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퓨리티 (102)화 (102/172)

102화

“내게 일어나는 사고는 언제나 악독한 계모의 몫으로 돌아갔고, 나는 동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살아남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친형제인데요. 설마 부회장님이 실장님을 죽이시려고…….”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죽였을 겁니다. 그 새끼 눈이 딱 그랬어요.”

“눈……이요.”

겨우 눈?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눈을 보고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눈?

“초등학생 머리 위로 벽돌이 떨어지는 건, 그냥 죽으라는 뜻이죠.”

“그건 위험했네요.”

“물론 내가 신체 능력이 뛰어나서 그 정도는 피할 수 있으리라 제 딴에는 계산을 끝낸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그러니까요. 그러고서는 꼭 이렇게 한마디씩을 덧붙였습니다. ‘역시 계모가 나쁘네.’ ‘계모는 전처 자식을 죽이고 자기 자식이 모든 걸 물려받길 원한대.’ 계모는, 계모는……. 이제 와서 말하지만, 참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가 얕아요.”

“…….”

“우리는 서로를 관찰했어요. 나는 그 새끼가 내게 원하는 동생의 모습이 있음을 파악했고, 그 새끼는 제가 원하는 동생의 모습이 내게 있는지를 판단했어요. 그래서 나는 이정이 원하는 동생의 모습으로 살기를 택했습니다.”

“……그게 초등학교 때 일이라는 거죠?”

지금 뭔가 엄청나게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이환의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이란다. 뭔가 음모와 암투와 물밑싸움이 치열하게 오간 기분인데, 그게 초등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라니.

“차라리 회장님께 말씀하시지…….”

“말했습니다.”

하긴, 내가 생각한 방법을 이환이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보다 초등학생이었던 이환이 분명 더 똑똑했을 테니까.

저런 생각과 눈치와 두뇌 싸움. 난 못 해. 지금 하라고 해도 못 해.

“아버지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형이 나를 죽일 거예요.’”

대뜸 그렇게 말하면 누구라도 안 믿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환이 혼났으려나. 형에게 못 하는 말이 없다고.

“그런데 내가 안 죽고 형보다 더 커지면, 그땐 내가 형을 죽일 거예요.”

멎었던 기침이 폭발했다. 콜록, 하고 나온 기침은 목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며 격하게 쏟아졌다. 골이 울리는 기분을 느끼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환이 다급히 물 한 잔을 떠 와 내 입에 대 주었다. 삐져나오는 기침을 삼키며 미지근한 물로 목을 적셨다.

“놀랐습니까?”

“당연히 놀랐죠! 그런 얘기를 들으면 누구라도 놀라요.”

눈을 흘기자 이환이 미소를 지으며 컵을 받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진짜 회장님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네.”

“여전히 초등학생 때 일이죠? 아직 중학생 때로 넘어간 거 아니죠?”

“네.”

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환이 나이를 조금 더 먹어 중학생이었다면. 그렇다면 치명적인 불치병이라는 ‘중이병’의 증상으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여전히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진짜, 엄청나게 성숙하셨네요.”

“그렇다니까요. 내가 좀 일찍부터 성숙했습니다.”

아아, 모르겠다. 이 이야기의 끝이 대체 어떻게 마무리될지 이제는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감도 잡히지 않았다.

힘없이 침대에 늘어져 예상 따위는 집어치우고 이환의 말을 잠자코 듣기로 했다.

“아버지는 형을 정신 병원에 집어넣거나, 내가 죽거나, 형이 죽는 걸 봐야 해요. 내 말에 아버지는 장남을 정신 병원에 집어넣을 수도 없고, 장남이 죽는 꼴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뭐, 실장님이 죽는 꼴을 보시겠대요?”

가만히 듣고 있으려고 했는데 이건 좀 화난다. 왜 굳이 콕 찍어서 장남만 대상으로 해? 차남은 속상해서 살겠어?

불퉁한 내 물음에 이환이 웃으며 내 뺨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었다.

“아버지에게 장남이란, 아버지가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그래서 이정에게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건 나도 예상하고 있었고요. 그렇다고 내가 죽어 줄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그러게요. 어떻게 하셨어요?”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죽은 사람은 없고 이정이나 이환이나 멀쩡히 잘 살아 있었다.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궁금함을 담아 이환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고, 그러니 나중에 형이 죽는 게 싫다면 내게 합당한 보상을 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형을 죽이는 대신, 그가 원하는 동생의 모습으로 남아 주겠다고. 그러니 내 가치에 맞는 값을 치르라고요.”

“실장님이 회장님에게 그랬다는 거죠?”

“네.”

“초등학생 때요.”

“네.”

음, 여전히 초등학생 때였구나. 이야기만 들으면 대학생 때라고 오해할 법했다.

요즘 초등학생은 다들 저렇게 성숙한가 생각했다가, 나보다 열네 살은 더 많은 사람임을 깨닫고 뒤늦게 혀를 찼다.

“그럼 쭉 이어져 온, 실장님 주변에서 일어났던 위험한 사고는…… 누가 벌인 짓인지 알면서도 당해 준 거였네요.”

