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그렇습니다, 여사님. 지금 그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
아마도 거울을 보면 나 역시 여사님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이건…….”
에효효, 하고 한숨을 내쉰 여사님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이건 도련님이 잘못하셨네.”
갑자기 실장님이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야.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도련님 잘못이야.”
뭔지 모르겠는데도 어째서 이환의 잘못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사님이 강경하게 말씀하셔서 정말 이환의 잘못인가 했다.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나 이환의 잘못은 아니었다.
“내가 설레발을 쳤나 봐. 늙어서 그런가, 자꾸 마음만 급해져서는.”
왜인지 약간의 서운함과 아쉬움을 내비치는 얼굴에 내가 무언가 말을 잘못했나 떠올려 보아도 역시나 모르겠다.
“올라가서 좀 쉬어요. 피곤한 얼굴이야.”
“침실 청소해야죠.”
“그건 내가 후딱 하면 돼. 해민 씨는 오늘 푹 쉬고 내일부터 해요. 어째 우리 도련님 낯바닥은 번쩍번쩍 윤이 나던데, 해민 씨 혼자 다 죽어 가는 얼굴인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체력의 차이가 크겠지. 노동으로 다져진 체력이 알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마음 아팠으나 의연한 척을 했다. 그래 봤자 여사님에게는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보인다는 사실이 역시나 마음 아팠다.
∞ ∞ ∞
집에 머무르며 여사님의 일을 돕게 된 뒤로 저택을 좀 더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숙식을 제공받을 뿐 업무는 이환의 뒤를 따라다니는 일이었기에 저택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기가 조심스러웠다. 괜히 엉뚱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나를 위해서라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내게 주어진 방, 이환이 머무르고 있을 때의 그의 침실, 일 층의 거실, 주방과 식당. 내가 다니는 곳은 그게 전부였고, 그 외에는 기웃거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청소 때문에라도 저택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고, 자연스럽게 이 넓은 저택 안에 침실을 제외하고서도 이환이 운동하는 곳이나 술로 가득 찬 공간, 혹은 휴식을 위해 곳곳에 마련된 티 테이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치 좋네.”
이 층 발코니에 마련된 티 테이블을 닦다가 의자에 앉아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았다. 회장님 댁의 정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넓은 정원과 커다란 나무, 잘 가꾸어진 정원수가 현대인에게 부족한 자연을 채워 주는 기분이다.
이 비싼 서울 땅덩어리를 잔디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회장님 아들 정도는 되어야 하려나.
이 층 실내의 티 테이블과 달리 베란다에 마련된 티 테이블 의자는 특이하게도 흔들의자였다. 처음 보는 의자가 신기했고, 그 뒤로 한두 번 앉아 보자 의외의 편안함과 규칙적인 흔들림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멍하니 정원을 내려다보며 흔들리는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어 버린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음에도 금방 십 분, 이십 분이 지나 버려 경계해야 할 아주 요망한 의자였다.
티 테이블과 함께 자리한 흔들의자가 하나뿐인 것으로 보아 이환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만큼 구색 맞추기로 마련해 둔 듯 보이는 다른 공간들과 달리 이 흔들의자의 쿠션이 유난히도 좋았다.
흔들흔들 의자를 움직이며 여유를 즐기는 와중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냈다. 익숙하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연락처였다.
병원비가 밀리지 않으면 연락 올 일이 없는 곳에서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했을까.
궁금하지 않은 의문을 떠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금빛 요양 병원입니다.
“네.”
―보호자님. 정명숙 환자분께서 보호자님과 통화를 요청하셔서요.
“……어머니가요?”
―네. 어제부터 계속 아드님을 찾으시네요. 기억이 선명하실 때마다 아들 좀 불러 달라고, 전화라도 넣어 달라고 하셔서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요.
“지금도 그러시나요?”
―오늘 아침에도 두어 번 그러셨어요. 지금은 점심 먹고 잠드셨고요. 어제오늘 상태가 좋으신지 부쩍 아드님을 찾으셔서, 말씀드려야 할 듯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좋다는 것은 보호자에게 희소식이다. 병원 측은 그것을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무슨 용건인지 혹시 들으신 건 없습니까.”
―글쎄요.
기뻐하며 찾아가겠다는 기대의 말과는 다른 질문이었는지, 병원 직원이 조금 난감하게 말을 끌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리며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곧 추석이라는 말을 들으셨나 보더라고요. 그 뒤로 부쩍 달력을 유심히 보시던데, 그 때문이 아닐까요.
