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퓨리티-154화 (154/172)
  • 154화

    “한번 봐 봐요.”

    이환의 셔츠를 붙잡아 끌어 올리려고 하자, 그가 어허 하고 소리를 내며 내 손목을 살며시 걷어 냈다.

    “식사부터 하고요.”

    “식사 다 했어요.”

    죽 한 그릇 정도야 몇 숟가락 퍼먹으면 금방이다. 일찌감치 그릇을 비웠다며 트레이를 트롤리에 올려놓았다.

    “밖에 두고 오겠습니다.”

    “실장님도 다 드세요!”

    “저는 아까 저녁을 먹었더니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거짓말. 딱히 끼니 챙기는 데에 열의가 없는 사람이 혼자서 밥을 먹었을 리 없다.

    내 의심의 눈초리를 피해 트롤리를 침실 밖에 두고 온 이환이 슬금슬금 침대로 올라왔다.

    “이제 벗으면 됩니까?”

    “……그냥 살짝만 보여 주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배도 그렇고 허리도 시큰시큰한 게 좀 이상하네요. 해민 씨가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프면 병원부터 가셨어야죠.”

    다쳤다거나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던 사람인데. 대체 얼마나 맞았기에 저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주섬주섬 옷을 벗는 이환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실장님.”

    “네, 해민 씨.”

    “……바지는 왜 벗으시는 거예요?”

    “상의만 벗으면 부끄러워서.”

    전부 다 벗는 게 더 부끄럽지 않나. 부끄러움의 기준이 다른 건가.

    당연히 다를 리 없다.

    “요정님, 나 많이 아픕니다. 호 해 주세요.”

    이환이 아이처럼 천진한 얼굴로 잔망스럽게 말했다.

    브리프 하나만 입은 채로 이불을 올려 덮고 슬그머니 나를 끌어안는 손길에 차게 식은 시선을 보냈다.

    ∞ ∞ ∞

    “흐읏, 응…….”

    눅진하게 풀어진 구멍에 정액이 쏟아져 나오며 뜨거움이 번졌다. 반사적으로 흘러나오는 콧소리는 힘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환의 손에 붙잡혀 들어 올려져 허공에서 나풀나풀 흔들리던 다리가 침대로 풀썩 떨어졌다.

    후우 하고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적셨다. 아플 정도로 쥐고 있던 가슴을 놓아준 이환이 딱 달라붙어 있는 자세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아픈 사람이라기엔…… 너무 멀쩡하신데요.”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한 숨을 진정시키고 겨우 내뱉은 말에 귀를 기울이던 이환이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요. 온몸이 다 아팠는데, 역시 해민 씨 손이 약손인가 봅니다.”

    거짓말쟁이, 구라쟁이, 뻥쟁이.

    타박할 힘도 없었고, 등 뒤에서 나를 안고 있는 이환을 돌아볼 여력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배에 감긴 이환의 손등을 힘 하나 들어가지 않은 손가락으로 꼬집는 것뿐이었다.

    “마사지해 주는 겁니까?”

    “아니거든, 읏…….”

    “아, 해민 씨 반말. 신선하네요.”

    “아니, 흐으, 아니에요.”

    구멍에서 성기를 빼내는 이환의 행동으로 ‘요’ 자가 신음에 먹혔을 뿐이다. 주룩 흘러나오는 정액도 찝찝하지만,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슬금슬금 문질러 대는 젖은 성기가 경계심을 일깨웠다.

    “……그만이요.”

    “이제 한 번밖에 안 했는데요?”

    그건 이환의 사정이고, 나는 삽입하기도 전에 한 번을 먼저 사정하고 삽입한 뒤에 추가로 두 번이나 사정했다. 오늘 먹은 단백질보다 더 많은 단백질의 배출에 생명력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나머지는…… 자고 일어나서 해요.”

    “자고 일어나서요?”

    “네에.”

    해가 뜬 뒤에 하는 건 조금 부끄럽고 아침부터 이래도 되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어차피 해 떠 있을 때 하는 거나 밤에 불 켜 놓고 하는 거나 밝은 건 비슷하다. 부끄러움의 크기가 비슷하다면, 일단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맞다. 내일의 수치스러움과 고됨은 내일의 내가 감당하겠지.

    당면한 위기 속에서 본능적으로 내일의 나에게 책임을 돌렸다.

    “해민 씨, 자고 일어났잖아요.”

    “실장님은 주무셔야 하니까요.”

    “하룻밤 정도는 안 자도 됩니다.”

    “아뇨. 자야 해요.”

    너는 자야 한다. 잠이 온다. 잠이 든다.

    물론 내 바람과 소망과 최면이 실행되는 일은 없었다. 현실을 일깨우듯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문질러지는 성기가 다시 커지고 있었다.

    “내 자지는 지금 해민 씨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데요.”

    귓불을 약하게 빨며 이환이 속살거렸다.

    “아니에요. 실장님 거시기는 피곤해서 자고 싶을 거예요.”

    “피곤하다기엔 이놈이 너무 화났는데.”

    “빨리 자라고 화내는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네, 저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주장을 이어 나가기엔 내 낯짝이 두껍지 못했다. 무거운 한숨에 이환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식사도 했고, 적당히 운동도 했으니 다시 잘까요?”

