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퓨리티-145화 (145/172)
  • 145화

    유리창 너머에서 웬 낯선 사내가 눈을 마주치고는 찡긋 윙크를 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쇠지레로 테라스 유리창을 힘차게 찍었다. 방탄유리라도 되는지 테라스 유리창에 퍽 소리를 내며 부딪친 쇠지레가 튕겨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뚫리지 않았을 뿐이지 거미줄 형태의 자글자글한 금이 퍼졌다. 사내가 연신 쇠지레로 유리창을 쪼아 댔다. 유리창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텅텅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뭐지?

    멍한 정신으로 창을 깨려고 애쓰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서해민 씨!”

    현관문이 열리며 일순 시끄러운 소리가 몰아쳤다. 퍽, 왁, 막아, 죽여, 치워.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타격음.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온 누군가가 손목을 낚아채 끌어당겼다.

    “누구……?”

    “이리로.”

    “누, 누구세요.”

    “당황스럽겠지만 조금 서둘러 주셔야겠습니다.”

    “네?”

    “금방 뚫릴 겁니다.”

    그의 말과 동시에 뒤에서 와악 하고 큰 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몰아쳐 들리는 것으로 보아 현관이 뚫린 모양이었다.

    “어서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몸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집 테라스 유리창을 쇠지레로 부수는 사람이 호의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현관문이 열리며 밖에서 흘러 들어온 난투 소리도 평온한 상황이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어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당신은 누구세요? 우리 편이 맞긴 해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남자의 뒤를 쫓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몸을 움직였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빠져나갈 생각인가 했는데, 그는 지하 창고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쪽입니다.”

    “여긴…….”

    “이쪽! 이쪽으로 갔다!”

    등 뒤에서 가깝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나를 끌고 온 남자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 벽을 헤집었다. 무언가를 찾아냈는지 철제 선반을 밀어 쓰러뜨리자, 창고 벽에 부착된 네모난 계기판 같은 것이 보였다. 손으로 패널 위를 누르자 삑삑삑삑 소리와 함께 벽이 열렸다.

    “들어가십시오.”

    말과 함께 나를 안으로 밀어 넣고 남자가 뒤따라 들어왔다. 동시에 창고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자가 급하게 문 옆 빨간 버튼을 주먹으로 때리듯 누르자 마법처럼 벽이 닫혔다.

    “…….”

    다급히 손을 뻗으며 뛰어오던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후우, 하고 허리를 굽혀 숨을 몰아쉰 남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놀라셨을 겁니다. 여기 좀 앉으세요.”

    멍하게 서 있는 나를 이끌어 푹신한 곳에 앉혔다.

    “……꿈이에요?”

    “죄송하지만 아닙니다.”

    남자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컴퓨터 같은 무언가를 작동시켰다. 잠시 가출했던 정신이 살짝 돌아왔다. 뒤늦게 내가 들어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남자가 있는 쪽으로는 상황실처럼 커다란 모니터와 알 수 없는 버튼이 잔뜩 달린 기계와 키보드가 있었고, 내가 앉아 있는 데는 간이침대, 그리고 왼쪽으로는 우리가 들어왔던 문, 오른쪽으로는 박스가 몇 개가 쌓인 선반이 있었다.

    “저기요.”

    “네, 말씀하십쇼.”

    내 부름에 남자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 그가 몇 개의 버튼을 누르자 까맣게 죽어 있던 화면이 켜졌다.

    “실장님 사람…… 맞는 거죠?”

    “네. 실장님 아래에 있습니다.”

    화면을 전환시키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최대한 무해함을 피력하려 했다.

    “조금 당황스럽고 놀라셨을 텐데,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데요?”

    “습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방 해결될 겁니다.”

    “여기는 어디예요?”

    “세이프 룸입니다. 저택에서 일이 터지면 서해민 씨를 이쪽으로 모시는 게 최우선 사항이었습니다. 상황이 급해 미리 설명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호를 보냈으니 조만간 상황이 정리될 거라고, 그때까지만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고 남자가 말했다.

    “집에 이런 공간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대피하기 위한 공간이니 되도록 모르고 쓸 일이 없어야지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그가 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앉아 있던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슬쩍 화면을 보자 이리저리 뒤엉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집에 카메라가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발견한 적도 없는데. 지금 보니 여기저기 많이도 달아 놓은 모양인지, 사각이 없었다.

    “집 경호해 주시던 분들이죠?”

    “네, 그렇습니다.”

