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자, 시원하면서도 몸을 달구는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홀리듯 발을 내디뎌 홀로 힘들어하고 있을 남자에게로 향했다.
“……실장님.”
넓은 침대 한가운데 쓰러져 쌕쌕 숨 쉬고 있는 이환이 보인다. 가만히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해민 씨.”
어렵게 눈을 뜬 이환이 내 얼굴을 확인하고 손을 밀쳐 냈다.
“나가요.”
낮게 잠긴 목소리가 바닥을 긁듯이 거칠게 흘러나왔다.
“실장님. 힘드시잖아요.”
“그래도 이건…… 안 됩니다.”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접근하는 손목을 붙잡은 이환이 고개를 내저었다.
솟구치는 열기로 벌겋게 물든 그의 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참는 듯 입을 꾹 다문 이환의 목울대가 크게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제발, 나가요.”
“어차피 한 번 했었잖아요. 한 번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질…….”
“그러니까!”
손목을 붙잡은 손이 이상하게도 밀쳐 내는 게 아니라 끌어당기는 듯 느껴졌다. 떨어지라며 밀어내는 거부가 아니라 제발 같이 있어 달라고 잡아당기는 애원처럼 느껴졌다.
“그 한 번이, 문제였다고.”
남자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 금방이라도 덮치고 싶은 욕망을 참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이환의 노력이, 인내가, 분투가 눈물겨울 만큼 절절히 전해져 왔다.
“눈 뒤집혀서 씹질 한 번 했다고 선이 그어졌어. 또다시 반복해서…… 지금 관계까지 씹창 내고 싶지 않다고.”
“나쁜 말.”
상스러운 말을 했다고 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반성하려고.
열기로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웃었다. 왜인지 웃음이 나왔다.
침대 가에 걸터앉아 허리를 구부려 이환과 얼굴을 마주했다. 코끝과 코끝이 닿고, 살짝 벌어진 입술 틈으로 새어 나오는 숨결이 피부를 적실 정도로 가까이. 그 상태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밀려들어 오는 풀 향기가 몸속을 가득 채웠다.
“제 페로몬은, 어떤 냄새예요?”
“……달콤하면서 건조한 비스킷 향.”
바짝 마른 과자를 입에 넣을 때처럼 약간의 텁텁함. 채 녹지 못하고 혀 위에 남은 과자 부스러기와 같은 깔깔함. 그럼에도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릴 듯한 달콤함.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가 마치 세레나데처럼 간지러웠다. 이환이 느끼는 내 페로몬이 어떠한지 상상이 되지 않았으나, 피하고 싶을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 안도했다.
정장 재킷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이환의 옆구리 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그의 단추를 풀어냈다.
“왜? 한 번 대 주고 도망가려고? 이번에는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하며 안 보기라도 하려고? 적선하는 셈 치고 한 번 벌려 주면 도망칠 때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아서?”
확실히, 이 남자는 흥분하면 말버릇이 나빠지는 모양이다. 저급해지든, 상스러워지든, 공격적이 되든. 평소 착하고 예쁘고 고운 말만 쓰던 다정한 남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롭게 알게 된 이환의 모습이 신기했다.
“도망…… 안 가요.”
선금 받아서 도망가고 싶어도 못 가.
손목을 붙잡아 세우는 손길을 밀어내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넥타이를 끌러 내던져 버리고, 정장 재킷과 와이셔츠를 한 번에 밀어 벗겨 냈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손에 뜨끈뜨끈한 열기가 전해져 왔다.
이환이 반항한다면 나로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을 테지만, 그는 공격적으로 내뱉는 말과 달리 옷을 벗기는 손길에 순순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힘이 들어간 턱과 불룩한 목울대. 점점 참기 힘들어지는 그의 상태를 느끼고 있는 나처럼, 숨이 가빠져 오는 내 상태를 그 역시 알아차렸을까.
탄탄한 상체가 드러나고, 밑으로 내려간 손이 벨트에 닿았다. 찰나의 망설임을 알아차렸는지 커다란 손이 머뭇거리는 내 손등을 덮었다.
“해민 씨. 지금이라도, 나가요.”
괜찮다고, 이대로 뒤돌아 나가도 된다고, 두려운 일은 없을 거라고. 말로 꺼내지 않았으나 그의 속마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것이 나를 용기 나게 했다.
철컥, 소리를 내며 벨트가 풀렸다.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브리프 너머 한껏 부푼 성기가 느껴졌다.
바지를 끌어 내려 벗기고 땀으로 젖은 양말도 벗겼다. 프리컴으로 젖어 얼룩진 브리프를 붙잡아 천천히 끌어 내리자, 성질 급한 성기가 대가리를 세우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나가라고!”
솟구친 성기를 손으로 누르며 이환이 나를 밀었다.
“늦었어요.”
“안 늦었어.”
“저도 이젠 한계예요.”
끊어질 것 같은 인내심을 겨우 붙잡고 있었지만, 치밀어오르는 흥분을 누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직까지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감탄할 정도로. 입 안에 침이 고이고, 온몸에서 땀이 났다. 비좁은 속옷 안에서 성기는 발기하고 있었고, 엉덩이 사이에서는 뭔지 모를 액체가 흘러나와 질척였다.
