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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32)화 (32/172)

32화

“아…….”

순간 배 속이 크게 휘저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계단 중간에 주저앉았다.

이런 통증은 처음이다.

통증……인가? 아픔과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정의하기 어려운 증상이다. 이걸 통증이라고 말할 수 있나.

아침부터 몸살 기운이 좀 있긴 했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탈이 나도 단단히 난 듯싶은데.

어느샌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계단을 올랐다. 이환의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보다 더 짙어진 풀 냄새가 콧속을 어지럽혔다. 숨이 가빠져 잠시 헐떡임이 새어 나왔다. 눈앞이 빙글 도는 기분이다.

놓칠 뻔한 쟁반을 콱 움켜쥐고 이환에게로 다가갔다.

“시, 실장님.”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가 흉하게 갈라졌다.

이환은 정말 러트일까. 그렇다면 나까지 이렇게 상태가 나빠질 이유가 없는데. 아무래도 급성 독감 같은 게 아닐까. 그런 병이 있긴 한가. 여름인데 전염성은 강할까. 아니면 한창 유행한다던 조류 독감은? 그게 사람한테 옮는다고 했던가.

“실장님. 이거, 약 드셔야 한대요.”

눈도 뜨지 못하는 이환은 내 말에 겨우 반응하듯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실장님.”

쟁반을 협탁 위에 내려놓고 이환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손끝에 닿는 피부가 너무 뜨거워 놀랄 지경이었다.

“실장님. 잠깐 눈 좀 떠 보세요.”

단단한 어깨를 감싸 흔들자 이환이 아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끄응 끙, 어린 짐승처럼 앓는 소리는 그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전하고 있었다. 땀으로 젖은 뺨을 손등으로 살짝 훑어 주는데, 번뜩 눈을 뜬 이환이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실장님?”

약을 드시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몸이 덜컥 끌려갔다. 시야가 한 바퀴 빙글 돌았다.

힘없는 몸뚱이가 이환의 단단한 몸 아래에 깔렸다. 옷 너머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뜨겁다. 이환이 붙잡은 손목 역시도 뜨거웠다.

이 열기는 이환에게서 전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눈앞이 어지러웠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심장이 머릿속에서 뛰는 기분이다. 쿵쾅쿵쾅. 그 울림이 손끝으로, 발끝으로, 그리고 이환과 닿아 있는 전신의 피부로 뻗어 나갔다.

아, 이건 이환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

내내 짙게 풍기던 풀 냄새가 어디서 나는 향기였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가 숨 쉴 때마다 풀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좋은 냄새가 나네요.”

마치 내 생각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이환이 말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환 역시도 잔뜩 쉰 목소리였다. 그는 붙잡고 있던 내 손목에 코를 묻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달콤한 냄새가 나요.”

“……풀 냄새.”

“나한테서 풀 냄새가 납니까?”

이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때문이었어.”

열기로 흐릿해진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위를 점령하고 있는 이환은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 딱딱하게 굳은 표정,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를 새까만 눈동자.

짙어진 풀냄새에 숨이 막혀 왔다.

“느껴집니까?”

손목 위에 뜨거운 입술을 문질러 비비며 이환이 낮게 속삭이듯 물었다. 그의 입술이 푸른 핏줄을 따라 여린 피부 위를 타고 올랐다.

“내가 당신한테 발정하고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화를 내야 했다. 치한처럼 굴지 말라고 주먹질을 해야 했다. 놓아 달라며 짓누르고 있는 몸뚱이를 걷어차야 했다.

그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환의 말에 반응하듯 열기가 강해졌다. 눈앞이 흐려지고 꽉 눌린 사타구니가 발기했다.

겪어 본 적 없는 내 몸의 반응에 놀라야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멍하니 이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이 벌어졌지만 어떤 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해민 씨.”

“……실장님.”

어렵사리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를 부르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왔다.

“제가…… 좀, 아픈 것 같아요.”

“아파요?”

우는 아이를 달래듯 묻는 이환의 목소리는 다정했으나, 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는 이상하게 번들거렸다.

“아파요?”

그는 재차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아픈데. 고추가 아파요? 나랑 씹질 하고 싶어서?”

이환이 옷 위로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발기한 성기가 그의 손에 잡혀 마구잡이로 주물러졌다.

아프다. 아픈데 시원했다. 아픈데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들어 사타구니를 그에게 바짝 붙였다. 귓가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귀여운 짓을 하네.”

귓가에서 달싹이던 입술이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뜨거운 입술이 피부 위에 내려앉을 때마다 열꽃이 피었다.

“내 요정님.”

목덜미를 실컷 물고 빨던 이환이 입술을 마주하고 속삭였다. 뜨거운 숨결이 입술 위로 쏟아졌다. 나는 그 숨을 받아 삼키듯 입술을 벌렸고, 이환은 벌어진 입술 틈을 다급히 파고들었다.