    “……저 소화되라고 운동시켜 주신 거였어요?”

    그런 깊은 뜻이?

    “요정님이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불가항력으로 자지가 불끈불끈해집니다. 겸사겸사 좋은 일이죠.”

    깊은 뜻이 있을 리 없었다.

    남의 가랑이 사이에 발기한 거시기를 끼워 넣은 상태로 이환이 팔베개를 해 주었다. 위와 아래가 따로 노는 이 남자의 행동에 맞춰 주지 못하는 내가 융통성이 부족한 건가 작은 의문이 들었다.

    “이대로…… 자나요?”

    “그럼 자지 말고 다른 거 할까요?”

    “아뇨. 잠이 잘 올 것 같아요.”

    존재감을 주장해 대는 무언가가 매우 거슬리지만, 잠이 안 오더라도 자는 척을 해야 했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일단 가만히 누워 쉴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얌전히 이환의 팔에 머리를 기대자 이환이 “자장자장.” 하고 소리를 내며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자장자장 소리에 맞춰 미세하게 앞뒤로 움직이는 아래의 불끈이가 몹시도 신경에 거슬렸다.

    “실장님.”

    “네.”

    “실장님 거시기는 안 잔대요?”

    크흡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황급히 삼키며 이환이 헛기침을 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걔는 혼자 알아서 놀다가 잘 겁니다.”

    아니, 떡하니 가랑이 사이에 들어와서 신나게 부비부비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아는 척 좀 해 달라며 이렇게나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데.

    절로 떫은 표정이 드러났으나 등 뒤에서 나를 안고 있는 이환은 알지 못했다.

    “그보다, 호텔에서 며칠 지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죠? 내일 사람을 보내서 옷이랑 이것저것 챙겨 오게 할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요.”

    “제가 다녀올게요.”

    “해민 씨가 직접 갈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제 개인적인 짐이야 값나가는 게 없지만, 실장님이 주셨던 그…… 요정 날개 같은 건 챙겨 둬야 하지 않을까 싶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집수리하러 사람들이 들락거리니까 미리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아아.”

    둥글게 돌려 말하는 속뜻을 알아차린 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층으로는 올라가지 않도록 말해 뒀습니다. 현장 관리하는 사람도 있으니 걱정 말아요.”

    하기야 값나가는 물건으로 따지면 내가 가진 것보다 이환의 물품이 더 많겠지. 애초에 걱정할 문제도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생각보다 시기가 조금 빠르긴 하지만 이참에 이사 가는 건 어떻습니까.”

    “저번에 봤던 그 빌라요?”

    “네. 그쪽 리모델링하는 시간과 집수리하는 시간이 비슷하게 걸릴 것 같아서요. 호텔에 있는 동안 들여놓을 가구를 찾아보면 더 좋고.”

    ‘이사’. 정확히 말하면 이환의 이사고 나는 곁다리로 따라가는 거지만.

    “실장님.”

    “네, 해민 씨.”

    “저는 실장님한테 고용된 상태니까, 실장님 의견이 중요하지 제 의견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으음.”

    “그게 아니라 저랑 그…… 동거하고 싶다는 뜻이면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

    “하고 싶습니다, 동거.”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 곧바로 말하는 거 아니냐고.

    어영부영 끌려가는 것이 싫어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싶어 말을 꺼낸 것인데, 왜인지 말린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이환을 바라보자, 옅게 미소 띤 입술이 보였다.

    “진심으로 하고 싶습니다.”

    “네에.”

    그러셨구나. 진심으로 동거가 하고 싶으셨구나.

    “같이 살 집이니 해민 씨가 선택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그만 확실하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못 들은 척할 수도 없게, 과하게 정확히 말하고 있다. 이 사람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닌가 싶은 의혹이 솟구쳤다.

    “같이 살 집이니 해민 씨가 가구도 골라 줬으면 좋겠네요. 같이 살 집이니 해민 씨가…….”

    “알겠으니까, 그만 정확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가벼운 웃음이 목뒤의 솜털을 간질였다.

    “이사…… 꼭 가야 하는 거예요?”

    “그 빌라가 마음에 안 듭니까?”

    “아뇨. 그건 아니고요. 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곳이지만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더 좋아요?”

    어느 집인들 좋지 않을까. 단칸방, 지하 월세방, 고시원, 쪽방을 전전하고 심지어 노숙까지 해 본 내게는 편히 잘 수 있는 한 뼘의 방만 있어도 감사했다. 그런 내가 고급 빌라와 고급 주택을 감히 싫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세이프 룸이요.”

    “세이프 룸이 왜요.”

    한번 경험해 본 세이프 룸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몰랐을 때야 주택이든 빌라든 다 좋아 보였지만, 막상 세이프 룸의 존재를 알고 나니 굳이 안전한 곳을 두고 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고급 빌라에도 세이프 룸이 있어요?”

    “……없겠죠?”

    “그래서요. 이왕이면 없는 곳보다는 있는 곳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해결했다는 실장님의 말을 믿지만, 그래도 언제 이정 부회장님이 회까닥 돌아서. 아니, 이건 너무 저렴한 표현인가. 부회장님이 꼴 받, 음, 열 받아서? 욕구를 참지 못해서? 핀트가 나가서? 아무튼요.”

    “네, 네.”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이환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나를 도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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