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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50)화 (50/172)
  • 50화

    입술을 달싹거리다 결국 말을 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도 이환은 채근하지 않았다. 가만히 시선을 마주하고 기꺼이 기다림을 감내했다.

    “해민 씨는 생각이 많네요.”

    “……제가요?”

    “네. 이 작고 예쁜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되고 있어요.”

    손으로 옆머리를 감싸고 엄지로 눈썹을 따라 그리듯 쓱쓱 문지른다. 부드러운 손길에 눈을 감고 남자의 손에 뺨을 기댔다.

    “내가 싫은 건 아닐 테고.”

    “왜……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이 정도면 잘생겼고, 몸도 좋고, 건강하고, 돈도 많고. 해민 씨 앞에서 성질부린 적도 없고, 착하게 행동했으니까?”

    과한 동심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건만, 그쪽으로는 문제가 된다는 의식조차 없는 모양이다.

    “장점이 많으신 분이었네요.”

    “그래도 요정님보다 완벽할 수는 없죠.”

    손을 대고 있어 거품이 묻어 버린 뺨을 수건으로 훔쳐 주며 이환이 가볍게 웃었다.

    “농담입니다. 내가 싫으냐고 물을 때마다 답을 안 했잖아요. 해민 씨에게 나는 싫지도, 좋지도 않은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오해하지도 않고 과대 해석하는 것도 없이, 이환은 덤덤히 말했다.

    “내가 부담스럽습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아무 감정도 없는데 내가 너무 들이대서?”

    “것보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해 보았다. 이환을 볼 때마다 느끼는 부담감이 진짜로 그에게서 기초하는지.

    “실장님이 너무 잘 대해 주셔서, 제가 그런 친절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생각하게 돼요. 실장님이 내보이는 감정이 길을 잃어 내게로 잘못 온 것 같아서,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천천히 말을 끝맺자, 가만히 듣고 있던 이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앞으로 손바닥을 펴서 내밀며 “손.” 하고 말했다. 뜬금없는 그의 요구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면서도 얌전히 손을 올려놓았다.

    “작네요.”

    제 손 위에 올라온 내 손을 잡고 조물조물하며 이환이 중얼거렸다. 깨지기 쉬운 값비싼 보물을 보듬듯 조심스럽게 붙잡은 손을 쓸며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민 씨가 씩씩해서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아가네요. 스무 살이라……. 내가 엄청 나쁜 놈이 된 기분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태어나기도 전이라고, 뜬금없이 나이를 들먹이며 반성하는 이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감정은 내가 제일 잘 압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명확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어요. 내 감정이 향해야 할 방향을 나는 확신합니다.”

    “하지만 아니면요? 내 것이 아닌데 욕심내서 나중에 더 큰 걸 잃게 되면 어떻게 해요?”

    “당연히 해민 씨 것이 아니죠.”

    “……네?”

    당연히 내 것이라고 말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환의 답변은 정반대였다. 내 것이라고 말해 달라는 기대는 아니었고, 그냥 지금까지 이환의 태도를 떠올리면 비슷하게나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너무 단호하게 아니라고 해서 순간 놀라 버렸지만.

    “내 감정은 내 것이죠. 내가 아무리 해민 씨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 내 감정입니다. 해민 씨에게 건네주고 더 큰 걸 빼앗아 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 마음은 자신이 품고 있을 뿐이라고. 좋아하는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가져가 버리는 건 아니라고.

    웃으며 말한 이환은 색다른 관점의 발언에 잠시 생각에 빠진 내 코끝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날 좋아해요.”

    “…….”

    “정히 힘들다면, 그냥 지금까지처럼 그 자리에 있기만 해요. 선을 긋고 없던 일로 만들고 도망치지만 말아요.”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러면 내가 조금 더 편하게 해민 씨를 좋아할 수 있고, 또 그러다 보면 해민 씨가 나를 좋아해 줄 날도 오겠죠.”

    반대로 싫어할 날이 올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 자신감과 당당함은 누구도 이기지 못할 듯했다.

    “이리 와요.”

    내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긴 이환이 제 몸 위로 나를 끌어 올렸다. 그의 허벅지 위에 앉게 된 나는 사타구니에 와 닿는 길쭉한 몽둥이를 느끼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왜…… 서 있어요?”

    무엇을, 이라고 지칭하지 않았으나 이환도 나도 그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었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아 있으니까요.”

    “아.”

    그렇다고 하기엔 아랫도리를 세우고 대답하는 사람의 얼굴이 너무 뻔뻔한데?

    조금 전까지 너무나 멀쩡하게, 심지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터라 더 어이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아래를 세우고 있었다는 말인가. 거품으로 물속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할 뻔했다.

    “물이 좀 식었네요.”

    “네.”

    “씻고 나가는 게 좋겠죠?”

    “……네.”

    질문은 지극히 정상적인데, 정상적인 질문을 내뱉는 입과 달리 아랫도리는 벌떡거리며 내 가랑이 사이를 마구 치대고 있었다.

    “실장님.”

    “네, 해민 씨.”

    “……아래에서 자꾸 찌르는데요.”

    “그러게요. 해민 씨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자지가 난리를 부리네요.”