두툼한 혀가 목구멍을 찌르고 들어왔다. 한껏 벌린 입안을 탐사하듯 이리저리 헤집으며 바짝 마른 점막을 핥아 적신다. 넘어오는 타액을 나는 달게 받아 마셨다.

그는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맞닿은 피부, 손길, 시선, 목소리, 숨결까지 뜨겁지 아니한 게 없었다. 그 열기는 내게 전해졌고, 내 열기는 그에게로 번졌다.

혀뿌리를 뽑을 듯이 강하게 잡아채 빨아들이는 행동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자, 그는 힘을 빼고 혀끝을 쪽쪽 빨아 주었다. 풀려난 혀를 냉큼 감추자 그 대신이라는 양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실컷 빨아 댔다.

“요정님 때문에 자지가 터질 것 같아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로 훑으며 이환이 속살거렸다. 그는 내 손을 붙잡아 제 가랑이 사이로 이끌었다. 단단하게 발기한 몽둥이가 천 너머로 느껴졌다.

“요정님한테 넣고 쑤시고 싸고 싶어서, 지금껏 참았어. 그랬더니 이렇게 나타났네.”

착하다, 예쁘다. 이환은 기특하다는 듯 웃으며 칭찬했다.

“자지 만져 줘요.”

이환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렸다. 메아리처럼 머릿속으로 퍼지는 울림을 따라 뭐에 씐 사람 모양 그의 바지춤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뜨거운 몽둥이가 손에 잡혔다.

크고 단단하고 뜨겁고 부드럽다.

끝이 축축하게 젖은 그 물건을 양손으로 쥐고 만지작거리자, 이환이 내 목덜미에 이마를 기대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실장님.”

옷 위로 만져지는 탓에 내 바지 앞춤은 축축하게 젖었고, 이환의 성기는 내 손바닥을 적셨다.

“저…… 이상한 것 같아요.”

자꾸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어렵사리 긴 문장을 뱉어 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내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알아요. 내가 쑤셔 줬으면 좋겠죠?”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자꾸 배 속이 간지러워요.

닿아 있는 피부가 간지럽고, 온몸이 간지러워. 몸속에서 돌아다니는 열기는 괴롭고,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무언가가 필요한데 정작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겠어.

“내 자지로 쑤셔서 아기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요정님이 이렇게 단내를 풍기는 거잖아.”

돌아 버리겠어.

한숨과 함께 중얼거린 이환이 다급히 내 옷을 벗겼다. 셔츠가 날아가고, 바지와 속옷이 한 번에 아래로 내려갔다. 단 몇 초 만에 나를 알몸으로 만든 이환은 단숨에 똑같은 알몸이 되어 몸을 붙였다.

이마와 이마를 마주 대고 시선을 맞추었고, 가슴과 가슴을 마주하고 심장이 나란히 뛰었다. 네 개의 다리가 혼란하게 얽혔고, 발기한 두 개의 성기가 서로의 대가리를 문지르며 맑은 액을 토해 냈다.

완벽하게 맞닿은 그의 몸은 뜨거웠고, 그럼에도 피부가 닿아 문질러질 때마다 묘한 시원함과 쾌감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넓은 등을 껴안았다.

이환은 어린 짐승 대하듯 쪽쪽 입을 맞추며 웃었다. 귀여워.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손바닥이 벗은 몸 위를 누볐다. 어깨와 가슴을 쓸다 배로 내려갔던 손이 다시 가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손끝에 걸리는 유두를 잡아 비비고 꼬집으며 괴롭혀 댄다.

열기가, 쾌감이,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를 감정이 머릿속을 빙빙 돌다가 발끝으로 내달렸다가 종내 사타구니로 모여들었다.

두 무릎을 모아 허벅지를 비벼 보지만 이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실장님.”

내가 알지 못하는 이 감정이, 이 상황이, 이 변화가 무엇일지 이환은 알고 있으리라. 나는 유일하게 매달릴 수 있는 눈앞의 남자를 불렀다. 그에게 답을 요구했다.

“실장님.”

“알아요. 나도 미칠 것 같아.”

어린아이를 대하듯 부드럽게 뺨을 마주 대고 비비며 이환이 속살거렸다.

유두를 만지작거리며 가지고 놀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부드럽게 허리의 곡선을 타고 미끄러진 손이 얄팍한 엉덩이를 콱 잡아 쥐었다. 몇 차례나 아프게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이 계곡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

“젖었네요.”

손끝이 주름진 구멍을 꾹 눌렀다. 다물려 있어야 정상일 그곳이 매끄럽게 벌어지며 손가락 하나를 받아 삼켰다.

익숙하지 않은 행위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무언가가 안을 채우는 감각에 사타구니가 요동쳤다.

“벌써 내 자지 먹을 준비 끝냈어요?”

“……모르겠어요.”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실장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멍한 머리로는 그 무엇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왠지 슬프고, 또 왠지 서럽고, 그러면서도 또 조금 기대된다. ‘무엇’이라는 대상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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