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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121)화 (121/172)
  • 121화

    좋아하는 이유를 찾다 보니 추가로 붙은 옵션과도 같다고 이환이 설명했다.

    확실히, 욕하고 구박하는 고용주였다면 돈을 많이 줘도 속으로 욕을 하면 했지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월급을 조금 주고 숙식 비용을 받았어도 욕했을 것 같…….”

    “어허.”

    “따지면 실장님의 금력이 조금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하는…….”

    “쓰읍.”

    나를 덥석 끌어안은 이환 때문에 가슴팍에 얼굴이 묻혀 더는 발언이 불가능했다.

    “내가 준 귀금속하고 선물 때문에 좋은 건요.”

    “그건 좀 부담스러워서…….”

    코끝이 눌릴 정도로 파묻고 있던 얼굴을 떼고 웅얼웅얼 답하자 “거봐요.” 하고 핀잔 섞인 대꾸가 돌아왔다.

    “겨우 그거 받고 부담스러워하면서, 돈 때문에 나 좋다는 말이 나옵니까? 그런 말을 하려면 강남에 오피스텔 한 채는 받고 말해요.”

    “저한테 선물 주신 거 합치면 그 정도 값 나오는 거 아니에요?”

    “강남 오피스텔이 얼마인지나 알고 하는 말입니까? 정말 그 가격 맞춰 줄까 보다.”

    겁을 주는 뉘앙스의 말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럼 저는…… 실장님 돈을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가장 타당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차라리 내 얼굴이나 몸 때문에 좋았다고 말했으면 설마 하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타당한 이유고요?”

    “누가 봐도 타당하다고 말할 겁니다.”

    이환의 말에 동감하고 반박할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살짝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 자신감은 대체…….”

    “나는 나 잘난 거 압니다. 내가 재벌가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제외하고서도, 나 하나만 놓고 봐도 나는 잘났습니다.”

    “……그렇죠.”

    “왠지 대답이 약간 마땅찮은데요?”

    “아닙니다.”

    “아니긴. 잘난 척하네, 이런 표정인데?”

    “아, 아니거든요.”

    “네, 아닙니다.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잘났으니까. 얼굴도 이 정도면 잘났고, 몸도 이 정도면 훌륭하고, 머리도 좋고, 일머리도 좋고, 몸으로 하는 것도 다 잘합니다.”

    “좋으시겠어요.”

    이환이 잘났다는 점에 이견은 없지만. 그래도 본인 입으로 내뱉는 잘난 자랑에 살짝 빈정이 상하는 건, 내 속이 좁기 때문일까.

    “해민 씨도 해민 씨만 놓고 보면 잘났습니다.”

    “그건 아니에요.”

    제가요?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환이 저 잘났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내가 잘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아닙니까. 얼굴도 예쁘고, 몸도 예쁘고, 손도 예쁘고, 발도 예쁘고,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다 예쁜데. 거기에 더해 현명하고, 야무지고.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지탱하고 서 있는 단단함도, 요령을 부리지 못하는 고지식한 성실함도 잘났습니다.”

    “고지식하다는 건 욕이잖아요.”

    “욕 아니에요. 나는 정말, 융통성 없는 해민 씨의 모습이 좋거든요.”

    “그런 칭찬은 처음 들어요.”

    그런 말은 보통 욕으로 하던데. 욕을 칭찬처럼 하는 건지, 칭찬을 욕처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 요정님이잖아요. 세상에서 요정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죠.”

    “그렇……죠. 사람이 요정을 이길 수는 없죠.”

    이제는 언제 어느 타이밍에 요정님 소리를 들어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칠 만한 여유가 생겼다.

    “나는 진심으로, 해민 씨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고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요?”

    길쭉한 손가락이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드러난 이마 위에 따스한 입술이 내려앉았다.

    “네, 진심으로.”

    살며시 감았던 눈을 뜨고 조용히 이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다정했고, 또 따스했다.

    “실장님 말을 들으면…… 내가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넘치지도 못하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이요.”

    “평범하지 않아요. 특별한 사람입니다. 내게 과분할 정도로 넘치는 사람이에요.”

    “실장님 앞에서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져요.”

    “조금 더 써요.”

    “…….”

    “아주 괜찮은 사람이니까.”

    자신감을 가진 김에 조금 더 욕심내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환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가까이 끌려온 그의 입술 위에 살며시 입을 포갰다.

    꾹 누르고 있던 입술이 벌어지며 온기를 담은 숨결이 새어 나왔다. 커다란 손이 내 뒷머리를 감싸고, 짓눌려 벌어진 입술 안으로 이환이 파고들었다.

    열린 발코니 창으로 들어온 바람에 커튼이 팔랑팔랑 흔들렸다. 더위가 가신 가을바람은 찬기를 머금고 있었으나, 겹쳐진 입술 사이로 오가는 열기로 인해 서늘함은 금세 밀려났다.

    혀가 뒤엉키고 점막이 문질러진다. 진득한 접촉에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이다. 힘없이 늘어지는 몸뚱이를 끌어안은 이환이 제 쪽으로 바짝 당겨 안았다. 흉통이 꽉 막힐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는 행동에 압박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안정감이 밀려들었다.

