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뜨는데, 끌어안고 있던 몸뚱이의 주인 역시 당황했는지 미동도 없었다. 잠시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오다 이내 아, 하고 옅은 탄식이 귓가에 흘러들어 왔다. 힘없이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대어 오는 이환을 말없이 끌어안아 주었다.
“동정하지 말아요.”
“동정 안 해요.”
“왠지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는데?”
“그냥 조금…… 당황했을 뿐이에요. 안 웃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여유롭지 않다고 했잖습니까.”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네, 네. 하고 대꾸하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요. 금방 다시 세울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해민 씨가 쌀 때까지 쑤셔 주겠습니다.”
“저야말로 괜찮은데…….”
“아닙니다. 남자가 자지를 꺼냈으면 끝을 봐야죠. 나 지금 자존심에 엄청 상처 입었습니다.”
이런 일에 자존심까지 상할 문제인가. 항상 빨리 싸는 것도 아니고, 오늘 일은 특별 이벤트 같은 것으로 생각해도 될 일인데.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 입은 남자는 내뱉은 각오처럼 금방 다시 거시기를 세웠고, 평소보다 더 격렬하게 내 몸을 들어 올렸다 내리며 성기를 쑤셔 넣었다. 이환의 팔에 오금을 걸치고 반쯤 공중으로 떠오른 자세에서 들썩거리며 아래가 후벼지는 통에 자존심이고 뭐고 금방 사정 당했으나, 이환은 그 뒤로 한 번 더 내게서 정액을 뽑아낸 뒤에야 두 번째 사정을 했다.
“자존심은 회복되셨어요?”
비밀 공간에서 이환에게 안겨 나와 욕실로 직행했다.
“조금? 하지만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로 되는 건 아니라서 여전히 시무룩합니다.”
그를 시무룩하게 만든 대가를 톡톡히 지불했으나, 그래도 조금은 미안했다. 미안한 것과는 별개로 그 좁은 장소에서 날뛴 이환 탓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원망스러움도 얼마간 느꼈고.
“허리 아파요. 근육도 아프구.”
“뜨거운 물 받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한 삼십 분 정도 반신욕 하면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자기 허리 아니라고.”
삐죽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리자 이환이 눈을 반달처럼 접어 웃었다.
“내 허리면 큰일 나게.”
“저한테도 허리는 중요하거든요!”
그 좁은 공간에서 사람을 들어 올려 반으로 접어 쑤시고, 앞으로 쑤셨다가 돌려서 쑤셨다가, 의자 위에 올려놓고 쑤셨다가 걸쳐 놓고 쑤셨다가, 아주 난리를 쳤다. 이리저리 몸이 접히며 무리를 한 것은 이쪽인데, 자기 허리 아니라고 가볍게 말하다니.
샐쭉한 표정으로 흘겨보자 이환이 미안하다며 커다란 손으로 허리를 조물조물 주물러 주었다.
“욕조에 들어가서 앉아 있어요. 찜질이 될 겁니다.”
욕조 턱에 걸터앉아 있던 내 몸을 들어 욕조 안으로 앉힌 이환이 “입욕제 넣어 줄까요?” 하고 물었다.
“그냥, 근육 좀 풀어지면 나갈래요.”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근육이 놀랍니까.”
“실장님은 계속 같은 자세였겠지만 저는 허공에서 막 몸이 이리 접혔다 저리 접혔다 했거든요! 남의 몸으로 종이접기를 하시던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원망스러운 마음에 타박을 했으나 이환은 웃기만 했다.
“요정님 화났어요?”
“네. 화병 나기 직전이에요. 이러다 요정님 사망하실 것 같아요.”
“저런. 사망하면 안 되죠. 꽃구경 가기로 했는데.”
“저보다 꽃구경이 더 중요해요?”
내 물음에 이환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해민 씨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러게. 나도 내가 내 입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동그랗던 이환의 눈이 온기를 담고 부드럽게 휘어졌다.
“질문 취소할래요.”
“당연히 해민 씨가 더 중요합니다.”
“…….”
“이 세상에 해민 씨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으, 그만 하세요.”
“나한테는 해민 씨가 유일합니다.”
차라리 안 듣겠다며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하자 이환이 내 손을 붙잡고 귀에 속살거렸다.
“놀리기나 하고.”
“놀리다뇨. 백 퍼센트 진심입니다.”
손가락으로 물을 튕기며 타박하자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다며 반론이 돌아왔다. 웃고 있는 입술이나 좀 단속하고 말할 것이지.
“씻고 옷 갈아입고 내려와요. 밥 먹고 꽃구경 가야지.”
“도시락은 다 싸셨어요?”
“그럼요. 5단 찬합이 꽉 차게 싸 놨습니다.”
“대체 뭘 만드신 거예요.”
떨리는 내 물음에 비밀이라는 답을 남긴 이환이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섰다.