“실장님 페로몬이…… 저를 이상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왜 여길 들어왔어.”
“저…… 이 상태로 나가요?”
이렇게 흐트러진 몸으로,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붙잡아 뒹굴어도 모를 만큼 희미한 이성과 달아오른 육체를 가지고 이곳을 나가도 되겠느냐고. 그걸 보고만 있을 거냐고.
언제나 그러하듯 내 질문은 하나의 대답만을 남겨 둔 강요와도 같았다.
이를 앙다물고 질끈 눈을 감았던 이환이 내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등 뒤로 푹신한 침대가 닿았다.
단단한 손이 거칠게 움직여 바지와 속옷을 잡아 내리고, 셔츠 끝을 붙잡아 양쪽으로 활짝 젖혔다. 툭, 툭 소리를 내며 뜯어져 버린 단추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내가 죽는 꼴이 보고 싶었습니까?”
“안 보낼 거, 알았어요.”
바짝 말라붙은 이파리가 물을 머금고 꽃을 피우듯, 밑바닥에 찰랑찰랑 고여 있던 페로몬이 넘쳐흐르며 온전한 오메가로 개화한다. 코로만 맡아지던 이환의 페로몬을 전신으로 느끼며 고양되는 기분은 황홀하면서도 여전히 낯설었다.
“신기해.”
“뭐가 그렇게 신기해요.”
번들거리는 눈으로 발가벗겨진 내 몸을 해체하듯 샅샅이 훑고 있는 주제에, 그는 내 혼잣말에도 성실히 대꾸해 주었다.
“실장님 곁에서만 오메가가 되는 기분이요.”
페로몬이 느껴지고, 그것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낀다. 있는지도 모르던 감각 기관을 찾은 느낌이었고, 다른 영역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거 좀, 직격타인데.”
목덜미를 벌겋게 물들이며 이환이 신음을 흘렸다. 다리가 벌어지고 그 사이로 손이 쑥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젖어 버렸는지 모를 엉덩이 안으로 손가락 두 개가 파고들어 구멍을 벌렸다.
“읏.”
“확실히, 자지 먹겠다고 뒤가 젖어 있는 걸 보니 오메가네요.”
“그런 말…….”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 증거라며 이환이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는 행동을 반복했다. 구멍 안에 들어와 있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쿨쩍쿨쩍 젖은 소리가 났다.
잠시 장난치듯 구멍 안을 헤집던 이환이 물기 젖은 손가락을 빼냈다. 벌어진 다리를 추어올리고 구멍 안으로 성기가 밀어 넣어졌다.
“아흑…….”
불식간에 이루어진 삽입에 놀라 신음하며 이환의 팔뚝을 붙잡았다.
“흥분한 알파를 자극하면서 이 정도 각오도 안 했습니까.”
구멍이 찢어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이환이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작게 헛구역질을 하며 숨을 쉬려고 입술을 벙긋거리자, 성기를 파묻은 이환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 돌아간 알파는 자극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 새끼가 아니니까.”
“……눈 돌아간, 오메가는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로 젖은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 내며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까워진 입술이 입술을 덮고, 혓바닥이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살살 핥았다. 안쪽으로의 침입을 허락해 달라는 듯 집요하고 꾸준한 입맞춤에 꾹 다물었던 이를 벌렸다.
뺨을 붙잡은 이환이 깊숙이 혀를 밀어 넣었다. 입천장을 훑고 혓바닥을 긁어 대고 혀 아래를 쑤신다. 겁먹은 아이처럼 숨죽인 혓바닥이 강한 힘으로 쭉 빨렸다. 무법자처럼 입안을 휘젓는 혀의 움직임이 거칠어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달아요.”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입안의 타액을 빨아들이며 이환이 감탄하듯 속삭였다. 기갈을 해소한 그의 입맞춤이 점차 부드러워졌다. 살살 간질이듯 점막을 핥고, 장난치듯 혀끝을 툭툭 두드린다. 딱 붙어 오물거리던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각도를 달리해 맞붙기를 반복했다.
“만지고 싶었어요. 닿고 싶었고, 안고 싶었고, 입 맞추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내내 이렇게 하고 싶었다고 속삭이면서도 틈틈이 입술을 붙여 왔다. 방금까지 혀를 뽑을 것처럼 빨아 대던 남자가 수줍은 연인처럼 입술과 뺨에 연신 버드키스를 남겼다.
“작고 여린 이 몸이 얼마나 부드럽고 유연한지 알면서도 만질 수 없었고.”
뺨을 감싸고 있던 손이 내려와 턱 끝에 닿고, 쇄골을 지나, 뜯어진 와이셔츠로 덮인 가슴을 움켜쥐었다. 빳빳하게 선 유두가 그의 손에 쥐어져 문질러졌다. 짜릿한 자극에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 왔다.
“바지 안에 감추어진 구멍이 내 자지를 얼마나 잘 삼키는지 아는데도 참아야 했어.”
꽉 쥔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가슴살과 유두가 이환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작은 알맹이를 혀로 굴리며 잔뜩 침칠을 하고 이를 세워 잘근잘근 깨물며 반응을 살피듯 시선을 맞춰 온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시커먼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왜인지 기분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