“……추석이요.”
―아드님이랑 명절 같이 보내고 싶으셨던 모양이네요.
직원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직원이 물었다.
―환자분 일어나셔서 다시 아드님을 찾으시면 연락드릴까요?
“……아니요.”
―네?
“일하는 중에 전화 받기가 곤란해서요. 언제 올지 모를 전화를 계속 기다릴 수도 없고. 추석 때 찾아뵙겠습니다.”
―아아, 그렇죠. 그럼 환자분에게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감사하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추석.
설날과 함께 달갑지 않은 명절이다. 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가족들끼리 모여 전을 부치거나 따뜻한 밥 한 끼 먹은 기억도 없는 명절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 매년 명절마다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아버지의 납골당에 찾아가 울기만 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의 설과 추석이었다.
죽어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고, 거추장스러운 자식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우는 것이 매해 명절을 보내는 엄마의 방식이었고, 그걸 지켜보는 일은 나의 의무였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납골당에 가자고 하겠지.
평소에는 기억도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명절만큼은 잊지 않고 챙겼다. 요양 병원에 들어간 뒤로는 아버지 납골당을 찾아가는 일도 그만두었지만, 그럼에도 명절마다 납골당에 가야 한다며 난리를 부리고 기어코 나를 불러 옆에 앉혀 두고 통곡을 했다.
마치 불행한 자신의 인생이 모두 내 탓이라는 양.
어릴 때는 우는 엄마가 왜 그렇게 서럽고 왜 그렇게 억울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이유 없는 죄책감과 불편함으로 자리를 지켰다면, 이제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관객처럼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불쌍하고, 엄마에게 미안하고,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이제는 그냥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도 많이 변했구나.
어릴 때와 달라진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과연 이 변화의 끝이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학대했던 엄마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부모를 닮은 자식의 모습일까. 아니면 원망할 대상도, 원망할 이유도, 원망할 의욕도 없이 깎이고 풍화되어 바짝 말라비틀어진 무언가일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몇 번의 진동이 전해졌다. 병원에서 또 연락이 왔나 싶어 뒤집어 놓았던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이환이었다.
이환.
그저 이름을 적어 둔 것뿐인데, 그 두 글자를 보는 순간 바스락거리던 사막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네, 실장님.”
―뭐 하고 있었습니까.
“청소요.”
―통화 중이던데?
하필이면 그때 전화를 했었나 보다. 타이밍도 어지간히 못 맞추는 사람이라고 속으로 핀잔을 했다.
“잠깐,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요.”
―어머님 병원이요?
“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그쪽으로는 딱히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담아 말을 돌리자 이환은 선선히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아까 나가서 같이 점심 먹었는데요.”
밥 같이 먹고 헤어진 지 이제 겨우 두 시간이 지났다.
―그러니까요. 그 뒤로 해민 씨가 보고 싶고 목소리도 듣고 싶어서 일이 손에 안 잡히네요.
“…….”
―잠깐 와서 얼굴만 보여 주고 가면 안 됩니까.
“저 청소해야 하는데요.”
―요정님이 날아와 주면 금방이잖아요.
“……요정님의 날개가…… 사망했답니다.”
이 정도로 대꾸하는 수준까지 올라왔구나, 나.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정작 대답을 들은 이환은 안타깝다는 듯 “저런.” 하고 혀를 찼지만.
―차 보내면 와 줄 겁니까?
“아뇨.”
이환도 일할 시간이고, 나 역시 해야 할 일이 잔뜩이다. 아무리 고용주라지만 업무를 내팽개치고 불려 나가는 건 사양이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시간 이후로 해민 씨에게 휴가를 주면 올 겁니까?
“아니요.”
―어떻게 하면 와 줄 겁니까.
“실장님이 퇴근하고 집에 오시는 쪽이 더 빠를 것 같은데요.”
―협상의 여지도 없습니까.
“네.”
―오늘따라 내 요정님이 단호하네요.
내뱉는 목소리에 시무룩함이 절절하게 전해져 왔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대신 퇴근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고,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서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모처럼 자발적으로 식사 후 티타임까지 제안하며 겨우 전화를 끊었다.
요즘 종종 이렇게 일하다 말고 전화를 거는 일이 있는데, 단호하게 끊지 않으면 통화 시간이 길어져서 곤란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흔들의자에서 일어섰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메시지를 보냈는지 짧은 진동이 느껴졌으나 그것 또한 무시하고 걸레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