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제가요? 조루가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거였나요? 그런데 누구를요? 설마 눈앞에 계신 분이 조루는 아니겠지요?
한국 남자의 평균 사정 시간이 궁금해졌다. 이환이 조루라면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버텨서 싼다는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한 서너 시간씩 안 싸고 쑤시기만 하나.
“피곤해서 빨리 싸게 만들려고 수작 부렸어요? 그래서 그렇게 예쁜 말을 했습니까.”
“…….”
대체 제 질문 어디가 그렇게 예뻤는지 짐작되지 않았다.
말을 공손하게 해서? 예의 바른 말투라서?
감을 잡지 못하고 멀뚱거리고 있자, 이환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랑 씹질 하는 게 기분 좋았어요?”
꼭 그런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걸까. 침대 위에서의 이환은 단어 선택을 조금 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해민 씨. 좋았어요?”
대답이 없자 이환이 다시금 물었다.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밝히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네.”
“솔직하고, 야하고, 요망한 요정님이었네.”
타박하듯 말하였으나 정작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왜인지 몹시도 기뻐하는 표정이라 보는 사람의 기분이 더 머쓱해졌다.
“제가 야해요?”
이환은 대답 대신 내 허벅지를 벌리고 성기를 밀어 넣었다. 한껏 부풀어 단단해진 성기가 뿌리 끝까지 밀고 들어와 내벽 안을 채웠다.
“이렇게 솔직하고 야한 모습은 나한테만 보여 줬으면 좋겠는데.”
“…….”
“그래 줄래요?”
슬며시 허리를 뒤로 물려 귀두가 간당간당하게 걸쳐 있을 정도로 빼냈다가 부드럽게 밀어 넣으며 이환이 상냥한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나한테만 다리 벌리고, 구멍으로 내 좆만 물고, 내 씨물만 받아먹어 줄래요?”
목소리도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이환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단맛이 아닐까. 달콤하고, 부드럽고, 상냥하고, 간질거리는 그 목소리는 내뱉는 단어만 제외하면 세레나데처럼 들릴 정도였다.
“실장님은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이환과 시선을 마주했다. 번들거리는 검은 눈동자는 언제부터인지 나를 진득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장님도…… 저한테만 야한 짓 하실 거예요?”
당신이 내게 유일하듯, 나 역시도 당신에게 유일하고 싶었다. 무엇 하나 바라는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욕심내지 않았던 나에게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문득 떠오른 욕심이었다. 그마저도 말을 내뱉고는 지레 고개를 내저었으나, 정작 내 질문을 들은 이환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 같은 내 요정님.”
온기를 담은 입술이 뺨에 닿았다, 코끝을 누르고, 입술 위에 떨어졌다. 뭉근하게 문질러지는 입술 사이로 다정한 숨결이 넘어왔다.
“해민 씨는 이미 내게 유일해요.”
마치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이환은 내가 원하는 말을 돌려주었다.
∞ ∞ ∞
어중간한 시간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늘까지 자체 휴가라는 이환의 등을 떠밀어 늦게나마 출근을 시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 층으로 올라가 이환의 방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낑낑거리며 커다란 침대의 시트를 벗겨 세탁실로 질질 끌고 갔다.
빨래의 달인이 되고 싶다.
아니, 찌든 때를 없애거나, 옷의 재질, 컬러 등등을 구별하여 완벽하게 세탁하는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냥 침대 시트와 이불만이라도 아무 흔적 없이 깨끗하게 빨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 시트와 이불을 보면 암담한 기분부터 들었다. 지친 몸을 쉬고 싶기보다 어떻게든 수습부터 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이건 죽어도 남의 손에 못 맡겨.
여사님은 물론이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집안일을 거들어 주러 오시는 이모님에게도 이 시트는 맡길 수 없다. 이런 건 내 손으로 인멸해야 한다.
나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위해서.
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라면 그냥 오픈해도 될 수준이 아닌가?
잠깐 의문이 들었으나 그래도 사람이기에 가지는 기본적인 수치심이 있으므로,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떠나 어떻게든 내 손으로 수습해야 했다.
시트와 이불을 꾹꾹 쑤셔 넣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확인한 뒤에야 약간의 안도를 느꼈다.
좋아, 이제 침실 환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서 청소만 하면 된다.
“어휴, 몸도 안 좋을 텐데 좀 쉬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해요.”
내 속도 모르고 여사님이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저 시트와 이불을 그대로 두고 쉬었다면, 아마 내일부터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을 텐데. 나를 위해서라도 휴식보다 세탁이 우선이었음을 여사님은 알지 못했다.
“그동안 쉬었으니까, 이제 열심히 일해야죠.”
“히트 사이클이 다 그렇지. 예전에야 생리 휴가, 육아 휴직 이런 건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니 눈치 보지 말고, 몸이 안 좋으면 안 좋다 말해요. 아픈 게 죄도 아니고, 참는 게 능사가 아니야.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지, 남이 어떻게 알고 챙겨 주겠어.”
