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동생에게 장난감이 생겼다.
고급스럽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길거리에서 흔하게 발에 차이는 싸구려임에도 동생이 드물게 마음에 들어 하는 장난감이었다.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기에, 이정은 너그러이 그 장난감을 눈감아 주었다.
그랬는데, 장난감을 손에 쥔 뒤부터 동생의 행동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잘 타일러 보려 했으나 동생은 반항하듯 등을 돌리고 귀를 막았다.
“결국 장난감이 문제라는 거지.”
장난감이 슬슬 눈에 거슬렸다.
기꺼이 병문안까지 가 준 자신을 무시하고, 저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쫓겨나듯 나온 병실 문 너머에서 하하 호호 박장대소를 하던 그들의 웃음소리가 아직까지도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이정이 주먹 쥔 손으로 책상을 쾅쾅 내려쳤다.
“장난감이 문제야. 너무 싸구려를 손에 쥐여 줬어.”
아무리 동생을 아꼈어도 아무거나 가지고 놀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너그러이 넘어가 주었던 탓이다.
잘 나오던 회사에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고, 회사랍시고 소꿉장난하듯 만든 구멍가게에 들락거린다.
동생의 집에 설치해 둔 카메라는 어느 순간 망가져서 나오지 않고.
아버지가 따로 불러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지 변화가 없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다 놓으라고 시킨 놈은 붙잡혀서 경찰서에 끌려가질 않나.
“미쳐 돌아가네.”
화풀이를 하듯 이정이 다시금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럼에도 답답한 속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마치 체한 것처럼 속이 꽉 막혀 더부룩했다.
동생이 손에 쥔 장난감을 빼앗아 망가뜨리고 산산조각 내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장난감이 문제라면 장난감을 없애 버리면 된다.
장난감을 빼앗긴 동생이 투정이야 부리겠지만, 어차피 장난감은 한철이다. 장난감 하나를 평생 가지고 노는 아이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다른 장난감에 손이 가기 마련이고, 새로운 장난감은 언제든 마련할 수 있다.
현재의 장난감에 질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이정은 제 손에서 벗어나려는 동생을 참아 줄 만큼의 인내심이 없었다.
“한 실장, 들어와.”
인터폰으로 비서를 불렀다. 이정의 호출에 지체하지 않고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부회장님.”
“개가 좀 필요해.”
“……어떤 일에 쓰시려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불쑥 던져진 말에 한 박자 늦게 비서가 물었다.
“환이 장난감을 뺏어야겠어. 질 나쁜 걸 가지고 놀더니 애 성격이 이상해졌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나쁜 영향을 주는 장난감은 폐기해야지.”
비서의 얼굴 위로 옅은 환멸이 나타났다 사라졌으나, 찰나의 변화를 이정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몇 마리 정도 구해 올까요.”
“최대한 많이.”
“계획을 짜 보고 그에 맞춰 인원을 보충하겠습니다. 요즘 외출도 거의 안 한다고 하…….”
“집으로 밀고 들어가서 끄집어내라고 해.”
“……이환 실장님의 집을 말입니까?”
“그럼 누구 집이겠어.”
너무나 간단히 내뱉는 이정의 말과 달리 상황은 간단하지 않았다. 잠시 대답할 말을 잊었던 비서가 정신을 차리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 실장님의 자택을 직접 치는 건 위험도가 높습니다. 설사 일이 성공하더라도, 그 후에 이 실장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이정이 무슨 짓을 벌이든 무던하게 상황을 넘겨 온 이환이지만…….
이환이 진정 요정을 믿는 미친놈인지, 이제껏 그에게 일어났던 일이 이정의 계획임을 정말 모르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서해민이 등장한 이후로 이환의 행보가 달라지고 있었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머리가 꽃밭인 사람처럼 경호원도 없이 털레털레 돌아다니던 남자가 서해민에게는 즉각 경호원을 붙였다. 납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경호 인력을 죄다 투입하여 쫓아왔고, 집에 몰래 설치해 둔 몰래카메라는 타이밍 좋게 고장이 났으며, 매년 이벤트처럼 보내던 크리스마스 선물 심부름꾼도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한마디로, 그동안 순해서 때리면 때리는 대로 밀면 미는 대로 휩쓸려 다니던 이환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터질지 예상할 수 없는 폭탄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환의 집에 쳐들어가서 서해민을 붙잡아 온다?
머릿수로 밀고 들어가 목표인 서해민을 붙잡는다고 해도, 그 이후에 이환이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언론에 퍼트릴 수도 있고, 길길이 날뛰며 범인을 잡겠다고 본가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
경찰이든 언론이든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는 순간 회장님이 알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아무리 장남의 편에 서서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눈감아 주었던 회장님이라도 둘째 아들이 날뛰는 것까지 무시하지는 않을 듯했다.
서해민의 납치가 성공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떠나서, 그 후에 벌어질 난장판이 이리도 눈에 선한데. 이정은 코앞에 있는 서해민 치우기에만 급급하여 그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뒷일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치워 버리면 된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일지도.
