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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81)화 (81/172)
  • 81화

    환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쭉 기지개를 켰다. 어제 낮에 낮잠까지 잤는데, 밤에 잠을 설치기는커녕 과하게 푹 자고 일어났다.

    와인 한 잔 마셨다고 곯아떨어졌나. 아니, 한 잔이 아니라 거의 한 병을 나 혼자 다 마시기는 했지. 알코올 효과가 이렇게 좋구나. 이래서 아저씨들이 잠이 안 올 때마다 술 한 잔씩 걸치고 잔다고 했었나 보다.

    뒤늦게 어른들의 사정을 이해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더듬어 옆에 두었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일출 보고 싶었는데.”

    여기가 동해의 어디쯤인지는 모른다. 강원도 동해시를 말하는 건지, 동해 바다를 말하는 건지. 확실하게 묻지 않아서 모르지만, 정확한 위치와는 별개로 동해라는 말에 살짝 일출 구경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제 얼핏 침실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비록 새해는 아니지만 나도 남들처럼 동해에서 해돋이 보는 경험을 해 보겠구나 했는데. 열 시에 일어나서 일출을 아쉬워하기엔 너무 양심이 없으려나.

    이 시간까지 자게 내버려 두고 이환은 혼자 뭘 하고 있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묘하게 갑갑한 마음에 다리를 들썩이자 이불이 덩달아 펄떡거렸다.

    “뭐야, 이거…….”

    가슴부터 다리까지 몸뚱이가 얇은 이불로 칭칭 말려 있었다. 이러니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구나 짐작하며 왜 이런 꼴이 되었을까를 고민했다. 잠결에 이불 위를 굴러다녔다고 하기엔 너무 촘촘하게 말려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이내 이환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가정에 이르렀다.

    알몸으로 자다가 높아진 체온에 괜히 이불이라도 차 버릴까 걱정되어 임기응변으로 이불로 돌돌 말아 놓은 모양인데, 그렇다고 사람을 이렇게 김밥처럼 말아 둘 필요가 있었을까.

    팔과 다리를 일자로 쭉 펴고 침대 위를 빙글빙글 굴러 이불의 덫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어휴.”

    침대에 눕자마자 잠든 것으로 보아 살짝 취하긴 했던 모양이다. 절대 취하지 않았다고 이환에서 호언장담을 한 터라 영 면이 안 살았다.

    그래도 어젯밤에 한 말이나 행동도 기억나고, 이환에게 들려 침실로 옮겨진 것도 기억난다. 끊임없이 질문을 내뱉었던 나와 곤란한 얼굴로 대답하던 이환도 기억난다. 끝나지 않는 질문 세례를 용케 참아 낸 이환의 인내심도 기억나고.

    곤란해하던 얼굴을 떠올리자 다시 웃음이 나왔다.

    이환을 앞에 두고 섹스 타령을 하는 날이 오리라 언제 예상이나 했겠는가. 확실히 어젯밤의 나는 대범하고 거침없었다. 누군가에겐 지옥 같았을 질문들이 전부 취중에 나온 헛소리는 아니었고, 언제고 한 번쯤은 물어봐야지 했던 것이지만. 그래도 진짜 정신이 멀쩡했다면 대놓고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는 못했을 터였다.

    나답지 않은 짓을 했으니 이환이 나를 취객 취급한 것도 이해가 된다.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매일 아침 반복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오늘따라 즐겁다.

    ‘휴가’라는 단어 때문일까, 난생처음 본 바다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으리으리한 별장에 와 있기 때문일까.

    평소와 달리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즐겁고 홀가분한 기분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짐가방을 뒤져 속옷과 티셔츠를 입었을 때였다. 똑똑 하는 노크 소리에 쭈그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좋은 아침입니다. 푹 잔 모양인지 얼굴에서 빛이 나네요.”

    방문을 열자 작은 쟁반에 유리컵 하나를 올려 들고 온 이환이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지금 일어났어요.”

    “죄송하긴요. 휴가니까 늦잠도 자고 해야죠. 지금쯤 일어났을 것 같아서 올라왔는데, 내가 시간을 잘 맞춘 모양이네요.”

    “일찍 깨우시지…….”

    “푹 자라고 일부러 안 깨웠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마셔요.”

    이환이 내미는 컵을 받아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액체를 꿀꺽꿀꺽 삼켰다. 풋풋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에 한 컵을 단번에 비우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어때요?”

    “맛있어요.”

    “사과랑 바나나, 토마토, 당근을 넣고 갈았습니다. 다행히 과일이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올라온 손이 입가에 묻은 것을 훔치고 떨어졌다.

    “머리 아프지는 않고요?”

    “네.”

    “속은 괜찮습니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요. 살짝 기분이 좋아진 정도였지 취한 것도 아니었고요.”

    “이제 보니 요정님이 말술이었네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며 이환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제 했던 질문들은 다 기억납니까?”

    “……네.”

    “남은 질문 있어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말에 왜인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발등을 종아리에 문지르다 문득 허전한 기분에 아래를 보자, 옷을 입다가 나온 탓에 티셔츠에 속옷 차림이었다. 셔츠 밑자락을 쭉쭉 잡아당겨 늘이며 이환의 턱 언저리로 시선을 던졌다.

    “실장님.”

    “해민 씨가 그렇게 부르면, 이제 긴장부터 되네요.”

