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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34)화 (34/172)

34화

연거푸 세 번을 싸지른 이환이 조금 정신을 차렸다. 그는 널브러진 내 몸을 이불로 감싸 놓고, 언제부터 문밖에 놓여 있었는지 모를 죽을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첫 번째 사정 이후 내내 녹다운 상태였던 나는 서서히 몸의 열기가 사그라지는 것을 느끼며 차분함을 되찾았다. 몸에서 느껴지던 열기와 간지러움이 희미해지고, 뒤로 박히며 싸고 싶다는 이해할 수 없는 욕구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상황이 상황이긴 하지만, 일단 흐릿했던 머릿속이 안개가 개듯 조금씩 선명해져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안합니다, 해민 씨.”

가만히 앉아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이환이 식은 삼계죽을 내 입에 넣어 주며 사과했다. 입맛이 없었지만 이환이 진지한 얼굴로 “먹지 않으면 죽어요.”라고 말해서 대충 삼키는 시늉을 했다.

“내가 본능을 이기지 못했어요. 게다가 해민 씨에게 그런 상스러운 말을 하다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울먹울먹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환이 거듭 사과를 했다.

확실히 이환의 발언은 평소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적나라하고 저급했다. 자지니 발정이니, 쑤시고 박고 싸고 어쩌고. 멀쩡한 정신으로 들었다면 기겁을 했을 테지만, 이환이나 나나 제정신으로 보기엔 어려웠고 나 역시도 장단을 맞추듯 나불거린 기억이 났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나에게 너무 실망했어요.”

실망까지야.

어떤 연유로 지금의 일이 벌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으나, 이환이 억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단호하게 거부했다면 이환은 참았을 거고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터다. 내가 이환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했다. 여전히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아니에요. ……제가 좀 이상했어요.”

“아마 히트 사이클이었던 모양입니다.”

“……제가요?”

그건 오메가한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베타인데 왜 그런 게 생겨.

“해민 씨, 형질 검사받아 본 적 있습니까?”

“……아뇨. 하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어요.”

“페로몬이 아주 약한가 봐요. 그래서 나도 몰랐습니다. 베타라고 생각했고,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계속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오메가…….”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페로몬을 맡아 본 적도 없고, 러트인지 히트인지 같은 일도 겪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오메가라고?

“아…….”

만에 하나 이환의 말이 맞는다고 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럴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이번 일이 조금은 설명이 되었다.

「히트 온 오메가가 특히나 위험하거든. 옆에서 살짝 흘린 페로몬만 맡아도 재수 없으면 러트가 올 수 있으니까.」

아아, 신음을 흘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무래도 이환이 재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해민 씨.”

“죄송해요. 저 때문인가 봐요.”

내가 오메가라고 한다면, 그래서 나도 모르게 히트 사이클이 왔다고 한다면 이환에게 러트가 온 것도 말이 된다. 아침에 잠깐 외출을 하긴 했으나 그 후로 종일 한집에서 붙어 있었으니, 아마도 내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래서 고용되기 전에 알파인지 오메가인지 여사님이 물어보셨나 보다. 서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이런 것이었나 보다.

“죄송해요. 저는 진짜…… 제가 베타인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해민 씨가 죄송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죠.”

얼굴을 감싼 손을 떼어 내며 이환이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했다.

“지금까지 몰랐다면 앞으로도 모르고 지냈을 가능성이 커요. 히트 사이클 때도 감기나 몸살처럼 살짝 앓고 지나갔을 거고. 이번에는 내 페로몬이 좀 유별나서 해민 씨가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도 문제의 시발점이 나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베타인지 오메가인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었어도 이환과 안이하게 붙어 있지 않았을 거고, 그에게 러트 사이클이 올 일도 없었을 거고, 이렇게 난장판인 사고를 치지도 않았을 거다.

씨발.

인생 밑바닥에서 구르며 추근거리거나 수작 부리는 변태 같은 아저씨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때마다 어찌어찌 잘 빠져나왔다. 그랬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대상과 거하게 사고를 쳐 버렸다.

앞보다 뒤를 먼저 쓰게 된 첫 경험에서 오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그보다 내 잘못으로 인해 고용주와 물고 빨고 뒹군 사고의 수습이 더 걱정되었다.

고소하면 어쩌지.

알파와 오메가의 페로몬 관련 사고는 아주 애매해서 난장판이라고 들었는데. 법적 공방은 그냥 돈으로 싸우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이고, 돈을 뿌려 가며 변호사를 고용하는 돈지랄이라고 했는데.

내게는 이환을 이길 수 있을 만큼의 돈도 없었고, 그렇다고 배상할 능력도 없었다.

“저…… 해고되나요.”

