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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167화 (167/172)
  • 167화

    걸려 있는 옷 아래로 몸을 수그려 드러난 어둠 속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옷장 뒤쪽으로 작게 공간을 마련해 놓은 탓에 두 사람이 마주 앉을 정도의 크기였다. 따로 의자를 가져다 두는 대신 의자 대용으로 앉을 수 있도록 턱이 져 있고, 앉는 부분을 들어 올리면 그 안에 구급상자와 물 몇 통이 구비되어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준비성은 진짜 좋단 말이야.

    새삼스럽게 이환의 준비성에 감탄하며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 보았다. 밀려났던 벽을 끌어당겨 원상태로 만들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탁, 소리가 나며 벽이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좁고 어둡지만 두려움보다 아늑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안전하다고 느끼는 마음에서 오는 안정감일 수도 있다.

    벽에 뒤통수를 기댄 상태로 잠시 눈을 감고 적막함이 주는 평온함에 몸을 맡겼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내 숨소리가 전부인 탓에 더 비밀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간을 앉아 있었을까. 통통 벽을 울리는 노크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달칵, 잠금장치가 풀리고 도르륵 문이 옆으로 밀렸다. 어두웠던 공간에 빛이 밀려 들어왔다.

    “여기 있었습니까.”

    옷걸이에 걸린 옷을 한쪽으로 밀치고 얼굴을 들이민 이환이 물었다.

    “옷을 그렇게 밀어 놓으면 들키는데요.”

    “아, 실수.”

    옷걸이를 적당한 간격으로 걸어 놓고 허리를 수그려 기듯이 들어온 이환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표나지 않게 잘도 들어왔네요.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열심히, 잘?”

    “현답이네. 열심히, 잘. 그런데 여긴 왜 들어와 있어요?”

    “옷 갈아입다가 생각이 나서. 한번 들어와 보고 싶었어요.”

    “감상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별 다섯 개.”

    “다섯 개 만점 맞습니까?”

    “네.”

    “보람차네.”

    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환이 벽을 당겨 닫았다. 무언가를 더듬더듬 찾던 이환의 손에서 빛이 생겨났다.

    “여기, 손전등도 하나 걸어 놨어요. 혹시 모를까 봐.”

    빙글빙글 돌리는 손을 따라 빛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실장님은 머리도 좋고 준비성도 좋으신 것 같아요.”

    “갑자기 칭찬이네?”

    “여기 앉아서 감탄했거든요.”

    “그래요? 의자 밑에 구급상자랑 이것저것 넣어 뒀는데.”

    “그건 봤어요.”

    조금 더 감탄해도 좋다며 자랑하던 이환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막상 들어와서 앉아 보니 생각보다 좁네요. 딱 앉아 있는 것밖에 못 하겠습니다.”

    “세이프 룸까지 가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만드셨다면서요. 이렇게 앉을 공간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죠. 여기서 다른 일을 할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죠.”

    “여기서요?”

    급하게 몸을 피해서 숨어 있는 것 말고 여기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는 걸까. 짐작조차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몸을 앞으로 기울여 가까이 다가온 이환이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왜 하필 여기서…….”

    그 넓은 침실을 두고. 침실이 아니더라도 남는 게 방인데, 그 많은 방을 놓아두고. 하필이면 옷장 뒤의 작은 비밀 공간에서.

    “딱 좋지 않습니까. 좁고, 어둡고, 비밀스럽고.”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이환이 손을 뻗어 내 몸을 끌어당겼다.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 위로 이동되었다.

    “누가 볼 일도 없고, 방해받을 일도 없고, 단둘뿐인데다, 음향 효과까지 좋네요.”

    소리가 울려서 신음 소리가 색다르게 들릴 거라고, 이런 건 한 번쯤 체험해 줘야 한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내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이환이 귓불을 앙앙 씹었다.

    “이런…… 용도로 만든 곳이 아니잖아요.”

    “사용하는 사람이 효과적으로 쓴다면 그보다 좋은 용도는 없죠.”

    “그래도…….”

    “아직까지 부드럽게 풀어져 있네요.”

    가랑이 사이를 파고든 손이 구멍 안을 침범했다. 밤새도록 이환이 드나들었던 곳은 손쉽게 그의 재침입을 허용했다.

    “아! 잠깐만요.”

    “네.”

    대답은 잘도 하면서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한 마디 정도 밀어 넣은 손가락이 촉진하듯 내벽을 이리저리 문질러 댔다. 움찔거리는 허벅지를 모아 비틀며 이환의 손목을 잡아 쥐었으나, 구멍 안에 들어와 있는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실장니임.”

    “불편한 거 압니다. 그러게 왜 청바지를 입었어요.”

    청바지의 문제가 아닌데 애꿎은 청바지가 욕을 먹었다. 타박을 들은 청바지가 벗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구멍 넓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쉬우니까 자지라도 빨아 줄까요?”

    “저를 위해서라면 그냥 입만 다물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어르고 달래어 기어코 하고야 마는 이환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그와 별개로 자유분방한 그의 입은 막을 수 있다면 막는 게 좋았다.

    “해민 씨, 내 목소리 좋아하잖아요.”

    귓가에 낮게 속삭이며 이환이 귀두를 구멍에 맞춰 꾹 눌렀다. 주름이 활짝 펴지며 버섯 머리가 힘겹게 구멍을 파고들었다.

