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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53)화 (53/172)
  • 53화

    그리 묻는 여사님의 표정은 그럴 리 없는데, 하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목걸이를 이리저리 돌려 보는 여사님의 미간에 한껏 주름이 졌다.

    “어릴 때 장난감인가. 이런 건 못 봤는데.”

    어찌 보면 목걸이보다 장난감 용도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어릴 때가 아니라면 부잣집 사모님이 재질과 디자인과 가격이 모두 떨어지는 이런 목걸이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거 두 개를 합치면 하트가 돼요. 하트를 돌리면 반으로 나눠지더라고요. 실장님도 꽤 어릴 때 받으셨는지, 뒤늦게 기억나셨다고. 하나씩 걸고 다……. 음, 아무튼 실장님이 하나를 주셨습니다.”

    누가 봐도 커플용인 목걸이를 어째서 이환과 내가 나누어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을 얼버무렸으나, 여사님의 관심은 목걸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음, ……음? 아! 이거 기억난다.”

    목걸이를 앞뒤로 살펴보고 이리저리 각도를 돌려 보던 여사님이 곧 무릎을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이거 기억나요.”

    그러셨군요. 뒤늦게라도 돌아가신 사모님의 흔적을 기억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거 구하느라 내가 그때 시장 바닥을 얼마나 뒤지고 다녔는지.”

    “……네?”

    왜 갑자기 시장 바닥이 나옵니까? 사모님 유품이라더니 왜 여사님이 시장 바닥을 뒤져서 구하셨어요?

    “운명적인 사랑의 증표. 그런 거 많이 나오잖아요. 한창 도련님이 그런 거에 꽂히셨을 때였거든. 그때 사모님이 말을 잘못하신 바람에, 있지도 않은 증표를 보여 달라고 하니까 당황하신 거지. 증표가 있다고 말만 해 뒀으면 아무거나 보여 줬을 텐데, 하필이면 하트가 막 변신 로봇처럼 나눠지고 합쳐지고 그런 말을 해 놨더라고. 별 수 있나, 그거에 맞는 걸 찾든 만들든 해야지. 그런데 그걸 당장 어느 시간에 만들어 오겠어요.”

    “…….”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는데, 때마침 내가 시장 갔을 때 그 비슷한 걸 가판에서 봤던 기억이 난 거예요. 사모님은 시간을 끌고, 나는 혹시라도 장사 접고 갔을까 봐 엄청 뛰었다니까. 가판이 어디서 열렸었는지 가물가물해서 시장 바닥을 이 잡는 듯이 뒤졌어. 그때 생각하면 진짜. 어휴, 아직도 등에서 땀이 나네.”

    “그런 이건…… 유품이 아니라…….”

    “모른 척해요.”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나를 보며 여사님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도련님이 보관해 둔 것보다 이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는 게 더 놀랍네. 이건 내가 도련님한테 잘 말해 둘 테니까, 착용하지 말아요. 해민 씨도 그래. 도련님이 하라고 했다고 이렇게 녹이 슨 걸 그냥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왜인지 꾸중을 들었다.

    난 그냥 고용주가 하라고 하니까 한 것뿐인데.

    시무룩하게 늘어진 어깨를 톡톡 두드린 여사님이 녹슨 목걸이를 한쪽으로 치웠다.

    “가서 비누로 깨끗하게 씻고 와요. 소독해야 하니까.”

    “저녁 식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장님이 기다리고 계실 텐데.”

    “밥이 중요한가. 이대로 뒀다가 피부에 더 번지면 진짜 병원 가야 한다니까. 얼른 가서 깨끗하게 비누로 씻고, 새 수건 꺼내서 닦고 와요.”

    구급상자를 찾아 일어서며 여사님이 내 등을 밀었다. 어쩔 수 없이 욕실로 들어가 벌겋게 발진이 일어난 부위를 씻었다.

    언제부터 내 몸이 이렇게 예민했다고. 공사판에서 쇠 만지고 나르고 하던 내게 쇳독이라니.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터덜터덜 걸어 나오자, 여사님이 알코올 솜으로 빨간 피부 위를 소독했다.

    “음? 왜 그럽니까. 해민 씨 다쳤어요?”

    조용해서 사람을 찾으러 왔는지 주방으로 들어오던 이환이 놀라 물었다.

    “해민 씨 쇳독 올랐잖아요, 도련님.”

    “쇳독이요?”

    놀라셨군요. 네, 저도 놀랐습니다.

    의아해하는 이환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목걸이에 녹이 잔뜩 슬었어. 도련님이 준 거라면서요.”

    한쪽으로 치워 둔 목걸이를 가리키며 여사님이 타박하듯 말했다.

    “아…….”

    “도련님도 하고 있는 거 아니죠?”

    여사님의 물음에 이환이 뻣뻣하게 굳은 동작으로 옷 안에서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어휴, 못살아.”

    발진이 일어난 부위를 닦아 낸 알코올 솜을 치우며 여사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설마 목걸이의 비하인드를 이환에게 말하실 생각인가. 이제까지 지켜 온 동심을 파괴하려는…….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 두어야죠.”

    동심 파괴는 아닌 모양이다.

    하긴 지금까지 눈물겹게 지켜 온 이환의 동심을 이렇게 간단히 파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환의 동심에 주된 원흉인 두 사람 중 한 사람인 여사님이 그럴 리 없었다.

