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퓨리티 (47)화 (47/172)
  • 47화

    “흐으…….”

    꽉 다문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신음에 유두를 빨아들이는 힘이 강해졌다.

    “아, 아파요.”

    “좋다고 젖꼭지를 빨딱 세워 놓고 아프다고 하면 누가 믿습니까.”

    평소보다 커진 유두는 성을 내듯 단단해져서 이환이 내민 혀끝에 이리저리 문질러지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그것을 이환은 마치 사탕처럼 혀로 핥고 입에 넣어 굴려 댔다.

    “흐우…… 으응…….”

    지속되는 자극에 짧은 숨을 토해 내며 가슴을 들썩였다. 한껏 달구어진 공기, 짙어진 페로몬, 쌓여 가는 자극에 사타구니가 시근거렸다. 거칠게 쑤셔 넣었던 것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이환의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도 간질거렸다.

    “실장님……, 실장님.”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요구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저 이환만을 불렀다.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자, 가볍게 끌려온 그가 내 귓불을 물고 빨았다.

    “왜 그렇게 불러요. 쑤셔 줬으면 좋겠어요?”

    사타구니 위를 손으로 문지르다 성기를 붙잡아 주무르며 이환이 물었다. 기둥을 감싼 손이 부드럽게 위아래로 가죽을 쓸자, 빳빳해진 성기가 성급히 묽은 액체를 쏟아 냈다. 뒤가 움찔거리며 남자의 것을 물고 늘어졌다.

    “몇 번 만져 줬다고 벌써 쌉니까. 나는 아직 쑤시지도 않았는데.”

    “흐으으, 왜…… 왜 가만히 있…….”

    뒤는 간지러워 죽겠는데, 앞에서는 쾌감이 느껴진다. 사정을 하면서도 해소되지 못한 자극이 찌꺼기처럼 들러붙었다.

    “내가 쑤셔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고 있어요. 욕심이 많은 구멍입니다.”

    웃음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페로몬이 날뛰어 괴로워하던 남자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혼자 여유롭구나 싶었는데, 시선이 마주친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을 보며 여유가 아니라 심술을 부리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그동안 선을 그어 놓고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내 태도에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거다. 이만큼이나 나를 원한 저를 봐 주지 않았다고. 이렇게나 나와 닿고 싶었다고.

    어쩌면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 번 선을 넘어 버린 나와 이환의 관계가 어찌 될지 알 수 없기에, 내 입에서 또 어떤 선이 그어질까 짐작도 되지 않기에.

    나 역시도 그러했다. 오늘 이후로 나와 이환의 관계가 어찌 될지, 내가 그를 결국 어떻게 대하게 될지. 나조차도 알 수 없어서 두려웠다.

    “실장님을…… 구하지 말 걸 그랬어요.”

    내게 내일은 언제나 어두웠지만, 오늘처럼 내일도 모레도 암울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밥 몇 끼를 건너뛰면, 며칠 정도만 길거리에서 버티면. 그래도 어떻게든 엄마 병원비를 내고, 또 어떻게든 나 역시 아득바득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비록 오늘과 다름없을지언정 내일도 모레도 존재하는 내가 있었다.

    그런데 이환을 만나고 나서는, 그와 얽히고 난 뒤부터는 내일이 짐작되지 않았다. 내일의 나와 모레의 내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어둡고 막막한데, 그 어둠이 내일도 존재할지 아니면 빛이 생겨날지 그도 아니면 어둠조차 사라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될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쑤셔 주지 않는다고 원망이 그쪽으로 흘러갑니까.”

    짓궂은 소년처럼 눈 끝을 찡그리며 타박하던 이환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웃고 있던 입꼬리를 조용히 내렸다.

    “내가, 그렇게 싫어요?”

    나직한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합니까?”

    싫고 좋음의 문제가 아니었으나, 이환은 그게 전부인 듯 물었다.

    벌어진 입술은 어떤 답도 내지 못한 채 꾹 다물렸다. 내 대답을 기대하듯 잠시 기다리던 이환이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해민 씨는 나를 구했고, 우린 지금 이렇게 마주 보고 있네요.”

    후회해도 바뀌지 않는 과거에 오늘만큼은 감사하다고 속삭이며 이환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처음 삽입할 때를 제외하고 내내 가만히 파묻혀 있던 성기가 천천히 뒤로 빠져나갔다가 밀려 들어왔다.

    잔잔한 호수가 바람에 물결치듯, 그는 욕망에 들끓는 눈을 하고서도 서두름이 없었다.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마치 이 순간을 음미하듯 동작 하나하나를 되새김질하며 느리게 움직였다.

    “……사실 후회 안 해요.”

    이환의 등을 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이환을 구할 것이다. 의지가 아니라 본능이었다. 내 안에 말라붙지 않은 인간성이 또다시 이환을 구하고 안도할 것이다.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냥 무서워요.”

    알 수 없는 내일이. 어제와 같지 않을 내일이.

    밑바닥에서 굴러도 바닥에 발을 디디고 있음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일도 그 바닥이 지탱되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두려웠다. 내게는 바닥이 전부였기에 그곳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들은 미래를 보고 사는데, 나는 내일을 보고 살아요. 나한테는 내일이 전부인데, ……내일의 나를 모르겠어요.”