    “실장님 목소리, 읏, 목소리는 좋은데……. 단어 선택이 너무 부적절해요.”

    애기 주먹만 한 귀두가 구멍을 벌리고 들어오는 것도 버겁지만, 귀두만큼 두껍고 길쭉한 기둥이 한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것 역시도 버겁다. 숨을 헐떡이며 반론해 보지만, 끙끙거리는 신음이 섞여 나오는 목소리에는 전혀 무게가 없었다.

    “자지를 자지라고 말하는 게 왜 부적절하지. 하물며 해민 씨도 가지고 있고 나도 가지고 있는 건데.”

    이걸 자지라고 안 부르면 뭐라고 말합니까, 하며 이환이 손을 앞으로 둘러 내 성기를 잡아 주물렀다.

    “이렇게 해민 씨 안에 자지를 집어넣고 있을 때가 참 좋습니다.”

    그걸 말로 설명만 하지 않는다면 나도 어느 정도 동감할 수 있었을 텐데.

    “구멍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내 자지를 쭉쭉 빨아 주고 있어요. 따뜻하고, 부드럽고, 조이고. 천국이 여기 있는 기분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들은 신을 믿을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씹질을 했어야 해요.”

    이환이 좋다니 나도 좋지만, 내 구멍이 천국이라는 말은 좀. 이환 나름의 칭찬이겠으나 왜인지 신성 모독으로 벌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허벅지 위에 올라탄 내 허리를 붙잡아 둥글게 문지르며 이환이 내 등을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내 요정님은 어떻게 살냄새까지 달콤할 수 있지.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실장님이랑 같은 세상에서 실장님이랑 같은 거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바디워시 써요.”

    “그런데 왜 혼자 이렇게 달콤한 냄새를 풍겨요. 이러다 자지 달린 다른 새끼들이 달려들면 어쩌려고.”

    그런 비이성적인 존재가 이환 말고 또 있으리라고는 상상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다른 사람 못 만나게 확 가둬 놓고 싶네.”

    “지금도 딱히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요.”

    하루에도 몇백 명씩 오가던 공사 현장과는 달리 지금은 같은 일터를 공유하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여사님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도 이환과 여사님뿐이지. 예전에는 여사님을 따라 시장에 다녀오곤 했지만, 이정 때문에 그마저도 관둔 뒤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워졌다.

    “그건 그렇네. 왜 이렇게 맞는 말만 하죠? 그것도 요정님 특징입니까?”

    내 생각으로는 그냥 이환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아!”

    날개뼈 부근의 가죽을 잘근 깨무는 행동에 미약한 통증을 느끼며 짧은 신음을 토했다.

    “이대로 씹어 먹고 싶어요. 가끔은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고, 가끔은 나만 아는 장소에 숨겨 두고 싶고, 또 가끔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거칠어지는 숨결을 목덜미에 쏟아 내며 이환이 횡설수설했다. 협소한 장소 탓에 격하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엉덩이를 꽉 붙잡아 제 사타구니에 눌러 비비는 손아귀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잡힌 골반이 뻐근하게 아파져 오는 것과 별개로 아래에서 치밀어오르는 흥분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뿐인데, 그 어둠 속에서 설탕 알갱이처럼 작은 빛무리가 퐁퐁 터지는 환각이 일었다.

    임계점 가까이 솟은 쾌감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찰랑이자 해소되지 못한 자극이 아래를 간지럽혔다.

    “돌아……앉을래요.”

    허벅지 위에 올라앉은 탓에 바닥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달랑달랑 흔들리던 다리를 접어 몸을 돌렸다. 이환의 어깨에 매달리듯 손을 둘러 끌어안고 발바닥으로 의자를 디뎠다.

    “그렇게 움직이려고요? 내 씹질이 시원찮았습니까.”

    “그런, 읏,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무릎을 접어 사타구니 위에 쭈그리고 앉자 성기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살짝 엉덩이를 들었다가 주저앉을 때마다 성기가 내벽 안쪽을 푹푹 쑤셔 댔다. 안에 파묻혀 감질나게 문질러지던 성기가 깊은 곳을 힘있게 쳐 대자 그제야 갈증이 해소되듯 시원함이 느껴졌다.

    “아흣, 읏……으응.”

    “나는 요정님 힘들까 봐 살살했던 건데, 그렇게 감질났습니까.”

    턱턱 엉덩이가 밑으로 내려앉는 타이밍에 맞춰 허리를 추어올리며 이환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만날…… 흐으, 혼자만 여유롭고…….”

    항상 시작하는 사람은 이환인데, 어째서 나만 힘들고 나만 안달 나고 나만 조급하고 나만 흥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쪽은 헐떡거리는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이 남자는 여유롭게 농담이나 하고.

    “나도 여유롭지 않아요.”

    한 손으로 내 허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며 이환이 눈가에 입을 맞췄다.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 싸 버릴 것 같아서 엄청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해민 씨 안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얼마나 긴장하는지 모를 겁니다.”

    잠시 진지해지는가 싶더니 “조루라고 오해받으면 슬프잖아요.” 하고 내뱉는 말이 역시나 농담처럼 들려왔다. 얄미운 마음에 이를 세워 목덜미를 앙 깨물자, 엉덩이 사이를 쑤시던 성기가 팽창하더니 이내 뜨거운 것이 확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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