    아니, 진지한 대화 끝에 어째서 거시기 같은 단어로 마무리를 하시지. 조금 전까지 평범하고 멀쩡하게 대화를 해서 그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시선을 비스듬히 비껴 내자 이환이 웃음을 흘렸다.

    “왜 그렇게 부끄러워합니까? 지금까지 넣고 쑤시고 다 했는데.”

    “그걸 입으로 말하는 건 또 달라서요.”

    “청각적인 자극에 약했나요?”

    엉덩이를 꽉 잡아 쥔 손끝이 구멍 근처를 문질렀다. 앞에 비벼 대는 성기만 경계하고 뒤는 방심한 터라, 구멍 입구를 깔짝거리는 손가락에 놀라 허둥거리다 이환의 가슴팍으로 엎어졌다.

    “여기서 하고 나갈까요? 깨끗한 침대를 다시 적시고 싶지는 않죠?”

    느릿하게 구멍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이 답을 재촉하듯 구부러져 내벽을 긁었다.

    “읏, 잠깐…… 잠깐만, 흐으…….”

    “보송보송한 침대에 누우면 잠이 잘 올 것 같은데.”

    깨끗하고 보송보송해진 침대에서 자려면 여기서 해야 한다는 뜻인가. 욕조에서, 물속에서.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행위인지라 고개부터 내저었다.

    “해민 씨가 싫어하는 건 안 합니다.”

    그런데 왜 손가락은 계속 뒤를 쑤시고 있는 거죠?

    내벽을 자극하며 천천히 흥분을 끌어올리는 이환의 행동에 눈을 흘겼다.

    “여기서는…… 부끄러워요. 벽도 뚫려 있고.”

    “노천 온천이라고 생각해요.”

    “노천 온천에서 이러면 잡혀가지 않을까요.”

    “……해민 씨가 맞는 말만 해서 가끔 대답할 말이 없어지네요. 그러면 그 노천 온천을 내가 사겠습니다. 이제 잡혀갈 일이 없겠죠?”

    정작 대답할 말이 없어진 건 나였다.

    부력으로 인해 한결 다루기 쉬워진 몸을 한 뼘쯤 들어 올리고, 꼿꼿하게 선 성기를 구멍 입구에 맞춘다. 단단해진 귀두 끝을 구멍이 뻐끔거리며 머금었다.

    “해민 씨 구멍도 먹고 싶은 모양인데요.”

    “아, 아니에요.”

    “뒷구멍이 내 자지를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닌데, 정말 아닙니까?”

    나는 용기를 내어 이환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내 행동에 놀라 동그랗게 뜨여진 눈이 이내 반달처럼 휘어졌다.

    “예쁜 짓을.”

    고개를 흔들어 내 손을 털어 낸 이환이 입을 맞춰 왔다. 미지근하던 입술이 겹쳐 문질러지며 서서히 열기가 피어올랐다.

    몸뚱이를 바짝 당겨 안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몸이 아래로 눌리며 뻐끔거리던 구멍이 천천히 남자의 성기를 집어삼켰다.

    “으응…….”

    발기한 물건과 함께 적당히 식은 욕조의 물이 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오묘한 기분이 들어 남자의 어깨에 힘주어 매달렸다.

    “원하는 만큼 내 자지를 따먹어도 됩니다. 해민 씨에게 기꺼이 내줄 용의가 있어요.”

    이게 진짜 호의인지 배려인지 잘 모르겠다. 정말 드물게 속으로 쌍소리를 내뱉는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표정은 짓궂기만 했다.

    ∞ ∞ ∞

    “실자, 실장님, ……집에, 흐으, 가셔야…….”

    웅얼거리며 말을 흘리는 입술 사이로 손가락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입술을 모아 빨자 이환이 작게 웃으며 뺨에 쪽쪽 입을 맞췄다.

    “가야죠, 집. 조금 이따가.”

    흘러나오는 탄식은 남자의 손에 막혀 입 속에서 흩어졌다.

    해가 떠오르고 열두 시가 가까워진 시점에서 출근은 이미 포기했다. 그냥 집에나 갔으면 싶었는데 그마저도 지금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밤과 낮의 경치가 다를 거라며 굳이 침실의 커튼을 열어 훤히 유리 벽을 드러내고, 등받이 없는 긴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낮의 한강을 구경하나 싶더니, 결국엔 드러누워 몸을 섞고 있었다.

    페로몬 자극제의 효과가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이쯤이면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비웃듯, 이환의 거시기는 여전히 힘차고 강한 상태였다.

    턱 끝까지 몰려오는 숨을 뱉어 내며 벗겨지려는 가운을 추슬렀다. 팔만 간신히 꿰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완전히 알몸인 것과 뭐라도 걸치고 있는 건 기분이 달랐다.

    “집에 가기 전에, 읏,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갑시다.”

    사탕으로 우는 아이를 달래듯, 바쁘게 허리를 움직이면서도 다정히 약속을 속삭인다. 밥이고 뭐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이제는 호텔 레스토랑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건만.

    의자 아래로 축 늘어지는 다리를 잡아 제 허리에 감게 하며 이환이 뒤를 파고든다. 처음에는 좋다고 오물거리던 구멍도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는지 제대로 조이지도 못하는 게 느껴졌다. 내 신체임에도 불구하고 내 제어에서 벗어난 몸이 낯설고 안쓰러웠다.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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