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해민 씨. 딴생각하면 안 됩니다. 현장은 위험해요.”
관리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이환이 언제 보았는지 나를 툭 건드리며 지적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지만, 해민 씨의 안전을 위해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있도록 해요. 많이 덥죠? 이런 더운 날 데려와서 미안합니다.”
손수건을 꺼내 안전모 밑으로 송골송골 맺히는 이마의 땀을 닦아 주며 이환이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본인 역시도 땀을 흘리고 있으면서 내 얼굴을 닦아 주는 이유도, 그가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날이 너무 더워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며칠 사이에 낯설어진 현장의 뙤약볕에 더위라도 먹은 기분이다.
“안색이 안 좋네요. 물 좀 가져다줄까요?”
“아뇨. 제가 알아서 마실게요. 저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업무차 현장에 나와서 내게 신경을 쏟으면 곤란하다. 이환을 관리자 쪽으로 밀어 보내고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염려를 담아 따라붙는 백윤경의 시선에 손을 입에 대고 기울이며 물 마시는 시늉을 했다. 눈치껏 알아들은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수를 놓아두는 장소는 대충 알고 있다. 그곳으로 향하며 현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치열하게 움직이는 저들 사이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었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거푸집이니 철근이니 하는 자재들을 이고 지고 나르면, 몸에서 땀 냄새와 파스 냄새, 먼지 냄새와 쇠 냄새가 짙게 풍겼다.
아무리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어도 그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아 사무소에 모여든 아저씨들에게서도 났고, 내게서도 났다. 그 냄새는 하류층의 가장 밑바닥에 찌든 냄새였다.
반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을 코에 가져다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침에 씻으며 사용한 바디워시 향기와 햇살 냄새가 났다.
햇볕에 뜨겁게 달아오른 피부 위에 코를 박고 한참 동안 냄새를 맡았다. 언뜻 땀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몸을 감도는 바디워시 향기가 지워지면, 짙게 밴 밑바닥의 썩은 내가 드러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냄새가 다시 나를 채우면, 내 자리는 이환이 옆이 아닌 저 뙤약볕 아래가 되지 않을까.
한여름에 추워서 걸칠 것을 걱정해야 하는 에어컨 아래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더위로 혼절할 듯한 저 땀 냄새나는 공사장의 막노동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자리는 이곳이 아니라 바로 저곳이라고. 이곳과 저곳, 사무실과 현장, 에어컨 바람과 뙤약볕, 바디워시 향기와 쇠 냄새. 경계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나는 한 걸음만 밀려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였다.
“거기, 뭐 하고 있어요?”
식수 한 팩을 끙끙거리며 들고 오던 누군가가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불렀다.
“……네?”
“오늘 처음 오셨나? 벨트는 어딨어요? 그러고 다니다 걸리면 일당도 못 받고 쫓겨나는 거 몰라요?”
내 앞에 생수 팩을 내려놓으며 남자는 쯧쯧 혀를 찼다.
못 보던 얼굴이다.
일자리가 있는 곳에 모이는 일용직자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하여, 이 바닥에서 두어 달만 굴러도 얼굴이 낯익다 낯설다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생판 모르는 얼굴이란 뜻은 건설사 쪽에서 나온 사람이거나, 혹은 내가 관둔 이후로 일하러 나온 사람이란 의미인데. 남자는 아무리 봐도 후자였다.
“벨트 가져다줄 테니까, 이거나 옮겨 둬요.”
자연스럽게 생수 팩을 떠넘기며 남자가 어딘가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잡일을 떠넘기는 상황이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저런 식이면 일 오래 못 할 텐데.
저 남자가 언제부터 이곳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보름을 넘기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무게가 나가는 생수 팩을 건물 앞까지 끙끙거리며 옮기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남자가 나타나 내게 벨트를 내밀었다.
이것도 며칠 만이네.
추락을 대비하여 필수로 착용해야 하는 안전벨트. 길게 늘어진 안전고리. 며칠 만에 다시 받아 든 그것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들키기 전에 빨리 차요. 어디서 이런 초짜가 와서는…….”
어휴, 하고 과장되게 한숨을 내쉰 남자가 바닥에 내려놓은 생수 팩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거 사 층으로 올려요. 아재들이 목마르다고 난리네. 목이 마르면 지들 손으로 가져다 처마시든가 하지 꼭 사람을 시켜.”
시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공터 쪽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 덩그러니 남겨진 생수 팩으로 시선을 내렸다.
물 좀 얻어 마시려고 왔다가 막노동을 하게 생겼다. 그냥 가도 그만이지만, 현장에서 일해 본 경험으로 이 더운 날 물을 기다리는 인부들의 심정을 알기에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남자의 촉이 좋은지 안전모만 썼을 뿐인데도 부릴 만한 놈을 제대로 골랐다며 생수병을 들어 올렸다.
아슬아슬한 계단을 타고 사 층으로 올라가자 배관을 설치하고 용접을 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는 인부들이 보였다.
“박 씨 아저씨!”