고소를 당하는 것보다 해고되는 쪽이 낫다.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보다 선금으로 받은 월급을 토해 내라 요구하는 게 감사할 지경이었다.

“내 요정님을 해고할 리가.”

죽 그릇이 놓인 쟁반을 무릎에 내려놓은 이환이 내 뺨을 손등으로 쓸며 농담처럼 대꾸했다.

“그보다 히트 사이클이 끝나면 해민 씨는 병원에 먼저 가 봐야겠네요. 해민 씨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참에 확실히 알아 두어야겠습니다.”

“……네.”

병원은 사치다. 아픈 것은 버티다 보면 언젠가 낫고, 죽을 것 같을 때에나 가는 곳이 병원이었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기에 그리하겠다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

“내가 해민 씨에게 조금 더 미안해야 할 듯싶어요.”

“……네?”

“지금 일시적으로 수그러지긴 했지만, 아직 러트가 끝난 게 아니라서. 해민 씨도 마찬가지일 거고.”

“…….”

“지금이라도 약을 먹을 수 있다면 먹겠는데, 이미 관계를 가져 페로몬이 섞여 버렸습니다. 이대로는 약을 먹어도 나나 해민 씨나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듯 작아지는 이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눈을 끔뻑거렸다.

“그럼 어, 언제…… 끝나는데요?”

“적어도 오늘이나 내일은 아닐 겁니다.”

짓무른 눈가에 입술이 내려앉았다. 몇 번이나 몰아붙여져서 위와 아래로 쥐어짜인 탓에 짓무른 곳이 눈가만은 아니었지만.

그런 상태인데도 아직 끝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환의 농담이 아닐까 생각되었으나, 여전히 짙게 풍기는 풀 냄새가 침실에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잖아요. 해민 씨는 약해서 굶으면 못 버팁니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뜻을 보통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뜻이었으면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 줬어야 했다.

반도 먹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 죽 그릇이 협탁에 놓이고, 이환은 내가 두르고 있던 이불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간신히 어깨를 가리고 있던 이불이 아래로 떨어졌다.

∞ ∞ ∞

히트 사이클이니 러트 사이클이니, 오다가다 들어 본 단어라서 기억하고 있었을 뿐인 그것을 겪는 중인 지금도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어려웠다.

그저 이환의 몸에서 풀 향기가 짙어지면 내 몸이 달아오르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나를 고양케 했다가 안정시키고, 그가 내 안에 사정하면 조금씩 갇혀 있던 열기가 중화되듯 작아진다고.

그게 내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조금씩 조금씩 작아진 열기와 함께 본능이 밀려나면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그러면 나는 자괴감으로 몸을 떨었다. 이환이 겨우겨우 나를 달래어 식사를 몇 숟가락 뜨게 하고, 그러는 사이에 또다시 이성이 희미해지고 열기가 솟구쳤다.

나는 부끄러움으로 침묵했고, 쾌감으로 울었다. 갈망하며 끙끙거렸고, 만족하며 신음했다.

이환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향기, 그의 숨결, 그의 목소리, 그의 손길, 그의 피부, 그의 무게, 그의 성기, 그의 정액.

이환과 관련된 무엇 하나도 거부할 수 없었다.

본능만 남은 나에게 이환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그를 갈망했다. 이제까지 무언가에 욕심내 본 적이 없던 내가 이 순간 조금이라도 더 이환을 끌어안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흐아, 아…… 좋아요, 실장님.”

내 양쪽 다리를 제 어깨에 걸치게 한 이환이 몸을 숙였다. 몸이 반으로 구부러지는 느낌이지만 아픔보다 쾌감이 더 강했다. 다가오는 이환의 얼굴을 붙잡아 입을 맞추며 나는 연신 신음을 토해 냈다.

실장님, 좋아요, 더요, 부족해요.

아는 단어가 몇 가지밖에 없는 아이처럼 멍청하게 중얼거리면, 이환은 칭찬하듯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마를 맞대고 코끝을 문지른다. 뺨을 비비며 응시하는 시선은 뜨거웠지만 상냥했다.

“해민 씨, 좋아요?”

“네, 네. ……하으으, 좋아, 좋아요.”

접힌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환이 내 몸뚱이를 꽉 끌어안았다. 그 자세로 허리만을 움직여 뭉근하게 사타구니를 비벼 대자, 구멍 안으로 들어와 있던 성기가 둥글게 내벽을 휘저었다.

“아아아…… 흐응…….”

“내가 좋아요?”

“하으…… 좋아요.”

“내 자지가 좋아요?”

“네, 네, 좋아요.”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처럼 이환의 끝말을 복사하듯 흘려보낸다. 영혼 없이 헐떡이며 내뱉는 대꾸에도 이환은 기뻐했다.

“이렇게 쑤셔 주는 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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