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퓨리티-161화 (161/172)
  • 161화

    “환아!”

    이환을 와락 끌어안으며 이정이 반가움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동안 느꼈던 불안, 초조, 분노, 짜증. 모든 악의적인 감정들이 사라지고 환희가 가득 찼다.

    저보다 한 뼘은 더 큰 동생을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이정을 이환이 거칠게 밀어냈다.

    아직도 짜증이 안 풀린 걸까. 어쩌면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한낮 장난감일 뿐인 서해민이 이환의 옆에서 이간질을 하며 형제 사이에 골을 만들어 놨을 수도 있다.

    “환아. 저번에 네가 화내고 간 뒤에 형이 이야기하려고 계속 연락했는데,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우리 환이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형이 오해도 풀고 사과도 하고 싶어서 계속 전화했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집에도 없다고 하고…….”

    그래. 어쩌면 이환이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도 서해민이 환이 몰래 차단을 해 놓은 탓일지도.

    “이정.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이정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오만 가지 이유를 떠올리는 사이, 이환이 쯧 하고 혀를 차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환. 형이 지금 너 걱정되어서 찾아왔는데 그게 무슨 태도야.”

    “우리 장남이 아버지한테 혼이 덜 났나.”

    이환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고분고분하고 착하고 순하던 동생이었는데, 서해민이 나타난 뒤로 너무나 달라졌다. 이정은 그러한 이환의 변화를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 모든 게 전부 서해민 때문에…….

    이환의 등 뒤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서해민을 노려보는 순간, 불쑥 튀어나온 손이 이정의 목을 움켜쥐었다. 목젖을 후려치는 충격에 이어 목을 붙잡은 손아귀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 목이 졸리며 숨이 가빠졌다.

    “화, 환아…….”

    장난을 치듯 목을 움켜쥔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했다.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인 이환이 붉어지는 이정의 얼굴을 구경하듯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크흡, 읏…….”

    부족한 산소로 인해 머리가 멍해지고 눈알이 터질 듯 아파져 왔다. 목을 움켜쥔 손을 떼어 내려 했으나, 완력으로 이길 수 없는 이환의 손을 떼어 낼 방도가 없었다.

    이정이 힘겹게 버둥거리는 사이, 급하게 그를 뒤따라온 것으로 보이는 차들이 골목 안으로 줄줄이 들어와 근처에 멈춰 섰다. 아버지가 붙여 놓았을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주변을 감쌌다. 그중 한 놈이 다가와 이환에게 말했다.

    “도련님. 부회장님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일 제대로 안 하지.”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보이면 진짜 죽인다.”

    “……죄송합니다.”

    쯧, 하고 혀를 찬 이환이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겨우 풀려난 이정이 켁켁거리며 기침을 토해 냈다.

    “데려가.”

    휘청거리는 몸뚱이를 단단한 손이 부축한다.

    “이거 놔.”

    아직 이환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이었으나, 난입한 이들은 시간을 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놓으라고 했다.”

    “이러시면 회장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부회장님.”

    아버지가 붙여 놓은 개새끼들. 이 개새끼들이 왔다는 건 아버지에게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뜻이지. 이대로 이환과 오해를 풀지 못하고 헤어진다면, 결국 별다른 소득도 없이 아버지에게 끌려가 혼만 날 뿐이다.

    “이 개새끼가.”

    이정은 저를 억지로 붙잡아 끌어당기는 사내의 뺨을 갈겼다.

    “주는 돈 받아먹는 것밖에 못 하는 새끼들이 감히 누구한테 협박이야. 건방진 새끼들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치자, 한쪽 뺨이 붉어진 놈이 뒤에 서 있던 놈들에게 턱짓을 했다.

    “뭐 해? 모셔.”

    “이 새끼들이…….”

    위협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할 모양인지, 사내들은 이정의 양팔을 붙잡아 세워 둔 차 쪽으로 끌고 갔다.

    “이거 안 놔? 놔, 이 새끼들아.”

    꽉 붙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정은 부리는 종놈들에게 끌려가는 제 처지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팔을 뒤흔들고 다리를 버둥거려도 몸을 붙잡고 있는 강제력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대로 차에 태워졌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 감흥 없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이환과 눈이 마주쳤다.

    “아…….”

    무언가 말을 전하기도 전에 자신을 태운 차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이정이 차 문으로 손을 뻗었다. 역시나 옆에 동승한 놈들의 손에 막혀 그 시도는 가볍게 무산되었다.

    “빌어먹을. 너희들이 이러고도 멀쩡할 것 같아? 너희들 다 모가지야, 이 새끼들아. 내가 너희들을 가만히 둘 것 같아! 주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새끼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이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양, 사내들은 인형처럼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 ∞ ∞

    “씨발, 개만도 못한 새끼들이!”

    쾅 하고 울릴 정도의 발길질에도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한참 난동을 부리던 이정이 가만히 서서 숨을 골랐다.