“괜찮아. 장난감을 뺏기면 울고 투정을 부리지만, 금방 새 장난감에 눈을 돌리는 게 애들이거든.”
“……이 실장님이 정말 크게 분노하실 수도 있습니다.”
“서해민만 없어지면 돼. 환이가 가족한테 화내고 반항하고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거 한 실장도 알잖아. 우리 환이가 얼마나 착했는지. 서해민이 나타난 이후로 환이가 이상한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거든. 그러니까 서해민만 없어지면, 환이도 예전처럼 돌아오겠지.”
할 말이 많지만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고, 퇴사를 각오하고 말을 꺼낸다고 해도 어차피 들어먹지 않을 인간이었다.
비서는 흘러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한 번 쓰고 버릴 개를 구해 보겠습니다. 대신 비용을 많이 부를 겁니다.”
“두당 오천씩 준다고 해. 조선족 쪽으로 알아봐도 좋고. 그쪽 애들은 천만 원에 사람 멱도 따 온다며.”
“대신 일 처리가 지저분하고 컨트롤하기도 까다롭습니다.”
이환의 자택을 급습하는 일이니만큼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끝내야 한다. 이환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의 집에 쳐들어가 그가 보호하고 있는 사람을 확보한다는 것은 결국 그를 건드린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무차별 범죄처럼 보이게끔 길에서 납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정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곤 하나, 차후 문제가 생긴다면 피를 보는 건 이정이 아닌 그가 부리는 장기짝뿐이다. 이정이야 같은 핏줄인 만큼 회장님이든 이환이든 화를 낼지언정 타격을 주는 일은 없겠지만, 이정의 밑에서 부려지는 자신은 어떤 보복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지저분하면 어때. 치워 버리기만 하면 상관없지.”
남의 사정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이정은 속 편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서해민을 확보하면 어떻게 할까요. 저번처럼 몸값을 받은 뒤 돌려보냅니까?”
“한 실장. 내가 지금까지 한 말,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
“치워 버리라고. 내 눈앞에서 깨끗하게. 환이가 찾을 수 없게. 깨끗하게 지우라고.”
“……부회장님.”
이정을 부르는 비서의 목소리가 침통했다.
“두당 오천씩 주겠다는 의미를 몰라? 꼴랑 납치해서 몸값이나 요구하라고 그 돈을 주겠냐고.”
쯧쯧, 혀를 찬 이정이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비서를 바라보았다.
“계속 실패만 해서 내 기분이 나빠. 한 실장 일 처리 능력에 슬슬 의구심이 드네. 나이를 먹으니 버거워? 한 실장은 꿈이 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내가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내 옆에 서고 싶다며. 난 한 실장의 그런 허무맹랑한 다짐을 좋게 보고 지금까지 기회를 줬는데, 생각이 달라졌나?”
“……아닙니다.”
그때는 그랬다.
이정 소속 비서실 막내로 들어와 큰 꿈을 꾸었을 때도 있었다. 이정이 타고 다니는 차를 세차하고, 잡부나 할 법한 잔심부름을 하면서도 위로 올라가고자 꿈틀거렸다. 그러다 이정의 눈에 띄고, 그의 호의를 얻어 조금 더 중책을 맡게 되었을 땐 진급과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자식들은 많지만 회장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한 SG 그룹의 황태자. 차남은 어릴 때부터 정신이 약간 이상하다는 소문이 있었고, 딱히 그룹 쪽으로는 욕심이 없는 듯했다. 그 밑의 쌍둥이는 장남과 싸우기엔 나이가 많이 어린 데다 후처의 자식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평범한 베타였다.
황태자가 황좌에 오르기까지 거슬리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였고, 그러니 이정의 곁에 잘만 붙어 있으면 차기 회장의 오른팔, SG 그룹의 이인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친놈이 한 명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드러난 미친놈보다 드러나지 않은 미친놈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는데.
동생을 골려 주려는 형의 심술로 치부하기에 선을 넘은 장난이 이어졌다.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이건 위험하겠는데, 하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너무 깊게 발을 들여놓았다. 그나마 동생을 진짜로 죽이려는 마음은 없는 듯하여 안심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서해민이라는 제삼자가 등장할 줄이야.
업무만 열심히 하면 언제고 성공한다는 천진한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러운 일도 서슴지 않고 해야 한다는 각오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내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은 거지. 양심이라기보다는 훗날의 책임 문제였다. 법적 문제가 벌어지면 언제나 책임을 지는 건 아랫사람이니까.
“한 실장.”
기다림이 길어진 탓인지 이정이 인상을 쓰며 그를 불렀다.
생각을 정리한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빨리 구해 보겠습니다.”
“그래. 잘 좀 하자고.”
내가 한 실장 믿는 거 알지? 하는 말이 이어졌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내뱉은 말과 정반대로 마지막 기회라고 들리는 듯했다.
주먹 쥔 손을 허리 뒤로 감추며 비서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만족하실 소식을 가져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