“네.”

“……그 공사 현장에서요. 그때 사실 말 안 한 거 있어요.”

“그때요?”

“제가 실장님 구해 줬을 때. 철근 떨어질 때, 거기 서 있던 사람을 본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골치 아프게 엮일까 봐 말 안 했어요. 나중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말할 수가 없었고요.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합니까. 내 목숨을 구해 줘 놓고.”

“그 일도 부회장님이 꾸민 일이에요?”

“네.”

“그건 정말 위험했는데! 철근 맞으면 알파라고 해도 그냥 골로 가요!”

내가 소리를 지르자 이환이 아하하, 하고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진짜로, 누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피할 수 있었던 거예요?”

이환의 표정을 살피다 뒤늦게 깨달았다.

알파의 신체는 정말 대단하구나.

약간의 감탄과 함께 내 오지랖에 한숨도 함께 나왔다.

“물론 그렇지만, 덕분에 내 요정님을 만나게 되었잖아요. 운명입니다.”

“…….”

아니, 갑자기 운명이 거기서 나오면 안 되지.

“실장님, 그러다 골로 가면 어떻게 해요? 사람은 가끔 진짜 어이없게 죽기도 하잖아요. 안 불안하세요?”

“나 걱정하는 겁니까?”

“네.”

“와아.”

“걱정돼요.”

와, 하고 감탄하던 이환은 이어진 내 말에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감동으로 젖은 눈이 금방 울먹울먹해졌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정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고 적당히 당해 주는 겁니다.”

“공사장에서 떨어지는 철근 밑에 서 있는 게 적당히 당해 주는 거예요?”

“……물론 위험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아, 그러니까 무능력한 내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사람을 구해 준답시고 헛짓거리한 거다?”

“아니, 또 왜 말이 그렇게 됩니까. 그건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의 종소리가…….”

“쇳소리예요. 운명은 없고, 부회장님 계획만 있었고요.”

“화났습니까?”

“…….”

“진짜로 다 알고 있어요. 곳곳에 내가 심은 눈과 귀가 있습니다. 알고 당해 주는 척하는 겁니다. 위험한 건 없어요. 진짜로요.”

“…….”

입을 꾹 다물고 침묵시위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자 이환이 어울리지 않게 내 눈치를 보는 척했다.

“해민 씨.”

“부회장님과 실장님이 만든 판에 뜬금없이 제가 뛰어든 꼴이었겠어요. 저는 그러면 특별 출연이나 카메오 뭐 그런 거예요?”

“그럴 리가요.”

“이번에 납치 사건도 부회장님이 꾸민 일이에요? 저는 무대 위에 언제부터 올라와 있었어요? 고용되던 그 순간, 배역이 정해진 거였어요? 요정님으로?”

“…….”

“부회장님은 돌아이예요?”

말을 고르려는 의도였는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이환이 내 마지막 물음에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환을 흘겨보았다.

“돌아이보다는 소시오패스에 가깝습니다. 안타깝게도 소시오패스에도 살짝 부족하지만요. 이정은 어릴 때부터 가지지 못한 게 없었고, 하지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걸 그의 손에 쥐여 주었고, 내가 회사에 욕심이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후계자로 정해졌죠. 그래서인지 딱히 성공에 대한 욕구가 없어요.”

“부회장님이 부유하게 자란 게 돌아이, 아니, 소시오패스? 그것과 무슨 상관인데요.”

“그의 배경과 성격은 관계가 없습니다. 그 새끼는 그냥 원래 소시오패스였고, 성공에 목맬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다른 것에 눈을 돌린 게 문제였죠.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세상이 무료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이 어린 동생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쿡 찌르면 반응이 즉각즉각 돌아오는 아주 흥미로운 장난감이.”

“돌아이나 싸이코와는 달라요?”

“그러기엔 너무 이성적이죠. 그런데 아쉽게도 계산 능력이 살짝 떨어집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모든 걸 맞춰 주는 환경에서 자란 터라, 완벽함을 갈고 닦을 기회가 없었죠. 본인은 완벽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냥 완벽하다고 느낄 수 있게 주변에서 맞춰 줬던 겁니다. 내가 그렇게 어울려 주고 있고요.”

여기서 무서운 쪽은 어린 동생을 장난감으로 보는 이정일까, 아니면 그런 이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훤히 들여다보는 이환일까.

재벌 일가라는 점부터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그걸 떠나서 형제 관계 자체가 참으로 특이했다. 그 어떤 형제도 저런 식으로 두뇌 싸움을 하지는 않을 듯싶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배부르게 밥 처먹고 할 일이 없으니 저런다고 욕을 할, 딱 그런 이야기였다.

“……모르겠어요. 실장님 설명을 들었는데 더 혼란해요. 복잡하고. 정리도 안 되고. 현실성도 없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웅얼거리자 이환이 그런 내 머리를 쓸어 주었다.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거 압니다. 해민 씨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

“실장님.”

“네, 해민 씨.”

“저에게 뭘 원하고 고용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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