    “그건 사모님 물건이잖아요. 아무리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고 해도 골동품을 직접 쓰지는 않잖아. 이 목걸이는 도련님이 잘 가지고 있다가 생각날 때 한 번씩 꺼내 보기만 해요.”

    얼른 목에 건 것을 풀라며 여사님이 채근을 했다. 뚱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잡고 있는 이환을 “어서.” 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달래며 여사님이 손을 내밀었다.

    “이것도 녹슬었네. 도련님은 괜찮아요? 간지럽지는 않고? 쇳독 올랐으면 어쩔 뻔했어.”

    “전 괜찮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잘못했으면 나란히 손 붙잡고 피부과에 갔어야 했다며 여사님이 쯧쯧 혀를 찼다.

    “정히 해민 씨에게 선물을 주고 싶으면, 새로 사서 줘요. 요즘 얼마나 예쁘고 좋은 게 많이 나오는데. 이 목걸이는 사모님에게 의미가 있는 거지, 해민 씨에게 의미가 있는 물건은 아니잖아요? 도련님하고 해민 씨에게 의미가 있는 걸 걸고 다녀야지.”

    돌아가신 사모님에게도 의미가 있는 물건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여사님이 시장에서 급히 조달했던 물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환을 조곤조곤 설득하는 여사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정도 되니 지금까지 이환의 동심을 지켜 줄 수 있었던 것이구나, 평범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겠구나.

    약간의 감탄과 함께 저것은 하얀 거짓말인가 사기인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미안합니다, 해민 씨. 많이 아픕니까? 병원 가야 하지 않겠어요?”

    “병원 갈 정도는 아닙니다. 아픈 것보다 그냥 조금 간지러울 뿐이에요.”

    “식사한 뒤에 소독 한 번 더 하고. 얼음주머니 만들어 줄 테니까, 그거 대고 있어요. 내일 아침에 상태 보고 병원 가든지 하게.”

    “아픈 것도 아닌데요. 그냥 두면 가라앉겠죠.”

    “아이고, 그러다 흉 지거나 번지면 큰일 나.”

    큰일 날 정도는 아닌데. 피부가 썩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빨개진 것뿐이다. 이런 건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다른지 타박이 돌아왔다. 결국 내일까지 지켜보기로 하고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 ∞ ∞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해서 기능 시험을 보고 도로 주행 시험을 보기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

    한 번에 합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주일 만에 운전면허를 딴다고 하지만, 나는 백윤경이 신경 써서 수강 신청을 해 준 덕분에 매일 교육을 받아 다른 사람들보다 연습량이 두 배는 되었다. 그럼에도 이런 실력으로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운전을 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했다.

    “합격했습니까.”

    운전면허 학원까지 찾아와 나를 태운 이환이 물었다.

    “네. 왜 여기 계세요?”

    “잠시 외출했다가 시간을 보니 곧 점심시간이라서, 해민 씨 픽업해서 같이 먹고 들어가려고 왔습니다.”

    하긴, 회사에 들어가면 몇 분 앉아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다시 나와야 할 애매한 시간이다. 그 몇 분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게 회사 생활이지만, 회장님 아들이니까 점심 몇 분 일찍 먹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에 합격하다니, 대단하네요.”

    도로 주행 시험을 끝내고 합격 소식을 전하는 내게 이환이 축하를 보냈다. 고시 합격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과하게 기뻐해서 약간 떨떠름하기까지 했다.

    “점심은 맛있는 걸 먹어야겠는데요.”

    “항상 맛있는 거 드시잖아요.”

    “특별히 더 맛있는 것으로. 먹고 싶은 거 있습니까?”

    “실장님이 사 주시는 건 다 맛있어요.”

    사실이었다. 이환이 사 주는 음식은 비싼 가격만큼이나 만족도가 높았다. 이제껏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음식들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면서도, 한 입 먹으면 아까울 마음이 사라질 정도로 맛있기도 했다.

    “해민 씨는, 자꾸 내게 감동을 주네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환은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맛있는 걸 사 줘서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데, 사 주는 사람이 고마워하는 이런 상황은 몇 번을 겪어도 여전히 어색했다.

    “오늘은 한식이 좋습니까, 양식이 좋습니까.”

    한정식집은 어제 갔었으니까.

    “양식이요.”

    “그럼 저번에 갔던 레스토랑의 B 코스를 먹으러 갈까요? 해민 씨가 많이 고민했던 곳.”

    개관식에 참석했던, 아니, 개관식은 건너뛰고 파티에만 참석했었던 호텔 레스토랑을 말하는 거다.

    어차피 메뉴 이름만 보고는 어떤 음식인지 짐작도 못 하면서, A 코스와 B 코스 중에서 엄청 고민했었지. 그때의 갈등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나 보다.

    “거긴…… 너무 비싼데.”

    “비싸지 않아요. 해민 씨가 맛있게 먹는다면 그게 얼마가 되었든 합당한 가격일 겁니다.”

    그 정도면 껌값이라고 재벌 아드님 같은 멘트를 날리려나 했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 조금 감동했다. 앞에서 “아이고, 달다.” 하고 지방 방송이 흘러나왔으나 이환의 타박에 금방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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