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튼 퓨리티 (3)화 (3/172)
  • 3화

    “이리 내, 붙여 줄 테니까.”

    낑낑거리며 파스를 붙이고 있자 박 씨 아저씨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굳은살이 박여 거칠어진 손바닥 위에 파스를 올려놓으니 파스가 유난히도 작아 보인다.

    등을 돌리고 셔츠를 걷어 허리를 내보이자, 말하지 않아도 쿡쿡 쑤시는 곳에 턱턱 파스를 붙여 준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아픈 곳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다년간에 쌓인 노하우 아닌 노하우였다.

    “어제 다친 거냐?”

    “다친 건 아니고요, 그냥 조금 쑤시네요.”

    “무식한 놈.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거길 뛰어들어? 높으신 분 구하다 대신 죽는다고 고마워하면서 장례라도 성대히 치러 줄 것 같냐? 갯값도 안 나와, 이놈아.”

    “죽으려고 뛰어들었나요. 사람 죽는 거 막으려고 뛰었죠.”

    내 대꾸에 박 씨 아저씨는 기어코 뒤통수를 쥐어박았다.

    “영웅 났다, 영웅 났어.”

    “그 높으신 분이 죽기라도 했어 봐요. 현장 올스톱되고, 줄줄이 모가지 날아가고, 우리는 참고인 조사네 뭐네 하면서 경찰서 들락거려야 했을걸요. 생각해 보니 내가 여러 사람 목숨 구했네.”

    “얼씨구.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한다.”

    “……모르겠어요. 저도 제가 그렇게 정의감이 넘치는 줄은 어제 처음 알았네요.”

    목숨 내놓고 모르는 사람을 구하러 다닐 정도로 정의감에 불타는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서 사람 목숨 위태로운 상황을 보니 절로 몸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뒤에 느낀 것은 작은 안도감이었다. 죽지 않고 살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적어도 아직까지 내게 사람다운 본성이 남아 있긴 하구나 싶은 안도감.

    “몇 개 더 붙여 주랴?”

    “아뇨, 이거면 됐어요.”

    “아침은?”

    “곧 소장님 오실 시간이라서요.”

    편의점에서 사발면이라도 하나 먹고 왔으면 좋으련만, 일어나 조금 굼뜨게 움직인 탓에 서둘러 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나름대로 치열한 바닥이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괜찮은 일거리는 자리가 차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 증거로 십 분 사이에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만 열 명이 넘어서고 있었다.

    “자, 먹어.”

    “괜찮아요.”

    “먹으라면 먹어, 이놈아.”

    부스럭거리며 주머니에서 빵 봉지 하나를 꺼낸 박 씨 아저씨가 손바닥보다 작은 빵을 절반으로 나눠 내게 내밀었다.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기어코 내 손에 빵을 쥐여 준 아저씨가 남은 빵을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었다.

    “넌 아직 젊은데, 조금 더 괜찮은 일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냐? 여기서 일하다가는 몸 망가지는 거 금방이야.”

    “아저씨도 하시는데, 제가 못 한다고 내빼면 그게 더 웃기죠. 말마따나 제가 더 젊잖아요.”

    “그게 아니라,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는 말이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야 받아 주는 곳이 없으니 몸 깎아 먹는 거 알면서도 여기 붙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넌 앞날이 창창하니 여기보다는 나은 곳에서 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지.”

    “창창하긴요.”

    그것도 잘 배우고 먹고살 걱정 없는 사람들이나 할 소리지. 당장 먹고 자는 데에 쓸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한 달 일해서 월급 받아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당장이 급하니 일당 주는 곳을 찾게 되는 게 현실이었다.

    “소장님 오셨나 봐요.”

    쿵쿵 계단 올라오는 발소리에 쥐고 있던 빵 조각을 급히 입에 넣었다. 예상과 다름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소장이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들어왔을 소장이 뒤따라 들어오는 누군가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해민아. 서해민!”

    소장이 사무소 내부를 둘러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왜 출근을 하자마자 나를 부르지.

    이유를 가늠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안쪽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던 소장이 구석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손짓을 했다.

    “오늘도 와 있었네요. 해민이가 나이는 어려도 저렇게 성실합니다.”

    어울리지 않게 칭찬을 해 대며, 쭈뼛쭈뼛 다가간 내 팔을 잡아끌어 낯선 사람의 앞에 세웠다. 정장을 입은 사내는 일할 곳을 찾으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너 어제 구해 드렸다는 분이 보내셨다고 하더라.”

    소장이 귀엣말로 슬쩍 언질을 주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사내가 무뚝뚝한 얼굴로 꾸벅 고개인사를 했다.

    “실장님께서 어제 일로 뵙고 싶어 하십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식사를 청하셨습니다.”

    “이 시간에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실장님이라니. 어떤 회사의 실장님인지는 몰라도 이런 인력 사무소 같은 동네 구멍가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회사의 높으신 분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실장님인 것은 둘째 치고, 아침 일곱 시도 되지 않은 이 시간에 식사를 청한다고?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이 시간에?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가자고 하면 내가 가야 하나.”