“감사합니다.”
슬쩍 눈치를 보며 이환의 침실을 청소하려고 올라가려는 나를 여사님이 붙잡아 앉혔다.
“청소는 나중에 해.”
“며칠 동안 못 해서 얼른 해야 하는데…….”
“지금 하나 몇 시간 있다 하나, 오늘 안에 하기만 하면 되지. 어차피 도련님은 퇴근 시간에나 올 텐데. 그보다 앉아서 좀 쉬어요. 밥 먹고 바로 움직이면 소화 안 돼.”
소화를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사님이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거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여야 했다.
“소화되라고 이거 한 잔 마시고.”
따뜻한 매실차를 한 잔 타 와 건네는 수고에 멋쩍게 웃으며 받아 들었다.
“그…… 해민 씨.”
“네, 여사님.”
홀짝거리며 매실차를 마시고 있는데 여사님이 무언가 입을 떼기가 어렵다는 얼굴로 나를 불렀다.
“내가 이런 걸 물어봐도 괜찮은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늙은이 오지랖이라고 생각하고, 정 대답하기 어려우면 대답하지 않아도 되고. 응?”
“네에.”
왜인지 어떤 말이 나올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마시던 매실차를 내려놓고 얌전히 앉아 여사님의 말을 기다렸다.
“해민 씨랑 우리 도련님이랑, 그러니까 요즘 말로 그 파트너? 파트너 같은 건가?”
“……그으……런 건 아니고요.”
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여사님을 앞에 두고 이런 화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 어쩐지 식은땀이 났다. 여사님이 자식처럼, 손주처럼 애지중지 키운 도련님이랑 히트 사이클 때마다 침실에 처박혀 뒹굴었으니 면목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응? 갑자기 뭐가 죄송해. 아니, 나는 그냥 궁금해서. 우리 도련님이 그쪽으로는 영 경험이 없잖아요. 흥미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고, 만사 시큰둥해서는 뭔 생각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걱정했는데 해민 씨를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그나마 이제 좀 사람처럼 보이고 안심도 되고…….”
늙으니까 별소리를 다 하게 된다며 너스레를 떨던 여사님이 갑자기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해민 씨.”
“네, 네.”
“우리 도련님 좀 잘 부탁해요.”
“네?”
“저 양반이 허우대는 멀쩡해도 여기저기 좀 부족한 면이 있어. 있기는 한데 그래도 잘 좀 봐줘요.”
“네에?”
“마음에 안 드는 건 고치면 되고, 부족한 건 가르치면 되잖아. 알파라서 몸으로 하는 건 몇 번 하다 보면 다 잘한다고 하더라고. 영 성에 안 차더라도 조금만 가르치면 잘할 거야.”
“…….”
“얘기 들어 보면 속궁합도 무시 못 한다더라. 싸워도 한 이불 덮고 자면 다음 날 풀어진다는 말이 왜 있겠어.”
“……네?”
“아이고, 주책. 이게 아니라, 혹시라도 해민 씨가 여기 못 있겠다고 그만두고 나갈까 봐 내가 걱정이 되어서. 꾹꾹 참지 말고, 불만 있으면 확 풀어 버려요. 우리 도련님이 뭐가 부족하다 싶으면 말하고. 그러면 바로바로 고칠 거야.”
여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여사님 본인도 잘 모르시는 듯했다. 정리가 안 된 말을 받아들이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내 눈치 보지 말고, 나는 그냥 없는 사람이다 생각해. 왜 그런 거 있잖아. 집 요정. 다 늙어서 집 요정인지 지랄인지 낯부끄럽지만, 아무튼 없는 사람 취급하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도련님이랑 나가서 데이트도 하고, 집에서도 괜찮으니까 애정 표현도 막 해. 나 이 층 안 올라가는 거 알죠? 잠도 일찍 자. 늙어서 잠귀도 어두워. 정 불편하면 내가 나가도 돼. 근처에서 아침저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식사만 차려 줘도 되니까 말해 줘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왜 갑자기 여사님의 독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지 모르겠지만,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저랑 실장님이랑 데이트하고 애정 표현하고 그런 거 아닌데요.”
그나마 일찍 주무시고 잠귀도 어두우시다니 다행이지만, 아무튼 이환과 내가 데이트를 하고 애정 표현도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다. 여사님이 무언가 깊은 오해를 하시는 듯하여 당황한 나머지 혀도 막 꼬였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긴 했는데요. 파트너 같은 것도 아니고요.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모르겠어요.”
뭔가 여사님께 천천히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왜 여사님이 혼란스러워하시며 정리가 안 된 말을 꺼내셨는지, 그 마음이 이해되는 기분이다. 그냥 이 상황이 그랬다. 정리가 안 되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내 말에 여사님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엥?” 하고 의문을 토했다.
그렇습니다, 여사님. 지금 그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