인부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어? 해민이 너 어떻게 왔어?”
박 씨 아저씨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사무소에서 같이 온 기억이 없는데 현장에 떡하니 나타나 놀란 모양이다.
“지금 일하는 곳 고용주가 여기 볼 일이 있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마침 여기 작업하고 계셨네요.”
“네가 물 가져왔냐?”
“네. 새로 온 사람인 것 같은데, 오해했나 봐요.”
“그 쌍놈의 새끼. 뺀질뺀질해서 영 맘에 안 들어. 초짜는 아니라고 해서 데리고 왔더니, 뺑끼 치는 법만 배워 온 모양이더라.”
투덜거린 박 씨 아저씨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목을 적셨다.
“일은 네가 참 잘했는데.”
“원래 떠난 버스가 아쉬운 법이죠.”
“그러게나 말이다. 어디서 일하고 있는 거야? 소장이 너 좋은 데 소개시켜 줬다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던데. 그 뒤로 통 보이질 않아서 나는 소장이 너 어디 팔아 버린 줄 알았다.”
“팔긴 뭘 팔아요.”
“쪽지 한 장 딸랑 남겨 놓고 짐이랑 싹 다 사라졌다고 최 씨가 그러더만.”
“그러니까요. 어디 팔려 가면서 편지 남겨 놓고 짐 챙겨 갈 정신이 있었겠어요.”
허황되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그럴듯한 의심에 웃음이 나왔다.
“얼씨구, 웃어? 인마, 최 씨랑 나랑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고, 세상 살 만하네요.”
“허이구야. 쥐똥만 한 놈이 말하는 본새 좀 보게나.”
박 씨 아저씨가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타박을 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길바닥에서 자는 건 아니지?”
“숙식 제공이라 잘 먹고 잘 자고 있어요.”
“어쩐지 얼굴이 좀 편해 보이더라. 살도 올랐고. 고된 일 안 하는 모양이라 다행이네. 웬일로 소장이 소개를 잘 시켜 준 모양이지?”
정확히 말하면 소장의 소개가 아니라 이환의 의도에 따른 결과였지만, 굳이 자세한 설명을 풀어내지는 않았다.
다시 작업을 시작한 박 씨 아저씨 옆에서 시다를 해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만나 근황을 나눌 정도의 친밀감은 있었다.
“아까 그 조공은 처음 보는 얼굴 같던데. 새로 온 사람이에요?”
“어. 너 가고 한 이틀 뒤부터 나오기 시작했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 아주 틈만 나면 뺀질거린다. 뭐만 시키면 함흥차사야. 지금도 봐라, 물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엉뚱한 놈한테 시켜 놓고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
꽤나 불만이 쌓였는지 박 씨 아저씨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일 길게 안 하려는 모양이죠. 인력 사무소에는 여전히 사람 많아요?”
“거기야 뭐, 나 같은 놈들이 바글바글하지. 왜? 다시 왔을 때 너 자리 없을까 봐 걱정이냐?”
눈치가 빠른 건 이 바닥 사람들의 특징인 모양이다. 맞다 아니다 하는 답변 대신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좋은 자리 골라 갔으면 거기 있어. 뭐 좋다고 여길 다시 기어들어 오려고 그래, 젊은 놈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지껄이는 놈들은 젊어서 고생을 안 해 본 놈들이야. 젊었을 때 고생하면 늙어서도 고생한다. 나 봐라, 늙어서 골골대는 거. 이게 다 젊었을 때 몸뚱이 믿고 막 굴러서 이러지.”
“아직도 팔팔하시면서.”
“팔팔하긴, 인마. 죽을 때 장례 치를 돈 없을까 봐 관 값 벌러 나오는 거다.”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펴며 아이고, 하고 과장된 신음을 흘린다. 어울리지 않는 엄살에 실소가 나왔다.
“지금 일하는 거기에 딱 붙어 있어. 여기처럼 막노동은 안 시킬 거 아니냐. 비위 좀 맞춰 주고 알랑방귀도 뀌고 입 속의 혀처럼 살살거리고 해. 넌 인마, 젊은 놈이 너무 뻣뻣해.”
“제 비위가 그렇게 좋지 못해서요.”
“넌 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지 말고, 사람답게 간사하게 살아.”
간사하다는 말이 남에게 추천해 줄 만큼 긍정적인 의미였던가 잠시 고민하게 되었다.
“사람다운 게 간사한 건가요?”
“그럼. 사람이란 본디 자기가 젤 중한 법이거든.”
“저도 제가 제일 중해요.”
“말로는 중하다 하면서, 왜 소중히 대해 주지를 않냐. 요령껏 해, 요령껏. 시키는 일 다 한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 없어.”
“아까 그 사람처럼요? 심부름 떠넘기고 함흥차사 흉내 좀 낼까요?”
“걘 너무 나갔고. 조만간 소장한테 말 들어가서 못 나오지 싶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박 씨 아저씨만이 아닌 모양이다.
요령을 피워도 눈치껏 피웠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너무 대놓고 요령을 피우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