    너무나 낯선 타인이, 느껴 보지 못했던 다정함이, 받아 본 적 없는 보호가 나를 뒤흔들었다. 처음 겪는 오늘에, 내일을 예상할 수 없어서 내게 내밀어진 손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내 요정님.”

    어린아이처럼 몸을 떠는 나를 끌어안으며 이환이 입을 맞췄다.

    떨어지는 꽃잎처럼 예쁘고, 안쓰러워 사랑스러운 내 요정님.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몸이 흔들렸다. 뒤를 파고드는 뜨거움에 몸이 노곤해졌다. 파도에 흔들리는 부표처럼 이환에게 몸을 맡기고 전해지는 쾌감에 몸을 떨었다.

    “실장님.”

    “네, 해민 씨.”

    “……실장님 옆에 있으면 ……제가 너무 낯설어요.”

    “나도 그래요.”

    뻗어 오는 손을 붙잡아 손끝에 입을 맞추며 이환이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똑같이 낯설다 하지만 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얼굴이었다. 덜컥 겁을 내며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나와 달리, 이환은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흔들리는 나를 끌어안아 지탱시켜 주었고, 때로는 내 안에 저를 파묻고 함께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끌어안은 나를 놓지 않았다. 등을 끌어안은 손과 맞닿은 가슴, 들러붙은 교접부, 뒤얽힌 다리. 우리는 온몸으로 이어져 있었다.

    “지금을 살아요.”

    젖은 눈가에 입술을 대고 물기를 핥으며 이환이 속삭였다.

    “지금 이 시간 또한 어제의 내일이니까. 이 순간들이 모여 해민 씨의 수많은 내일이 되어 줄 겁니다.”

    ∞ ∞ ∞

    “하으, 응…….”

    올라탄 남자의 하초를 깔아뭉개며 흐느적거리자, 단단한 손이 허리를 받쳤다. 꽉 붙잡아 고정한 몸뚱이를 이환이 손아귀 힘만으로 들어 올렸다 놓을 때마다 빳빳하게 선 성기가 구멍을 쑤셔 댔다.

    “이거…… 못, 읏, 못 해요.”

    “아닙니다. 할 수 있어요.”

    “아니, 왜, 흣…….”

    내가 못 하겠다는데 왜 할 수 있다고 그래.

    원망 섞인 눈으로 쏘아보았지만 이환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손으로 나를 짚고 움직여 봐요.”

    이환의 말에 따라 단단한 복근에 손을 대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려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 허벅지는 바들바들 떨렸고 땀으로 젖은 손은 자꾸 미끄러졌다. 결국 휘청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나를 받아 안으며 그가 낮게 목을 울려 웃었다.

    “호기롭게 올라탈 때는 언제고, 이렇게 포기하는 겁니까?”

    “제가 언제……, 흐우, 실장님이 올려놓은 거잖아요.”

    “어서 움직여야죠. 구멍이 쑤셔 달라고 움찔움찔 난리도 아닙니다.”

    “그거 아니, 흣…… 으응.”

    억울했다.

    몸을 홀랑 뒤집어 나를 제 배 위에 올려놓은 사람도 이환이었고, 성기를 품고 앉은 망측한 자세로 움직여 보라며 종용한 사람도 이환이었다.

    강하게 항변하려 했으나, 아래를 치고 들어오는 성기에 입술만 벙긋거렸다. 언어는 목소리가 되지 못하고 짓눌려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으로 변질되었다.

    언제 빼 버렸는지 깁스가 사라진 손이 내 등을 끌어안고 다른 손이 강하게 허리를 붙잡아 고정했다. 그 자세로 허리를 추어올려 연신 성기를 밀어 넣는 이환의 행동에 움찔거리며 밀려오는 쾌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으응, 읏…… 실장님, 흣, 처, 천천히 좀, 흐응…… 천천히…….”

    “내 자지가 참을성이 없어진 건 구멍이 자꾸 조이는 탓입니다.”

    그러니까 자지를 잘라 낼 것처럼 구멍을 조이지 말라고 타박하며 이환은 허리를 바삐 움직였다. 벌어진 입술로 타액이 뚝뚝 떨어졌으나 더럽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정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아래에서 밀려오는 쾌감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흐으…… 으응.”

    “좋아요?”

    “흐으, 네에, 흣, ……좋아요.”

    두 팔로 이환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좋았다. 좋아서 미쳐 버릴 만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두려움이나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지금은 그저 좋았다.

    몸을 빙글 돌려 다시 나를 침대로 깔아 눕힌 이환이 허벅지를 붙잡아 올렸다. 고간 사이에 내 엉덩이를 끼워 넣고 깊게 교합한 자세로 허리를 강하게 움직인다. 파정의 전조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의 씨를 받아 낸 터라, 그의 움직임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겨우겨우 다리를 움직여 이환의 허리춤에 감았다. 이환의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곳에 감긴 내 다리가 춤을 추듯 들썩거렸다.

    뜨겁게 달아올라 흐물흐물해진 내벽이 안을 가득 채운 성기를 감쌌다. 부푼 귀두를 빨아들이듯 감싸고 조이자, 연거푸 안을 찔러 올리던 성기 끝에서 이윽고 폭발하듯 정액이 쏟아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