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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65)화 (65/172)

65화

“으음.”

몸이 불편함을 호소하며 구부러졌다. 더워진 몸뚱이가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불을 밀어냈다.

덥다. 배 속을 휘젓고 다니는 열기가 뜨겁다. 예민해진 피부는 시트에 닿는 것만으로도 간지러워 참을 수 없었고, 아릿한 배 안쪽이 꾹꾹 쑤셔 왔다.

짐승처럼 엎드려 침대 시트를 손톱으로 벅벅 긁으며 신음을 삼켰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똑똑 시트에 떨어졌다.

히트 사이클.

평소라면 느끼지 못했을 풀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페로몬이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약, 먹어야…….”

협탁에 놓아둔 약상자를 우악스럽게 손으로 쥐었다. 종이 상자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그러졌다.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뜯어내고 안에 든 약을 꺼냈다.

“…….”

캡슐을 꺼내려던 손가락이 굳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왜 갑자기 이환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나를 바라보던 그 얼굴, 약을 건네주며 걱정스레 웃던 입술, 걱정하지 말라며 잡아 주던 손길, 푹 쉬라고 다독이던 목소리까지.

손안의 약을 꽉 움켜쥐었다. 플라스틱 껍질이 살을 파고들었다. 쓰린 통증에 손을 펴자 피가 스민 약 껍질이 떨어졌다.

내가 그의 페로몬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짙어진 내 페로몬을 느끼고 있을까.

서로에게 영향이 미치리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걱정 때문에 나를 내보내지 못하고 차라리 제가 나가겠다 말하던 그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모른 척했더라면 나는 또다시 급작스러운 히트 사이클을 맞게 되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이환과 또 한 번 얽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환이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면, 나와 닿는 것이 좋고 나와 이어지는 것이 싫지 않았다면……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그에게는 더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이환은 어째서 내게 억제제를 사다 주고, 미리 히트 사이클을 준비하게 했을까.

그는 여전히 내게 호의적이고, 나를 향한 호감을 기꺼이 드러내고 있는데.

시트 위에 떨어진 약을 보았다.

궁금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인지.

당신이 오늘 나를 거부할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풀 내음이 짙어졌다. 복도 끝 저 문 너머에 있을 알파의 존재가 나를 끌어당겼다. 오메가의 페로몬이 본능적인 이끌림을 느끼며 날뛰어 댔다.

통통.

문틀에 기대듯이 서서 문을 두드렸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졌다. 녹음을 삼킨 페로몬이 춤을 추듯 일렁이는 것이. 애써 억누르려 숨죽인 알파의 페로몬이.

탕탕탕.

조금 세게 문을 두드리자 잠시 망설이듯 술렁이던 페로몬이 서서히 가까워진다. 짙어지는 녹음의 향기에 몸이 떨려 왔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커다란 남자의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흡, 하고 숨을 들이켠 남자가 까맣게 짙어진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해민 씨.”

급하게 들이켠 숨을 토해 내듯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문틀에 기대어 이환을 올려다보았다.

“왜…… 약 안 먹었습니까.”

무언가를 힘겹게 참아 내려 남자가 꽉 주먹을 쥐었다. 잘게 떨리는 남자의 주먹을, 핏줄이 선 팔뚝을, 힘이 들어간 어깨를, 꿀렁이는 목울대를 천천히 훑었다.

“해민 씨.”

다독이듯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남자의 팔뚝에 손을 올렸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돌덩이처럼 단단한 피부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실장님.”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핥으며 이환을 불렀다.

“약…… 안 먹을래요.”

입술 점막이 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났다. 자꾸만 입술을 축이게 된다. 내밀어진 혀를 움직일 때마다 이환의 시선이 진득이 따라왔다.

“실장님.”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지며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몸이 밀려 문에 부딪히며 쿵 소리를 냈다. 덮치듯 내려온 이환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건조한 입술을 비집어 벌리며 뜨거운 살덩이가 파고들었다. 타액을 넘겨주는 그의 혀를 기껍게 빨았다. 간밤에 마신 꿀물처럼 뜨겁고 달았다. 목구멍까지 파고드는 혓바닥을 휘감아 문지르자 이환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전해져 왔다.

손을 올려 그의 목을 감았다. 엉덩이 아래쪽으로 들어온 손이 내 몸을 훌쩍 들어 올렸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이환의 허리를 다리로 감아 붙들고, 정신없이 그의 입술을 물고 빨았다. 넘쳐흐르는 타액이 뺨과 턱을 적셨다.

털썩, 이환과 함께 침대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약, 정말 안 먹을 겁니까.”

낮게 잠긴 목소리로 이환이 다시 한번 확인받듯 물었다.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가 내 대답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아니면 싫어하는지. 표정이 지워진 얼굴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는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고저 없이 낮게 잠긴 목소리로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왜, 약을 주셨어요?”

“…….”

“나랑 자는 거, 이제 싫어요?”

“싫을 리가요.”