    원 없이 입을 맞추고 또 맞췄다. 잘근잘근 깨물리고 빨린 입술이 얼얼할 정도로.

    촉, 촉. 입 주변으로 넘친 타액을 핥아 주며 이환이 가볍게 버드키스를 했다. 열기가 몰려 흐릿해진 시야에 느슨하게 풀어진 이환의 얼굴이 담겼다.

    골몰히 집중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의 무게감 있는 얼굴도 좋고, 눈이 휘어질 정도로 활짝 웃는 얼굴도 좋지만, 자연스럽게 풀어진 표정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다.

    어쩌면…… 이환이 좋아진 이유 중에 얼굴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닐까.

    이환이 자신만만했던 이유를 뒤늦게나마 실감했다.

    “무슨 생각 해요?”

    살짝 입술이 닿은 상태로 이환이 물었다. 말을 할 때마다 새어 나오는 숨결이 간지러웠다.

    “실장님 얼굴이 잘생겼다는 생각이요.”

    “어……, 갑자기 그런 칭찬이라니. 좀 부끄러운데.”

    방금 본인 입으로 얼굴이 잘났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사람이 부끄럽기는.

    “실장님 표정이…….”

    “내 표정이?”

    “좋았어요.”

    이환의 입술이 완만하게 휘어졌다.

    “계속해 봐요.”

    “네?”

    “내 칭찬. 듣기 좋네.”

    이환 정도 되는 사람이면 뭘 해도 주변에서 칭찬만 해 줬을 텐데. 그럼에도 진심으로 기분 좋다는 듯 웃고 있는 얼굴이 순해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몸도 좋구요.”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을 움직여 슈트 상의 깃 안쪽을 파고들었다. 부드러운 재질의 와이셔츠 아래로 가슴 근육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탄탄한 가슴에 손끝이 닿자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그리고?”

    내 등을 커다란 손으로 감싸 지탱하고, 입술부터 뺨까지 가볍게 입 맞추며 움직이던 그의 입술이 귓가에 내려앉아 달싹였다.

    “어, 그리고…… 체력도 좋고요.”

    “내 체력이 좋긴 합니다. 또?”

    “그리고…… 고추도 커요.”

    살그머니 내려간 손이 이환의 허리에 닿았다. 가죽 벨트의 버클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이환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 고추가 큽니까?”

    “네. 부러워요.”

    “부럽기까지야.”

    “동네 목욕탕에서 볼 수 없는 수준이에요. 국가대표급?”

    “무려 국가대표급입니까?”

    묻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고맙기는 한데, 목욕탕에서 남의 고추 크기만 보고 다닌 건 아니겠죠?”

    “아니거든요. 그건 그냥,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거예요.”

    괜히 학교 다닐 때 애들끼리 화장실에서 남의 고추 훔쳐보고 크기 비교하고 그러는 게 아니다. 내 아래에 달려 있는 것과 저놈 아래에 달려 있는 것을 비교해 보고 자신감을 갖거나 소심해지거나 하는 건, 남자에게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본능 같은 거였다.

    이환의 아래에 달려 있는 건, 타인에게 부러움과 질투심을 갖게 했다. 아니, 비교도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가능하지, 정도를 넘어 버리면 경외감만 들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환은 동네 운동회 수준이 아니라 세계 올림픽 수준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공용 목욕탕은 금지입니다.”

    “네?”

    “해민 씨가 남의 고추를 보게 둘 수는 없죠.”

    “그거 보러 가는 거 아니에요.”

    “대신 내 거 보여 줄게요. 국가대표급.”

    “아니, 저는 진짜로 그걸 목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니까요.”

    왜인지 상황이 억울해졌다. 웃음기 가득한 이환의 목소리로 장난임을 알아차렸지만, 그래도 억울한 건 억울한 거였다.

    “해민 씨 말고는 본 사람이 없는 물건입니다. 실컷 보고, 부족하면 만져도 좋습니다.”

    벨트 버클만 만지작거리고 있자, 마치 그것을 지적하듯 이환이 나직한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를 적시자 조건 반사처럼 목덜미로 열이 훅 올라왔다.

    발갛게 달아오르는 뺨을 숨기고자 이환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가까워진 심장에서 두근두근 고동 소리가 울렸다.

    달칵, 하고 버클이 풀리며 쇳소리가 났다.

    슬쩍 고개를 들어 눈치를 보자, 눈이 마주친 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시선을 마주한 상태로 벨트를 풀고 바지 단추를 끌렀다.

    이환은 입을 꾹 다물고 장난기 어린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유가 생긴 바지춤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맨살과 브리프의 밴드, 살 위를 감싸고 있는 천, 그리고 그 안에 감추어진 국가대표급 거시기. 눈으로 보지 않는 상황에서 손만 꼼지락거리고 있노라니 손끝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읏…….”

    등을 감싸고 있던 이환의 손이 어느샌가 내려가 엉덩이를 와락 움켜쥐었다. 깜짝 놀라 신음을 토하자, 엉덩이가 움푹 들어갈 정도로 꽉 틀어쥐고 있던 손이 부드럽게 엉덩이 살을 눌러 문질렀다.

    “그렇게 잡으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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