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명절 당일 아침인 탓인지 오가는 사람도 적고, 차도 적다. 여유가 느껴지는 한적한 도로를 멀뚱히 구경하며, 정거장의 나무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병원에 무언가를 들고 가는 건 처음이다. 음식을 만들어 가져갈 여유도 없었고, 무언가를 사 갈 돈도 없었다. 명절마다 찾아가긴 했지만, 가족의 정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의례적인 행사처럼 느껴 왔다.
보온 가방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왜인지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본다. 직행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특별하게 수고스럽지는 않다. 별다른 감흥도 없다. 마치 주어진 숙제를 하러 가듯 덤덤하기만 했다.
근처 정거장에서 내려 병원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명절이라고 평소보다 오가는 자동차가 많았다.
플로어의 낯익은 간호사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엄마의 병실을 찾았다. 같은 병실의 환자 가족들이 와 있는 탓에 병실은 조금 혼잡하고 시끄러웠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의자를 끌고 와 옆에 앉았다.
“또 명절이네.”
내 목소리에도 엄마는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일하는 곳에서 음식을 챙겨 주셨어요. 명절이라고 전을 부쳤거든. 엄마 병원 간다니까 일부러 하셨나 봐. 좀 먹어 볼래요?”
야윈 여자의 몸을 일으켜 앉히고, 병원 침대에 붙어 있는 탁자를 당겨 세웠다. 보온 가방에 넣어 온 통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여전히 따뜻한 전은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먹어 봐요.”
젓가락으로 전 하나를 집어 엄마의 입에 대 주었으나 도리질을 친다. 살짝 힘주어 입에 밀어 넣자 퉤, 하고 뱉어 버리는 모습은 고집스럽고 불만으로 가득했다.
“싫으면 먹지 말아요. 언제부터 명절이라고 이런 거 챙겨 먹었다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멍하게 앉아 있던 여자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이내 눈물을 쏟아 냈다.
왜 우는지, 무엇이 그리 슬픈지, 왜 그렇게 서러운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묻는다 한들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의미 없는 질문이고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다.
“엄마.”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이 없는 엄마는 마치 내게 학대라도 당한 사람처럼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저렇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해서 입을 벌리고 통곡을 하겠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장 슬프고, 가장 힘들고, 가장 피해자인 사람처럼.
“예전에, 아주 예전에 말이에요.”
엄마가 소리 내어 울기 전에, 불쑥 든 충동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한테 전화 온 적이 있어. 돌아가시기 전에.”
“……아빠아?”
“응, 아빠. 집 나가고 한 반년쯤 지나서였나.”
엄마에게 말한 적 없지만, 딱 한 번. 우리를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해민아, 아빠야.」
그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우리 해민이는 아직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빠는 엄마랑 해민이랑 같이 살 수가 없어.」
행복하지가 않다고 했다. 엄마의 얼굴을 보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그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엄마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려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그 사람에게 돌아갈 수도 없고, 이제는 볼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다고. 그래서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아버지는 나와 엄마를 버리고 떠난 나쁜 사람으로밖에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 아버지가 죽고 나서 엄마가 술에 취해 늘어놓는 술주정으로 대충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가 같이 살자고 했었어. 아버지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난 데에는 아버지 책임도 있다고. 원한다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 주겠다고. 그런데 엄마랑은 같이 살 수 없다고 했어.”
내 이야기를 이해하는지 아닌지,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때 따라갔다면 아버지가 죽지는 않았을 것 같아. 엄마랑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가긴 했지만, 그게 예외적인 일이었을 뿐이지 책임감 없는 사람은 아니었잖아요.”
살갑고 다정하지는 않았으나 화내는 일 없이 차분하고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의 무게를 알고 행동의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죽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살지 않았을까. 내가 스무 살이 되었으니 올해 죽었으려나. 그런데 안 따라간다고 했어요. 엄마가 불쌍했거든. 그땐 우리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어. 아버지가 많이 미웠어.”
속사정을 알게 된 후로 그 미움조차 부질없어졌지만. 대상을 잃어버린 원망은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결국 내 안에 뿌리내려 나를 좀먹었다.
“밥 잘 먹고 건강하라고. 미안하다고. 그런데 마지막 말이 뭐였는지 알아요? 엄마한테는 아버지 이야기하지 말라고, 연락 왔다는 말조차 하지 말라고 그러더라.”
모든 불행의 시초이자 근원이면서도, 정작 아버지의 마음 한 자락 얻어 내지 못한 불쌍한 사람.