이마에 내려앉은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너무 좋고, 너무 원해서. 이런 기회로 욕심을 채우고 싶어지는 내가 너무 치졸해서. 내 요정님을 품에 안고 싶다가도 내게서 벗어났으면 싶어서.”

“내가……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헐떡이며 내뱉은 물음에 그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커다란 손이 뺨을 감싸고, 뜨거운 입술이 콧잔등을 타고 내려와 입술에 닿았다. 젖은 숨결에 자연스레 입술이 벌어졌다.

“몸이 뜨겁네요.”

“……네.”

티셔츠 안으로 들어온 손이 피부를 쓸었다. 말랑한 배를 타고 올라와 가슴을 한 움큼 쥐어 주무른다. 빳빳하게 선 유두에 이환의 손가락이 스치며 아릿한 통증을 새겼다.

“아아…….”

“발기도 했고.”

성기가 그의 복부에 문질러졌다. 그것을 이환 또한 느꼈는지 지적했다.

“단순한 페로몬 작용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티셔츠가 벗겨져 날아가고, 바지와 속옷이 끌어 내려져 던져졌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나를 내려다보며 이환은 낮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시기에만 나를 찾아온다고 해도 괜찮아요.”

질척이는 구멍에 손가락이 들어왔다. 그와 접촉하기도 전부터 젖어 버린 뒤가 벌어지며 타인의 침입을 반겼다.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펴질 때마다 쿨쩍거리며 젖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알파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구멍이 부족함을 호소하며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히트 사이클이 끝나면 다시 평범한 관계로 돌아간다고 해도…….”

뒷말을 쉬이 잇지 못한 이환은 대신 뜨거운 입술을 붙여 문질렀다.

손가락을 빼낸 이환이 걸치고 있던 바지와 속옷을 벗어 던졌다. 훨훨 날아가는 그의 옷가지를 보다가 엉덩이 사이에 닿는 뜨거운 물건에 움찔 몸을 떨었다.

“나를 원한다고 말해 봐요.”

벌름거리는 구멍의 입구를 성기 끝이 쿡 하고 찔러 왔다.

“내 좆이라도 원한다고 해 봐요.”

이거 먹고 싶지 않아요? 사탕으로 아이를 꾀는 유괴범처럼, 이환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어디까지가 이환의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정말 그가 괜찮은지조차, 감히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원해요.”

“잘했어요.”

기쁘게 눈을 휘어 웃으며 이환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좁은 입구가 벌어지며 굵은 물건을 빠듯하게 삼켰다. 아아. 벌어진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의 정체가 환희인지 고통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이환이었나, 히트 사이클을 달래 줄 알파의 페로몬이었나, 뒤를 쑤셔 줄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상관없을 남자의 성기였나.

내 몸을 점령하고 있는 이환을 올려다보았다. 살포시 찡그린 눈 끝이 쾌감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흉포하게 일어서는 흥분을 참아 내려 앙다문 턱 끝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천천히,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이며 이환이 내 손을 붙잡아 입 맞췄다. 핏자국이 남은 상처를 혀가 핥는다. 따가운 통증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두어 번 문질러 비벼 대던 입술이 떨어졌다.

“더 세게요.”

간질간질 피어오르는 쾌감이 해소되지 못한 채 배 속에 고여 고통을 호소했다.

“더 세게요?”

“……네.”

“더 세게, 더 깊이, 더 빠르게 쑤셔 줄까요.”

“네.”

“침대 위에서만 솔직한 요정님도 마음에 드네요.”

낮게 흘러나온 웃음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짙은 풀 향기를 삼켰다. 마치 제 보금자리라는 듯, 폐부에 똬리를 튼 남자의 페로몬이 열기를 지펴 댔다.

몸이 물결칠 때마다 목 언저리에서 흔들리는 목걸이가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쇄골 아래에 닿는 금속은 특유의 차가움을 잃어버리고 열기를 받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펜던트를 밀어내려 하자, 이환이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걸어 올렸다.

“해민 씨의 탄생석이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

“아니, 흣, 아니요.”

“해민 씨와 닮았어요. 유일하고, 아름답고, 단단하고.”

검은 보석을 매만지던 이환이 펜던트가 닿은 가슴에 입술을 눌렀다. 도장을 찍듯이 꾹꾹 입술을 눌러 자국을 새긴다. 가슴 위를 누비는 남자의 입술을 느끼며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실장님인가 봐요.”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페로몬, 유일하게 나를 가진 남자, 유일하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평범한 나를 예쁘다 말해 주고, 겁쟁이인 나를 단단하다 말해 주는 사람.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흔하디흔한 스무 살 사내아이를 유일하다 말해 주는, 진정 유일한 사람.

“실장님을 원했나 봐요.”

속삭이듯 흘러나온 목소리가 바람처럼 흩어졌다.

퍽, 하고 강한 힘으로 밀고 들어온 성기가 뜨거운 것을 쏟아 냈다.

“……아.”

이환이 드물게 낭패로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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