    이환과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끌려온 곳은 회사가 아닌 집이었다. 그대로 집에 밀어 넣어진 채 추가로 투입된 경호원들이 집 밖을 촘촘히 감쌌다. 현관에도, 발코니 창 너머에도, 심지어 창문 밖까지, 몸뚱이가 통과할 만한 구멍이란 구멍 앞은 조금의 틈도 없이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알파로만 이루어져 따로 훈련을 받은 아버지의 경호원들은 이정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 귀에 들어간 거겠지. 그러니 자신을 집에 가둬 놓고 저 개새끼들을 보내 집에서 한 발도 나오지 못하게 해 둔 것이리라. 조만간 찾아올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정이 이를 깨물었다.

    아버지는 왜 자신을 막는 것일까.

    지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쓰레기, 싸구려, 불순물, 잡종, 불량품. 세상의 하찮은 단어들을 모조리 가져다 붙여도 부족할 그 장난감이 이환의 곁에 붙어서 격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아버지는 왜 그 빌어먹을 장난감을 그냥 두고 오히려 자신을 억제하는 것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고쳐야 한다. 잘못된 것이 존재한다면 버려야 한다. 잘못된 것이 붙었다면 냉정하게 잘라 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오점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두고 있었다.

    이환이, 제 동생이, 아버지의 아들이 망가져 가는데도.

    이환을 망가뜨리는 서해민이 싫다.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철썩 들러붙어 이환을 진창으로 끌어내리는 서해민이라는 존재가 역겹다. 자신의 동생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낯선 존재로 만드는 서해민이…… 위험했다.

    그래, 위험하다. 그 장난감은 이환에게 지극히도 위험한 존재였다.

    이환을 위해서 그 장난감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 이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난장판이 된 거실을 불안하게 서성이며 생각을 이어 나가던 이정이 소파에 털썩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버지…….”

    환이를 되찾아야 해요.

    순하고 착하기만 했던 우리 환이를. 오직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만 의지하며 내가 세상의 전부였던 내 동생을.

    ∞ ∞ ∞

    이수한은 본채와 근거리에 자리한 이정의 집 앞에 섰다.

    두어 시간 전까지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웠다던 장남은 무얼 하는지 잠잠했다.

    생각해 보면 끈기가 없었지.

    제힘으로 통제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집요할 정도로 물고 늘어지면서,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에는 금방 흥미를 잃고 손을 떼 버리곤 했다.

    아니, 좋게 말해 흥미를 잃었다고 할 뿐이지 결국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을 애써 포장하고 좋게 보려 했을 뿐이다. 이제껏 이정의 능력 이상으로 무언가를 맡긴 적도, 해야 할 상황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하나둘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는 장남의 부족함이 이제는 손톱의 거스러미처럼 까끌까끌하게 느껴졌다.

    “열게나.”

    이수한의 말에 문 앞을 막고 서 있던 경호원들이 옆으로 비켜나 문을 열어 주었다.

    달칵, 소리를 내며 열린 문 너머는 고요했다. 안으로 들어선 이수한의 손짓에 함께 따라 들어오려 하던 이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무엇을 깨부쉈는지 난장판이 된 바닥을 내려다보던 이수한이 신발을 신은 채 거실로 올라섰다. 터벅터벅. 까드득. 나무 부스러기와 유리 조각들이 신발에 짓밟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거실 중앙에 서서 잠시 주변을 둘러본 이수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들어섰다. 빈 컵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이정이 보였다.

    “정아.”

    “…….”

    “이정!”

    이수한의 부름에 이정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넋을 놓고 있었는지, 혹은 무엇을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는지. 흐릿하던 눈동자에 천천히 빛이 들어섰다.

    “환이 곁에는 가지 말라 했을 텐데.”

    “…….”

    “환이와 만나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비 말을 거역하는 거냐.”

    “아버지.”

    “내가 네 앞에 황금 길을 깔아 주었다.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 길을 벗어날 생각인 거냐? SG를 포기할 테냐!”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 이수한의 앞으로 다가온 이정이 푹 고개를 수그렸다.

    “아버지…….”

    “못난 놈.”

    “나는…… 환이를 아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남겨진 어린 동생을 내가 보살폈습니다. 그 아이의 세상을 내가 이뤄 주었고 내가 지켜 줬단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세상에 갇혀 버린 건 이환이 아니라 이정이었다. 그 사실을 이정만 알지 못했다. 함께 갇혀 있었던 이환은 훨훨 날아올라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정작 이정은 이환이 흘리고 간 깃털을 움켜쥐고 그 작은 세상을 고집하고 있었다.

    “너는 네 앞에 깔린 황금 길을 마다하고 네 동생 곁만 맴돌 거냐. 환이가 고집이 얼마나 센지 너도 알고 있겠지. 그놈이 한번 아니라고 했으면 아닌 거다. 순하고 착하고 말 잘 듣는 것처럼 보이던 그놈이 언제 제가 한 말을 번복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봐라. 환이가 너를 거부했으면 다신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너는 아비도, 가족도, SG도 다 포기하고 절대 너를 받아 주지 않을 네 동생 곁을 맴돌기만 할 거야?”

    “하지만…….”

    불만 가득한 얼굴로,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로 이정은 입을 꾹 다물었다. 치밀어오르는 화를 이겨 내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이 참으로 못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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