“옷은 내가 챙겨 두겠습니다. 예쁜 꼬까옷도 많은데 청바지에 흰 티는 너무하지.”
“센스가 없는 사람은 깔끔하게만 입어도 성공이에요.”
괜히 패셔너블하게 보이겠다고 알록달록한 형광 녹색 티셔츠에 주황색 바지 같은 걸 입으면 보는 사람이 더 창피해지는 상황이 생긴다.
깔끔하고 예쁜 꼬까옷으로 골라 놓겠다고 말한 이환이 욕실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느긋하게 욕조 턱에 뒷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이곳이 천국이었다.
천국이라니까 이환이 했던 음담패설이 떠올랐다.
“취소, 취소.”
그런 질 나쁜 농담은 생각도 하지 말자며 물에 젖은 손으로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해민 씨.”
나갔던 이환이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휴대폰을 들고 들어왔다.
“전화 오는데요.”
“저한테요?”
“네.”
스팸이나 광고, 선거 유세, 보이스 피싱을 제외하면 전화 올 곳이 없는데.
손을 뻗어 휴대폰을 받았다.
“나 몰래 다른 놈이랑 연락하는 거 아니죠?”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이렇게 한 번씩 물어봐야 나중에라도 다른 놈한테서 연락이 오면 해민 씨가 경각심을 갖지.”
그런 놈이 있지도 않고 앞으로 생길 가능성도 없는데 혼자 경각심이니 뭐니 난리다. 이환의 유난이 하루 이틀도 아니기에 무시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장난스럽게 웃으며 욕실을 나가는 이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금빛 요양병원입니다.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명숙 환자 보호자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병원에서 오는 연락은 언제나 병원비 납부 관련한 전화였는데. 이환의 집에서 일하게 된 뒤로는 밀리는 일 없이 꼬박꼬박 병원비를 내었기에 그마저도 뜸해진 전화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조용히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듣는 사람이 흥분하지 않도록 차분하고 고요한 목소리가 한 가지 소식을 전해 왔다.
“……네.”
꽉 막힌 목구멍을 비집고 겨우 한 글자를 내뱉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똑, 하고 떨어진 물방울이 수면 위로 파동을 일으켰다.
∞ ∞ ∞
하얀 천을 걷어 내자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날 이때까지 저토록 고요하고 평온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문득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던 얼굴인데, 삶에서 벗어나는 순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면.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은 내게 슬픔도, 기쁨도 주지 못했다. 언제나 엄마의 마지막을 상상하고 기다려 왔었는데, 정작 그 순간을 맞이하자 해방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냥, 그냥 뭐랄까. 무덤덤했다.
아, 죽었구나. 엄마가 죽었구나. 그렇구나.
딱 그 정도였다. 엄마의 죽음은 내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 더는 나를 원망하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겠지.
내 인생에서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 엄마의 얼굴을 오랫동안 눈에 담았다.
∞ ∞ ∞
하룻밤을 시체 안치실에서 보낸 엄마의 시체를 화장했다.
엄마의 지인이라고 부를 사람도 없었고, 내 지인 또한 없었다. 사실 장례식장에 찾아올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삼일장을 치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위로하고 어쩌고저쩌고. 타인과 함께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싶지도, 위로받고 싶지도 않았다.
불 속으로 들어간 엄마가 한 줌의 재로 돌아오기까지, 멍하니 앉아 과거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의 우리 가족은 어떠했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우리는 어떠했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의 우리는 어떠했나.
딱히 화기애애한 가족은 아니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최악이 되었다. 이십 년의 인생 중 절반 이상이 지옥이었다. 끔찍하고 처절했으며 괴로운 시간이었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때도, 엄마가 곁에 없을 때에도 언제나 엄마에게 매여 있었다. 벗어날 날이 오기는 할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날을 꿈꾸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을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었네.
그래, 죽어 버렸다.
엄마가 죽지 않았다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순간 내가 먼저 죽었겠지.
그랬다면 엄마는 내 죽음 앞에서 슬퍼했을까. 나를 위해 울어 주었을까.
품에 안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함을 받아 들었다. 나는 그것을 장례식장 옆에 마련된 유택동산에 뿌렸다. 엄마를 위한 무덤도, 납골당도 마련하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엄마를 다시 찾아올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털어 내고 싶었다.
탈탈 털어 낸 함을 들고 멍하니 서 있자, 지금까지 한 걸음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이환이 다가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모든 것을 그의 손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고,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 장례 절차를 알아보고 전화를 걸어 화장장을 예약하고 화장을 하여 유택동산에 산골 하기까지, 모든 일을 내 손으로 끝냈다.
그는 한 걸음 뒤에 서서 조용히 내 뒤를 쫓기만 했다. 이환에게 그런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마음을 알기에 냉정히 밀어내지 못했고, 그 역시 내 마음을 알기에 제 고집을 밀어붙이는 대신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제가…… 너무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