    “질문……해요?”

    “진짜로 남은 질문이 있습니까?”

    장난으로 놀렸다가 진짜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도 이환은 기꺼이 질문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실 거예요?”

    이환이 먼저 찾아오긴 했으나 명확히 다른 용건이고,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문 안으로 한 걸음도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래서 물었다.

    어제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 자신의 질문 속에 담긴 의미 또한 알고 있지 않냐고. 그래서 당신은 먼저 다리를 뻗어 안으로 들어올 마음이 있느냐고.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겠죠. 그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겁을 주듯 내뱉는 말이 무섭지 않았다. 턱 끝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들어 그의 완고한 입술을, 정직한 콧날을, 그리고 다정한 눈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제가 싫다고 하면 안 들어오실 거잖아요.”

    “……그렇죠.”

    나는 대답 대신 그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걸음을 비켜섰고, 그는 내가 힘주어 쥐고 있던 빈 유리컵을 가져가 쟁반과 함께 바닥에 내려놓았다. 숙였던 허리를 펴고 일어선 이환이 성큼 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커다란 몸뚱이가 가까워졌고, 너무나도 쉽게 몸이 들어 올려졌다.

    남자의 굳건한 허리에 다리를 감고, 넓은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아래에 위치한 이환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자, 시선을 마주한 그가 미소 지었다.

    “키스해요.”

    보기 좋게 도톰한 입술이 벌어지며 강요인지 애원인지 모를 요구가 흘러나왔다.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코끝이 닿고 입술이 포개어졌다. 살짝 내민 입술이 말캉한 살덩이를 문질러 비비며 촉, 촉 소리를 냈다.

    “그게 키스예요?”

    침대에 조심스럽게 나를 눕힌 남자가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며 웃었다.

    커다란 손이 양 뺨을 감싸고, 살짝 벌어진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문다. 혀로 윗입술의 안쪽을 살살 핥으며 간질이다 아랫입술을 쪽 빨아들여 질겅이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바꿔 핥고 빨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물고 빨린 탓에 얼얼할 정도로 도톰하게 부푼 입술을 벙긋거리자, 이환이 혀를 밀어 넣으며 벌어진 틈새를 메웠다. 아플 정도로 벌어진 입술이 이리저리 짓눌렸다.

    이환은 정복자처럼 밀고 들어와 입안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두툼한 혓바닥이 입천장을 긁고 혀뿌리를 더듬으며 목구멍을 쑤셔 댔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난폭한 움직임에 항의하듯 그의 등을 툭툭 때리자, 광인처럼 발광하던 혓바닥이 한순간 얌전해져 순한 짐승이 꼬리를 살랑이듯 혀와 혀를 마주하고 살살 문질러 비벼 댔다.

    “이게 키스예요?”

    촙, 하고 떨어진 입술이 얼얼하다. 약간의 책망을 담아 묻자, 이환이 대답 대신 내 턱 끝을 앙앙 깨무는 시늉을 했다.

    “해민 씨가 너무 귀여워서요.”

    논리적이지 못한 남 탓이었다. 못마땅함을 표하며 꾹 다문 입술에 힘을 주자, 그가 사과랍시고 뺨과 턱을 물고 빨며 잔뜩 침칠을 해 댔다.

    “밝을 때 이러고 있으니 해민 씨 표정이 더 잘 보이네요.”

    머리카락 하나하나, 속눈썹 한 올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고. 내 눈동자에 비치는 제 모습까지도 보일 지경이라고. 왜인지 이환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한참 동안 시선을 맞추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장난스럽게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며 은근슬쩍 셔츠 아래로 손을 밀어 넣는다. 등허리에 감기는 뜨거운 손바닥에 피부가 움찔거렸다. 흠칫 어깨를 움츠리는 내 반응을 살피며 이환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놀랐습니까?”

    “……아뇨. 그냥 조금…….”

    “차갑지는 않죠?”

    “오히려…… 뜨거운데요.”

    “그런가요.”

    의미 없는 대꾸와 함께 잠시 멈추었던 손이 부드럽게 피부 위를 쓸었다. 곧은 등뼈를 따라 위아래로 춤을 추듯 움직이던 손이 슬그머니 티셔츠 밑자락을 잡아 위로 끌어 올린다. 이환의 어깨 언저리에 시선을 던지며 모른 척 팔을 들어 그의 행동을 도왔다.

    휙 하고 날아간 티셔츠가 이환의 등 뒤로 사라졌다. 굳이 그렇게까지 힘차게 날려 버릴 일인가 싶었으나, 가슴 위의 살덩이를 조물조물 만지는 손길에 날아간 티셔츠는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뜨거운 손바닥이 가슴살을 움켜쥐고, 삐죽 나온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넣어 비빈다. 살짝 아릿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자, 예민하게 알아차린 그가 이마 위에 꾹꾹 입을 맞췄다.

    “아픕니까?”

    “아픈 것보다…….”

    조금 따끔따끔, 아니, 찌릿찌릿? 미묘한 통증을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고민하는 얼굴 위에 몇 번이나 입을 맞춘 이환이 고개를 수그리며 밑으로 내려갔다. 그는 손바닥으로 문지르던 가슴 위에 뜨거운 숨을 토해 내고, 톡 불거진 유두를 입으로 빨아들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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