    “엄청 맞고 계시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수적 열세 탓인지, 이환이 선별해서 뽑았을 경호 인력들이 수세에 몰려 엄청나게 맞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장을 하나씩 손에 든 침입자들이 경호 인력들을 개 패듯 패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금방 정리될 상황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만 상황이 안 좋아 보이는 건가 싶어 남자를 힐끔거렸다. 그의 표정도 그리 담담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객관적으로도 좋은 상황은 아닌 모양이다.

    “제가 목적인가요?”

    “…….”

    “여기 문 안 뚫리는 거 맞죠?”

    세이프 룸이라고 하는 이 공간의 문 앞에도 침입자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었다. 들고 온 연장으로 문을 두드리고, 문틈을 쑤시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패널을 부수는 등 난리를 피워 대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힘으로 열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밖에서 선을 건드리면 락이 걸립니다. 한번 락이 걸리면 안에서만 열 수 있게 설계되어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밖에 있는 경호원들은요. 문 못 연다고 얌전히 돌아갈 것 같지 않은데……, 괜찮으실까요.”

    나야 다행히 안전하게 피했다지만, 여전히 밖에서 처맞고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었다.

    “곧 도착할 겁니다. 아니, 도착했습니다.”

    “경찰이요?”

    남자는 대답 대신 화면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화면 속에는 지금 막 정원으로 들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실장님이 근처에 안가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일이 터지고 신호가 가면 오 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셨기 때문에, 서해민 씨의 신병 확보가 최우선 사항이었습니다.”

    어째서 남자가 나만 데리고 이곳으로 피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침입자들과 대치하듯 선 추가 인력이 무언가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타깝게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은 여전히 험악한 듯했다.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다시금 충돌이 일어났고, 침입자들이 그러했듯 추가된 경호 인원들이 머릿수로 찍어 눌러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도 법이나 규범이나 질서 같은 건 없었다. 오로지 힘과 폭력으로 정리되는 상황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리고 간이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지.

    눈 오는 거 구경하면서 처음 여유를 느껴 봤는데. 마치 그것을 벌하기라도 하듯 난데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팔자에도 없는 여유를 부려서 그랬나. 그래서 하늘이 벌을 주는 건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눈앞에서 맞고 때리는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밀폐된 공간에 처음 보는 사람과 갇혔다.

    놀라고 당황했을 뿐, 다친 곳은 없지만.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목뒤가 뻣뻣하게 굳고, 체한 것처럼 신물이 올라왔다.

    “물 좀 드시겠습니까.”

    조용해진 내가 걱정되었는지 남자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뇨. 괜찮, 괜찮아요. 전 신경 쓰지 마세요.”

    나를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해 달라는 뜻이었는데. 남자는 박스 안을 뒤적거려 얇은 이불을 꺼내 와 내 어깨에 둘러 주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실장님께서 오실 겁니다.”

    “위험할 텐데요.”

    “그 전에 상황이 정리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대충 상황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고, 눈으로 확인해도 좋다는 남자의 말에 손을 내저어 거절했다.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고 있다가 속이 메스꺼워져 주변을 살폈다. 침대에서 기듯이 내려와 이불 포장지를 손에 쥐었다. 몇 번의 헛구역질 뒤에 점심에 먹은 음식들이 역류했다. 시큼털털한 위액이 혀끝에 맴돌았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박스 안에서 생수병을 꺼내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급히 마시지 말고 입부터 헹구세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건 제가 치우겠습니다. 이리 주시고 목 좀 축이세요.”

    물을 머금어 입을 헹구고, 살짝 목을 축였다. 속을 게워 낸 탓에 젖은 눈가를 옷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남자가 빼앗듯이 가져간 봉지를 묶어 한쪽에 치워 두었다.

    “좀 누워 계십시오.”

    “네, 네.”

    아니다, 괜찮다, 무슨 말을 해도 남자가 신경 쓸 것을 알기에 대충 답을 하고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벽에 기대어 앉아 온몸으로 무관심을 요구하자, 나를 힐끔 쳐다본 남자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등을, 남자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화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떨어뜨린 과자 부스러기에 개미들이 몰려 굼실거리는 것처럼, 화면 속에서 작은 인영들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오히려 감사했다.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규칙적인 흔들림이 의외로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동반하는 사소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멀쩡한 정신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기엔 여전히 혼란스러웠으니까.

    얼마 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얼마나 얼을 빼놓고 있었는지, 마치 잠든 것처럼 잠시간의 기억이 없었다.

    수그리고 있던 머리에 타인의 손이 닿았다.

    “해민 씨.”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실장님.”

    “많이 무서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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