐가 다른가요. 재료 다듬는데 손이 가서 번거로운 거지.”
“해민 씨도 은근히 손이 커.”
손이 크고 의욕적이면 남 좋은 일 해 주기 딱 좋다고, 뭐든 적당히 살짝 부족할 정도가 좋은 법이라는 삶의 지혜가 돌아왔다. 그런 잔소리 같은 조언도 듣기 좋았다.
“여사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웃으며 인사를 하자 여사님이 멈칫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인사를 해.”
“감사해서요. 처음 절 고용하겠다고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너무 잘 대해 주셨잖아요. 제 상황도 많이 고려해 주시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 주시고. 생각해 보니 여사님 아니었으면 처음 실장님 만났을 때 도망갔을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요정님 소리를 들었으니 백 퍼센트, 아니, 그때는 돈이 급했으니까 엄청 고민한 뒤에 한 팔십 퍼센트 확률로 탈주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여사님의 공이 컸다.
“아휴,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따지고 보면 나나 해민 씨나 똑같은 고용인인데. 그리고 해민 씨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한테 쓴소리하면 그게 문제 있는 거지.”
그런 문제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게 지금의 사회이다. 고용주가 트집을 잡으면 고용주 밑의 매니저가 타박을 하고, 그러면 선임이 또 구박을 한다. 괜히 내리 갈굼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혹은 고용주는 괜찮은데 관리자가 애먼 트집을 잡는 쓰레기라 일 못 해 먹겠다고 뛰쳐나가는 곳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천국 같은 일터였다. 애초에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환의 사심에 의해 고용된 덕이 커 보이긴 하지만.
“오히려 해민 씨가 도망 안 가고 지금까지 남아 줘서 내가 더 고맙지. 우리 앞으로도 오래오래 봐요. 아니다, 늙은이는 적당한 시기에 빠져야지. 나 말고 우리 도련님이랑 오래오래. 응?”
무슨 말인지 알지? 하는 뉘앙스로 여사님이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도시락통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실장님 깨울게요.”
“……그래요.”
옅은 걱정이 내려앉은 시선이 돌아왔으나 모른 척 주방을 나와 이 층으로 올라갔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잠든 이환의 곁으로 다가갔다.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는 남자는 자면서도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미간에 주름이 져 있었다.
귀엽네.
살다 보니 이렇게 덩치 큰 남자가 귀여워 보일 때도 오고. 진짜 세상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환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실장님.”
“…….”
“실장님.”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거리던 이환이 나를 올려다보곤 눈을 끔뻑였다.
“해민 씨.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습니까.”
“일찍 아니거든요. 실장님도 그만 일어나세요.”
침대 가에 걸터앉아 이환의 몸을 끌어안았다. 힘주어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기대와 달리 늘어진 남자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손에 이끌려 넓은 품에 폭삭 쓰러지듯 안겼다.
“조금만 더 잡시다.”
“그러게 일찍 주무셨어야죠.”
내가 걱정된 탓인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내가 잠든 새벽에 업무를 해치워 버리니 피곤할 만도 하지.
핀잔을 하면서도 이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뭔가…….”
“뭔가?”
“뭔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향수 뿌렸습니까?”
잠기운을 떨쳐내지 못한 이환이 반쯤 눈을 감은 채 “참기름 향수?” 하고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