    이른 아침 시간에 밥 먹자고 청한 것도 웃기지만, 상대 의향은 묻지도 않고 끌고 가려는 사내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아 반사적으로 날이 선 반응이 흘러나왔다.

    “감사 인사를 아침 시간 쪼개서 하실 정도로 그쪽 실장님이 얼마나 바쁘신 분인지 짐작은 되는데, 저도 하루 일정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적어도 상대방 의견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거라면, 자기 시간에 맞출 게 아니라 상대방 시간에 맞추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잖아요. 그 시간이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해민아, 야 인마.”

    사내와 마주 서서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자, 곁에 있던 소장이 되레 안절부절못하고 슬쩍 내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줬다.

    “그럼 괜찮은 시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새벽부터 밤까지 막노동 뛰는 놈이라 괜찮은 시간이 없네요. 식사는 됐다고 전해 주세요.”

    어차피 내가 모시는 실장님도 아닌데 비위 맞춰 줄 필요 있나. 그 사람 비위를 맞춰 준다고 뭐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가뜩이나 돈 없어서 죽을 지경인데, 하루 일을 공치면서까지 감사 인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사내는 잠시 침묵했다.

    “기분이 상하신 모양이군요. 실장님께서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하시어 제가 급한 마음에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연락처를 알려 주신다면 서해민 씨의 시간이 괜찮을 때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뇨, 제가 연락드릴게요.”

    단호하게 거절하자 사내는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사내가 사무소를 나서며 휴대폰을 꺼내 든다. 실장님인지 뭔지 하는 놈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겠지.

    “왜 그랬어? 저 양반들이 고맙다고 하면서 밥만 먹이고 빈손으로 보내겠냐? 따라가서 대충 비위 좀 맞춰 주면, 어련히 알아서 두툼한 놈으로 찔러 줄까. 어린놈이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요.”

    “나랑 상관도 없는 사람이면서 비싼 척 구는 게 재수 없어서요.”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요, 입고 있는 옷이 촌스러워서요, 비가 와서요, 하늘이 맑아서요. 개소리를 하듯 평온한 목소리로 지껄이자, 소장이 사내가 나간 문 쪽을 힐끗거리며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입술 위에 세웠다.

    “그리고 소장님. 저 거지 아니에요. 내가 왜 공돈을 받아요.”

    “그게 왜 공돈이냐? 사례금이라는 엄연히 좋은 말을 놔두고. 나중에라도 만나면 잘 구슬려서 두둑이 받아 내. 저 사람들 목숨이 어디 그냥 목숨이냐. 엄청난 거 문 거야, 너는.”

    “공짜로 생긴 돈은 뒷맛이 안 좋아요. 전 힘들어도 일한 만큼 받아 가는 게 좋아요.”

    “그러다 평생 이 바닥 못 벗어난다. 사람은 항상 한탕을 노려야 하는 법이야. 티끌 모아 태산? 평생 모아 봐라, 티끌이 태산 되나. 티끌은 모아 봤자 그냥 조금 더 큰 티끌일 뿐이야.”

    그렇게 티끌 무시하는 양반이 소개 수수료를 올려 받으려고 몇 달 전부터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었다.

    저나 잘하지.

    소장 모르게 할깃 눈을 흘기며 등을 돌렸다. 자리를 찾아 돌아오며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구겨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목숨값, 공돈.

    죄다 달갑지 않은 단어들이다.

    문득 엄마와 나를 버려두고 떠났던 아버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그는 겨울밤 도로 위에서 죽었다고 했다. 취하지도 않았고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인적 드문 어두운 도로 위에서 아이처럼 몸을 말고 잠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죽었으면 단순한 부랑자의 죽음으로 취급되었을 텐데, 하필이면 그 도로를 달리는 차가 있었다.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난 몸뚱이를 뒤늦게 발견했고, 차는 그대로 아버지를 밟고 지나갔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목 놓아 울었으나, 나는 슬프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가 우리 모자를 떠난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가 엄마와 나를 떠났듯, 이 세상도 떠날 것이라고.

    뒤돌아 멀어지던 그는 어떤 짐도 지고 있지 않았다. 그대로 훨훨 날아가 버릴 듯 한없이 가볍기만 했다.

    아버지의 사인이 동사인지 사고사인지 공방이 오갔다.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운전자의 집 앞까지 쫓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금이라도 더 합의금을 받아 내겠다고, 혹여 아버지의 사인이 동사로 판명된다 할지라도 그들에게서 기필코 돈을 받아 내겠노라고. 맞잡은 손으로 엄마의 굳은 의지가 전해졌다.

    그렇게 합의금이라고 받아 낸 아버지의 목숨값은 결국 써 보지도 못하고 날아갔다. 기존에 모아 두었던 돈까지 합쳐 더 큰 돈이 되어 사기꾼의 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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