술 취한 남자를 속여 반강제로 관계를 맺고, 임신을 빌미로 연인이 있던 남자를 빼앗고, 혹시나 저 몰래 만나기라도 할까 봐 커 가는 아이 사진을 매해 보내고, 기어이 둘째를 가졌다는 거짓말로 사랑 가득한 가정을 꾸며 내 아버지의 헤어진 연인을 한계까지 내몬 여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까지 제 행동에 책임을 지고자 우리 곁에 주저앉았던 아버지는 헤어진 연인의 자살 소식에 모든 굴레를 벗어던져 버렸다.
저를 옭아매던 여자도, 발목을 붙잡던 자식도, 무겁게 이어 나가던 삶까지도.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얘기하지 말라고 했나 싶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한테 자기 소식이 들리는 것조차 싫었던 것 같아. 엄마가 끔찍했었나 봐.”
나도 그래. 나도 엄마가 끔찍해.
내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옅은 웃음을 내비쳤다.
“원래라면 계속 말하지 않을 거였는데. 스무 살 된 기념으로 말해 주는 거야.”
아버지가 엄마는 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버리지 않았다고. 완전히 외면당한 엄마와 달리, 그래도 나한테는 기회가 있었다고.
아니, 결국엔 버려졌나. 아니, 버린 것은 나였던가.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과거는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아버지한테는 죽기 직전까지 엄마 자리가 없었나 봐.”
“아냐!”
엄마는 아이처럼 도리질을 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냐. 아니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아버지한테 엄마는 없었어.”
“아빠아, 가지 마.”
「해민이 아빠, 가지 마.」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소리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해민이 두고 가겠다고? 정말 우리를 버릴 거야? 당신 자식까지 버리고 갈 거냐고.」
아버지를 붙잡을 유일한 수단이었던 나. 아버지가 떠난 뒤에는 그저 짐 덩이밖에 되지 않았던 나.
“피해자인 척 굴지 마요.”
엄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피해자인데, 왜 정작 피해자인 척 굴어.
“아빠 데려와! 아빠! 아빠, 가지 마.”
“아버지가 무덤에서 일어나도 엄마한테는 안 와.”
“아니야!”
눈앞의 것들을 쓸어 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엄마의 손에 밀려난 도시락통이 바닥으로 뒹굴었다. 먹음직스러운 전이 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보며 말했다.
“아빠는 안 와. 엄마한테 절대 안 와.”
∞ ∞ ∞
병원 근처 정거장에 앉아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았다. 달려온 버스가 서서히 눈앞에서 멈추고 몇 사람을 내려보낸 뒤 멀어진다. 타고 가야 할 버스를 몇 번이나 그냥 보내고서도 자리에서 일어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아 온 말들을 쏟아 내 버렸다. 늙고 병든 엄마는 이전처럼 나를 때리지도 않았고, 악을 쓰며 울기도 전이었는데. 평생 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이제까지 말하지 않고 묻어 두었던 과거의 일을 꺼내어 말해 버렸다.
조금은 홀가분하고, 또 조금은 후회스럽기도 하다.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나를 달라지게 했나.
그에 답을 하듯 휴대폰이 울리며 낯익은 이름을 드러냈다. 가만히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사람,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사람, 어느 순간부터 내 곁에 있어 주는 사람, 언제나 내게 다정한 사람.
“네, 실장님.”
―어머니는 만났습니까.
“네.”
―언제 오려고요.
“지금요. ……이제 가려고요.”
눈앞에 멈춰 선 버스를 또다시 보내며 건조한 대답을 함께 흘려보낸다.
―힘듭니까?
“그냥 좀…… 지친 것 같아요.”
―데리러 갈 테니 기다려요.
“어딘지 알고 오시려고요.”
―내가 설마 내 요정님 있는 곳을 모를까.
남자의 대꾸에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김 기사님 동행하라고 했더니 기어코 고집을 부려서는.
“명절날 부르기엔 죄송하잖아요.”
―그건 해민 씨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내 개인적인 용무로 사람을 부르겠다는데 내가 신경 써야지 누가 신경 써.
하지만 논쟁할 의욕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많이 힘들어요?
“아뇨. 안 힘들어요.”
―안 힘든 사람이 그렇게 주저앉아 있습니까.
버스 정거장에 버젓이 차를 대고 내린 남자가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 내 앞에 도달했다.
“거기 차 세우면 안 되는데요.”
“난 벌금보다 해민 씨가 더 걱정됩니다.”
아니, 벌금을 떠나서 버스 정거장에 차를 정차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요.
어이없어 웃는 나를 붙잡아 차에 태운 이환이 운전석에 올라 차를 출발시켰다. 그사이에 버스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내 요정님이 어디에 있든 나는 다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