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퓨리티 (30)화 (30/172)

30화

멀거니 창밖 하늘을 응시하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많이 늙었고, 많이 지쳤고, 많이 놓아 버린 엄마의 얼굴.

항시 술에 취하여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고 자식을 때리던 사람이었다. 치매에 걸렸어도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고 자식을 때리는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가끔 용변 실수를 했을 때에도 술에 취해서 그랬나 보다 했다. 파출소에서 엄마를 보호하고 있다고 전화가 왔을 때에야 무언가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더욱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웃에게 항의가 들어올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울었고, 보이는 물건들을 던지고 부쉈으며,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상태로 골목을 방황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쯧쯧 혀를 차기도 했다.

「예쁜 치매 걸리는 노인네들도 있다더만, 어째 더 고약해졌어.」

치매도 예쁜 치매랑 미운 치매가 있다던데. 하필이면 미운 치매 증상이 나타났다며 운이 나쁘다고 했다.

나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해진 일이었고 예견된 수순이었다. 평소에도 상냥한 구석이 없던 여자였는데, 치매에 걸렸다고 갑자기 다소곳한 소녀처럼 변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이지가 사라지고 본능만 남았다. 그나마 남의 시선을 살피던 눈치마저 사라졌으니 악만 남는 게 당연했다.

“좋은 곳에 취직했어요.”

여자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릿한 눈동자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고용주가 좋은 사람이야. 착하고, 선하고, 배려심도 있고. 사람한테 정을 잘 주는 타입인가 봐. 목숨 한번 구해 줬다고 나한테 엄청 잘해 줘. 그런데 내가 구해 주지 않았더라도 딱히 죽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런 일이 많아서 잘 피한대.”

“술.”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응하듯 여자가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나를 알아본 것도, 내 말을 이해한 것도 아니다. 그저 버튼을 누르면 형광등이 켜지듯,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것뿐이다.

“사람은 착한데 상태가 좀 이상해. 아직까지 요정이랑 산타클로스를 믿는대요. 누가 그런 말을 하면 그냥 웃겠는데, 멀쩡하게 생긴 서른네 살의 남자가 그런 말을 하니까 좀 무섭더라.”

“……술은?”

“그래도 나한테 잘해 줘요. 삼시 세끼 따순 밥 먹여 주고, 좋은 곳에서 재워 주고. 저번에는 옷도 사 주고, 회사에서 멍 때린다고 심심하지 말라고 노트북도 사 줬어. 일 시키려고 날 데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날 모셔 두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술 어디 있냐고, 이 씨발놈아!”

가만히 앉아 고저 없는 목소리로 주절거리자 불현듯 감정이 격해진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나를 향해 획 돌아선 여자가 몸을 던지듯 달려들어 내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아저씨, 술 달라고 했잖아. 술!”

비명과도 같은 고함에 건장한 간호사들이 달려와 내 머리채를 잡고 있던 여자를 떼어 내려 끙끙거렸다. 여자의 손에 잡힌 머리가 이리저리 휘둘렸다.

“아이고, 환자분 손 좀 놓으세요. 아드님 머리 다 뽑히겠네.”

“정명숙 환자. 손 놔요!”

겨우 내 머리를 놓아준 여자가 몸을 뒤틀며 악을 썼다. 비쩍 마른 몸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간호사들이 혀를 찼다.

“하루에 두세 번씩은 저러세요. 꼭 술을 찾으시네…….”

“정신이 돌아오기도 하나요?”

오늘은 한 번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알아봤다 한들 행동이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그녀에게 나는 때리면 밥이 나오고 때리면 술이 나오는 자판기와도 비슷했다.

“기분 좋을 때는 옛날 얘기를 가끔 하세요. 남편분 처음 만났을 때라거나.”

“아버지…… 이야기요.”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치매에 걸리면 최근의 일부터 점차 잊어버리게 되잖아요. 어머님의 시간은 지금 그때에 가 있는 거예요…….”

아들 얘기는 없다는 말에 내가 서운해하기라도 할까 봐 간호사는 애써 위로했다. 딱히 아쉽거나 서운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모른 척 고개를 끄덕여 듣는 시늉을 했다.

“이만 가 봐야겠네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보호자님 서운하시겠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자주자주 오세요.”

그리 말했지만 그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간호사도 나도 기약할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환자의 대부분은 장기 환자들이고, 그렇기에 의사나 간호사들은 오랜 시간 보아 온 환자와 보호자들의 사정을 꿰고 있었다.

홀로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스무 살의 외아들. 병원비를 제때 내지 못하고 항상 딱 닥쳐서 혹은 밀려서 내는 나를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연민보다는 치매 걸린 엄마를 버리고 병원비 떼먹고 도망갈까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날뛰던 엄마는 어느새 늙고 힘없는 여인으로 돌아가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릴 때 보았던 엄마는 크고 거대한 존재였다. 나를 향해 떨어지는 손을 피할 생각조차 못 했었다.

매섭고 날카로운 가시들을 나는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했고, 나이를 먹어 내가 엄마와 비슷해졌을 때에도 여전히 나는 그 가시를 온몸으로 받아 냈다. 당연히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방에 처박혀 나를 때리고 술을 찾는 엄마에게 항상 묻고 싶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날 낳은 건 엄마고, 우리를 버린 건 아버지인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

결국 묻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묻지 못하고 있었다.

∞ ∞ ∞

“다녀왔습니다.”

주방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자, 점심을 차리고 있던 여사님과 시무룩하게 앉아 있던 이환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무서울 정도로 열렬한 시선에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네, 어쩌다 보니…….”

“식사 시간 맞춰 잘 왔어요. 손만 씻고 와요. 같이 점심 들게.”

여사님은 진심으로 딱 좋은 시간에 왔다며 기뻐했고, 부족한 밥과 식기를 챙겼다. 손을 씻으려 욕실로 향하는데, 이환이 내 뒤를 따라붙었다.

“날이 많이 덥나 보네요. 얼굴이 익었습니다.”

“네. 아직 여름이니까요.”

“날이 더운데 걸어온 거예요? 택시비를 챙겨 줄걸. 아니, 기사를 부를 걸 그랬습니다.”

이환은 매우 안타까워하며 혀를 찼다.

“아닙니다. 개인적인 일에 시간을 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그래도 이렇게 더운 날 걸어 다니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내가 생각이 짧았네요.”

이보다 더 더운 날에도 공사장에서 일을 했었다. 조금 걸은 정도로 쓰러지네 마네 하는 수준은 너무 나간 것 같지만, 이환은 걱정과 염려를 놓지 못했다.

그보다 이환은 어째서 화장실 안까지 따라 들어오는 걸까.

“실장님.”

“네, 해민 씨.”

“저 화장실…….”

“네, 네.”

아니, 대답만 하지 말고 나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볼일이 급하거든요.

변기로 시선을 주며 가만히 서 있자 뒤늦게 알아차린 이환이 후다닥 나가 문까지 곱게 닫아 주었다.

볼일을 본 뒤 손을 빡빡 씻고, 씻는 김에 얼굴까지 씻고 나오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환이 화색을 띠며 다가왔다.

“볼일은 잘 보고 왔습니까.”

“……네, 시원하게.”

“아, 그것도 좋은 소식이지만, 나갔던 일을 물어봤던 건데…….”

뭐 그런 것까지 물어보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고용주에게 시원한 배뇨 활동을 보고하자 민망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 볼일이 아니라 그 볼일을 물었구나.

민망함에 눈을 감아 버리자 이환이 “해민 씨?” 하고 나를 불렀다.

“어머님께 다녀온다더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뇨. ……그냥 똑같았어요.”

뭔가 오해를 했는지 걱정스럽게 변하는 얼굴을 보며 황급히 고용주를 안심시켰다. 그는 내 말에 다행이라며 다시 웃음을 지었다.

왜일까.

고용주와 고용인. 돈 주는 사람과 돈 받는 사람. 일 시키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

이환과 나는 이렇게나 다른 입장에 서 있는데.

어째서 이 남자는 항상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내 표정을 살피고, 내 기분을 염려하는 걸까.

「내 요정님, 내 운명.」

어스름한 저녁, 조명 빛을 받으며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대가 없는 호의. 기대 없는 호감.

어떤 타인에게서도 받아 본 적 없는, 심지어 피 섞인 가족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한 감정.

나는 그의 선의가, 호의가, 배려가, 염려가, 보살핌이 과분하다 여기면서도 좋았고, 껄끄러우면서도 기꺼웠다. 타인의 낯선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색했고, 어떻게 돌려주어야 할지 초조했다.

“실장님.”

“네, 해민 씨.”

“저 좋아하세요?”

화장실 앞에서 나는 이환에게 불쑥 물었다.

시기와 장소와 대상이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정말 ‘불쑥’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조금쯤은 주저하거나 이런 질문을 꺼내는 것 자체가 송구스럽다거나 민망해하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질문을 내뱉는 내 목소리는 나조차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짧은 답변을 내뱉는 이환 또한 그러했다. 그는 내내 이러한 질문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네?”

“아…….”

나는 한 박자 늦게 내가 내뱉은 말에 놀란 얼굴을 했고, 이환은 제 대답에 뒤늦은 탄식을 흘렸다.

“아, 아니, 그게…….”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왜인지 허둥거리며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이환이 이내 표정을 굳히더니 어렵사리 나를 내려다보았다.

“좋아합니다.”

“…….”

“좋아해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